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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권재의 노자 일러두기 노자 . 권재 . 현재 제73장 사랑과 미움 제74장 공간 . 시간 . 인간 . 세간 제75장 무이생위이이 제76장 민주와 독재 제77장 무위자연 제78장 왕 제79장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다 제80장 노자의 이상국가 제81장 빛 . 힘 . 숨 노자 강의를 끝내며: 노자, 오천 언의 열매 현재 . 권재 . 노자의 이상세계 부록 전 8권의 차례 주해자 및 관련 인물 참고문헌 노자 1~81장 전체 찾아보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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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지기고孰知其故, 누가 그 까닭을 알겠는가? 사람은 십자가라는 걸 통 몰라. 누가 십자가가 이긴다는 걸 알겠는가? 시이是以로 성인유난지聖人猶難之, 그렇기 때문에 성인도 그것을 알기가 참 어렵다. 십자가가 이긴다는 걸 성인도 알기가 어렵다.
천지도부쟁이선승天之道不爭而善勝,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아. 그러고도 이긴다. 예수는 싸우지 않고도 이긴 거지. 싸워서 이기는 건 이긴 게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이기는 거다. 예수는 싸우지 않고 이겼어. 불언이선응不言而善應, 예수는 말없이 응하고 말았어. 불소이자래不召而自來, 예수도 오라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꾸 예수한테 오는 거야. 용어감자勇於敢者, 미워하는 데 용감한 사람은 도백인蹈白刃, 칼날을 짓밟을 수도 있다. 아주 칼날을 짓밟을 만큼 용감할 수 있다. 용어불감자勇於不敢者, 사랑에 용감한 사람은 도중용蹈中庸, 중용中庸이란 말이 기독교적으로 번역하면 십자가예요. 십자가를 짓밟을 수도 있다. 고백인가도故白刃可蹈, 흰 칼을 짓밟기는 쉽지만 중용불가능中庸不可能, 십자가를 지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을 미워하기는 쉽지만 남을 사랑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제73장) 이세지인而世之人 미유지기연자未有知其然者, 그런데 세상 사람은 그걸 몰라. 고왈故曰, 그렇기 때문에 숙지기고孰知其故,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그렇게 노자가 말하는 거지. 탄세인지부지야嘆世人之不知也, 세상 사람들은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른다. 노자가 대단하잖아요. 성경에 제일 가깝다고 하는 책이 이런 말 때문에 그러는 거죠. 사랑이 제일 위대하다는 거죠. 성인유난지자聖人猶難之者, 이 사랑은 성인이라도 실천하기가 참 어렵다, 하는 것은 언성인어차역이차도위난능야言聖人於此亦以此道爲難能也, 성인도 사랑의 길을 실천한다는 것이 한없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예수님도 어떻게 하면 이 십자가를 면하겠습니까 그러고 기도할 정도로 어렵다는 거지. 그러나 그 길만이 사는 길이다. 천유부쟁天惟不爭, 하나님은 사랑뿐이야. 이만물막득이승지而萬物莫得而勝之, 하나님을 이기는 만물은 없다.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께 지게 되어있어. 천유불언天惟不言, 하나님은 아무 말이 없어. 이자유감응지리而自有感應之理, 그래도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을 좇아와.(73장) 민불외사民不畏死, 백성들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면 이거 어떻게 하느냐. 이건 극도에 달한 거죠. 민불외사民不畏死 나하이사구지奈何以死懼之, 아무리 죽여봤댔자 문제가 풀리느냐. 어떻게 죽음을 가지고 이것을 풀어갈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죽여봐도 무서워 안 하는 데야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무서워하게 되어야 시대가 바뀌는 거지. 나하이사구지奈何以死懼之 하는 것은 아직 겨울이고, 약사민상외사若使民常畏死 하면 벌써 봄이 온 거죠. 시대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해야 이위기자而爲奇者, 정말 나쁜 짓을 하는 놈을, 오득집이살지吾得執而殺之, 그놈을 잡아다 죽이면 숙감孰敢, 누가 나쁜 짓을 하겠는가. 그래야 평화시대가 올 거 아닌가. 그런데 이 죽인다고 하는 것은 상유사살자살常有司殺者殺, 죽일 권세는 하늘만이 있다. 이 사람에 의하면 하늘만이 죽일 권세가 있지, 사람은 죽일 권세가 없다. 사람은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제74장) 차장此章, 이 장은 언인지분별선악言人之分別善惡, 사람의 선악분별에 대해 말한 것이다.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는 데 제대로 하는 놈이 어디 있는가. 진짜 선악을 분별하는 건 하나님뿐이지, 어떻게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겠는가. 그러니까 예수님도, 너희들은 판단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한 거죠.(제74장) 망기신이후신존忘其身而後身存, 자기 몸에 대해서는 내버려둬. 자기 몸을 잊어먹어야, 너무 보약도 먹고, 비타민 먹고, 뭐 먹고, 뭐 먹고, 한줌씩 집어 먹는, 그런 사람들은 도로 죽고 만다 이거지. 그러니까 자기를 망기신忘其身이야. 자기를 좀 잊어먹어야 이후신존而後身存, 그래야 몸이 건강해져. 자기를 잊어먹어야 몸이 건강해지지, 너무 자기를 간섭하면 이것도 자기 자신에 대한 독재지요. 너무 자기 자신에게 독재를 하면 그만 자기 자신이 죽고 말아. 그러니까 망기신忘其身, 자기 자신을 잊어먹어야 신존身存, 몸이 건강해진다. 고왈무이생위자故曰無以生爲者, 자꾸 잘살려고 하는 게 없어야, 같은 말이죠. 자기가 너무 자꾸 잘살려고 하는 것이 없어야 현어귀생賢於貴生, 잘살려고 하는 것보다도 더 잘 살게 돼. 같은 말이죠.(75장) 결국 윤리적으로 말하면 유약은 사랑이란 말이죠. 무위는 어머니지요. 이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말할 때 물은 부드러운 것, 또 논리적으로 말할 때는 도는 무위라, 윤리적으로 말할 때 어머니는 사랑, 그런 식으로 해서 결국은 사랑에까지 도달하자 이거지. 이 사람의 생각은 결국은 물리에서 논리로 가서, 논리에서 윤리로 가자는 거예요. 유약이라는 것이 결국 사랑이라는 말로 바뀌기까지 노력하는 거지요.(제76장) 무가 된다는 말은 자연이 되는 거다. 평등세계가 되는 거다. 사랑의 세계가 되는 거다. 뭐 여러 가지로. 불교에서는 무가 된다 그러지 않고 공空이 되는 거다.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되는 거다. 다르게 말하면 무아無我가 되어야 대아大我가 된다. 다 같은 말이지요. 장자로 말하면 허실생백虛實生白이죠. 방이 텅 비어야 빛이 가득 차지, 방이 꽉 막혀 있으면 빛이 안 찬다. 기독교로 말하면 마음이 가난해야 천국이 저희 것이지, 마음이 꽉 차놓으면 천국이라는 게 없다. 지옥이라. 다 같은 말이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진공묘유라 하고, 노자는 무위자연이라 하죠. 무가 되어야 자연이 되고 만다. 뭐든 저절로다. (77장) 어떻게 무無가 되는가? 그게 문제가 된다. 어떻게 무가 되는가? 무가 되려면 길은 하나야. 어머니가 되는 수밖에 길이 없어. 어머니가 되면 저절로 무가 되고 말아. 그렇게 되면 아들들은 저절로 잘 길러져. 어머니가 되면 아들들은 - 연 자는 불사를 연然(燃) - 활활 타게 돼. 어머니가 안 되면 나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지 않아.(77장) 시위사직주是謂社稷主, 이것이 나라의 주인이다. 수국지불상受國之不祥, 나라의 불행한 것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 시위천하왕是謂天下王, 그것이 천하의 왕이다. 말하자면 대속이라는 생각이죠. 정언약반正言若反, 얼핏 듣기에는 옳은 말이 반대로 들리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십자가가 왕이라는 것, 기독교에서는 십자가, 그게 왕이죠.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위에 있는 하늘과, 아래에 있는 땅과, 가운데 있는 열십자를 쓰면 왕 자가 돼요. 십자가가 왕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이가 누군가? 어머니다. 어머니가 십자가를 지죠. 어머니 같은 왕이라야 진짜 왕이다. 어머니 같은 왕이 못되면 진짜 왕이 아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예수가 만왕의 왕이다, 이런 거죠. 그러니까 십자가를 져야 왕이지, 그렇지 않으면 왕이 못된다. 이런 사상, 이건 기독교와 상당히 가까운 사상이에요.(제78장) 부쟁不爭, 그렇게 말하는데 다투지 않는 거다. 다투지 않는다를 다른 말로, 인간의 본성이 사랑이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죠. 기독교도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 하면 하나님이 사랑이니까, 우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까, 우리도 사랑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랑이니까 우리도 사랑이다. 이 노자도 같아요. 노자도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이라고 하는 게 그만 변질되면 그게 미움이 되고 만다 이거죠. 그 미움이 되는 걸 노자는 망妄이다. 망령된 거다. 그 미움이 더, 더 지독해지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고, 별 일이 다 나온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 원한이 생긴다. 그러니까 사람은 원래 본성은 사랑인데, 그것이 변질되면 미움이 되고, 미움이 심해지면 죽이기도 하고, 원수가 되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죠.(제79장) 성인이기성시인聖人以其性示人, 성인은 모든 사람에게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 그거를 보여준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다 하는 걸 보여주는 거다. 그거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다. 십자가라고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 사랑이다 하는 걸, 그걸 보여주는 거지. 사지제망使知除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망령되고 정신 나간, 그 정신 나간 그것을 제거하게 하기 위해서, 사使, 그걸 제거하게 해서, 제거하게 시켜서, 그걸 없이 하게 해서 이복성以復性,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거다. 성인이라는 게 그거다. 정신 나간 사람들을 다시 정신이 있는 세계로 돌아오게 하는 거다.(제79장) 정말 진짜 사는 것이 뭐냐 하면 낙생수성樂生遂性이지. 정말 사는 것을 즐기고, 수성遂性, 인간의 본성을 다하고, 즉중사안토則重死安土,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경솔히 생각하지 않아. 뭐 사람 죽이는 거 파리떼 죽이듯 하고. 또 자기가 죽는 것도 또 아무렇지 않아. 저희 가족 다 죽이고, 저도 그냥 죽고 말아.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이거지. 중사重死, 사람을 죽이든가, 죽는다든가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안토安土, 그래서 이 땅에서 편안히 다 같이 잘 살게 돼야 한다. 무구즉불원사無求則不遠徙, 무구즉無求則, 아무것도 그밖에 구하는 게 없어. 구하는 게 없은즉 불원사不遠徙야. 멀리 이사해 갈 필요도 없어. 언제나 자기 집에서 만족하고 산다. 차진성지치此盡性之治, 이렇게 되어야 진짜 정치야. 이렇게 돼야 이게 진짜 정치고, 민역진기성자야民亦盡其性者也, 이렇게 되어야 백성들이 정말 잘 사는 거야. 이것이 진짜 사는 거야. 노자대성인야老子大聖人也, 노자는 큰 성인이야. 이소우지변而所遇之變, 그래서 여러 가지 변고를 당하면서도 적당반본진성지시適當反本盡性之時, 어떻게 해서든지 반본反本, 근본으로 돌아가고, 진성盡性, 자기의 본성을 다하는 지시之時, 그런 때를 만들기 위해서, 고독명도덕지의故獨明道德之意, 혼자서,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로 사는 건가 하는 길과 그 방법을, 독명도덕지의獨明道德之意야.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 길과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다. 수렴사물收斂事物, 그래서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을 전부 다 수렴해서 정리를 하고, 일지박一之樸, 전체 국민이 하나로, 하나로 소박하게, 질박하게, 정직하게, 진실하게, 깨끗하게, 그렇게 살기를 바란 것뿐이다.(제80장) 신언信言, 참말, 믿음직한 말이죠. 참말은 불미不美, 별로 듣기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참말은 별로 듣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 미언美言, 듣기 좋은 말은 불신不信, 참말이 아니야. 선자善者, 도에 통한 사람은 불변不辯, 변명하지 않아. 변자辯者, 변명하는 사람은 불선不善, 도에 통한 사람이 아니야. 지자知者,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불박不博,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박자博者, 많이 아는 사람은 부지不知, 아직 진리를 못 깨달은 사람이다. 이 셋은 진리를 깨달았느냐? 도에 통했느냐? 생명을 얻었는가? 그 세 마디를 이렇게 한 거예요. 신언信言, 믿음의 말인데 사실은 생명의 말이죠. 생명의 말은 그렇게 듣기 좋은 것이 아니야. 도에 통했다는 건 말로 하는 게 아니야. 진리를 깨달았다는 건 그렇게 많이 아는 게 아니야. 이것이 노자가 하고 싶은 소리죠. 노자가 하고 싶은 소리는 생명을 얻어야 되고, 도에 통해야 되고, 진리를 깨달아야 되고, 이것이 노자의 전 내용 아니겠어요? 어떻게 하면 진리를 깨닫나? 어떻게 하면 도에 통하나? 어떻게 하면 생명을 얻나? 내가 늘 말하던 빛과 힘과 숨이라는 거죠. 어떻게 하면 눈을 뜨나? 어떻게 하면 일어서나? 어떻게 하면 날아가나? 늘 말하는 거죠. 눈을 뜨고, 일어서고, 날아가고. 그러니까 ‘통일, 독립, 자유’, 그 세 가지죠. 어떻게 하면 살고, 어떻게 하면 통하고, 어떻게 하면 깨닫고, 그 세 가지죠.(제81장) 성인부적聖人不積, 성인의 특징은 뭔가? 쌓아두는 것이 없다. 기이위인旣以爲人 기유유己愈有, 자기는,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다 주고 말아. 다른 사람에게 다 줘. 위인爲人이야. 그런데 주면 줄수록 자기는 그냥 자꾸 있는 거야. 자기는 자꾸 가지게 되는 거야. 학교선생을 해보면 그렇지요.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면, 가르칠수록 자기는 자꾸 배워야 하는 거지. 주면 줄수록 자기는 있게 돼. 기이여인旣以與人,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누면 나눌수록 기유다己愈多, 자기는 자꾸 많아져. 이것이 노자의 경험이죠.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자꾸 더 많이 알게 되고,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누면 나눌수록 더 많아지고, 이것을 한마디로 부적不積,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쌓아둘 필요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 쌓는다 하는 것은 저수지인데 쌓을 필요가 없는 것은 샘물이죠. 자꾸 솟아나오니까, 풀수록 자꾸 솟아나오니까 받아둘 필요가 없어요. 저수지가 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왕양명에 그런 말이 있어요. 저수지 옆에 우물이 조그만 것이 있는데 저수지 백 개가 있어도 우물 하나만도 못하다. 진리를 깨달았다 하는 것은 우물이 된다, 그런 거예요. 계속 솟아나오는 우물이 되는 거죠. 진리를 깨달았다, 도에 통했다, 생명을 얻었다, 다 우물이 되자는 거지요. 샘물이라는 것 하나가 노자의 핵심이죠. 노자가 무얼 찾으려고 하느냐? 샘물을 하나 찾으려고 한다. 천지도리이불해天之道利而不害, 하늘의 도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지, 해롭게 하는 법은 없어. 성인지도聖人之道 위이부쟁爲而不爭, 성인의 도는 다른 사람을 자꾸 도와주려고 하지, 다른 사람과 싸우려고 하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 사랑과 평화의 복음이지요. 노자의 핵심이죠.(제81장) 무위無爲 고故로 무아無我, 하나님에게는 나라고 하는 게 없어. 무아고부쟁無我故不爭, 나라고 하는 게 없기 때문에 부쟁不爭, 싸운다는 게 없어. 그냥 사랑이지. 노자는 ‘사랑’이라 하지 않고 ‘부쟁不爭’, 싸운다는 게 없어. 천지도天之道라, 그것이 하나님의 내용이다.(제81장) 노자라는 건 어떤 책인가?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가 아주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이것이 노자다. 감이 몇 알이나 열렸나? 오천 알이 열렸다. 그것이 노자 오천五千 언言이죠. 이 노자의 오천 언이 어디서 나왔나? 노자가 이 큰 나무야. 대성인大聖人이라고 하는 아주 큰 나무야. 그 큰 나무가 어떻게 됐나? 깊은 땅 속에서 물을 빨아 올렸기 때문에 된 거지. 그게 탐探 조화지근원造化之根源이지.(마지막 강의) 어떡하면 우리가 노자처럼 되느냐?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는 본심지자무本心之自無라는 걸 알아야 돼. 둘째는 무구지비정無垢之非淨이라는 걸 알아야 돼. 셋째는 무물지비아無物之非我라는 걸 알아야 돼. 맨 처음 본심지자무本心之自無라는 건 진리, 무구지비정無垢之非淨이라는 건 도통道通, 무물지비아無物之非我는 생명, 그래서 우리의 진리가, 도가, 생명이, 그것들이 통해질 때 뿌리와 나무와 열매가 돼요.(마지막 강의)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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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 선생의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무위 무욕』후편 5권~8권(전 4권)이 출간되었다(김흥호 사상전집 17~20권). 이로써 『노자 · 노자익 강해』 전 8권이 완간된 것이다.
현재 김흥호 선생의 『노자 · 노자익 강해』는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2004년 1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매주 일요일 일반인들 상대로 47회 강의한 내용이다. 교재는 『노자권재구의』이고, 부교재로는 초횡의 『노자익』과 저자의 보충자료들이다. 책의 구성은 노자 도덕경의 해석과 권재 임희일(중국 남송시대인)의 노자구의에 대한 해석, 그리고 저자가 발췌한 『노자익』(초횡)에 나오는 주해들 및 기타 자료들에 대한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노자의 주해가 집대성되어 해석되기는 국내에서 유일하며,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자권재구의』와 초횡의 『노자익』의 주해가 자세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이된 것도 처음이며, 조선시대 박세당의 주해도 전부는 아니지만 함께 다루었다는 것도 큰 의의가 될 것이다. 『노자권재구의』는 조선왕조 세종대왕 때 경자자庚子字로 출판(세종 2년 1420년 금속활자 인쇄본, 보물 제1655호)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혀졌던 책이다. 특히 권재 임희일의 노자, 장자, 열자의 [삼자권재구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널리 읽혀졌고, 그들의 노장사상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책은, 현재 김흥호 선생이 한문교재들을 한 줄 한 줄씩 읽고 풀이하며 강의해나간 내용을 녹취하여 강의의 현장감이 드러나도록 편집되었다. 한문을 전혀 몰라도 이야기 듣듯이 편하게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 전집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제8권의 부록들은 노자사상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본 전집은 총 8권으로서 분량으로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나름대로 골라서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다. 제1권에서 [권재구의]의 ‘노자사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다소 길게 느껴지면, 2권, 3권 등 다른 권을 먼저 읽고 1권을 읽어도 되고, 중간 중간 1권을 참고서 삼아서 읽어도 된다. 또 제8권은 대단원에 해당하므로 전체 이해를 도와줄 수 있다. 간단히 각권의 특징을 소개한다. 5권: 제37장부터 제48장까지 수록되어있다. 제38장에서는 [노자의 종교와 공자의 도덕]이라는 설명이 들어있다. 6권: 제49장에서 제60장이다. ‘절대자, 철인, 이상세계’에 대한 해석과 진리의 체득, 노자의 정치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비유들이 풍부하다. 7권: 제61장에서 제72장까지이다. 이 책에서는 ‘질적 변증법’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범신론’, ‘무위 . 무사 . 무미’, ‘신즉자연’을, 빙상경기 선수, 축구 선수들을 예로 들 어 해석했다. 또 제70장을 원리, 제71장을 진리, 제72장을 실존으로 정의하여 과학, 철학, 종교의 세계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8권: 제73장에서 제81장까지이며, 마지막 책으로서 선생의 노자사상 강의의 대단원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인 [노자 강의를 끝내며: 노자, 오천 언의 열매]가 있고, 편집후기가 있다. 부록으로 [전 8권의 차례]와 [주해자 및 관련 인물], [참고문헌], [노자 1~81 장 전체 찾아보기], 제8권의 [찾아보기]로 끝을 맺었다. 현재 김흥호 선생은 2012년 12월 5일 향년 93세로 타계했다. 선생은 노자익을 유영모 선생님으로부터 배웠고, 이 노자를 무척 사랑했다. 선생은 생전에 이 책의 서문들을 쓰고 원고를 읽어가면서 내용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제 이 책이 완간이 되어 현재 김흥호 선생의 노자사상을 누구든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선생의 손에 올리지 못한 아쉬움이 세월이 갈수록 커진다. 2015년 12월에는 추모 3주기를 맞았다. 이 책을 선생의 영전에 바친다. 노자老子, 권재.齋, 현재鉉齋의 무無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 무위 . 무욕』, 전 8권 교재 『노자권재구의』 사색출판사 2016년 2월 5일 출간 이윤식(작가) 동서양 철학을 섭렵한 김흥호 선생의 사상 전집 중에『노자 . 노자익 강해』가 지난 2013년, 노자老子 5천 자, 총 81장 중에서 36장까지 4권이 발간되었고, 2016년 2월, 37장부터 마지막 81장까지 4권이 발간되었다. 현재鉉齋 김흥호 선생은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고서도 강의를 놓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2012년 93세로 돌아가시면서 선생의 강의 모습은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제자들이 힘을 모아 그동안 연경반에서 강의한 주역周易, 원각경圓覺經,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 등이 이미 출간되었고, 다음 강의들도 제자들이 모두 녹음해 두었으며, 그것을 그대로 글로 살려, 한 권씩, 한 권씩 계속해서 발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소개할 『노자ㆍ노자익 강해: 무지ㆍ무위ㆍ무욕』도 그 일환이다. 노자가 주나라에서 서역으로 떠나던 중 함곡관에서 당시 관령 윤희尹喜의 요청으로 남긴 81장으로 구성된 5천 자가 노자가 썼다는 글의 전부라고 한다. ‘노자’는 중국에서는 ‘스승 중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호칭이기도 하다. 서기전 6세기경의 인물이라 베일에 싸인 부분도 많다. 공자와 만났다는 이야기나 서역으로 넘어가 백 년, 2백 년 장수했다는 것도 사실 확인되지 않은 신화적 이야기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5천 자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노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춘추전국시절 초나라 태생이다. 김흥호 선생의 노자 강해는 노자의 5천 자와 이 5천 자를 주해한 권재.齋의 해석, 그리고 김흥호 선생의 해석 등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재 임희일(.齋 林希逸, 1193∼1271)은 중국 남송시대 사람이며, 유불도의 사상을 섭렵하여, 노자의 5천 자를 강의한 『노자권재구의老子.齋口義』를 남겼다. ‘구의’는 ‘강의’라는 뜻이다. 노자사상과 그 주석들에 대한 해석서는 이미 국내에도 많이 나와 있고, 대학 철학과에서도 많은 강의가 있어왔다. 그러면 김흥호 선생의 노자 강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그 특징들이란 김흥호 선생의 철학세계와 직결되기에 간략하게나마 이와 함께 언급해야겠다. 이 책은 노자의 사상을 ‘무극 . 태극 . 음양’으로 보고, 이를 노자 5천 자, 81장 내용을 꿰뚫는 핵심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자의 원문을 김흥호 선생 특유의 누구나 알기 쉬운 비유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그다음 권재의 해석, 그 외 여길보, 정구, 이식재, 소자유, 박세당 등 역대 주석들을 해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엇보다도 김흥호 선생의 철학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선생은 정인보 선생으로부터 양명학을, 유영모 선생으로부터 일좌일식의 철학을, 지식이 아닌 지행합일, 체득으로 배움을 이어온 철학자이면서 유교, 불교, 기독교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섭렵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이 노자 강해의 결정적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노자의 자구해석에서 지엽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기독교사상, 동서양 철학을 꿰뚫는(일이관지一以貫之) 해석에 있다. 따라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풍요로움을 느끼는 독서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불교와 노자사상, 기독교사상 등이 본질적으로 핵심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점을 책 전편에서 많은 비유를 들어 강조하고 있다. 노자의 무無는 서양에서 말하는 ‘절대자’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眞空’으로, 그 무를 직관으로 체득한 자를, 성인 혹은 철인으로 보고 있다. 유영모 선생은 이것을 ‘없이 존재하는 분’으로 표현한 바 있다. 노자의 무사상은 참으로 어렵다. 말로 표현하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해서 노자의 5천 자에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주석에서도 상징과 비유적 표현이 많다. 김흥호 선생도 비유적 표현을 많이 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에베레스트 산’이다. 무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있는 ‘얼음’으로, 에베레스트 산은 절대자를 만난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등 성인, 철인으로, 꼭대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만인, 만물을 먹여 살리는 ‘말씀’(성경, 팔만대장경 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결국 노자사상은 ‘형이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에 대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고, 노자는 이것을 ‘도道’라고 했지만 결코 설명할 수 있거나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으로 보지 않았다. 김흥호 선생은 ‘무’라는 절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노자의 자구적 해석 등 지식의 습득에 머물기보다는 일좌일식 등 실천적인 체득을 강조했다. 노자는 육체(욕망)의 삶에서 정신의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절대(무無)를 만나야 하고, ‘나’를 알자는 것이 5천 자를 남긴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노자의 ‘진신眞身’ 개념을, 불교에서의 ‘법신法身’, 기독교에서의 ‘도신道神’, 유교에서의 ‘성신誠身’으로 대비하고 있다. 선생은 노자의 글, 81장의 전체내용이 도, 철인, 이상세계(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등 세 개의 핵심 내용이 반복해서 설명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원문을 분석, 풀이하면서 분별지에서 통일지로 나아가는 노자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노자의 원본 자구字句의 직역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난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원본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가령, 제5장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拘”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을 직역하면 “천지는 어질지 못해서 만물(백성)을 꼴과 개처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직역을 하면 노자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뜻이 된다. 왜 노자는 이렇게 말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仁이란 세상이 어질지 못하니 억지로라도 실천해야 되는 유위有爲에 해당한다. 김흥호 선생은 이 구절에서 ‘천지’는 ‘자연’으로, ‘불인’을 인위적인 사랑이 아닌 무위적 행위, 즉 저절로 하는 사랑으로 풀이한다. 그러므로 추구芻拘는 “꼴과 개” 혹은 “꼴로 만든 개”가 아니라 맹자가 언급한 “추환芻.”이 된다. 즉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 된다. 맹자는 “마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진리와 정의라. 눈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고, 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고, 입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추환이라” 하였다. 김흥호 선생은 위 구절의 ‘추구’를 맹자가 이렇게 언급한 ‘추환’으로 보고, “가장 행복한 존재”로 해석한다. 따라서 위 구절의 의미는 “천지는 인위적인 사랑을 하지 않고, 저절로 하는 사랑이라 만물을 행복한 존재로 만든다”라는 것이 된다고 선생은 풀이하고 있다. 이 5장에 대한 권재의 주석을 보면 선생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자구의 좁은 해석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수많은 비유들이 노자의 핵심사상을 이해시키고도 남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노자의 ‘무’니, ‘자연’이니 ‘무위’니 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는 돼도 이를 체득을 하기 위해서는 ‘일좌일식’이라는 실천적 덕목이 필요하다. 선생은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금지유고以今之猶古 즉지고지유금則知古之猶今, 금今이 오히려 고古가 되면, 고古가 또 금今이 되는 거고, 그래서 원리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우리가 지금 노자를 읽는 것도 옛날의 이치를 배우자는 거죠. 이치를 배워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건가. 현실적인 나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지요. 이것을 소위 도기道記라고 그런다. 도의 핵심이라고 그런다. (…) 도기자道記者, 도기라는 원리는 무거래야無去來也 고금지위야古今之謂也.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과거나 현재나 언제나 진리지, 과거에는 진리인데, 지금은 진리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 노자, 이런 고전은 무슨 특별히 해석하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글자 그대로 뜻이 있는 게 아니죠. 이걸 전체로 직관해서 핵심을 붙잡아 거기에 맞춰서 해석하는 거죠.” 2천 5백여 년 전에 남긴 노자의 글은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쟁의 참화가 비일비재했던 춘추전국시대였다. 무례함이 판을 치니, 예를 강조하게 되고, 무법이 판을 치니 법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인仁이니 예禮라는 것이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유위有爲보다 무위無爲가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고, 세상을 더 세상답게 만들고 있음을 노자는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무위사상을 요임금, 순임금의 경우로 비유하고 있다. 세상이 풍요롭지만 백성들이 왕이 잘해서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백성들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잘 살게 되었다고 여겼다고 한다. 백성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할 정도로 무위의 정치를 펼치는 왕이 진정한 왕이고, 김흥호 선생의 해석대로 절대자(무無)를 만난 철인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철인에 대한 언급도 결국 절대자의 무위無爲를 설명하기 위한 예인 것이다. 노자의 원문에 나오는 수레바퀴 30개의 살이 도는 것도 축이 들어가는 바퀴의 빈 공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예도 그렇고, 바다에 사는 물고기에 비유한 것도 모두 무와 무위에 대한 설명이다.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심오한 사상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빈 공간’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無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어서 무無라는 게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선생은 이 무無를 ‘절대자’로 보았다. 선생은 노자의 글은 이 절대자, 절대자를 만난 철인, 철인에 의한 이상세계를 전편에서 다루는 핵심이라고 하였다. 제37장에 나오는 글을 보자. “도상무위道常無爲 이무불위而無不爲” “절대자를 만나면 무위, 언제나 철인이 되는 거다. 철인이 되면 거기가 이상세계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절박하게 와닿는 구절이 다음에 나온다. “후왕약능수候王若能守 만물장자화萬物將自化.” “이 세상 왕들도 이 말을 이해하면 모든 왕들이 철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만물이 저절로 철인의 덕을 감화를 받아서 스스로 다스리고, 그래서 자유가 생기고, 이상국가가 될 수 있다. 온 세상이 이상세계가 된다.” 이 37장의 권재구의나 육희성陸希聲의 주, 여길보呂吉甫의 주를 보면 왕에 국한되지 않는다. 왕이 아버지와 같은 마음,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모든 만물이 잘 자란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식으로 말한다면 대통령에서부터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 각 가정의 부모들이 제 자리를 지켜야 이 세상이 바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나’가 무엇이 되었든, 어느 지위에 있든지 ‘나’가 먼저 철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절대자와 만났다고 표현하든, 철인이 되었다고 표현하든 같은 뜻이라고 선생은 해석한다. 여길보의 주 마지막에는 “동지천하同之天下 이선지후왕而先之候王 의야義也”라는 말로 장을 맺는다. “천하 사람들하고 같이 살겠다 하기 전에 먼저 왕이 철이 들어야 한다. 그것을 의義라 한다.” 정치처럼 시끄러운 것도 없는데 도대체 정치는 왜 하나. 우리는 매일 같이 일하러 나간다고 하는데, 일은 왜 하나. 선생의 표현방식으로 풀이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해서”이고, “하루하루의 삶이 깨끗하게(깨달아 끝을 맺는)” 되기 위해서인 것이다. 수천 년 전 노자가 오천 자를 남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일이 다 소개하기 어려운 보석 같은 이 고전의 마지막 장, 제81장에서는 “신언불미信言不美 선자불변善者不辯 지자불박知者不博”으로 압축될 수 있다. 선생은 “참된 말은 듣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깨달은 자는 변명하지 않으며,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말한다. “노자가 하고 싶은 소리는 생명을 얻어야 되고, 도에 통해야 되고, 진리를 깨달아야 되고, 이것이 노자의 전 내용이 아니겠어요. 어떻게 하면 진리를 깨닫나. 어떻게 하면 도에 통하나. 어떻게 하면 생명을 얻나. 내가 늘 말하던 빛과 힘과 숨이라는 거죠.” ‘생명, 도, 진리’ 혹은 ‘빛과 힘과 숨’을 선생은 ‘통일, 독립, 자유’라고 쉽게 풀이하기도 하고 “눈을 뜨고 일어서서 날아가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노자사상에 대한 선생의 핵심이기도 하다. 노자의 ‘무無’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노자 오천 자의 해석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선생은 노자의 철학에서 과학, 철학, 예술, 종교를 하나의 관점으로 꿰뚫어 해석해 나아갔고, 그 하나의 관점이란 ‘참 존재’ 즉 ‘절대자와의 만남’이고, 이것이 노자 해석의 원점이면서 귀결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머리말 선생의 글을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노자 6장에서는 하나님을 곡신谷神이라고 한다. 없이 계신 하나님이란 말이다. 노자는 이것을 무극이라고 한다. 없고 없는 하나님, 절대무다. 마치 어머니가 주고주고 주다가 자기는 숨어버리는 것과 같다. 무위자연이다. 그것을 하이데거는 에르아이그니스(Ereignis)라 한다. 절대무다. 인간은 절대무에서 걸려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이 본질직관이다. 이때 인간의 영성이 깨어난다. 하이데거는 노자를 영성이 깨어난 사람으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노자를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노자는 우주를 허이불굴虛而不屈 동이유출動而愈出이라 한다. 텅 비어 있지만 계속 솟아나오는 것이 무위자연이다. 노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권재의 주석을 설명한 김흥호 선생의 글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기로 한다. “독자불오기의讀者不悟基義, 독자는 그런 말에 끌려 다니지 말고 노자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노자의 근본 뜻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노자의 근본이 무엇인지, 그걸 깨달아야 한다. 이불견타문자기처而不見他文字奇處, 만일 글자에 끌려 다니게 되면 우다견강지설又多牽强之說, 억지로 갖다 붙이는 억지투성이가 되고 만다. 억지로 해석하고, 억지로 끌어다대고 그렇게 되고 만다. 요는 득이망어지得而亡語之이죠. 근본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먹어도 좋다. (…) 말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근본 뜻을 깨달았으면 그만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