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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노
후안 마리아 페로네 보나글리아 발피에르노 발피에르노 후작 모나리자 베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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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인간의 재능과 기술을 불신하며, 예술이란 자연을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즉 대리석 하나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겉으로 끌어낼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큐피드 동상을 통해 그때까지 선조들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예술을 재현해냈고, 그가 대가로 받은 돈보다도 더 큰 영광을 거머쥐게 되었다. 발피에르노, 그 역시 - 돈을 떠나서 -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 모든 일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 그의 문제는 - 어떻게 그 영광을 거머쥐는가이다. 어떻게 하면 그의 비밀스러운 영광이 - 여전히 비밀리에, 그의 천재성이 왜곡되지 않고, 명예도 실추되지 않게 -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할 것인가이다.
--- p.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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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따금씩 파리와 모나리자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그럴 때면 희열을 느꼈다. 경찰은 여전히 헤매고 있었으며, 수사관들은 도시에 사는 점술가들을 비롯해 무당, 심지어 예언가들을 찾아다니면서까지 애를 썼지만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박물관장은 해고를 당했고, 루브르 박물관 내의 보안 수칙도 전면 재조정되었다. 프랑스 정부도 비난과 치욕을 면치 못했고, 끝내는 용의자가 한 명 체포되었다. 용의자는 다소 전위적인 성향의 시인으로서, 이름은 기욤 아폴리네르였다.
--- p.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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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조 페루자라는 절도범이 1913년 1월 모나리자를 들고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에 나타났는데, 이 사건은 당시 전 세계 신문 가판대를 장식한 최고의 기사였다. 그는 그림을 자신의 조국에 돌려주기 위해 훔쳤다고 고백했다. 경찰에 체포된 그의 애국적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탄원에 못 이겨, 이탈리아 재판소는 몇 주간에 걸친 회의 끝에 징역 7월을 선고하지만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그가 체포된 기간으로 충분히 복역한 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 p.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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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정으로 예술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자신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발피에르노 후작은 결코 예술은 나의 인생이라 외치는 삼류화가들이나 시인들 같은 사기꾼은 아니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 p.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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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었는데도 당신이 내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나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니까, 당신이 입을 다물면 내 인생도 걷잡을 수 없는 실패가 되겠지요. 마치 무인도에서 위대한 작품을 쓰는 조난자라고나 할까. 혹은 장님이 머릿속으로 거대한 예술작품을 고안해내지만 끝내 빛을 볼 수 없는 경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혹은 나라가 초토화될 전쟁을 막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긴 어느 지도자에도 비유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이 영영 입을 다문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 침묵할 사람이 아닙니다.
--- p.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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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발피에르노요.
그냥 발피에르노라고 합시다. 아니, 한때 발피에르노였다고 하는 게 좋겠군. 그 발피에르노라는 이름으로 굉장한 일을 했소.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은 의미를 갖게 되었소. 보이노, 혹은 후안 마리아라고 불리는 한 소년이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지방 도시 로사리오에서 사는 보이노는 지주의 대저택에서 하녀로 일하는 엄마와 가난하지만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보이노는 엄마가 이탈리아 출신이고, 남편에게 배신당한 뒤 새로운 삶을 찾아 이역 만리 남미의 한 도시로 이사 왔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가난과 노동에 찌들어 싱그러운 젊음을 잃고 빛바랜 낡은 옷을 걸친 엄마를 부끄러워하나 친절한 주인 덕에 학교에도 입학해 배움의 길에 들어서지만 뜻하지 않은 누명을 쓰고 보이노 모자는 주인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정처 없이 떠돌던 중 한 농장 주인의 집에서 살게 되고 보이노는 다시 가톨릭 학교에 입학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미술에 눈을 뜨게 된다. 미술교사인 프랑코 신부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얀 종이 위에 섬세하게 베껴지는 것을 보며 경이로움에 휩싸인다. 1884년 후안 마리아는 19세의 나이로 우연히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입하게 되고, 이 단체가 주도한 폭탄 시위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도소에서 4년간 복역하며 후안 마리아는 같은 죄수에게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는데, 그에게 몸을 팔아가며 배운 프랑스어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훗날 후안 마리아가 발피에르노 후작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교도소를 나온 후안 마리아는 그동안 사용하던 엄마의 성(姓) 페로네를 버리고 아버지의 성인 보나글리아를 쓴다. 노숙자로 여러 곳을 전전하던 그는 돈 시몬의 잡화상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주인의 외동딸과 짧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나 마차 사고로 여자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딸의 죽음에 애통해하던 주인은 전 재산을 줄 테니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곁에 있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재산으로 무엇을 할까 꿈꾸던 후안 마리아는 주인이 재산 상속에 대한 아무런 유언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망자의 조카라는 사람에게 남긴 재산을 고스란히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세상 밖에 빈털터리로 던져진 후안 마리아는 자신이 간간이 들르던 사창가에 회계로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틈틈이 책을 읽으며 견문을 넓히는 과정에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일대기를 공부하게 된다. 결국 사창가 고객인 명화 위조범을 알게 되고 그와 함께 위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사람을 대하는 데 서툴렀던 위조화가 쇼드롱은 후안 마리아의 명석함과 뛰어난 대인관계를 부러워했고, 후안 마리아는 쇼드롱의 나무랄 데 없는 기막힌 위조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 둘은 공모를 하게 된다. 쇼드롱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귀족으로 말끔하게 치장한 후안 마리아는 드디어 발피에르노 후작이라는 이름으로 1900년대 황금기를 구가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명화 위작을 팔아 생계를 연명하던 발피에르노는 발레리라는 창녀를 통해 페루자라는 인물을 소개받으면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 전대미문의 사건을 조심스럽게 계획하게 된다. 그리고 1911년 8월 22일 페루자와 다른 두 공범은 루브르에 잠입해 벽에 걸린 「모나리자」 그림을 떼어 유유히 걸어나오고 세상은 발칵 뒤집힌다. 하지만 발피에르노는 2년이 지나도록 그림을 찾아가지 않고, 침대 밑에 「모나리자」를 숨기고 살던 페루자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가 그림을 조국에 돌려주려고 훔쳤노라고 자백한다. 프랑스를 비롯해 진범을 찾지 못해 지쳐가고 있던 주요 국가 경찰들은 「모나리자」가 나타나자 다시 한번 깜짝 놀란다. 결국 이 사건은 한 이탈리아 남자가 조국을 사랑해서 벌인 영웅적인 사건으로 겨론이 맺어지고, 이에 감동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호소로 페루자는 몇 개월의 짧은 복역으로 풀려난다. 사건이 종결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갈 무렵 찰스 베커라는 미국인 신문 기자에게 말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가 찾아온다. 발피에르노 후작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그는 「모자리자」의 진범이 자신이었노라고 고백하고 자신의 사후 공개할 것을 조건으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한다. 생존 여부를 매년 8월에 편지로 알려오던 발피에르노는 13년이 흐른 뒤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편지를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발피에르노가 죽은 후 기자직을 그만둔 베커는 전 재산을 털어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면서 드디어 한 대담한 인물의 일대기를 완성한다. 그는 다음 말을 끝으로 글을 맺는다. 이제 나는 가장 대담무쌍했던 세기의 도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의 마지막 줄을 써내려가고 있다. 사실 이 모든 일이 꼭 있었던 일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그런 행동은 기자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것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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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정한 예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작품을 알아보지 못했다."
인간의 정체성과 예술의 본질,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무엇인지 묻는 소설 저자 마르틴 카파로스는 이 작품으로 2004년 스페인 언어권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플라네타 상을 받는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은 평생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위조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진실을 숨기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카파로스 또한 발피에르노의 삶을 멋지게 '위조'해냈다. 그러나 작가가 진정 전달하고 싶어 했던 것은 명화 도난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외로움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라는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영화적 기법과 아르헨티나의 황금시대, 예술에 대한 새로운 철학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는 세 가지 지점에서 작품의 재미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영화적인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흡사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연상시키는 인터뷰 형식을 차용해 인터뷰와 독백을 교차하여 배치한 속에 과거 회상 신을 교묘히 짜 넣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적 흐름에 아르헨티나,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등지를 종횡무진으로 공간이동하는 형식은 영화의 장면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혹간 플래시백 기법이 자연스런 흐름을 차단하고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에 대한 작가의 변(辯)은 단호하다. "나는 글을 쓸 때 늘 같은 생각이다. 독자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 적지 않은 수의 작가들 사이에서 글이란 교과서처럼 친절하고 순차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한 것 같다. 즉 A에서 Z까지 가기 위해 B, C, D 등을 순차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글쓰기를 독자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A에서 Z로 가기까지 과감히 시대를 넘나들고, 여러 등장인물들을 교차시키며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둘째, '벨 에포크(Bell epoque)' 황금기를 누리던 아르헨티나의 시대상을 감상할 수 있다.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혔던 아르헨티나, 그리고 그 국민들이 느꼈던 자긍심과 도도함을 소설 전반에서 느낄 수 있다. 파리에서 발피에로노와 아르헨티나 상류층 출신인 세바스티안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즐기며 나누는 대화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나는 죽어도 안 돌아갑니다, 후작. 우리나라가 아무리 발전을 했다지만 파리에서의 생활은 못 따라가지요. 게다가 우리 아버지가 주는 용돈으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턱도 없습니다." 카파로스는 "그 당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혹은 가장 위대해질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고 말하며, 벨 에포크 당시의 아르헨티나와 파리의 모습을 재현하는 작업은 매우 즐거웠다고 밝히고 있다. 셋째, 한 위조화가의 변(辯)을 통해 위조라는 행위가 어떻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지 듣는다. 흔히 위조는 원본을 베끼는 불법적 행위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소설 작에서 미술작품을 위조하는 위조화가 쇼드롱은 신문기자 베커에게 자신이 다 빈치나 무리요 같은 대화가들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주장한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자신의 느낌이나 본능을 자유롭게 풀어 화폭에 담지만, 그 그림을 위조하는 모사화가는 철저히 자신이 모방하려는 작가가 되어 그의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혼신을 바친다고 한다. 즉 그는 자신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한다. "어떤 이에게는 본능이었던 것이 다른 이에게는 예술인 셈이오. 우리가 말하는 예술이 이런 게 아니라면 무엇이겠소." 쇼드롱의 주장은 인간도 예술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그것을 영원히 연장하기 위해서는 모방에 모방을 거듭해 시간을 연장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위조하는 이의 비애는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작품 뒤에 자신은 철저히 숨어 있어야 한다. 그 작품이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부심은 드러낼 수 없고 뼈아픈 외로움만 맛보아야 한다. 발피에르노 역시 기상천외한 범죄를 위조해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만들지만 그의 '작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수록 자신은 더욱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야 했다. 그리고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한 아르헨티나 작가의 집요한 추적을 통해 발피에르노는 드디어 자신의 존재를 세상 속으로 드러내고 숨겨져 왔던 영광을 당당히 누릴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