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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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름, 그 영원한 표식. 사람은 평생 동안 시간의 회랑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이름을 연마하며 살아간다. 이름이란 신도 없는 종교이며 이교도들의 천년왕국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름에 대한 집착이 없다. 아야오와 나 같은 사람들은 이름을 남길 수도, 기적을 만들 수도 없는 운명인 것이다. 내 어항 속의 이름 없는 물고기처럼, 살아가는 것은 고달프고 죽는 것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 p.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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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라, 일반들아!
우리 나라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이반'이라고 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성애자들을 특별한 부류,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구별하는 '일반'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 자신들의 성적인 정체성이 섹스를 둘러싼 취향만이 아니라 한층 포괄적인 삶의 양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만든 용어가 바로 '이반'('一般'이 아니라 '二般' 또는 일반과는 '다른' '異般')이다.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어떻든,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바 없는 성적인 정체성의 차이로 인해 온갖 종류의 차별과 소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엄습한 에이즈라는 역병은 '정상적인 일반인'들의 야비한 상상력을 자극해서, 그것이 동성애의 '반윤리'를 입증하는 천벌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도록 만들었다. 에이즈의 확산은 한편으로는 동성애자들에게 자의든 타의든 은둔의 둥지를 깨고 나오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8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유명인사들의 '커밍아웃' 열풍은 일반과 이반 모두에게 성적 정체성의 차이에 동반하는 억압과 인권침해의 문제를 공론화할 기회를 제공한 반면, 동성애자들에게 강요되어온 소외의 그늘이 얼마나 음습하고 끈질긴 것이었는지를 드러내었다. 어떤 종류의 예술이건 간에 동성애를 소재로 할 경우 그것이 "들어라 일반들아!"라는 외침이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예술작품이 '예술적인 보편성' - 대단히 모호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말이긴 하지만 - 이라는 면에서 자칫 빈곤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욕망과 고독의 기록, 너무나 시적인 본격적인 문학이 동성애라는 성적 정체성의 문제를 소재로 택하는 사례는 많지 않을 뿐 아니라, Ana s Nin의 작품들처럼 동성애를 센티멘털한 에피소드나 변주 정도로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네티즌들이 창작자로 참여하는, 이른바 '동성애문학'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 문학적 질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해야 할 것이다.). 시야를 세계로 넓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뜻에서 예술의 다른 장르, 예를 들어 영화 등이 문화의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소재의 팔레트는 훨씬 다양하다. 미술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다. 미술과 영화가 동성애를 중요한 소재로 다룬다는 사실은 그 장르가 보이는 관용, 더불어 주류문학이 보이는 관용의 빈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이완 최고의 시나리오작가 추티엔원의 첫 소설 《이반의 초상》은 아마도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동성애라는 소재와 문학적인 성취를 연결한 작품일 것이다. 가부장적인 유고문화권인 타이완에서 이 소설이 최고권위의 문학상을 휩쓸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도달한 문학적인 지평이 소재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으로 폄하할 수 없는 보편성에 도달해 있음을 증명한다. 나아가 서구 평단은 이 소설의 등장을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타이완 문학으로는 처음으로 광범위한 매체와 평자들이 예외 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권위 있는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 소설을 "1999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까지 했다. 소설은 마흔 살이 된 주인공 샤오가 에이즈로 죽음을 앞둔 평생의 친구이자 연인 아야오와 마지막 며칠을 보내고 난 뒤 아야오와 자신의 관계를 중심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본래 샤오는 동성애를 향하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대면하기를 거부하고 본능의 요구를 의식의 저편으로 밀어낸 채 성인이 된 소심하고 평범한 타이완 남성이었다. 한 편 동네친구 아야오는 어릴 때부터 동성애자인 자신의 내면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샤오는 아야오를 사랑하게 되면서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만, 동성애자의 권익을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아야오와는 행동이라는 면에서 거리를 둔다. 이런 성격의 차이는 두 남자의 사랑을 오히려 더욱 내면적인 것으로 만든다.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헤어져 있어도, 서로를 잊고 미워하려 해도 서로의 영혼은 뗄 수 없이 이어져 있다. 아야오와 헤어져 두세 명의 남자와 오랜 세월 사귀면서도 샤오의 가슴이 돌아가 쉬려고 하는 곳, 영혼의 안식처는 아야오였다. 소설의 큰 부분은 아야오를 향한 샤오의 열정 - 뜨겁지는 않으나 실존 전체를 걸고 바치는 - 과 그 열정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제이, 용제)과의 사랑을 그리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사랑과 이별을 둘러싸고 샤오가 겪는 환희와 고통은, 타이완과 일본, 유럽을 무대로 펼쳐지는 작가의 감각적이면서도 지적인 성찰과 함께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는다. 정열적인 활동가 아야오는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에이즈에 감염되고 어머니의 나라 일본 시골의 병원에서 어머니와 샤오의 품에서 세상을 떠난다. 아야오의 죽음은 샤오에게 극한의 고독과 내면적인 황폐화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나는 천국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고로 내겐 지옥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 내 아래에 악의 세계란 없다. 그곳에는 오직 영원한, 끝없는 심연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샤오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한다. 그리고 죽음보다 깊은 고독으로 남게 된 자신들의 사랑을 기록으로 남긴다. 소설 《이반의 초상》은 닫힌 사회, 문학이 죽어 가는 이 시대에 던지는, 사랑의 기쁨, 이별의 슬픔, 그리고 소외라는 이름의 또 다른 죽음에 관한 치열한 문학적인 반성이다. 짧게 타오르다 스러지는 욕망과 남겨진 자의 고독을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아프게 그린 소설은 아주 드물다. 이 소설은 동성애에 대한 '일반'의 오만한 편견을 향해 던지는 어느 '이반'의 충격적인 보고서이자, 우리가 만나고 싶어하던, 진지하면서도 감성의 극한을 더듬는 동성애 이야기다. 동성애, 동성애자의 소외, 레비 스트로스와 미셸 푸코의 성에 관한 담론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놀랍도록 아름답고 지적인 소설, 겨울처럼 쓸쓸하고 쿤데라의 소설처럼 다감한 사랑과 이별의 기록인 것이다. ■ Press Reviews "타이완의 문화적인 방황과 정치적인 고립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욕망과 감성의 지적이고도 화려한 탐험.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호소력을 지닐 책…" - 뉴욕 타임스 "동성애자에게 강요되는 소외, 욕망과 고독에 대한 심오하고 서정적인 명상."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어느 동성애자의 사랑과 욕정이라는 개인적인 내면을 에이즈, 정치, 문화라는 외면에 비추면서 성찰한 뛰어난 작품" - 퍼블리셔즈 위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