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엔리케를 찾아서
1장 뒤에 남겨진 남자아이 2장 은총을 찾아서 3장 짐승과의 만남 4장 선물과 믿음 5장 국경에서 6장 검은 강 너머 7장 뒤에 남겨진 여자아이 에필로그: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이민 논쟁 저자 후기 |
|
사선을 넘나드는 한 소년의 122일 생생한 기록!
전 세계의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 왜 엄마들은 어린 아이들을 뒤에 두고 정든 땅을 떠나야만 하는가? 왜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엄마를 찾아서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나야만 하는가? 매년 4만 8천 명 아이들이 쓰는 위험하고 슬픈 서사시 엔리케가 다섯 살이었을 때, 엄마 라우데스는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먹일 수 없게 되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온두라스를 떠나 미국으로 간다. 거기에 가서 돈을 벌어 집으로 보내게 된다면, 엔리케는 허기를 면할 수 있으며, 잘 하면 초등학교 3년 이상 학교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라우데스는 곧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미국 생활은 그녀가 생각한 것처럼 쉽지가 않다. 세월이 흐른다. 엔리케는 엄마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애원하지만,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소년은 더욱 외롭고 고통스러워진다. 가끔씩 하는 전화에서 엄마는 참으라고 한다. 조만간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엔리케의 기대는 낙담과 분노로 변한다. 엄마와 헤어진 지 12년이 지나자, 그는 마침내 엄마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죽음의 기차'도 앗아가지 못한 한 소년의 소망 엔리케는 노스케롤라이나에 있는 엄마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 한 장만 달랑 들고 혼자서 테구시갈파를 떠난다. 돈도 없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걸어가면서 가끔씩 트럭에 무임승차하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화물열차의 지붕 위에 올라타고 가는 것이다.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는 열망과 일련의 단호한 결단으로, 엔리케는 위험한 미지의 세계로 계속 나아간다. 멕시코를 지나가는 여정에서, 그와 무수한 이주민 아이들은 짐승 같은 사람들의 먹잇감이 된다. 화물열차 지붕 위를 장악하고 있는 갱들과 무장 강도들은 이주민아이들을 강탈하고 기찻길로 내던진다. 도처에서 부패한 경찰들은 이들의 돈을 빼앗고 본국으로 강제 추방한다. 경찰과 이민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이주민 아이들은 질주하는, 일명 '죽음의 기차'의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고 올라탄다. 이들 중 일주일에 여덟 정도는 지붕 위에서 떨어져 사지가 절단되거나 죽는다. 현장성 넘치는 펜과 사진의 힘! 해마다 미국에는 중남미와 멕시코를 경유해서 불법적으로 이주해 오는 아이들이 약 4만 8천 명이나 된다. 이들 중 3/4는 자신들을 두고 떠난 싱글 맘들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15세이며, 거의 대부분이 남자아이들이다. 저자가 이 책의 주인공으로 엔리케를 설정한 이유는 그가 전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7년 우연히 자기 집 가정부인 과테말라 출신 카르멘이 10년 전에 미국으로 오면서 자신의 어린 네 명의 아이들을 고국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을 쓰고자 했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한갓 가정부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중남미 전역에 이혼이 확산되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의 형태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가 알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는 보모의 82퍼센트와 가정부의 25퍼센트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그리고 멕시코 출신이며,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국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아이들을 두고 혼자서 미국으로 온다. 저자는 엔리케와 엔리케 같은 아이들이 직면하는 상황을 보다 정직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취재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그녀는 취재 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저자가 직접 체험한 악취나는 화물열차, 극악무도한 이주민 알선자들, 오만한 이민 당국자들에 대한 선명한 묘사는, 같이 동행한 사진기자 돈 바트레티가 찍은 현장감 넘치는 사진들과 함께 엄마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집념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해 준다. 공정한 시각과 감수성이 넘치는 글의 품격 한편, 가슴을 저미게 하는 잔인한 빈곤에 대한 심정적인 동정으로 인해, 저자가 자칫 공정성을 결여하기 쉬운 이민 문제를 아주 객관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목격한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글을 썼다. 또한 저자는 엔리케와 같은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의 잔혹성을 가감 없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균형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폭력배들에게 강탈당한 뒤 뼈가 부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엔리케를 구해준 농장 노동자가 있다. 찢어진 성경 귀퉁이에 도와준 이들의 이름을 적어두고, 이들을 위해서 달리는 기차 지붕 위에서 무릎 꿇고 축복의 기도를 올리는 이주민 아이들도 있다. 자신들도 먹고 살아가기 힘들면서도, 이주민들에게 빵과 과일을 선뜻 내주는 오악사카의 농부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독자들의 가슴에 다가오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해서 지속적으로 인간의 관심 대상이 되는 가족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간의 소망을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