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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아름다움을 그린 진경산수의 창시자 _정선
왕의 사랑을 받은 풍속화의 천재 _김홍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화가 _신윤복 자애로운 조선의 어머니, 보석 같은 조선의 여류화가 _심사임당 근대 화단을 이끈 개화기의 천재 화가 _장승업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화폭에 담다 _안견 붓으로 먹고 산 시대의 저항아 _최북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고민했던 선비 화가 _윤두서 남종화의 절정을 이끌었던 서화가 _김정희 해학적이고 개성 있는 풍속화의 선두 화가 _김득신 복을 빌고 화를 막아주는 서민들의 그림 _민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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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의 용모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며 체구가 작달막했다는 설명이 있는데 최북이 한쪽 눈이 없는 애꾸였다는 설명은 한결같다. 남공철이 말하기를 최북은 눈이 하나 멀어서 항상 안경알을 하나 붙이고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최북은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을 향해 오히려 손가락질을 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그의 그림을 얻고자 하면 엉터리로 그린 그림을 주었고, 걸작을 몰라주면 그 자리에서 그림을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자신의 광인 같은 짓이 “지독하도록 말짱한 세상 때문”이라고 했다. 최북은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최북은 중인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울분을 술로 달래며 살았다. 하루에 막걸리 대여섯 되는 거르지 않고 먹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언제나 취해 있었으며 취한 상태에서 하루 종일 산수화를 그려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술값을 충당하기 위해 그림을 팔지 못하면 집안에 있는 책과 종이마저 다 팔아 술을 먹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기 싫을 때는 절대 그리지 않았던 최북의 괴짜 같은 성격을 말해주는 일화는 또 있다. 어느 날 벼슬이 높은 양반이 찾아와 최북에게 산수화를 그려 달라 부탁했다. 그리기 싫은 것을 마지못해 그리기 시작한 최북은 이상하게도 물은 그리지 않고 계속해서 산만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부탁한 양반이 이상하게 여겨 참다못해 물었다. “산수화를 그려 달라 했더니 왜 물은 안 그리고 산만 그리는 겁니까?” 그러자 최북이 대답했다. “그림 바깥은 다 물인지 아쇼.” 이렇게 말하며 양반에게 그림을 내주었다. 한번은 어느 재상의 집에서 그림을 펼쳐보고 있는데 그 집 자제들이 말했다. “우린 도무지 그림은 모르겠어.” 이 소리를 들은 최북이 당장 발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은 모르겠다니, 그렇다면 다른 것은 안다는 말이냐!”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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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조선의 유혹!"
보물과도 다름없는 선조들의 신비로운 작품을 담은 『조선의 화가』 조선시대에서도 특히 후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아픔을 이겨내고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를 창조해낸 시기였다. 건축, 도자기, 불교·민속 미술 등 여러 미술 분야가 고루 발전했지만 우리 민족의 문화적인 힘이 크게 발휘된 것은 무엇보다도 회화 분야라고 할 것이다. ■ 세계에 영향을 끼친 조선의 미술 조선 후기는 문인과 화원뿐만 아니라 좀 더 폭넓은 계층이 다양한 문화·예술계에 폭넓게 참여하게 되면서 새롭고 활기찬 기운이 가득한 시대이기도 했다. 중인 계층들은 회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조선 후기 미술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우리 문화에 있어 조선 후기 미술이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국제적 감각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조선적인 미술 양식을 만들어 냈다는 데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화풍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각각의 분야에서 조선 사람의 정서와 미감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냈다. 이런 발전의 결과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자 하는 조선 후기 화가들의 창조적인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국제적인 회화 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옛 것에 집착하지 않는 새롭고 신선한 회화 양식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민간의 노력으로 돌려받은 유산들 얼마 전 독일에 있던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이 80년 만에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정선을 비롯한 조선의 화가와 작품에 세간의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특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는 물론 그의 그림들은 국보급 문화재라는 점에서 독일로부터의 반환에는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최근 일본 후지스카 부자의 추사 유품 기증이나 도쿄대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 반환,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 환수 등이 모두 민간의 노력으로 성사됐다는 점은 한층 더한 감격을 가져다준다. 국가 간 협상에 의해 문화재가 반환된 사례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민간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이번 기회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번 반환은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여 더욱 더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 간 협상으로 반환 받기 어려워진 만큼 정부는 민간의 노력을 지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선의 그림은 현재 지방의 한 대학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알고 공부하는 것은 단편적인 학습을 위한 일이기 전에 예술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우리의 것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조선의 화가』는 『조선의 선비』를 시작으로 『조선의 정승』 그리고 『조선의 부자』까지 조선을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 시리즈 마지막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겸재 정선을 시작으로 풍속도의 천재 단원 김홍도, 미인도의 혜원 신윤복, 조선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신사임당, 개화기를 이끈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 몽유도원도의 안견, 광인 같은 삶을 살다 간 칠칠이 최북, 우리의 보물 자화상의 윤두서, 그림 같은 글씨로 추사체의 창시 김정희, 화원 집안의 긍재 김득신까지 열 명의 화가들과 친근감과 해학을 담고 있는 서민들의 그림, 민화의 아름다움까지 담고 있다. 현재까지 소중하게 보관되어 전해 내려오는 그림들도 있는가 하면, 어떤 화가의 그림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남아 있는 작품, 기록에는 남아 있으나 실제로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작품들에 관한 소개와 해석으로 『조선의 화가』는 힘들게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옛 그림은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생활 철학이 깊고 굵게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임은 물론, 예술작품으로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조선의 화가』는 보물과도 다름없는 작품 뿐 아니라 화가의 애절한 마음, 당시의 시대상을 함께 담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이 이제 우리 선조들의 미술작품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바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예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