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정신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기원 단군 이야기 우리 사상의 원형을 찾아서 최치원 오백 년 역사를 한 몸으로 지탱하다 정몽주 문명의 진정한 의미를 묻다 송시열 새로운 하늘을 열다 최제우 죽음을 마다않은 오롯한 선비정신 최익현 2부 진리 모든 매듭과 구별을 풀어버린 한마음 원효 내 마음이 곧 부처 지눌 진리는 스스로 찾는 것 서경덕 사람의 근본을 탐구하다 이황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다 이이 모든 이치는 내 마음 속에 있다 정제두 3부 변혁 분열에서 통합으로 왕건 새로운 나라를 설계하다 정도전 아름다운 정치를 위해 조광조 모두가 풍요로운 사회를 향하여 이지함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다 홍대용 인간의 자주권을 인정하다 정약용 |
|
학자로서 그리고 신라인으로서 당 드림이나 그 좌절 속에 머물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치원은 이런 수순을 밟는다.
최치원은 우선 사상에서의 보편성을 읽어낸다. 유교·불교·도교가 중국과 인도에서 발흥했고 신라는 그 뒤를 따른 것이지만, 사상의 핵심에 보편이 있다면 사상의 발원지나 종족이 서로 다름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역으로 중국과 인도에서 발흥한 유교·불교·도교가 신라에서도 진리성을 확보한다면 그 사상들의 보편성도 입증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사상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것은 신라인을 위해서나 각각의 사상을 위해서나 중요한 작업이다. 최치원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받는 것은 도(진리)다. 사람이 진리를 넓히는 것이고 진리는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다. 무릇 진리는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으며 나라의 다름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 나라 사람이 불교도 할 수 있고 유교도 할 수 있다. --- p.38~39 |
|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땅이 많아서 남는 곡식을 버릴 정도고, 누구는 척박한 땅도 없어서 모자라는 곡식을 걱정해야만 하는가.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제멋대로 삼켜서 커지고, 누구는 연약한 위치에서 자꾸 빼앗기다가 멸망해 갈 것인가.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상대를 업신여기고 악독하면서도 멀쩡하게 잘 지내고, 누구는 온순하고 부지런하고 착하면서도 복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가.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멍청하면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악을 전파하고 있고, 누구는 어질면서도 아랫자리에 눌려 있어 그 덕이 빛을 못 보는가.
강진에서 보낸 18년 세월 동안 백성들의 고단하고 절박한 생활을 목격하면서 정약용이 가졌던 의문들이다. 그는 문제점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토지를 개량하고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는 것, 군대를 조직하고 죄 있는 자를 성토하는 것, 붕당을 없애고 어진 이를 기용하며 무능력하고 부패한 이를 몰아내는 것 등을 말하면서 그것이 바로 ‘정(政)’이라고 했다. 정약용은 ‘차라리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양반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 다 양반이 된다면 나라에 양반이라는 것이 따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며 양반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 p.263~264 |
|
인물들과 함께 떠나는 한국철학 시간 여행
한민족이 겪어온 시간과 사건을 철학적인 입장에서 조망한 이 책은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각각의 철학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으로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들이 품었던 철학적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에, ‘지금 이곳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 한민족이 겪어온 서로 다른 시간의 특수한 상황을 탐험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다. 독자들은 이 탐험을 통해 오천 년 전으로 거슬러가기도 할 것이고, 타민족과의 갈등과 화해를 간접 경험하면서 ‘세계인’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도 있을 것이며, 진정한 자존감과 공정한 분배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탐구가 가능한 것은 ‘지금 이곳의 나’는 시간의 연속선에 있기 때문이며, 또 이런 탐구가 의미를 갖는 것은 인류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전쟁, 환경, 분배의 불균형 등의 문제가 시공을 떠난 과제이기 때문이다. 단군, 왕건이 철학자? ‘1부 정신’에 단군 이야기, ‘3부 변혁’에 왕건이 있는 것을 보면 의아해할 수도 있다. 신화 속 인물 단군이 철학자라고? 왕건은 정치가 아닌가? ‘3부 변혁’에 이지함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이 철학자라고? 이 책은 이렇게 의외의 인물도 한국철학사의 인물로 끌고 온다. 철학이란 관념 속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실제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웠던 신라 말 새로운 시대를 창조할 새로운 이념과 가치관이 요청되는 시기에 등장해 통합된 국가를 세운 왕건이나, 굶주리며 떠도는 유민이 많던 시기에 걸식하는 유민을 모아 수용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민들에게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고자 상업을 장려했던 이지함. 이 두 사람은 모두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삶과 밀접히 연결되어 변화를 모색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바로 지금 당면한 문제에 큰 물음을 품고, 그 물음에 답을 해나갔기 때문에 철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을 길잡이로 삼아 한국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기원을 살피는 단군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단군 이야기를 통해 한민족의 기원을 탐구할 뿐 아니라, 숫자 3이나 100일, 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행위 등 지금까지도 우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단군 시절의 유습을 더듬으며 단군과 지금을 잇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