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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감사의 글 프롤로그 깨어진 약속을 새롭게 쓰기 위하여 PART 1 우리는 낯선 나라에 살게 되었습니다 - 지난 20년, 각자도생의 결과에 관한 6편의 편지 chapter 1 깨어진 약속 -두 개의 숫자로 한국 사회를 보여준다면 chapter 2 아파트 신화, 그 이후 -오너십 사회와 세습자본주의 chapter 3 평등 친화적 세대와 불평등한 사회 -헬조선의 청년들 chapter 4 막차 문 닫기 게임 -제론토크라시의 시대 chapter 5 사장님의 꿈과 치킨 버블 -벼랑 끝의 자영업자들 chapter 6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붕괴 -중산층의 희망이 무너지다 PART 2 오늘의 불안을 이기는 내일의 경제 패러다임 - 저성장 시대, 새롭게 익혀야 할 삶의 전략에 관한 5편의 편지 chapter 7 우리에게 어떤 삶이 필요한가 -성장 chapter 8 늘어나도 행복해지지 않는 미스터리 -소득 chapter 9 우리가 알던 일자리는 없다 -일자리 chapter 10 드론과의 경쟁은 필연일까 -기술 chapter 11 돈 말고 준비해야 할 것들 -노후 PART 3 새로운 약속 - 한국 사회에 필요한 구조적 변화에 관한 6편의 편지 chapter 12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다시 쓰는 희망의 패러다임 chapter 13 망할 기회를 선사하는 나라 -청년이라는 투자처 chapter 14 두려움 없이 늙어갈 수 있는 곳 -노년을 위한 삼분지계 chapter 15 불평등을 걷어차기 -고장 난 경제의 4가지 해법 chapter 16 연말정산에 분노했던 당신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이유 chapter 17 결국,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 -시민의 사회적 책임 에필로그 다시 한 번 희망을 찾아서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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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감사의 글 프롤로그 깨어진 약속을 새롭게 쓰기 위하여 PART 1 우리는 낯선 나라에 살게 되었습니다 - 지난 20년, 각자도생의 결과에 관한 6편의 편지 chapter 1 깨어진 약속 -두 개의 숫자로 한국 사회를 보여준다면 chapter 2 아파트 신화, 그 이후 -오너십 사회와 세습자본주의 chapter 3 평등 친화적 세대와 불평등한 사회 -헬조선의 청년들 chapter 4 막차 문 닫기 게임 -제론토크라시의 시대 chapter 5 사장님의 꿈과 치킨 버블 -벼랑 끝의 자영업자들 chapter 6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붕괴 -중산층의 희망이 무너지다 PART 2 오늘의 불안을 이기는 내일의 경제 패러다임 - 저성장 시대, 새롭게 익혀야 할 삶의 전략에 관한 5편의 편지 chapter 7 우리에게 어떤 삶이 필요한가 -성장 chapter 8 늘어나도 행복해지지 않는 미스터리 -소득 chapter 9 우리가 알던 일자리는 없다 -일자리 chapter 10 드론과의 경쟁은 필연일까 -기술 chapter 11 돈 말고 준비해야 할 것들 -노후 PART 3 새로운 약속 - 한국 사회에 필요한 구조적 변화에 관한 6편의 편지 chapter 12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다시 쓰는 희망의 패러다임 chapter 13 망할 기회를 선사하는 나라 -청년이라는 투자처 chapter 14 두려움 없이 늙어갈 수 있는 곳 -노년을 위한 삼분지계 chapter 15 불평등을 걷어차기 -고장 난 경제의 4가지 해법 chapter 16 연말정산에 분노했던 당신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이유 chapter 17 결국,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 -시민의 사회적 책임 에필로그 다시 한 번 희망을 찾아서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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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한국이 벌어들이는 국민소득이 연간 100만 원이라면 1990년대 중반 이 나라는 일반적인 직장인(하위 90%)이 46만 원을, 자산 소유자가 20만 원을, 자영업자가 17만 원을, 고소득 직장인(상위 10%)이 16만 원을 가져가는 사회였습니다. 그 20년 뒤 이 나라는 일반적인 직장인이 38만 원을, 자산 소유자가 32만 원을, 자영업자가 8만 원을, 고소득 직장인이 20만 원을 가져가는 사회가 됐습니다. ---「프롤로그 깨어진 약속을 새롭게 쓰기 위하여」중에서 사회는 우리에게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지옥을 잘 참아내고 대학만 가면 광명의 길이 열린다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깨어졌습니다. 대학생들은 다시 입‘사’지옥으로 향합니다. (…) 평생 열심히 일하면 여유로운 노년을 맞는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른 퇴직과 자영업 실패를 거쳐서 병과 가난에 찌든 노년이 기다린다면 어떤 심정이 들까요? (…) 깨어진 약속을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을까요? 지금 한국 사회는 20년 뒤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Chapter 1 깨어진 약속」중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사회생활 몇 년 만에 괜찮은 자기 집을 마련하고 그 집을 토대로 자산가로 등극하던 사회에서는 ‘오너십 사회’의 원리가 그런대로 공정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오너십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오너십을 갖기 어려워지면서 누구나 오너십을 누리던 사회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는 전혀 다른 질서를 지닌 사회에서 살게 되는 셈입니다.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아버지 세대의 말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Chapter 2 아파트 신화, 그 이후」중에서 제론토크라시는 나이와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일종의 ‘막차 문 닫기’ 문제입니다. 이미 버스에 올라타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새로 버스에 올라탈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서 있게 하거나 아예 버스 문을 닫고 타지 못하게 하는 문제라는 이야기지요. (…) 어쩌면 ‘무임승차론’을 펼치는 분들 중 상당수는 먼저 요금을 많이 내고 차에 타기는 했지만 이미 그 요금을 회수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은 차 안만 따뜻하고 차 밖은 각자도생의 ‘헬조선’을 만들어왔을지도 모릅니다. ---「Chapter 3 막차 문 닫기 게임」중에서 실은 ‘성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일은 이제 그리 의미가 크지는 않습니다. 성장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어떤 성장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Chapter 7 우리에게 어떤 삶이 필요한가」중에서 2000년대 이전과는 달리 이제 생산성이 일자리를 자동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첨단 기술이 계속 나와 생산성을 높이도록 장려하는 사회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높아진 생산성의 과실을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나눌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20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Chapter 11 드론과의 경쟁은 필연일까」중에서 노년에 대한 보장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했던 청년에 대한 투자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청년에 대한 투자와 노년에 대한 보장이 같이 어우러져야 새로운 세대로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이양될 수 있습니다. 청년은 결국 노년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생존이 보장된다면 새로운 세대가 노년을 준비하는 패러다임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Chapter 14 두려움 없이 늙어갈 수 있는 곳」중에서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려면 소수의 대기업과 자산가들만 바뀌어서는 역부족입니다. 다수 시민이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무장하고 우리의 낡은 관행을 변화시켜야합니다. 각자도생의 사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기려고만 하면서 결국은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이 악마의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게임은 서로 조금씩 져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시민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Chapter 17 결국,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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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번영의 조건
정부는 빈곤층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좋은 삶의 주요 요소인 근대 경제의 이익을 배분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는 근대 경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잘못일 것이다. --- p.12 가장 혁신적인 산업들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혁신은 과학이 없는 곳에서 먼저 일어났다. --- p.33 1780년대 처음 진전된 산업 혁명은 종종 노동 계급에게는 끔찍했던 시절인 것처럼 묘사된다. 그렇지만 진실은, 결론적으로 이 시기는 훌륭한 지능과 상상력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역사상 비할 데 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놀랄 만큼 빠르게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p.35 당시 영국에서는, 체계적으로든 어떤 영구적인 방식으로든 근대 경제가 임금 불평등을 악화시키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자료를 은폐하면서 글래드스턴이 강조한 부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 p.86 도시 거주자들에게는 실업의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혜택들을 누릴 기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업 대신 도시의 삶을 찾아 떠난 것은 잃는 만큼 얻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 p.92 볼셰비키는 문화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인 자신의 자녀들이 자본가와 기업가가 되려고 할 때, 그들은 게임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p.135 경제적 역동성이 자연적, 우연적 원인 때문이라고 한다면 국가는 상업적 혁신에 유리한 경제 제도와 문화를 조성하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좋은 체제가 스스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 p.138 근대 경제는 상업 자본주의적 경제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상업 자본주의 경제는 무역의 확대와 부의 축적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달성했지만 생산성과 임금, 직업 만족도, 인간의 정신에는 어떤 훌륭한 발전도 가져오지 못했으며, 아마 고용도 거의 증가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 p.186 사람들은 소수 특권 계층의 오래된 부는 그 기원이 오랜 시간 속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새로운 부]가 싹트는 현상은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 p.193 미제스가 보기에, 사회주의를 시도하는 것은 이론 없이 실험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상상 속 공상의 세계에서는 구워진 비둘기가 동무들의 입 속으로 날아 들어오는 식의 일이 벌어지는데, 그들은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 p.203 러시아인들에게 사회주의가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 경제들만큼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런 경제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 그들의 사회주의가 역동성이 높은 국가만큼 혁신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차르의 복귀를 열망하지 않았다. 5장 --- p.217 [계획]의 실패는 지극히 아이러니하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정책 입안자들이 항상 주장해 온 바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합리적이어서 자본주의가 단기적 이익 추구에 매달리는 것과는 달리 장기적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218 근대 경제를 향한 증오심은 어떠한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도 아니었고, 심지어 구질서에 대한 향수도 아니었다. ……근대 경제는 사회적 위계질서와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있었다. --- p.232 코포라티즘이라는 사상은 (무솔리니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대부분의 경제 참가자들을 다시 양처럼 만들어 버린, 다양한 전체주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 p.277 미국 사회의 과도한 소송 증가의 이면에는 돈에 대한, 거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재능이 부러운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부가 부러운 사람들은 그들을 고소할 기회를 얻거나, 필요하다면 심지어 만들어 낼 수도 있다. --- p.394 코포라티즘 정부는 여러 개의 위대한 소기업들로 구성된 산업보다는 소수의 거대 기업들로 구성된 산업을 다루기가 더 쉽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정부는 이 거대 기업들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 --- p.406 의원들이 그들이 만드는 사회 보장 프로그램보다 세금 제도를 늦게 손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니다. 만일 새로운 사회 보장 프로그램을 입안할 때 세금을 눈에 띄게 올린다면, 사회 보장 프로그램은 통과를 위해 필요한 표를 모으지 못할 것이다. --- p.417 정치 경제학은 인문학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근대 경제를 둘러싸고 다시 시작된 논쟁에서 계속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11장 --- p.429 좋은 경제는 불공정한 부분이 많을 수도 있다. 최근 많은 비판자들과 학자들은 그런 [좋은] 경제는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다른 종류의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런 [좋은] 경제는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 p.458 롤스의 보조금은 누가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는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지를 따져서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공정한지 따져서 주는 것이다. 대가를 얻으려면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아예 종류가 다른 삶은 해당되지 않는다. --- p.467 근대 자본주의에서 부의 불평등이 크게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이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거대한 부의 불평등이 내재해 있었고, 공정하지도 않았던 것은 전통적인 사회였다. --- p.478 매우 짧은 기간 재임할 예정인 CEO들에게 매우 높은 급여를 지급하여 이들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내는 혁신적 프로젝트를 무시하도록 유도하는 기업 관행을 멈추는 개혁이 너무나 시급하다. --- p.510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질문했을 때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만 말했다. [근사한 것]을 사고 가정을 꾸리고, 금전적으로 안정되기 위해 일하는 것 말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을 언급한 청소년은 극소수였다. [도전], [탐험], [모험], [열정]은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어휘가 아니었다. 이런 단어들은 사라져 버렸다. --- p.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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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아버지들의 나라, 번영을 약속했던 경제는 어떻게 절망으로 변했는가? 청년들이 리더가, 노인들이 팔로어가 되면 안 되는 걸까? 오늘의 불안과 절망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없을까? 치킨 버블, 자살률 1위, 헬조선, 제론토크라시, 세습자본주의…… 깨어진 약속의 나라를 살아갈 이들을 위해 새롭게 그리는 희망의 경제학 “1990년대 중반, 그 때의 아버지들은 이 나라가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믿어볼 만한 나라라고 믿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다음 세대는 묵묵히 그 약속을 믿고 따랐습니다. (…)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난 뒤, 그 아버지들의 아들과 딸들에게 이 나라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_프롤로그 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빠르게 늘어나는 동안 자살률도 함께 늘어난 이상한 나라. 청년들은 ‘헬조선론’으로 절망감을 드러내고, 은퇴를 준비해야할 아버지들은 ‘치킨 버블’과 노후 생존의 공포에 시달리는 나라. 열심히 노력하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사라진 세상은 왜, 어떻게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었을까? 이 절망의 시대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경제 문법을 찾는 희망제작소 이원재 소장은, 이 책에서 아버지 시대의 ‘성장’, ‘소득’ 담론이 불어넣던 희망과 약속이 어떻게 깨어져왔는가를 밝히며 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우리가 새롭게 성찰해야할 질문들을 제기한다. 수출이 늘어나고 GDP가 늘어났는데 삶의 조건은 왜 더 열악해지고 있는가? 저성장은 정말로 ‘문제’인가? 우리에게는 ‘어떤’ 성장이 필요한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자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저자는 아버지 세대가 굳게 믿고 있는 성장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우리 시대를 진단하고, 절망하는 대신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약속을 쓰고자 한다. ‘좋은 삶’을 함께 정의내리고, 그런 삶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함께 그려내기 위한 ‘희망의 경제학’이다. “아버지 세대의 약속은 모두 깨졌다” - 경제성장의 ‘복음’이 우리 삶에 남긴 상처들 “사회는 우리에게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지옥을 잘 참아내고 대학만 가면 광명의 길이 열린다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깨어졌습니다. 대학생들은 다시 입‘사’지옥으로 향합니다. (…) 평생 열심히 일하면 여유로운 노년을 맞는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른 퇴직과 자영업 실패를 거쳐서 병과 가난에 찌든 노년이 기다린다면 어떤 심정이 들까요? (…) 깨어진 약속을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을까요? 지금 한국 사회는 20년 뒤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_Chapter 1 깨어진 약속 학업을 마친 후 평균적인 직장에 취업하고 열심히 일해서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삶, 은퇴 이후에는 작은 가게를 꾸리며 적절한 소득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할 수 있던 아버지 세대의 인생 계획은 자식 세대에게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소득이 더 높아졌고 글로벌 기업도, 수출도 계속 늘어났는데 왜 자식 세대는 중산층의 평범한 꿈조차 가질 수 없게 된 걸까? 이 책의 1부에서는 아버지 세대에 만들어진 우리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는 자식 세대의 현실을 냉정하게 살피며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된 우리 사회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내밀하게 뜯어본다. 1960년 100달러를 밑돌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015년 3만 달러에 육박해 55년 만에 300배 늘어났다. 그런데 55년 전과 비교해 우리의 삶은 300배 더 나아졌을까? 지난 20년간 가파르게 치솟은 자살률, OECD국가 중 최하위를 달리는 사회관계망 지수 등을 보면 적어도 우리사회가 더 '행복'해졌다고 여길 수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그 반대임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끊임없이 관찰된다. 저자는 노동소득 분배율, GDP 성장률과 가계소득 증가율의 격차 같은 지표들을 면밀히 살피며 월급 통장에 담긴 불평등을,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계획에 드리우는 절망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세습 받지 않고서는 자산을 형성할 길이 가로막히는 세습자본주의가 시작되고, 기득권을 획득한 노인들이 다음 세대를 의사결정 테이블에서 배제하는 노인 지배체제가 견고해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야만적인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를 통해, 모두가 믿고 따랐던 아버지 세대의 성장 담론과 ‘각자도생’의 전략에 관해, 그동안의 선택과 합의들에 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볼 것을 요청한다. 저성장 시대, 우리가 알던 경제학은 없다 - 낡아버린 고성장 시대의 믿음을 전복할 희망의 패러다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아이디어를 잊는 것이다." _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오늘날, ‘아들의 나라’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가 커지는 가운데 파국이 예고되어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의 정점에는 ‘저성장 시대’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고성장 시기만을 겪어온 한국사회가 처음 맞이한 낯선 시기, 저자는 성장률에 관한 잘못된 믿음과 과장된 공포를 바로잡고, 저성장 시대에 개인과 사회가 새롭게 익혀야 할 사회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20년간 연평균 9%대의 경제성장률을 경험했던 아버지 세대는 여전히 그 시절의 기억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고성장 시기와 같은 목표와 기준을 가지고 연평균 3%의 경제성장률이 지속되는 사회를 살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환경이 바뀌었고 기준은 달라졌다. 이 책의 2부는 다섯 가지 핵심적 경제 이슈, ‘성장, 소득, 일자리, 기술, 노후’를 중심으로 이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사고를 일깨운다. 베이비붐 세대의 지상과제였던 ‘양적 성장’은 아들 세대에는 훨씬 덜 중요해진다. 당장 먹고살 것을 늘리는 것보다 관계와 안전, 삶의 질을 높이는 성장이 더욱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아들 세대의 일자리는 아버지 세대처럼 기술 발전과 함께 자동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이제 기술 발전과 일자리는 사회적 합의와 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연결해나가야 할 영역이 되었다. 일자리 자체에 관한 기준도 달라졌다. 삶을 상승시켜줄 일자리를 찾아 모험을 걸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청년들은 삶을 안전하게 만들어줄 일자리를 잡기위해 노량진으로 몰려든다. 저성장 시대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이렇게 달라진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를 위한 적정 일자리는 고민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아버지 세대가 가지고 있는 경제에 대한 이해를 뒤집으며, 아버지와 아들 세대가 함께 새로운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안내한다. 깨어진 약속을 넘어, 새로운 약속을 쓰기 위한 희망의 기획 - 먹고사니즘과 각자도생을 극복할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 아버지 세대의 ‘깨어진 약속’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약속을 쓰는 일’이다. 새로운 약속을 쓰려면,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를 구상하고 선택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 인간관계, 사회참여가 있어야 만족스러운 삶인지 함께 정의해야 하고, 그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지, 즉 경제는 얼마나 성장해야 하고 임금과 복지는 어느 수준으로 정해져야 하는지, 환경과 인권은 얼마나 지켜져야 하는지도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의 3부에서 우리가 옮겨가야 할 사회와 새롭게 마련해야 할 선택지에 관한 기획을 담대하게 펼쳐놓는다. 청년들이 리더가 되어 사회를 이끌고 노년층이 팔로어십을 발휘하며 이들을 뒷받침하는 리더십의 교체가 일어난다면 어떨까? 자산을 함께 쓰는 이들이 평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협력을 동력으로 삼는 ‘협동조합’의 원리가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면 어떨까? 1%의 자산가들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99%가 먼저 책임을 실천하고 나선다면, 세상은 더 크게 바뀌지 않을까?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를 모색하는 저자의 여정 속에서, 독자들은 오늘의 불안을 이기는 내일의 경제 패러다임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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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번영의 조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더 위대한 책이 되려면 다뤘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 로버트 실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 2014년 [액시엄 비즈니스 북 어워드] 경제학 부문 금메달 2014년 『초이스』 선정 [탁월한 학술서] 2014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선정 [올해의 책] 2013년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경제학 도서] 무엇이 국가를 번영하게 하는가 『대번영의 조건』은 200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의 최신작이다.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 책을 펠프스 만년의 역작으로, 대가의 통찰이 집약된 대담하고 위대한 책으로 평가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증언했다. 이 책에서 에드먼드 펠프스는 무엇이 국가의 부를 만드는지, 그리고 그 번영의 원천이 왜 오늘날 위협받고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펠프스는 혁신의 문화, 근대적 가치의 추구가 번영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번영이란 단순히 경제적 풍요를 뜻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다수의 개인들이 도전하고 모험하며, 일로부터 만족을 얻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좋은 삶]을 영유하는 것이 바로 번영이다. 19세기에 출현한 근대 경제는 이전의 상업 자본주의와는 달리 개인의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와 제도를 정비했고, 따라서 전에 없는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번영이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번영은 수십년에 걸쳐 약화되었다. 펠프스는 이것이 근대 경제의 기반이 되는 근대적 가치관이 공동체와 국가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전통적, 코포라티즘적 가치관의 부상으로 위협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절박한 과제는 근대적 가치관을, [자생적 혁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혁신과 그것을 장려하는 문화와 제도가 국가 번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중국의 리커창(李克强) 총리에게 영향을 미쳐 이른바 창커(創客, 혁신 창업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경제적 역동성을 잃고, 도약과 추락의 갈피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펠프스의 관점은 막대하고도 끝이 없는 영감을 준다. 번영의 기원, 근대 경제란 무엇인가 이 책은 먼저 번영의 기원을 이른바 [근대 경제]에서 찾는다. 펠프스는 자본주의 대신 근대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가 번영의 조건을 두루 갖춘 경제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근대 경제]는 미국과 영국 등의 [자본주의 경제]이다. 그러나 모든 자본주의 경제가 근대 경제는 아니며,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근대 경제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된다. 이 책에 따르면 상업 자본주의에서 진화한 근대 경제는 19세 초부터 놀라운 번영을 구가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시기의 경제적 번영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설명이 있었다. 과학 혁명과 산업 혁명에 따른 생산성 도약은 그간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펠프스는 실증 지표를 통해 이 같은 설명이 사실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공정과 이론의 개선에 따른 생산성의 개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번영의 핵심 요인일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펠프스는 번영의 원천이 평범한 개인들의 무수히 많은 작은 혁신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몇몇 탁월한 혁신이 아니라 비록 작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작은 혁신들이다. 대번영Mass Flourishing, 즉 대중 번영이란 오직 이 요건이 충족될 때만 가능하다. 이를테면 이 책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실제로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음을 강조하고, 기층 대중으로부터 일어난 거대한 혁신의 파고, 즉 [자생적 혁신]이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었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근대 경제는 어떻게 [자생적 혁신]을 만들어 냈을까. 상업 자본주의 시대의 혁신은 몇몇 귀족과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으며, 이는 국가를 부유하게 했지만 대중의 부에는 기여하지 않았다. 19세기 초는 근대의 출발이었다. 에릭 홉스봄이 [혁명의 시대]로 명명한 이 시기에 개인의 성장과 참여를 강조하는 [근대적 가치관]이 점차 보편성을 확보했다. 참정권이 확대되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회사법 등의 상업 및 금융 제도가 경제 참여의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전과 모험, 혁신을 강조하는 [문화]가 힘을 얻었다. 근대는 개인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세상에 나아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이 일에 탁월했던 몇몇 국가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혁신이 잇달았고, 마침내 번영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근대 경제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안겨 주었을까. 사회 사상과 문학, 예술은 이 시기의 삶과 경험을 대체로 어둡게 그렸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과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상기해 보라. 아동과 여성까지 노동자로 끌어들여 쉴 새 없이 가동되던, 블레이크가 묘사한 [악마의 방앗간]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이러한 인상에는 오류가 있다. 펠프스는 이것이 근대 경제로 인한 폐헤라기보다는 근대의 출현에 따른 사회적 혼란에 대한 하나의 인상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위고가 그린 것은 근대 경제가 작동하는 프랑스의 모습이 아니라 루이 필리프 왕정기의 반동적 사회상이었다. 펠프스에 따르면 비록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19세기의 지표들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근대 경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민중들의 생활 수준은 분명히 개선되었다. 평균 임금이 상승했고 실업률과 빈곤, 불평등이 감소했다. 글래드스턴과 로버트 기펜은 의회 자료를 바탕으로 [거대한 물질적 진보의 혜택이 거의 대부분 빈곤층에게 돌아갔다]고 평했지만, 마르크스는 애써 이 사실을 무시했다. 실제로 근대 경제가 사람들에게 선사한 경험은 놀랍고 흥분되는 것이었다. 펠프스가 특히 강조한 것은 [일의 경험]이다. 전통적 경제에서 먹고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일은 근대 경제에서 좀 더 개인적인 만족에 기여한다. 적극적인 참여, 지적 만족과 이따금씩 생기는 발견의 기쁨과 보상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전에는 없던 이런 경험이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켰고, 혁신 의지를 고양시켰다. 펠프스는 이러한 경험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 정신을 그린 다양한 문학과 예술 작품들을 거론한다. 이를 통해 근대 경제가 출현한 시기에 형성된 근대적 가치관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 준다. 대안인가 환상인가? 사회주의와 코포라티즘 근대 경제에는 마르크스가 가졌던 것과 같은 일종의 저항과 거부감도 존재했다. 근대 경제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경제에 참여해서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도전과 모험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것이므로, 누군가 막대한 보상을 얻는 동안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사람들은 소수 특권 계층의 오래된 부는 그 기원이 오랜 시간 속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새로운 부]가 싹트는 현상은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근대 경제는 때때로 극심한 불황을 겪었는데, 이에 따른 일자리와 임금 불안은 중대한 불만 중 하나였다. 이로부터 사회주의가 등장한다. 사회주의는 근대 경제에 대한 반발로서, 그리고 근대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로서 [일의 권리]라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옹호한다. 누구나 일을 할 권리가 있고, 동일한 일에 대해 동일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경제가 근대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윤 동기를 발견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며, 일을 게을리해도 일자리를 잃을 염려도 없다. 이런 경제가 역동성을 상실하고 정체된 것은 당연해 보였다. 사회주의는 또한 계획 경제를 옹호했다. 국가와 전문가 집단의 주도로 계획된 경제는 더 효율적이며 장기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회비용이라는 개념 자체를 설정할 수 없는 사회주의 경제는 애초에 계획의 근거를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사회주의 전망은 상당히 밝았다. 마르크스의 가정과는 달리, 사회주의는 선진국도 아니고, 근대화를 통해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 있지도 않았던 국가들에서 권력을 잡는 데 성공했다. 초기의 소비에트 러시아는 국외로부터 다양한 발전된 수단들을 신속히 도입하면서 급속한 발전을 기록했다. 누구도 차르의 복귀를 바라지 않았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계속해서 거부되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인정되었다. 결과적으로 일자리 보장의 측면에서도, 경제적 효율의 측면에서도 근대 경제는 언제나 사회주의를 압도했다. 펠프스에 따르면 근대 경제에 대한 좀 더 치명적인 반발은 코포라티즘이다. 근대 경제가 모험, 도전, 혁신 같은 근대적 가치를 옹호했다면, 코포라티즘은 안정, 조화, 질서, 연대 같은 전통적 가치를 옹호했다. 코포라티스들은 근대 경제가 무질서을 초래한다고 비판했으며, 따라서 경제에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 행위자들, 즉 정부와 자본, 노동자 사이의 합의를 바탕으로 경제가 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나 돈에 대한 욕망 같은 행태의 확산도 비판했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부추기는 사회 악이다. 그들에게 근대 경제는 또한 구질서와 사회적 계약의 파괴자였다. 농민에 대한 영주의 보호, 장인에 대한 길드의 보호, 산업에 대한 특허의 보호 등은 약자에 대한 보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득권에 대한 보호였다. 그러나 근대 경제는 이런 사회적 계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코포라티즘은 이를 무질서와 폭력으로 보았으며, 이른바 [사회적 보호]로 불리는 새로운 계약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는 보조금으로부터 복지 부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 [사회적 보호] 개념은 이권과 피혜의 보호에까지 범위를 넓히게 되며, 궁극적으로 [피혜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최대한 [개입하는] 국가를 출현시킨다. 코포라티즘은 제3의 길로 보였다. 유럽 대륙에서 시작된 코포라티즘은 좋은 성적을 보였다. 이들은 근대 경제에 필적하는 성장률로 번영을 누렸다. 이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유럽의 코포라티즘을 근대 경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 실상 너무나 훌륭한 대안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펠프스는 여러 지표를 통해 코포라티즘 경제의 자생적 혁신이 지극히 부족했음을 확인하고, 이들이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을 근대 경제로부터 혁신의 결과를 손쉽게 수입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근대 경제의 선도적인 국가들, 즉 미국과 영국 등이 혁신의 동력을 잃고 성장을 멈추자 유럽 경제 역시 곧바로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제3의 길이 오랫동안 설명이 필요없는, 혹은 설명되지 않는 모범으로 제시된 것을 생각하면, 이 같은 펠프스의 주장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증거들은 명백히 납득할 만하다. 근대 경제의 쇠락, 번영의 상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다시 근대 경제를 이야기한다. 펠프스는 세계 경제를 선도한 근대 경제들이 1960년대 이후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다. 펠프스는 근대 경제 내부의 역동성을 헤치는 구조적 문제들을 살펴본다. [기업 규모의 거대화]는 의사 결정 구조의 효율성을 저해함으로써 역동성을 훼손했다. [단기 성과주의]와 경영자 그룹에 대한 [과도한 보상]은 기업 경영의 장기적 전망을 어둡게 했다. 이는 뮤추얼 펀드와 은행의 투기 행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펠프스는 [돈의 문화]를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주식이나 투기를 통해 수십억씩 버는 사람들이 출현하면서 [돈에 대한 탐욕]은 이제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한다. 이러한 문화는 결코 혁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와 경제 사이의 유착]도 강조된다. 이제 국가는 시장 실패와 경제적 불공평을 교정하는 데 더 많이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대체로 더 큰 실패였다. 국가는 더 많은 규제로 불공평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이는 신규 진입과 투자에만 악영향을 미쳤다. 특이하지만, 펠프스는 [특허]와 [저작권] 분야도 문제로 꼽고 있다. 어지럽게 뒤엉킨 특허는 빈번하는 소송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명백히 혁신에 방해가 되고 있다. 이제 혁신가들은 자신의 혁신에 대한 보상이 언제라도 특허 등의 소송으로 탈취당할 수 있음을 걱정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과도한 [보호]도 문제로 꼽힌다. 무분별한 보조금은 물론이고, 과도한 복지 지출이 혁신에 쓰여야 할 자원을 탕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펠프스에 따르면 쇠락의 좀 더 궁극적인 원인은 외부적인 것이다. 그는 미국 경제(즉, 한때 가장 선도적이었던 근대 경제)가 역동성을 잃어버린 주된 원인을 코포라티즘에서 찾고 있다. 프론티어 정신으로 대변되던 미국의 경제적 역동성은 코포라티즘이 강조하는 가치들이 도입됨으로써 힘을 잃었다. 펠프스는 전술한 구조적인 문제들 역시 근본적으로 코포라티즘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도 주장한다. 피혜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최대한 [개입하는 국가], 네오코포라티즘적 관리형 국가에 가까워진 미국은 이제 규제로서 기득권을 보호하고, 과도한 보조금과 사회 복지로 혁신 의지를 저해한다. 펠프스에게 미국 경제는 결코 더 이상 근대 경제에 가깝지 않다. 번영의 철학, [좋은 삶]과 [정의] 펠프스는 근대 경제의 우월성을 주로 경제적 성과 측면에서 검토하지만, 또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서도 우월하다고 본다. 가치 판단을 위해 그가 내세운 기준은 두 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여러 사상가들이 논의해 온 [좋은 삶], 그리고 롤스가 『정의론』에서 피력한 [정의로운 경제]가 그것이다. 펠프스는 근대 경제가 실현한 번영하는 삶이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좋은 삶]이라고 주장한다. 코포라티즘적 가치, 즉 안정과 조화, 협력과 질서를 강조하는 전통적 가치관은 분명 개인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펠프스가 강조했듯이 코포라티즘은 [일의 경험]을 핵심 가치로 보지 않으며 따라서 자생적 혁신과 번영하는 경제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코포라티즘은 근대 경제가 강조한 개인의 자아실현과 부의 추구 같은 것을 근대의 대표적인 해악으로 규정해 억압하는데, 이는 명백히 혁신을 저해하고 번영을 어렵게 했다. 따라서 펠프스는 사람들이 각자의 최고선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근대 경제야말로 [좋은 삶]에 기여하는 진정으로 좋은 경제라고 결론짓는다. 펠프스는 근대 경제가 때로 불공정할 수 있으며 불평등과 박탈감을 조장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대 경제가 더 [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롤스는 『정의론』에서 공리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다수가 누리는 이익의 합이 소수에게 강요되는 희생을 압도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펠프스는 롤스의 관점이 현대적 경제 정의의 기본이 된다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기회와 분배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공평한 기회는 참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누군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금융 부문에서 자본을 조달하며 최대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태, 이런 것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참여의 자유는 곧 참여하지 않을 자유와 동일하다. 근대 경제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거부하는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경제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관점은 곧바로 분배 문제로 이어진다. 실상 정의로운 경제를 규정하는 데 핵심은 [분배] 문제에 있다. 사회적 소득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가. 펠프스는 다양한 논쟁들을 검토하는 한편으로 자신만의 원칙을 세운다. 그는 [좋은 삶], 즉 번영에 기여하는 분배가 곧 정의롭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자면 근대 경제가 번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해지는 분배는 정의롭다. 반면, 근대 경제의 번영을 저해한 코포라티즘적 분배는 불의로 규정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혁신의 대가로 주어진 이익에 중과세가 부과되는 것을 기본적으로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세가 혁신을 좀 더 권장할 수 있는 곳에 쓰인다면 정당할 수도 있으나, 기존의 혁신 의지를 저해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최저 임금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극단적인 양극화를 해소하는 분배는 더욱 많은 경제 참여자들이 [좋은 삶]의 조건을 갖추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정의로울 수 있다. 반면, 코포라티즘의 영향을 받은 [사회 부조]의 확대는 매서운 비판을 받는다. 펠프스는 경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지]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부를 분배하는 것이 어떤 관점에서도 정의롭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바다에서 서핑만 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자립해야 한다]는 롤스의 말처럼,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경제가 거둔 사회적 부에 아무 권리가 없다. 경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은 첫째, 혁신 활동에 쓰여야 할 역량을 좀먹고 둘째, 열악한 임금을 받는 경제 참여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분배의 몫을 탕진시키며 셋째, 따라서 혁신을 저해하는 것을 넘어서 경제 참여 인구를 이탈시키기까지 한다. 현재 미국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은 실업 상태로 사회 부조를 수령하는 것보다 좋지 않거나 기껏해야 별다를 바가 없다. 펠프스는 이것이 명백히 수많은 인구를 경제로부터 이탈시켜 역동성을 심대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복지가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니다. 그러나 펠프스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복지가 경제를 질식시키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펠프스에게 지금의 경제는 지극히 정의롭지 못하다. 모두에게 좋은 자본주의는 가능하다! 이 책은 근대 경제들의 번영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그것이 쇠락한 원인을 고찰한다. 펠프스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작금의 경제가 처한 위기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나아가 어떻게 다시 번영할 것인가? 이 책에 따르면 해답은 분명해 보인다. 혁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수가 지금의 경제가 처한 문제를 바로 인식해야 한다. 근대 경제, 즉 근대적 자본주의는 그것이 출현했을 때부터 줄곧 비판의 대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과도적 체제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자들과 코포라티스트들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그들의 체제가 자본주의보다 우월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여타의 체제들보다 언제나 우월했다. 경제적 성과 측면에서도, 개인의 성장을 장려하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측면에도 그러했다. [이 책은 또 하나의 자본주의 예찬론이 아니다.] 펠프스는 자본주의가 최선의 체제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페혜는 그도 인정하는 바다. 다만, 그는 자본주의를 대신할 경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한다. 사회주의나 코포라티즘은 자본주의를 뛰어넘겠다고 공언했으나, 실상은 자본주의의 번영에 기댈 수 있을 때만 번영할 수 있었다. 반면 자본주의는 펠프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 체체로부터 심히 오염되었고 마침내 번영의 동력을 상실했다. 결론적으로 펠프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는 번영을 가져온다. 문제를 직시하고 핵심 가치를 되살릴 수 있다면, 자본주의는 다시 번영할 것이다. 다시 말해, 모두에게 좋은 자본주의는 가능하다. 이를 위해 무엇이 좋은 삶이고 무엇이 정의로운 경제인지,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고민하는 일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표준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 비범한 책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 너무나도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추천사 & 리뷰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더 위대한 책이 되려면 다뤘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 로버트 실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펠프스는 거의 반세기 동안 경제학계를 선도해 온 학자이다. 이 책은 아마도 그가 내놓은 가장 통찰력 있고 대담하며 중요한 저작일 것이다. -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 대학 총장 [좋은 삶]의 개념을 철학과 경제사상 차원에서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에드먼드 펠프스는 [근대 경제]를 분석한 이 역작을 통해 그 일을 해냈다. -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 비범한 책은 경제 체제와 혁신, 창의성의 관계를 흥미롭고 신선한 시각에서 조망한다. - 이안 골딘, 옥스퍼드 대학 마틴 스쿨 학장 세계 경제가 직면한 도전의 좀더 넓은 맥락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광범위하고 영감 넘치는 책에서 펠프스는, 현재의 문제들의 근원에 [역동성 고갈]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목할 만한 책은 진실로 경제학의 핵심 문제, 즉 왜 어떤 경제는 번창하는데 다른 경제들은 그러지 못하는지를 고찰한다. - 디클런 조던, 런던 정경대 이 책은 호소력 있게 혁신의 문화를 논한다. …… 산업 시대의 경제적 약동과 베토벤, 베르디, 로댕 사이의 관련성을 밝히는 펠프스 덕분에 이 암울한 과학이 조금은 빛을 얻었다. - 에드워드 글레이저, 「월스트리트저널」 경제학자들과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대중 독자들 또한 호모이코노미쿠스에 대한 펠프스의 관점, 세련되고 때론 냉소적인 그 관점으로부터 얻게 될 막대한 지식을 즐기게 될 것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 탁월한 책에서, 펠프스는 개인의 진취성을 근대의 특성으로 규정한다. 그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이들의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 마틴 울프, 「파이낸셜 타임스」 펠프스가 다루는 주제는 너무도 방대해서, 나이와 전공, 정치 성향에 무관하게 누구든 이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 새뮤얼 브리턴, 「파이낸셜 타임스」 대기업의 신경을 긁고, 좌파를 화나게 만들 위대한 책이다. - 다이애나 헌터, 「파이낸셜 타임스」 펠프스는 표준적인 경제학에서 유물론자들의 한계를 초월하는 책을 썼다. 이 책에 케인스 또한 경의를 표할 것이다. - 폴 데로사, 『어메리칸 인터레스트』 대단히 매력적이다. 광범위하고 심오하다. - 펠릭스 마틴, 『뉴스테이츠먼』 이 강렬한 책에서 에드먼드 펠프스는 좌파 우파 논쟁의 대립 구도를 무너뜨린다. 그는 우리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복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 혁신과 성취의 폭을 제한하는 보수적인 태도와 뿌리 깊은 기득권의 방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필립 하워드, [커먼굿] 창립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