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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궁 2. 문, 탑, 묘 3. 옛 터, 다리 4. 학교, 기관, 회관 5. 절, 교회, 성당 6. 서울의 거리 풍경 7. 서울의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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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전은 내전 중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곳에서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려 순종이 일본에게 강제적으로 전권을 넘기게 되었다. 1926년 53세의 순종이 승하하면서 조선왕조 반세기 역사에 종지부가 찍혔다. 대조전의 ‘ㄷ’자 건물 가운데에는 작은 정원을 만들어 소나무와 눈주목, 괴석 등을 배치하였다. --- p.16
세종로 사거리 북동쪽 모서리에 있는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의 정문 ‘만세문’. 정작 기념비전도 지나치는 사람이 많아 만세문의 존재는 더욱 미미하게 여겨지지만, 상당한 공이 들어간 걸작임이 한 눈에 드러날 만큼 섬세한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위태했던 나라를 이끄는 고종의 권위를 세우려 재위 40년을 기념하는 칭경기념비를 만들고 멋진 전각을 짓고 철창살이 달린 서양식 석재 문을 사람들 눈에 잘 띄게 한 것이다. 무지개 돌문 중앙에 음각된 ‘만세문’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 6세 때 쓴 한자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남산에 살던 한 일본인 부호가 떼어내 자택 대문으로 사용했던 것을 광복하며 되찾아 갖다 놓았다. 그 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기념비전과 함께 훼손된 상태를 복원했는데 원형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 안타깝다. --- p.26 동묘앞역의 동묘공원은 사뭇 이국적인 신당이다. 원래 이름은 동관왕묘로, 『삼국지』를 통해 유명한 중국 촉한의 장수 관우를 숭배하며 세운 곳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정 온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이 부상당했을 때 병상 한쪽에 차린 관왕(관우왕)의 신당이 그 시초라고 한다. 이에 명나라는 장병의 결속을 도모하고자 전문가까지 보내 군신으로 추앙받던 관우의 사당을 늘려 본격적으로 관왕묘를 짓기 시작, 1602년에 완공했다. 그 후 관왕묘에는 출정하는 무신부터 무과에 급제한 신임 장교까지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하니 오늘날의 한적함이 무상할 따름이다. --- p.36 배재고등학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학교다. 당시 열강의 집합지였던 덕수궁 근처에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했는데 이질적인 선교 활동보다 교육과 의료를 먼저 소개한 곳이다. 최초의 근대식 학교라는 특성답게 이승만, 서재필, 김소월, 윤치호, 주시경 등 많은 역사적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배재학당을 전신으로 한 배재고등학교는 원래 자리인 정동에서 사라졌다. 1970-80년대 서울 중심부 인구를 분산하는 정책에 따라 이전된 학교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84년 이후 강동구 고덕동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나마 한 건물을 정동에 두었기에 옛 흔적이 남아 다행이다. 더군다나 남은 건물이 박물관으로 바뀌었으니 역사적인 산책길에 더없이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 p.60 개신교 건축물은 서울 곳곳에서 수많은 첨탑의 십자가로 상징을 내세운다. 그런데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교회 건물도 있다. 한국 건축 1세대 김수근의 건축물 중 하나인 경동교회다. 경동교회라는 이름은 ‘서울의 동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첫 예배를 드려 역사가 긴 교회로, 당시 서울의 동쪽이던 장충동이 지금은 서울의 한복판이 된 사실은 세월의 변천을 느끼게 해준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양새다. 건물 외형 자체로 교회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 p.83 절두산(切頭山), 우리나라에서 역사에 관련되어 이토록 섬뜩하며 애달픈 지명이 또 있을까. 천주교 박해가 극에 달하던 1866년, 프랑스 함대를 몰아낸 병인양요(丙寅洋擾) 이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병인박해라는 천주교 신자 학살로 이어졌다. 많은 교인이 이곳에서 참수되었다. 하지만 천주교 확산이 꺾이기는커녕 순교로 믿음이 더욱 강해져 이곳을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 만들며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1967년 순교 100주년을 기려 건립한 절두산성당과 순교박물관에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했다. --- p.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