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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인 007
2 마리 041 3 수영 225 작가의 말 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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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조금도 부딪히지 않고 빗겨나가는 풍경을, 가망 없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 특유의 조급함을 낱낱이 목격했다. 그러므로 매혹이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의 냉담함에서부터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강의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때, 그가 말했다. 희망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만이 순수한 고통을 주고, 고통만이 예술의 심장을 찌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에 일부러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날인하고 증언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도 말할 때, 성주의 눈은 수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p.24 나는 헤어질지 모를 오랜 연인들을 생각했다. 코와 코 사이에 털실을 끼워 넣으며 혼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대해 묵상했다. 사람들은 짝사랑이 한 사람을 혼자서 좋아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 없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짝사랑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렇다면 나는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요되는 혼란이 이 적요로운 사랑 앞에선 어느덧 무의미해진다. --- p.35 열정이 사라지고 난 후, 다시 찾아오는 사랑의 이야기에는 어떤 것들이 놓여 있을까. 그 끝이 결국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일이 되는 걸까. 그것을 완성해낸 사람만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그것 이외의 것들은 그저 너무나 하찮은 변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이별을 정당화할 순 없다. 사랑하지 않는단 말은 가슴 아프지만 죄가 될 수 없다. 다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벌이는 희망고문과 거짓말이 죄가 될 뿐이다. 최악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사라지거나 떠나는 사람들이다. --- p.221 사랑에 빠진 남자는 거짓말한다. 동준도 그랬을 것이다. 거짓말하면서도 거짓말이라고 자각하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진 남자는 비겁해진다. 죄의식도 자책감도 없는 그런 거짓말은 어찌나 순진한 얼굴을 띠는지, 거짓말인 줄 빤히 아는 상대까지도 그 말을 믿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반지를 뺀 자리에는 자국이 남는다. 한 남자의 여자로,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해왔던 여자들은 오래 끼고 있던 반지일수록 빼어 놓고 난 자리에 폐허가 생겨난다는 걸 안다. 네 번째 손가락 사이에 고인 자리. 찾지 않는 유적지의 잡초 덤불같이 자라난 자리, 당신도, 나도, 언젠가 한 번쯤 보았거나 걸었던 그 자리……. --- p.231 “결혼이란 건, 말하자면 앞으로 저 사람이 네게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온갖 고통을 주게 될 텐데, 그 사람이 주는 다양한 고통과 상처를 네가 참아낼 수 있는지, 그런 고통을 참아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될 거야. 살아가는 동안 상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어. 하지만 누가 주는 상처를 견딜 것인가는 최소한 네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해야만 해. 그러니까 이 남자가 주는 고통이라면 견디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해. 그러면 최소한 덜 불행할거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은,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면, 때때로 견디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 될 거란 얘기야.” --- p.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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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백영옥 4년 만의 장편소설
예술가와 이민자들의 도시 뉴욕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랑의 경험 흡인력 있는 문체와 생동감 있는 서사로 2000년대 한국 젊은 여성들의 감수성을 대표해온 백영옥 작가가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를 예담출판사에서 출간했다. 2003년 등단 이후 [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등의 작품을 통해 신세대 여성들의 삶의 풍속도를 섬세하게 포착해온 그가 이번에는 뉴욕 예술계를 무대로 엇갈린 연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포토그래퍼로서의 성공을 꿈꾸는 야심만만한 청년 성주와 그를 사랑한 세 명의 여인의 내밀한 사연이 쓸쓸하고 투명한 문체로 펼쳐진다. 짝사랑하는 남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그의 집에 숨어들었으나 오히려 남자의 아내에게 연민을 갖게 되는 여자 정인, 공격적인 구애로 다가오는 젊은 예술가 지망생의 날선 매력에 이끌려 함께 동거를 시작했으나 이내 그의 외도를 의심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마리, 그리고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 새롭게 다가온 사랑의 전조에 흔들리는 여자 수영. 그리고 세 명의 여인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공통분모이자 모든 갈등의 진원지인 남자 조성주. 백영옥 작가는 이들 네 명의 연인들이 경험하는 사랑과 성공, 그리고 쓸쓸한 그 뒷모습을 주목하면서 상처와 실패를 통해 성숙해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심리를 예민하게 그려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누구의 사랑도 이어지지 않는 쓸쓸한 저녁, 상처받은 연인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따뜻하고 은밀한 격려와 재생의 메시지 애인의 애인에게는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조성주를 짝사랑한 이정인의 사연을 프롤로그로 시작한 소설은 2부에서 장마리와 조성주가 펼치는 광포한 사랑과 씁쓸한 이별의 뒤안길을 포착하고 3부 조성주가 짝사랑한 김수영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한 명의 남자를 둘러싸고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이들에겐 질투나 원한 같은 배척의 감정이 없다. 오히려 사랑 앞에서 쓸쓸해하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공감하며 서로를 향한 연민의 정서를 공유하게 된다. 특별히 이정인은 이들의 비밀스런 관계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1부 이정인 한국에서 출판편집자로 일하다 결혼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뉴욕으로 유학했다. 비자 연장을 위해 룸메이트 메이가 소개한 NYU 부설 아카데미의 [실패한 예술가들]이란 3주 강의를 듣다 같은 반 ‘조성주’라는 포토그래퍼를 남몰래 짝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조성주가 그들이 듣는 강의 [실패한 예술가들]의 강사를 짝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조성주’에겐 함께 살고 있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도. ‘정인’은 조성주가 아내와 이별여행을 떠나며 한 달간 세를 놓은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어긋난 사랑의 폐허 같은 그 공간에서 조성주의 흔적과 그녀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리고 그녀가 조성주를 위해 뜨다 만 스웨터를 다시 뜨기 시작한다. 2부 장마리 뉴욕 유명 화랑의 갤러리스트로 어릴 적 부모와 함께 플러싱으로 이민을 왔다. 보수적이고 모순 가득한 이민자 사회를 탈출하고자 혹독히 공부하여 뉴욕 미술계에 입성했다. 한국에서 온 젊은 포토그래퍼 ‘조성주’의 이색적인 접근에 매료된 장마리는 그와 동거를 시작하고, 성주의 뉴욕생활을 위해 비밀리에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성공에 집착하는 성주를 보면서 그의 사랑에 불길함을 느낀 마리는 급기야 성주의 불륜을 확신하게 되는데, 상대는 큐레이터이자 NYU 부설 아카데미의 강사. 결국 조성주와의 이혼을 결심한 마리는 마지막 이별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뉴욕의 집에 홀로 돌아온 마리는 자신이 뜨다 만 스웨터가 완성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3부 김수영 독립 큐레이터. 결혼 10년차의 성공한 커리어우먼처럼 살고 있지만 계속된 유산과 불행한 결혼생활로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갖고 있다. 그러다 NYU 부설 아카데미에서 만난 젊은 남자 조성주의 대담한 유혹에 잠시 흔들린다. 힘들었던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에 돌아오자 그녀는 쌍둥이를 유산한다. 그리고 친구로부터 조성주의 이혼 소식을 듣는다. 마침 서울에 들른 사촌 메이로부터 정인이 뜨개질한 선물을 받는다. 한없이 사랑을 갈망하지만 늘 사랑 앞에서 소외받고 좌절하는 사람들 ‘성공’이라는 현대적인 강박 아래 숨어 있는 이 시대 사랑의 통증을 해부하다. 애초 이 소설의 발단은 이정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짧은 단편이었다. 문장 웹진에 발표했던 소설 ?Hello stranger?로 백영옥 작가는 독자들로부터 이정인이 짝사랑했던 남자와 그의 애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계속되는 질문과 호응 속에 작가 역시 ‘그들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추적해보고 싶었고, 한 권의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로 탄생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소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실연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의 심리이며, 그 상실감 속에서 터져 나오는 진정한 사랑과 삶에의 절규이다. 조성주라는 인물은 단지 그녀들이 잠가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는 촉매제일 뿐, 소설은 시종일관 상처받은 여인들의 자기 발견과 독백에 집중한다. 이민자들의 도시이면서, 가장 트렌디한 욕망의 집산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특히 자학과 의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장마리의 이야기는 성공과 성취라는 자기계발적 강박 아래 숨어 있는 사랑의 통증과 그 징후를 선연하게 보여준다. 성공을 향한 일그러진 욕망이 빚어낸 어긋난 사랑의 논리와 그로 인해 점점 스스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조성주 역시 자신을 불신하긴 마찬가지이다. 명성과 지위, 매력의 발산으로 포획된 사랑의 민낯은 어떤 표정으로 퇴색하고 스러져가게 될까?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고통까지 소유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간절히 사랑을 원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타인의 삶을 소유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백영옥 작가는 자신의 실체를 마주하지 못하고 타인의 존재에 의지하려는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서 현대인이 겪는 사랑의 고통을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한다. 애인의 애인에게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정인, 마리, 수영, 성주의 사랑은 마주 보지 못하고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전하는 안타까운 호소이다. 주인공들이 겪는 사랑의 슬픔과 아픔을 꾹꾹 눌러 써내려간 작가의 호소력 짙은 문장을 따라 읽노라면, 독자들의 마음도 거대한 사랑의 폭풍우가 지나간 듯 깊고 조용한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