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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서양에 대한 전쟁
2장 서양의 도시 3장 영웅과 상인 4장 서구 정신 5장 신의 분노 6장 혁명의 씨앗 |
Ian Bur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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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바라보는 적대적인 편견, 옥시덴탈리즘
최근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FTA 협정에 대한 인식이나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는 서양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숨어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자국 중심 정책으로 인한 반발과 저항으로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9?11이나 자살 폭탄 테러와 같이 인류를 위협하는 극단적인 행각으로 표출되는 반서양주의는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위험스럽게 나타나는 서양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은 어디에서 생겨난 걸까?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아시아 문화 전문가인 이언 바루마와 그의 동료 철학 교수 아비샤이 마갤릿이 공동 집필한 『옥시덴탈리즘』이 여기에 답을 제공한다. 이 책은 서양에 대한 적대적 인식과 행동 양식을 분석한 최초의 문화 비평서다. 이 책은 서양과 전쟁도 서슴지 않는 반서양주의가 비단 오늘날만의 특이한 문제적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일관된 흐름에 의해 촉발되었음을 밝힌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서양에 의해 왜곡된 동양의 이미지, 즉 ‘오리엔탈리즘’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거꾸로 서양을 바라보는 적대적 편견, 즉 ‘옥시덴탈리즘’을 해부한다. 하지만 두 책 모두 서로 다른 문명 간의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연구의 성과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옥시덴탈리즘은 역설적이게도 ‘서양’에서 기원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역사적으로 유럽이 비서구권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에서 등장하였다. 동양인은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한 어린애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서양인에 비해 열등하다고 폄하함으로써 동양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한다. 이와는 반대로 옥시덴탈리즘은 서양을 비인간적인 사악한 세력으로 파악하는 사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반서양주의의 흐름은 서양을 모델로 한 근대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일본, 러시아, 독일 등과 같은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그 기원은 바로 서양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시아에서 근대화의 첨병 역할을 했던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통해 서양(미국)과의 한바탕 전쟁을 치룬다. 그 뒤 곧바로 일본에서는 각계 지식인을 중심으로 근대화, 즉 서구화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움직임이 일어난다. 서양 문명의 급격한 유입으로 산업화의 여러 폐해가 드러났고, 지적 소화 불량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본 지식인들은 정신적이고 깊이 있는 일본 문화에 반해 근대적인 서양 문명은 천박하고 근본도 없고 창조력을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19세기에 등장한 산업화와 자본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대적 악(惡)으로 규정하고 기계 문명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냄으로써 물질주의적인 ‘서양 정신’을 적대시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기계 문명에 대한 강한 반발로서 서양을 반대하는 옥시덴탈리즘은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다. 19세기 윌리엄 블레이크와 엘리엇 등과 같은 서구 지성들은 산업화와 도시를 증오하며, 정신적인 자유를 요구했다. 또 사회주의를 주창했던 프루동과 엥겔스, 마르크스는 개인을 소외시키고 물질주의적이며 영혼이 없다고 비판하며 서양을 이미 위협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요컨대 서양, 특히 서양의 근대에 대한 왜곡된 모습인 옥시덴탈리즘은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처럼 유럽에서 처음 발생하여 세계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사상으로 지리적인 경계를 갖는 개념이 아니다. 옥시덴탈리즘은 유럽의 반계몽주의, 동서양의 다양한 파시즘과 나치즘, 반자본주의와 반세계화, 종교적 극단주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양한 형태의 옥시덴탈리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요 특징 이 책은 옥시덴탈리즘이 드러난 유형을 분석하는 대신, 오히려 옥시덴탈리즘이 등장한 모든 시대와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을 해명함으로써 그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1) 퇴폐적이며 탐욕적인 도시에 대한 적대성 알카에다에 의해 자행된 세계무역센터의 폭파는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단순한 불만의 표출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뿌리 깊은 것이었다. 이는 제국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지배권의 상징의 몰락으로 비춰졌으며, 인간의 오만함과 탐욕의 도시인 바빌론의 멸망과 같은 신화적 의식이 담겨 있었다. 세속화, 개인주의, 권력과 돈의 매력과 연결된 타락한 인간의 도시에 대한 적대적인 편견으로서 옥시덴탈리즘은, 금욕주의를 중시하는 오늘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럽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1세기 뉴욕처럼 19세기 세계의 상업적 제국의 중심지였던 런던. 볼테르는 시민적 자유를 신장된 곳으로 런던을 치켜세우기도 했지만 엘리엇과 엥겔스와 같은 여러 유럽 지성들은 이기심과 탐욕이 가득하고, 물욕의 악마에 영혼을 팔아 버린 비인간적인 곳으로 비판해 마지않았다. 또 19세기 후반 파리는 매음의 소굴처럼 상업화된 인간관계의 상징으로 비춰졌고, 20세기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나치와 수많은 낭만적인 독일 민속 보호자들에 의해 악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2) 자기 희생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먼 부르주아지에 대한 적대성 1차 세계대전 후 사회 과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독일이 서구에 대항한 이 전쟁을 ‘상인과 영웅’의 문화 투쟁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상인의 나라인 영국과 프랑스는 상업적이고 안일한 부르주아 정신을 대변한 반면 영웅의 나라인 독일은 더 높은 이상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독일적인 사고가 영국이나 서구 유럽 전체의 사고와 감정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어법은 2차 대전 때 일본의 가미카제 조종사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죽음까지 불사한 이들은 이기적인 자본주의적 탐욕과 미국 문화의 천박함에 대한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유를 추구하는 서양 문명은 부르주아적이고 속물적이며 반유토피아적이라며 서양을 적대시하는 편견으로서 옥시덴탈리즘은 오늘날 특히 아랍 세계에서 기승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 후 한 인터뷰에서 ‘죽음은 진리이며 궁극적인 운명이다.’라며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조국 젊은이들의 영웅주의를 극찬한다. 또 이슬람교 시아파의 전투 조직인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 테러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지하드(성전)가 이슬람 국가를 방어하는 것으로 정당화되긴 하지만 죽음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이슬람의 전통은 아님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과학과 이성으로 대변되는 서구 정신에 대한 적대성 서양에 대한 공격은 무엇보다 서구 정신에 대한 공격이다. 옥시덴탈리스트에게 서구 정신은 분명 위대한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뛰어난 기술 공학을 발전시켰지만 영적인 것과 인간 고통에 대한 이해심이 결여된 것이다. 서구 정신에 대립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러시아 정신이었다. 19세기 토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러시아 슬로브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신비적인 정신을 내세우며 공허하고 냉정한 서구 정신을 폄훼했다. 이것은 자국의 전통과 함께, 18세기 표트르 대제에 의한 서구화 속에 유입된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반계몽주의의 일환인 낭만주의는 유기적인 합일을 강조하였는데, 러시아 옥시텐탈리스트들에게 유기적인 것은 선, 기계적인 것은 악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이성만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는 서양 정신의 오만함으로 비춰졌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서구 정신에 대한 적대적인 편견은 서구식 과학 만능주의가 팽배해져 나타난 ‘정신적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평하고 있다. 4) 순수한 신앙 세계의 구축을 위해 무신론자들에 대한 적대성 특정 국가나 민족을 지키기 위한 세속적인 옥시덴탈리즘과 달리, 종교적 신념을 내세운 옥시덴탈리즘은 보편적인 구원을 이야기한다. 전자는 서양 정신이 자민족의 심오한 정신에 비해 공허하다고 비판하지만, 후자는 서양 문명을 야만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종교적 옥시덴탈리즘은 급진적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서양에 대한 투쟁은 단순한 정치 투쟁이 아니라 마니교처럼 선과 악의 우주 전쟁으로 바라본다. 곧 세속적인 물질을 숭배하는 무신론자들과 신의 정신을 독실하게 믿는 순수주의자가 벌이는 투쟁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정치적ㆍ문화적 제국주의 및 물질주의적인 서양 정신을 반대하는 옥시덴탈리스트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상업과 산업이 일궈 낸 보편적인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이나 자유주의 시장에 대한 맹신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으며, 오늘날 서양을 대표하는 미국 정책도 종종 불상사를 범하고 그 사회 또한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시즘이나 나치즘의 역사가 증명하듯, 옥시덴탈리즘이 정치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여 진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이용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