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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내리던 가을
푸른 밤 봄을 맞이하는 아침 악마의 계절 씨앗 꽃의 연회 여름비 안개 - 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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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시의 일그러졌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가, 기가 차다는 듯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굳었다. 비야는 빠진 게 없나 되새겨 보다가 아예 써 두는 게 낫겠다 싶어 책상에 있던 깃펜을 쥐었다. 세이시가 그녀의 손을 막아서더니 신음처럼 되물었다.
“저걸 3주 안에 하자고?” “아스칼리드 전하 수준으로 익히는 건 무리일 테고, 겉핥기나마 아는 척이라도 하실 수준은 되어야지요.” “내가, 인간 황태자 따위와…… 수준을…….” 세이시는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비야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매우. 묘하게 쾌감까지 느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발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간보다 월등하신 분이니까요.” “어…… 그래…… 그랬지…….” “자, 그럼 계획을 짜 드리겠습니다.” 비야는 세이시의 손을 밀어내고는 양피지를 당겨 목록을 쓰기 시작했다. 세이시는 얼어붙은 채 그 목록을 보다가 황당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네가 이걸 다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건가? 너 방금 말한 거 다 알아?” “아스칼리드 전하께서 공부하실 때 내내 곁을 지킨 게 누구였을 것 같습니까?” 세이시가 제 머리를 짚었다. 편두통이 오는 듯했다. 비야는 뭔가 후련해진 기분으로 목록을 마저 작성했다. 날아갈 듯 유려한 필체가 그녀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세이시는 우울해진 채로 지금이라도 다 뒤엎고 무시한 다음 도망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여전히 시야에 거슬릴 정도로 치렁거리는 새하얀 머리카락과 희미하게 들떠 있는 비야의 손놀림을 번갈아 응시했다. 귀 밑에서 살랑거리는 짧은 금발 아래로 희게 드러난 목덜미가 연약했다. 저 가는 목을 향해 가볍게 손을 휘두르고 뒤돌아서서 나가면 끝이었다. 한낱 반마와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세이시는 마력을 움직이는 대신 안락의자에 풀썩 소리가 날 정도로 주저앉았다. “그래, 해 보자. 어디까지 갈지.”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