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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부재를 통해 빛났다. 이혼의 장점은 약간 다른 데 있었다. 훨씬 더 일상적이지만 생각보다 중요한 영역이었다. 안데르스의 뒤를 따라다니며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 설득하거나 욕하거나 속이거나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 일에 시간과 정력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제대로 된 싸움은 아니지만 밤늦게까지 질질 끄는 불필요한 긴장, 그리고 다음날이면 찾아오는 죽을 듯한 피로.
서로 신경을 건들지 않을 때면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안데르스가 나간 뒤로 더는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나는 책을 읽거나 집 안을 거닐며 추억에 젖거나 라디오를 듣는다. 식생활도 다르다. 내가 매운 쇠고기 스튜나 고기완자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채식 요리나 동양 요리가 훨씬 더 맛있다. 공간에 대한 감각에 잠깐 도취한 적도 있다. 나는 안데르스의 책상과 책장과 그가 물려받은 보기 흉한 소파 세트가 사라진 뒤에 생긴, 바람이 잘 통하는 빈 공간을 즐겼다. 그 공간은 생각보다 일찍 다시 채워졌지만. 경악. 이혼하자는 내 말에 안데르스가 보인 반응은 경악이었다. --- p.27 “내가 어릴 때 그들이 날 데리고 갔어요. 그 일에 대해 할 말은 없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니까. 다섯 살 때였어요. 엄마와 함께 산딸기를 찾으러 갔죠. 다른 사람들 말로, 사흘 동안 실종되었다고 해요. 그 일로 다친 데는 없었어요. 늘 건강했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어요. 성장한 뒤에는 그 마을을 떠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 사건을 안다는 게 불편했거든요.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은 많았어요. 눈을 보면 알 수 있죠. ‘아, 저 사람도 그랬군.’ 이렇게 생각하지만 말은 안 해요.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다섯 명 낳았죠. 내 삶은 괜찮았어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 일을 말한 적은 없어요. 나를 비웃었을 테니까요. 이따금 이상한 기분이 될 때면 아마 그 일 때문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내 생각에 요즘은 그들이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는 것 같아요.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말이죠. 아니, 아마 어디서든 그런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 p.42~43 내가 기억하는 첫해 여름은 ‘흙의 여름’이다. 흙냄새가 사방에서 났다. 나는 흙더미에 기어오르며 놀았고, 아버지 흉내를 내며 ‘일을’ 했다. 자그마한 노란 삽으로 땅을 파고는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장난감 자동차로 흙을 다졌다. 그 자동차는 진짜 롤러와 어느 정도 닮은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의 둘째 여름은 ‘안네 마리와 친구가 된 여름’이다. 그전까지 나는 상당히 외로운 아이였다. 형제자매가 없었다. 엄마는 아이를 더 원했지만 아버지가 아이는 나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좁은 집에서 많은 형제자매와 사느라 무척 시달렸다. 시내 연립주택, 나중에 개인주택에 살 때도 우리 집에는 언제나 쓰지 않는 방이 한 칸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방이 앞으로 태어날 동생을 위한 방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엄마 소원에 상응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빈 방 하나를 원했던 거였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방을 하나 갖는다는 것은 최고의 사치였다. 그 방은 손님방이라고 불렸지만 손님이 묵는 일은 없었다. --- p.53~44 세상에는 우리에게 오는 열쇠를 지닌 사람이 있다.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가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방을 열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과 우리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성별이 같고 연령도 어느 정도 맞으면 사랑에 빠진다. 다른 경우에는 마법에 걸린다거나 종속된다거나 표현이야 어떻든 하여간 그런 상황이 되지만, 사실은 두 경우 모두 똑같다. 나에게 안네 마리는 이런 열쇠를 지닌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만난 사람.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그다지도 큰 의미가 있었다. 반면 안네 마리에게 나라는 의미는 그 정도로 크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사라질까 봐 늘 두려웠다. --- p.84 천막 안의 분위기를 지금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어스름하고 더운 공간, 잠들어 있는 두 사람에게 기묘한 광채를 드리우는 붉은 수건, 풀과 땀 냄새. 안네 마리는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하고 옆으로 누워 입을 약간 벌린 채 잠들었는데, 팔을 굽히고 목욕 수건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가볍게 휘어진 긴 손가락은 긴장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그리고 싶은 손이었다. 천막 안의 기묘한 광채를 받은 장밋빛 입술은 부드러운 사랑의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가 있고, 젖은 머리카락은 이마에서 옆으로 쓸려 있었다. 얼굴은 부드럽게 잘 익은 과일처럼 보였다. 안네 마리의 배꼽 근처에 머리를 둔 마야는 어린아이들이 잘 때 대부분 그렇듯이 등을 대고 양팔을 벌린 채 누워 있었다. 발가벗은 아이의 짙은 갈색 피부가 비단처럼 빛났다. 바깥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먼 곳에서 옌스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와 갈매기 소리도 들려왔다. 천막 천이 가볍게 흔들렸다. 옆에서 잠든 두 사람은 평화롭게 숨을 쉬었다. 붉고 아늑한 품에 안긴 자궁 속의 태아들 같았다. --- p.116 그때 우리는 아직 자유로웠고 아이가 없었으며, 청소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우리 자신에게 몰두해 있었다. 우리의 세계는 사랑과 실망, 새로운 경험과 음악, 굵은 허벅지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가슴, 여드름과 피하지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바다에는 느슨한 돛을 단 배들이 가만히 멈춰 있었다. 얼음에 갇힌 듯했다. 비밀에 싸인 매끄러운 바다는 반짝이는 수면 아래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 p.131 “우리 내년 여름에도 만날 수 있는 거지?” 내가 물었다. “내가 여기 있다면.” “내년 여름에 여기에 없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쩌면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르지. 오스트레일리아나 뭐 그 비슷한 곳에.” “조금 전에 영국이나 프랑스라고 하지 않았어? 이스라엘이나.”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울리카, 나도 몰라. 전혀 모른다고. 사실 어디든 상관없어. 난 그저 여길 떠나고 싶은 거야. 모든 게 지겨워.” “하지만 통에비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야. 너희 집만큼 아름다운 집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녀의 무심함에 나는 상처를 입었다. 나는 이 집을 사랑했다. --- p.169~170page “우리 엄마는 어릴 때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 나는 엄마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상상할 때, 어린 소녀의 몸에 어른인 엄마 얼굴을 얹고는 했지. 몸이 작은 건 상상이 되는데, 엄마 ‘얼굴’이 달랐다는 건 상상이 안 되더라.” “스스로 늙어봐야 알아. 다른 사람들도 변한다는 걸 진지하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자기 몸과 성격에 일어나는 큰 변화를 직접 겪어봐야 해.” 내가 두 아들에게 설명한 것은 너무도 추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여기 해변에서 모래를 파며 놀았어. 검은 돌은 성이었고, 그 둘레에 해자를 파거나 그랬지. 내 생각에, 그건 우리 아이들에게는 바이킹 무덤이나 룬 문자가 새겨진 돌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거야. 나도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몰라.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었어. 아이들이 그렇게 반응하리라는 거 사실 짐작하고 있었지. 원래 낚시를 하려고 했어. 그래서 요나탄의 낚싯대를 가지고 왔었지. 우리 여름 별장을 보았을 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 너무 많이 변했거든. 완전히 개조되고 땅도 나뉘었어. 주변에 작은 집들이 많이 세워졌고. 그런데 여기 이 집에 왔을 때, 마음속에서 벅찬 감정이 솟아오르더라고. 마치 이곳이 진짜 집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거 알아? 난 언제나 오빠네 식구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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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의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겪지 않고 어른으로 성장해 갈 수는 없을까?
-출간 2주 만에 30만 부 판매! 전 세계 20여 개국 출간! -프랑스 SNCF독자대상(Le Prix Polar SNCF) 최종 후보작에 노미네이트된 스웨덴 소설! 마리 헤르만손은 1995년 《나비 부인》으로 스웨덴 최고 권위의 아우구스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 《조가비 해변》은 2009년 프랑스 스릴러 SNCF독자대상(Le Prix Polar SNCF) 최종 후보작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과 재미를 인정받았으며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판권이 팔려 나갈 만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조가비 해변》은 주인공 울리카가 어린 시절 휴가를 보낸 조가비 해변에서의 추억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서 필연적인 성장의 아픔, 사랑의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의 상처를 그리고 있다. 각각의 장은 울리카와 크리스티나 린뎅 두 여성의 시점에서 교차 진행된다. 화자 울리카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회상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 다른 화자 크리스티나 린뎅은 베일에 싸여 있는 비밀스런 인물이다. 그녀가 누구인지, 주인공 울리카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글의 몰입도를 높인다. 각각의 인물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교차 서술되는 이런 이야기의 구조는 이 소설의 가장 큰 사건인 ‘마야의 실종 사건’ 해결에 큰 실마리를 제공하며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울리카는 매년 여름 방학이 되면 조가비 해변 근처에 사는 친구 안네 마리의 가족 별장에서 여름을 보낸다. 형제자매가 없는 울리카는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는 안네 마리의 가족을 동경한다. 그녀에게 있어 안네 마리의 가족은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의 롤 모델이다. 반짝이는 모래, 맑고 투명한 조가비 해변에서 그들과 함께 수영을 즐기고, 낚시를 하고, 저녁이면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안네 마리와 함께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울리카에게 있어 따뜻한 정서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동시에 안락함을 준다. 그 시절, 울리카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오로지 안네 마리의 가족과 함께한다. 맹목적일 만큼 울리카는 그들 가족에게 동화되고, 빠져든다. 그녀에게 안네 마리를 만날 수 없는 겨울은 기나긴 어둠의 시간이지만 여름은 갖가지 모험과 탐험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울리카는 모든 걸 안네 마리에게 의지하는 한편 자신과 안네 마리의 외모를 비교하며 질투를 하는 동시에 동성애적 감정으로 친구를 바라보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고, 욕을 하고, 집을 나가는 등의 반항과 일탈의 모습으로 청소년을 그리고 있는 소설과는 달리 평온하고, 정서적으로 행복감이 최고에 달해 있는 울리카의 상반된 모습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한 유리 위를 걷고 있는 듯 위태롭고 뭔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독자들이 갖는 그 불안감은 앞으로 일어날 극적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마련된 작가의 똑똑한 노림수이다. 맹목적이었지만 울리카의 인생에서 최고로 반짝이던 시절은 안네 마리의 입양 동생인 ‘마야’의 실종으로 순식간에 빛을 잃는다. 마야의 실종 이후 안네 마리의 가족은 자연스럽게 뿔뿔이 흩어진다. 각자의 슬픔에 빠져 더 이상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상황 속에 놓이게 된 울리카는 자신의 어정쩡한 위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안네 마리 가족의 구성원인 듯 지내왔던 울리카는 더 이상 그 누구의 틈에도 낄 수가 없다. 슬픔에 빠진 그들을 위로할 수도, 아픔을 함께 나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울리카는 홀로 자책하며 안네 마리 가족에게서 점차 멀어진다. 마야의 실종 이후 울리카에게 지난날의 행복했던 여름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고, 행복과 우울의 애매모호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마감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삶의 질을 구축하는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불안정한 이 시기를 누구와 보내고, 벌어진 일들을 어떻게 매듭을 짓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울리카는 성인이 되어 두 아들과 함께 조가비 해변을 다시 찾는다. 아이들에겐 신나는 놀이 장소일 뿐인 해변이지만 울리카는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장소가 되어 있다. ‘마야’가 사라진 이후로 처음 온 이곳은 모든 게 과거의 모습 그대로이다. 별장을 둘러보며 울리카는 안네 마리 가족의 별장 내부의 모습과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이 지나치리만큼 똑같음에 놀란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안네 마리 가족의 별장의 모습을 그대로 꾸며낸 것이다. 울리카는 이혼 후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를 부러 찾아왔지만 현재 자신의 우울한 모습과 다르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대면한 듯 낯선 감정을 느낀다. 울리카는 별장을 둘러보던 중 안네 마리의 오빠였던 옌스를 만난다.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 안네 마리, 그들의 가족과 함께여서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건네지만 오히려 옌스는 그런 울리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옌스는 마야의 실종 이후 그들 가족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전해주며, 울리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가족은 그렇게 완벽한 가족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울리카는 옌스의 이야기를 통해 은연중 안네 마리의 가족처럼 되고자 노력해 왔던 삶의 모습들이 제대로 끝맺지 못한 성장통의 흔적이었음을 깨닫는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가볍든 아니면 지독한 성장통을 한 번쯤은 겪고 지나간다. 그 시절은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그 세상이 전부인 듯 여긴다. 누가 뭐라 하든 스스로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이 온전한 세상이다. 그렇기에 그 틀을 깨고 나오는 것 역시 본인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울리카는 안네 마리 가족의 모든 것을 동경했다. 그들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이면에 숨어 있던 아픔은 보지 못한 채 자신이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부분만을 바라본 채 성장했고, 그것이 인생의 정답인 듯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기나긴 시간이 흐른 뒤 두 번째 성장통이 찾아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순간에야 비로소 울리카는 그들 가족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유, 청소년기에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도덕관과 행복감이 일치할 때까지 바꿔보려고 무의식적으로 시도하며, 그것이 어른으로 사는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 불행했던 기억을 지키거나 바꾸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통은 찾아오기 마련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노력하다 보면 그때야 비로소 성장통이 끝나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겪는 성장통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위대한 특권일지도 모른다. 《조가비 해변》은 한 인물이 겪는 성장통과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미스터리 방식을 결합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주인공이 겪는 불안한 심리 상태와 베일에 싸여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 풀리지 않는 사건들이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바로 이 소설의 또 다른 화자, 크리스티나 린뎅이다. 그녀는 ‘마야의 실종 사건’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전혀 연관성이 없던 두 화자인 울리카와 크리스티나는 소설 속에서 직접적으로 마주치지는 않지만 ‘마야’를 통해 어느 순간 시점이 한데 엮이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마야의 실종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이야기와 더불어 울리카가 성장통을 겪으며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안네 마리 가족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의 진실이 밝혀지며 마지막 신선한 반전을 선사한다. 마리 헤르만손은 북유럽 설화나 전설, 일상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주로 소설의 소재로 차용한다고 한다. 《조가비 해변》에 등장하는 울리카의 직업은 민족학 연구원이다. 그녀는 ‘산으로 납치된 사람들에 관한 전설’을 연구한다. 극중 ‘마야’의 실종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울리카는 ‘마야’의 실종 역시 자신의 연구 주제와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사건을 풀어나간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트롤이 나타나 어린아이를 납치하고, 사라진 아이가 돌연 나타나 그 후에 벌어지는 마을의 기묘한 사건들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동안 어디서도 접할 수 없었던 ‘북유럽 전통 설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 조가비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애잔하고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 -《조가비 해변》 줄거리 요약 민족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울리카는 이혼 후 두 아이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조가비 해변을 찾는다. 하얗고 미세한 조가비 가루로 반짝거리는 해변 근처에는 가트만 가족의 별장이 있다. 그곳은 울리카가 친구 안네 마리와 함께 여름 방학을 보내며 많은 추억을 만든 장소이다. 울리카는 추억의 장소를 둘러보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그대로인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본다. 한참 상념에 젖어 있던 울리카를 현실로 되돌려놓은 것은 두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지루한지 해변으로 낚시를 하러 가자며 보챈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트만 가족과 함께 낚시를 했던 조가비 해변 깊숙한 곳으로 아이들을 안내한다. 한창 첫째 아이 요나탄과 낚시에 빠져 있다 막내 막스가 보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울리카는 정신없이 막스를 불러보지만 아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참을 찾은 끝에 막스가 해변 저 끝 바윗덩이의 좁은 틈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며 소리치는 모습이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울리카는 막스에게 다가가지만 높고 험한 바위 위를 올라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막스가 손에 해골 하나를 들고 자신이 발견했다며 기뻐 소리친다. 며칠 후 경찰이 찾아와 해변에서 발견한 해골은 1972년 실종되었던 크리스티나 린뎅이라는 여자의 유골이라 일러준다. 경찰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울리카는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같은 해 실종되었던 가트만 가족의 입양 딸 마야! 울리카는 마야의 실종과 크리스티나 린뎅이라는 여자의 실종이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울리카는 어린 시절 가트만 가족과 함께한 여름날을 떠올린다. 그 당시 그녀는 동갑내기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성숙한 몸매를 가진 친구 안네 마리를 동경했다.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대가족이었던 안네 마리의 가족이 늘 부러웠고, 그들과 한 구성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곤 했었다. 여름엔 늘 가트만 가족과 함께였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들 가족과 안내 마리에게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네 마리와 그들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제제 밤을 즐기기 위해 칸홀멘 섬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모두가 신나게 하지제 밤을 즐겼지만 울리카는 남자들과 어울리며 수다를 떠는 안네 마리가 못마땅했고, 우울해진 울리카는 홀로 섬을 거닐며 하지제 밤을 홀로 보낸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울리카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리를 하던 중 안네 마리의 여동생 마야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 가 섬을 뒤져 마야를 찾지만 마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야의 실종과 함께 울리카는 자연스럽게 슬픔에 빠진 가트만 가족에게로부터 멀어지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