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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 09
20세기의 시작 : 가정주부의 탄생 10 / 1900-1914 : 진보를 향한 발걸음 13 / 1914-1918 : 국가를 위하여 22 / 1918 : 질서의 회복 29 / 1918-1926 : 혁명의 큰 꿈 34 / 1920-1929 : 상황의 일시적 호전 40 / 1930-1939 : 남성들의 일자리 45 / 1931-1939 : 스페인 여성들의 힘겨운 싸움 54 / 1939-1944 : 전쟁에 동원된 여성들과 학살된 여성들 58 / 1944-1947 : 가정에 대한 의무에 저항한 투표권 68 / 1950-1955 : 가정주부의 행복 73 / 1955-1960 :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해방된 여성 78 / 1960년대 : 점진적인 노동 시장의 쟁취 82 / 1960-1967 : 피임, 자기 몸의 주인 되기 87 / 1968-1970 : 해방 운동 93 / 1971-1975 : 낙태 투쟁 103 / 1975-1980 : 가족의 변화 110 / 1980-1990 : 가속화된 여성 해방 118 / 1989-1990 : 차도르 사건 123 / 1990-2000년대 :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128 인물과 신화 141 위베르틴 오클레르 :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 142 / 에멀라인 팽크허스트 : 극렬 여성 참정권론자 144 / 마르그리트 뒤랑 : 『라 프롱드』지로 여성의 삶을 대변하다 146 / 에마 골드만 : 자유를 추구한 방랑자 149 / 셀마 라겔뢰프 : 사랑을 구원자로 예찬한 여성 151 / 마들렌 펠티에 : 여성이기 전에 인간이기를 원한 급진주의자 153 / 마리아 몬테소리 : 성숙한 어른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해방시키다 155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 성 혁명 158 / 가르손느 : 수많은 모방자를 낳은 소설 주인공 161 / 가브리엘 샤넬 :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 164 / 버지니아 울프 :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종속된다 166 / 카렌 호니 : 프로이트에 대한 반박 169 / 루이즈 바이스 : 페미니즘을 시사 문제와 접목하다 171 / 페데리카 몬트세니 : 길들일 수 없는 여인 173 / 베르티 알브레히트 : 타인들을 돕다 175 / 엘리너 루스벨트 : 인권 178 / 시몬 드 보부아르 :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180 / 엘렌 고든 라자레프 : 여성으로 태어난 즐거움 184 / 마리 앙드레 베유 알레 : 출산을 선택하다 186 / 브리지트 바르도 : 순수한 육체적 쾌락 188 / 베티 프리던 : ‘여성의 신비’ 고발 190 / 메리 퀸트 : 미니스커트, 여성 옷의 혁명 192 / 지젤 알리미 : 모든 투쟁에 앞장 선 페미니스트 194 / 케이트 밀레트 : 남성 제국주의에 반대 196 / 뤼스 이리가레 : 여성성을 말하게 하다 198 / 안젤라 데이비스 : 인종 차별과 성 차별주의에 저항하다 / 201 / 타슬리마 나스린 : 근본주의에 반대 204 / 20세기의 반페미니스트들 … 206 종합 평가와 논쟁 211 평등인가, 차이인가? 212 / 동수 : 쟁취인가, 권리인가? 223 / 매매춘 : 노예 상태인가, 노동인가? 232 / 어머니는 모든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238 / 여성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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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보답은 무엇이었나?
전시에 여성은 남성을 대신해 노동자로, 저항 요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직장을 포기하지 않은 채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려 하지 않는 여성들은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프랑스의 경우 저항 활동으로) 해방 훈장을 받은 남성은 1024명에 달했으나 거기서 여성은 6명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2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것이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남성들의 보답이었다. 산업화를 위해, 산업화에 의해 탄생한 가정주부 ‘가정주부’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9-20세기 제2차 산업혁명 시절이었다. 그 무렵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업 노동 및 가내 고용이 줄어들고, 주거 공간이 한 세대 혹은 두 세대로 축소되면서 여성들이 집에 머물면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아이의 출산과 양육은 물론이고, 가족 구성원들이 노동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것이다. 가전제품의 보급은 가정주부를 편하게 했는가? 가전제품의 보급은 시간을 벌어주는 듯했으나, 결국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가정 관리 모델이 강요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가전제품의 보급 결과 이제 가정은 완벽해야 했다. 반짝반짝 윤이 나며 정돈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혹에 대처하기 위한 소비 계획 관리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결과적으로 가전제품 보급으로 말미암아 한순간이라도 일하지 않으면 죄의식을 갖게 될 만큼 가사 노동 시간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는 여성을 해방했던가? (러시아 혁명 이후) 이혼의 유죄성이 폐지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합의 이혼이 법정이나 호적등기소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종교 의식에 따른 결혼식은 없어졌고, 종교 의식에 따르지 않은 결혼식은 극도로 간소화되었다. 1918년에는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의 영향을 받은 가족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부부 사이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관계이며, 그들의 자식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평등한 관계였다. 남편은 자신의 성(姓), 국적, 거주지를 강요할 수 없었고, 사생아도 적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법에서는 임신한 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출산 휴가도 보장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낙태를 자유롭게 결정하여 무료 시술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아울러 법의 적용을 감시하고 여성들이 정치와 사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노트텔 즉 공산당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중앙위원회 여성 분과가 1919년에 창설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남성들에게 더욱 유리했다. 여성들은 아이들의 친자 확인을 위해 동거 사실을 증명하고, 그 남성이 아이들의 친부임을 밝혀야 했으나,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남성 혹은 남편들은 법정이 할당된 양육비조차 지급하지 않으려 했다. 집안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겠다던 약속은 공수표에 불과했다. 그런 속에서 신경제정책(NEF)에 의해 남녀의 임금 차별이 재도입되었으며, 자격 미달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본격화되었다. 결국 1935년부터 가부장제가 되살아났다. 이혼이 까다로워졌으며, 낙태가 금지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되자 여성들은 거의 모든 것을 다시 쟁취해야만 했다. 유럽에서는 페미니즘이 승리했는가? 사건의 발단은 몇몇 이슬람계 여학생들이 차도르를 쓰고 등교한 데서 비롯되었다. 교장은 그것을 정교 분리 원칙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여 벗을 것을 요구했고, 이슬람계 여학생들이 외적인 압력으로 말미암아 거부하자 퇴학을 결정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페미니스트들은 차도르 착용이 여성의 억압에 대한 표시라며 퇴학 처분을 지지했다. ‘만일 프랑스가 학교에서의 차도르 착용을 받아들인다면 음핵 절제, 강제 결혼, 일부다처제, 간음에 대한 투석 형벌은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라는 입장에서였다. 반면 이슬람계는 그것이 프랑스의 외국인 거부 - 특히 아랍계 거부를 상징하는 행위라고 맞섰다. 사건의 해결은 결국 프랑스의 최고행정재판소인 콩세이데타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이 여학생들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이 이들에게 가치와 지식을 가르쳐야 할 학교로부터 퇴학당했다는 사실도 무시되었다. 이들은 결국 프랑스 정부의 외국인 혐오와 이슬람 체제 유지주의자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셈이었다.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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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그 자체의 정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지 않다면 민주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들에게는 역사적 부채감까지 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공식적으로 ‘왕이 아닌 인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선언하고, ‘보편적 권리로서의 인간의 권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일 뿐이었고, 1791년 제정된 헌법에서는 법을 제정할 수 있는 ‘능동적’ 시민과 이들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 시민을 구분했다. 타인에게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처분을 맡기는 사람들(노동자)이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한 것이다. 결국 당시 시민적 주체를 구성하는 기준은 ‘재산’ 그리고 ‘남성적 동일성’이었다. 이것은 여성의 역할이 가족 내로 한정된다는 전제에 입각해서였다. 그러자 시민적 영역에서 배제된 사람들, 즉 노동자와 여성들이 여기에 반발하고 나섰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상당한 권리를 얻어 낼 수 있었다. 19세기 내내 전개된 투쟁의 결과 노동자들은 적어도 20세기 초반까지는 한 인간으로서, 한 시민으로서의 존엄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한마디로 19세기는 노동자의 시대였지, 여성의 시대는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한 시민으로서의 여성은 관념만 형성되고 있을 뿐 실천적으로 얻어 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 여성들이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여성사는 가능한가?’에서 ‘여성 없는 역사는 가능한가?’로 여성들의 외침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여성사라는 학문 분야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1983년 생 막심에서 열린 학회 제목은 ‘여성사는 가능한가?’였다. 그러나 1991-1992년 조르주 뒤비와 미셸 페로가 낸 책의 제목은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서구 여성의 역사』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루앙에서 열린 학술대회 제목은 ‘여성 없는 역사는 가능한가?’가 되었다. 반면 이런 여성들의 외침에 비우호적인 태도도 만만치 않다. 일상생활이 된 남성 우위론에 일반화된 여성 혐오, 페미니스트를 욕구 불만에다 괴팍하고 잘난 체하는 여류 학자 혹은 거세 콤플렉스를 일으키는 여장부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한 반(反)페미니즘, 남녀 사이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평등 반대론 등등…. 한마디로 20세기의 반페미니스트 목록은 너무 길어서 모두 기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대립은 오늘날 이 시점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존재하던 보이지 않는 인간 여성이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사건과 인물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여성들이 한 인간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것이 결국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가 우리의 의식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밝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