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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를 뛰어넘는 보르헤스 소설에 대한 재현!
추리소설 자체에 대한 풍자!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는 반전이 아니라, 그 문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서로를 지칭하는지를 밝혀내는 ‘반전’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다. 보르헤스의 소설들이 개연성 없는 환상과 복잡한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것들이 가리키고 있는 날카로운 주제들이 있듯이, 이 소설 또한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추리들이 사실은 독자들에게 던져진 ‘상징’이었던 것이다.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이 담고 있는 추리소설 자체에 대한 풍자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 소설은 결국 ‘해결되지 못한 사건’의 목격자 주인공 포겔슈타인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 이 사건을 글로 옮긴 것을 보르헤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쓰였다. 포겔슈타인은 이야기의 결말을 열어둔 채 보르헤스에게 보내어 자신의 소설의 결말을 완성해달라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벌어진 사건과 그것을 보고 썼다는 포겔슈타인의 기억은 과연 같은 것일까? 포겔슈타인의 ‘쓰는’ 행위는 어떤 혐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왜 그는 결말을 보르헤스에게 넘겼을까? 그리고 보르헤스는 그 결말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이라는 이 유쾌한 추리소설은 한편으로는 부조리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실재하는 사건과 보고 쓰는 것의 차이에 대한 텍스트. 차이가 숨기고 있지만 동시에 드러나게 하는 의미에 대한 텍스트이다. 이 엉뚱한 추리 사건 뒤에서 작가 베리시모는 작가와 문학의 존재 이유 그리고 독자들이 텍스트에 참여하는 통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또 다른 ‘텍스트’를 이중으로 짜 넣은 것이다. 실재했던 대문호 보르헤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단순한 화제성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주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작가의 존재 이유가 보고 쓰는 데 있다는 것, 그리고 보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 눈앞에 벌어진 현실로는 파악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한 상상력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주제이다. 몰라도 재미있고, 알면 더 유쾌한 소설, 박학다식한 이용과 암시가 가득하다! 한국판에서만 볼 수 있는 비밀의 열쇠! 실재했던 역사적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많다. 하지만 단순히 화제적인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독특한 풍자를 그린 작품 그리고 그 자체로 문학적 가치를 가진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보르헤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작품은 보르헤스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재치 있는 재현들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여느 영미권 추리소설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야기 곳곳에는 라틴아메리카의 독특한 풍자문학의 전통이 살아있고, 세대와 국경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유머들이 가득하다. 작가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가 추리소설을 전업으로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도 주의 깊게 볼만하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능청스러운 풍자와 시침 뚝 떼는 유머로 꼬여 있는데,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이 독자들에게 펼치고자 하는 세계는 논리적 추리의 세계가 아니라, 비논리와 공상으로 진실에 도달하는 문학적 상상의 세계이다. 한편 이 장난기 많은 할아버지 작가 베리시모는 소설에서 '어떤 독자들'을 위한 비밀의 방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쉬운 예로 포겔슈타인이 키우는 고양이 '알렙'의 이름은 보르헤스의 소설 제목이다. (물론 책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또 주인공들이 서로 대화하는 어떤 장면은 보르헤스의 소설의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추리의 단서들은 모두 어떤 문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 대한 패러디도 나오고,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곳곳에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이 소설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많은 독자들이 “보르헤스를 모른다는 점이 이 책을 유쾌하게 읽는 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평하는데, 맞는 말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오히려 아는 게 병일 수도 있다. 그래도 불안해 할 독자들을 위해,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한국판에는 독특한 형식의 설명 페이지를 만들어 숨어있는 비밀의 키를 몇 개는 던져주었다. 하지만 결코 모든 것을 다 해설하지는 않았다. 많이 아는 독자일수록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을 고려해서 너무 친절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일러스트를 그린 이우일 씨도 “올해 최고의 작업이 될 것 같다”며 “일러스트 곳곳에 나도 암시를 숨어 놓았는데, 독자들이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키득거렸다는데, 그 암시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은 이미 스페인어, 영어, 독어권에 소개되어 많은 독자들이 읽은 작품이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결코 가볍지 않은 지적인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같은 문학적 추리 소설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한다. 암호를 해독하는 포 스타일의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 환상적인 분위기의 공상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이다. 보르헤스의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벌어지는 세 사람의 어이없고 황당한 그러나 치밀한 추리! 우연히 참석한 추리문학대회에서 밀실 살인사건의 첫 번째 목격자가 된 포겔슈타인 고대의 악령에서부터 마법사 존 디의 ‘불멸의 오랑우탄’까지 용의자로 불러내는 작가 보르헤스 엉뚱한 단서들 때문에 사건 해결에 골머리를 앓는 범죄학자 쿠에르보 “디가 말한 불멸의 오랑우탄은 튼튼한 깃촉 펜과 넉넉한 잉크와 무한한 지면을 갖추고서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물론이요 세상에 알려져 있는 모든 책을 옮겨 쓰려고 하지. 포겔슈타인은 번역가 겸 영어 교사로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포겔슈타인은 ‘이스라펠’이라는 애드거 앨런 포 전문가들이 모이는 협회의 총회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참석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더 큰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존경하는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난 것이다. 한편 총회에는 포 전문가인 독일인 요하임 로트코프 박사, 그와 사이가 안 좋은 우르키사 교수, 로트코프를 싫어하는 미국인 학자 올리버 존슨도 참석한다. 무례한 로트코프 박사로 인해 여러 사람이 불쾌한 가운데, 다음 날 새벽 그가 무참히 살해된다. 거울 앞에서 V자 형태로 옆으로 누워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던 로트코프 박사. 그리고 포겔슈타인은 그 광경을 처음 목격한다. 밀실에서 벌어진 이 살인 사건을 놓고 범죄학자 쿠에르보와 대문호 보르헤스, 그리고 포겔슈타인은 추리에 들어가는데. 포겔슈타인은 ‘모든 것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며, 비누에 붙은 머리카락의 모양에도 암호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처음에는 시체의 자세가 V자 모양이라고 했다가 다시 거울에 비치면 X자도 될 수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W자도 되고 M자도 된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사건 해결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여기에 더해 대문호 보르헤스는 로트코프가 죽어가면서 내뱉었던 말(재버보키), 사건 현장에 있는 카드 중에 빠진 10장의 의미 등을 파악하면서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서부터 에드거 앨런 포, 러브크래프트 등 온갖 문화와 문학사를 종횡무진한다. 두 사람의 진지하면서도 엉뚱한 수사는 루이스 캐럴에서 코난 도일, 발터 벤야민, 빅토르 위고, 이즈라엘 쟁윌,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의 작품까지 들먹이고,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까지 결부시킨다. 급기야 보르헤스는 ’불멸의 오랑우탄’의 소행까지 의심한다. 범죄를 해결해야 하는 쿠에르보는 이 두 사람의 황당한 추리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용의자로 올랐던 우르키사 박사, 올리버 존슨, 일본인 교수 등이 모두 무혐의로 결정이 나면서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종료된다. 한편 보르헤스는 포겔슈타인에게 지금까지의 사건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라고 권한다. 집으로 돌아온 포겔슈타인은 소설을 쓰고, 보르헤스에게 편지를 보내 소설의 결말을 마무리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보르헤스는 이 소설의 상상력 넘치면서 비밀을 관통하는 ‘꼬리’를 완성하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