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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량치차오 그 사람과 시대
1부 문명을 향하여 영국 벤치마킹하기 새로운 윤리 민족과 국민, 문화와 문명 2부 문명을 넘어서 흔들림, 균열 문명에 대한 재고 유학의 장래 마무리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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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국가주의와 도덕주의의 결합으로 특징짓는다면, 량치차오는 그 근대의 전형을 자신의 일생을 통해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가 형성한 중국의 근대상, 나아가 미래상은, 중국의 현대, 그리고 이웃인 일본, 한국에서 그 닮은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전형이 되었다. 우리가 량치차오에게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의 위협 속에서 착수한 근대화는 국가주의라는 집단주의가 어떤 이념보다도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안에서 자유라든지 평등, 권리 등의 해방의 근대정신은 강한 국가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 가운데 하나 정도라는 위상 밖에 갖지 못했다. 그 가운데서도 유교문화권이라고 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또 그들만의 공통된 특징을 보여준다. 즉 유학의 영향이며, 구체적으로는 도덕주의이다. 유학의 도덕주의는 내 마음 속에서 키운 덕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가치의 씨앗이고 원천이라는 생각이다. 자연히 정치도 도덕생활의 연장이 된다. 국가주의와 도덕주의가 결합하면 국가를 위한 모든 것, 강한 나라가 필요하면 강력한 국가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 부유한 나라가 필요하면 부유한 나라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개인에게 도덕으로서 요구된다. 심지어 국가의 자유와 권리가 필요하면 자유와 권리가 개인들이 갖춰야 할 덕으로 요구된다.『신민설(新民說)』을 통해 량치차오는 근대 해방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 권리와 자주 등의 이념들을 중국인들이 가져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런데 그는 그것들을 사적 영역인 덕과 구별해서 공적 영역의 덕이라고 분류했다. 자유정신, 권리정신, 자주정신 등은 국가사상, 의무사상, 상무정신 등과 함께 근대국가의 개개인이 갖춰야 할 공적인 덕목이었다. 근대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공적인 덕목이었으며, 유학의 대부분이 사적인 것으로서 개인과 가정에서의 인관관계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처리되었다. 나아가 유학은 공덕의 발달을 저해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식 근대가 더 이상 지향점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미리 본 근대의 결말이었다. 중국에서는 그러한 결말은 피해야 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문명을 원하면서 중증의 괴로움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량치차오는, 이제 공공연하게 문명의 폭력성을 폭로하면서 다른 미래를 설계한다. 이런 이유로 량치차오는 실상 자신이 서양 문명 안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버려둔 채 과거의 유학적 가치들을 다시 살려내는 데 헌신하게 된다. 구국의 압박 속에서 놓쳐버린 개인 해방의 정신, 그리고 폭력적 근대 앞에서 놓쳐버린 자신과 조국의 과거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서양인의 근대비판에 고무되어 시도되는 유학부활. 량치차오가 남긴 족적은 그 근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밟았다. 지금도 우리는 잘못 들어서 길을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놓쳐버린 것, 그래서 다시 찾아야 할 것, 그리고 진정 버려야 할 것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량치차오를 통해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도덕주의와 국가주의가 주도한 근대화를 겪은 우리는 지금 문명 이전과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을 비판하는 탈문명의 움직임이 공존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이 안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문명을 거부하고 문명 이전의 유학자가 되어 살 수도 있다. 우리와 우리 사회는 어떤 길을 가야만 할까? 이 점에서 량치차오를 읽는 다는 것은 과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읽어내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