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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어디선가 요란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곧 어스름 속에서 석양의 붉은 빛을 날개에 반사하며, 어둑한 하늘 가득히 검은 까마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까마귀들은 빠른 속도로 내려오면서 사냥에 나선 늑대 무리처럼 사내들을 덮쳤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길고 묵직한 음 하나가 나를 전율케 했다. 수장님이 피리를 입에 대고 광장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수장님의 피리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허공을 가르자, 소년들의 손이 떨리고 그들의 피리에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침내 소년들은 비명을 지르며 피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 p.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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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발, 노란 발, 빨간 발, 노란 발. 웅장한 도시 쾰른에 있는 길드하우스를 떠나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나의 발걸음은 여전히 경쾌했다.
떠나기 전 수장님이 몹시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빨간 색은 정의를, 노란색은 자비를 나타낸다. 네가 어느 한 가지도 잊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 너를 ‘다색 옷을 입은 올덴도르프의 피리 연주자’라 칭하노라.” --- p.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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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해방시켜라, 지금이다. 바로 지금이다.’
파도처럼 솟구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화살을 쏘듯 선율을 발사했다. 쥐들은 머리를 홱 쳐들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왔다. 나는 수만 마리의 쥐들을 한데 묶은 그 줄을 다시금 바짝 조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드센 파도가 내 위로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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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들 가운데 「하멜른의 쥐잡이」는 사건의 시간과 공간의 윤곽이 비교적 또렷하다. 중세 독일의 소도시인 하멜른은 쥐 떼가 들끓어 몹시 고통 받고 있었는데, 요란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나타나서 사례금을 주면 쥐들을 소탕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피리를 불어 이 도시의 쥐들을 모두 강으로 끌고 가서 빠뜨려 죽이지만, 주민들은 약속된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 피리 연주자는 이번에는 하멜른의 아이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떠나 버리고 만다.
이 이야기는 1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뤼네부르크 사본에 처음 등장한다. 그 내용은 “서기 1284년 6월 26일,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의 축일인 이 날, 다색 옷을 입은 한 피리 연주자가 하멜른에서 태어난 1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쾨펜 지역의 칼바리로 떠났다”는 것이다. 비극적이고 섬뜩한 이야기다. 그러기에 이 사건은 오히려 강한 인상으로 민중의 뇌리에 박힌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뼈대가 만들어지고 살이 붙으면서 이 사건은 전설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19세기 초반에 마침내 그림 형제에 의해 구체적인 윤곽이 만들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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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과 판타지를 접목시켜 ‘다색 옷의 피리연주자’ 전설을 새롭게 빚어낸다. 육년간의 도제 생활을 마친 요하네스는 길드의 스승이 되는 관문인 개인 임무 수행에 나선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일견 단순해 보인다. 하멜른에 가서 쥐 떼를 몰아내고 그 대가로 받는 사례금을 자선 목적에 쓰는 것이다. 하지만 하멜른의 진짜 쥐는 발밑에서 기어 다니는 그 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과제는 더 이상 단순한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요하네스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교묘하게 단순한 선택의 기로. 자비를 베풀 것인가, 정의를 구현할 것인가...
================================================================================================== <옮긴이의 말 중에서> ‘피리 연주자’ 설화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어 왔는데, 1212년의 어린이 십자군 원정대와 관련을 짓기도 하고, 중세 시기의 갖가지 질병으로 인한 아이들의 집단 사망, 그리고 무도병 환자들의 행렬에서 연관성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 ‘다색 옷을 입은 피리 연주자’ 전설을 토대로 한 소설 『6월 26일, 하멜른』은 그림 형제의 바통을 이어받아, 매력적이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며 7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해져 온 이야기를 흥미롭게 재구성한다. 피리 길드 소속의 악사 하네스가 중세 독일을 배경으로 하멜른 시장의 딸 클라라,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구드룬과 함께 엮어내는 모험담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 또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들게 한다. 검객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듯 독창적인 ‘피리세계’에서 펼쳐지는 피리 악사들의 대결은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고,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안이한 예측을 불허한다. 또한 『6월 26일, 하멜른』은 그저 ‘한 완성도 높은 모험소설’에 그치지 않고 정의와 자비라는 두 주제어를 화두로 던지며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도 제공한다. 세밀한 필치로 묘사된 중세 농노제 사회 속에서 그 자신 농노의 아들인 하네스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접하고, 끊임없이 도전적인 상황에 놓이면서, 정의와 자비라는 사뭇 이율배반적인 두 명제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