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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 세트
전3권
솔 200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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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돌풍 전야
당황하는 일본
허망한 사랑
아침의 풀들
길을 떠나다
안세이 원년安政元年
하나의 암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산천에 바람 불어
한혈 천리汗血千里

저자 소개 2

저야마오카 소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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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hachi Yamaoka,やまおか そうはち,山岡 莊八,본명:야마노우치 쇼조(山內庄藏)

1907∼1978. 1907년 1월 11일, 니가타新潟 현 코이데마치小出町 태생으로 본명은 야마노우치 쇼조山內庄藏다. 1907년 니가타 현 농사꾼집에서 태어났다. 일본 국민문학 거장 하세가와 신(長谷川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야마오카 소하치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잡지에 발표한 『사도佐渡의 홍엽산인紅葉山人』(1934)부터였다. 1934년 [선데이 매일]에 『약속』이 입상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36년부터 코단샤講談社 계통의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1938년 10월에 시대 소설인 『약속』이 선데이마이니치 대중 문예에 입선하였다. 태평양
1907∼1978. 1907년 1월 11일, 니가타新潟 현 코이데마치小出町 태생으로 본명은 야마노우치 쇼조山內庄藏다. 1907년 니가타 현 농사꾼집에서 태어났다. 일본 국민문학 거장 하세가와 신(長谷川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야마오카 소하치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잡지에 발표한 『사도佐渡의 홍엽산인紅葉山人』(1934)부터였다. 1934년 [선데이 매일]에 『약속』이 입상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36년부터 코단샤講談社 계통의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1938년 10월에 시대 소설인 『약속』이 선데이마이니치 대중 문예에 입선하였다. 태평양전쟁 중에는 종군작가로서 전선을 전전하며 『미타테御盾』 등의 시국 소설을 발표했다. 1942년에는 『해저전기海底戰記』, 『잠수함 동승기』 등의 종군기從軍記로 제2회 야마野間 문예 장려상을 수상했다.

1950년부터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무려 17년에 걸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출간과 동시에 일본열도는 '이에야스 붐'이라는 공전의 반향이 일게 된다. 1950년부터 1967년에 걸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평화를 추구하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인물로 포착해 대하소설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을 집필했다.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문학상을 받았고 이는 『소설 메이지(明治) 천황』(1963∼1968), 『태평양전쟁』(1962∼1971)과 더불어 일본 민족근대화 특성을 찾는 3부작이 되었다.

『대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전국시대를 평정, 에도막부정권을 열어 300년간 평화를 가져온 ‘국민적 대망’의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수차례 NHK대하드라마로 방영되고 영화화되어 국민적 필독서 붐을 일으켰다. 야마오카 선생은 『대망』 한국어판 발행을 동서문화사에 허락하고 기뻐하시며 재판 때마다 인세 안 받을 터이니 오류수정을 당부하시고 1978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현대 소설과 역사·시대 소설 등 폭넓은 영역에서 활약했는데, 주요 작품으로는 『치바 슈사쿠千葉周作』, 『미토 코몬水戶黃門』, 『하치만센八幡船』, 『모모바라桃原의 도깨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소설 태평양전쟁』, 『봄의 언덕길』 등이 있다. 특히 『봄의 언덕길』은 NHK에서 방영한 대하 드라마의 원작으로 크게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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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황해도에서 출생, 1958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문학 작품 및 일본 문화에 관련된 많은 책들을 유려한 우리말로 옮겼다. 주요 역서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이마이 마사아키의 『카이젠』, 오에 겐자부로의 『사육』, 키쿠치 히데유키의 『요마록』,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카와 이에야스』 등이 있으며 저서로 동아일보사 출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과 리더십』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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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898쪽 | 1836g | 153*225*40mm
ISBN13
9788981334796

출판사 리뷰

지난 천년 동안의 일본 정치지도자 중 개화기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선정됐다.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이 독자 78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위를 사카모토 료마가 차지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는 6위에 올랐다.
1위를 차지한 사카모토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직전에 활동했던 무사로, 일왕을 정치개혁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삼고 개화를 추진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암살됐다.
역사의 전환기에 미래를 바라보고 자기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숨까지 마다한 그의 열정을 일본인들이 최고로 평가했다.

추천평

사카모토 료마. 그는 1835년에 토사土佐(지금의 코치 현高知縣)에서 지방무사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메이지 유신 바로 1년 전인 1867년에 쿄토京都에서 암살당하기까지, 일본사 가운데서도 가장 급박한 순간을 파란만장하게 살아나갔다. 미국의 페리 선장이 일본의 개항을 노리고 바쿠후幕府 일본의 수도인 에도江戶(지금의 도쿄東京)에 접근한 1853년. 19세였던 그는 검술연습을 위해 머무르고 있던 에도에서 페리의 접근이 불러일으킨 혼란에 직면하여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1861년에 결성된 근황당勤皇黨에 가담, 이른바 '존황양이尊皇攘夷'(무능한 바쿠후대신 천황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서 유럽 세력의 일본 침입을 저지하자는 주장)의 투사로서 행동을 시작했다. 이때 그의 일생에 중대한 전환기가 찾아온다. 즉, 유럽에 대하여 개국을 주장하던 카츠 카이슈勝海舟를 암살하러 갔던 그는, 오히려 개국의 불가피함을 역설한 카츠 카이슈의 논리에 설복되어버렸던 것이다. 이후 그는 여러 가지 실용적 지식을 익히는 한편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를 넓혀가며 정치적 이상을 확립해 나아갔다. 그러나 자신의 후원세력인 카츠 카이슈가 1864년에 파면되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사츠마薩摩(지금의 카고시마 현鹿兒島縣)로 탈출하였고, 이때부터 그는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해 행동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는 큐슈九州의 사츠마와 혼슈本州의 쵸슈長州 두 지역이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긴박한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두 지역은 존황양이라는 명분에서는 동의하면서도, 그 주도권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지역이 1866년에 삿쵸薩長(사츠마·쵸슈) 동맹을 결성하여 공동전선을 펴게 된 배후에는 료마가 있었다. 삿쵸 동맹의 결성으로 반바쿠후 군軍은 바쿠후 군보다 강력한 힘으로서 에도바쿠후를 압박하여 끝내는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삿쵸 동맹 이후 계속하여 신국가구상을 만들어가던 료마는 바쿠후의 존속을 주장하는 세력에 의해 1867년에 암살되었지만, 그의 구상들은 1868년에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을 위한 지침서가 되었다.
1945년의 패전이후 현대일본은 기본적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와는 정반대의 역사관을 주장하는 집단이 등장했다. 그들은, 근대 일본이 국내외적인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와중에서 료마로 대표되는 '우국지사'들은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근대 일본의 확립에 기여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한국병합도 일본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그에 대해 이제까지와 같은 무조건적인 비판은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메이지 유신 긍정론=신자유주의사관의 흐름 위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문제는 이해되어야 하며, 그 배후에는 다름 아닌 시바 료타로가 있다. 역사 그 자체보다는 소설화된 역사가 유행하는 현대사회에서, 메이지 전후의 일본인들을 미화한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들은 근대 일본 긍정론을 급격히 확산시켰다. 그리고, 한국은 이러한 그의 소설들을 무비판적으로 번역·수용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인만의 영웅이어야 할 료마가 한국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무신경성의 배후에는 지식인에 대한 일체의 정치사회학적 해석을 배제하려는 한국지식계층의 인식 또한 존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한일양국의 우호는 상대방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상대국의 비판적 입장을 기꺼이 수용하는 한편, 자국 또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수립해야한다. 그때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일본의 한국점령일 것이고, 일본제국주의의 가장 심층에 놓여 있는 료마일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근대 일본의 이해와도 직결될 것이다.
--- 최관(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리뷰 총점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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