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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ㅣ '동북아 문화공동체'와 '동방 르네상스'를 위하여
자료 차례 제1부 동북공정은 깃털에 불과하고 몸통은 따로 있다 제1장 동북공정은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제2장 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다 제3장 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제4장 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양한 역사관련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제5장 중국의 역사관련 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제2부 세계를 놀라게 한 홍산문화와 요하문명 제6장 홍산문화 이전의 요하 지역 주요 신석기문화 제7장 세계를 놀라게 한 홍산문화 제8장 중화문명의 시원지로서의 요하문명ㆍ홍산문화 알리기 제3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전개와 응용 제9장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전개와 새로운 '중화민족' 개념의 탄생 제10장 중화문명의 기원지에 대한 입장의 변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적용 (1) 제11장 요하문명론: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적용 (2) 제4부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인가? 제12장 홍산문화, 요하문명과 한반도의 연계성 제13장 '흐름'과 '교류'의 역사로 우리의 상고사를 보자 제14장 흐름과 교류의 산물 '삼족오' 제15장 요하문명ㆍ동북아문명을 동북아시아 공동의 문명권으로 가꾸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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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슈, 도대체 요하 유역에서 무엇이 나오길래?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4월 10일 방한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조속한 시일 안에 FTA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한국과는 아무런 영토문제가 없으며, 동북공정은 역사문제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중국학자들을 이른바 ‘요하문명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CCTV에서는 이에 대한 특집을 이미 방영한 바 있다. 요녕성박물관에서는 ‘요하문명전’이라는 특별전시회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중국학자들이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요하 유역에서 놀랄 만한 신석기 시대 유물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만한 것인지, 대표적인 유물 몇 가지를 직접 감정해 보도록 하자. "나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옥귀걸이올시다. 물론 현재까지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적봉시 흥륭와촌에서 발굴되었는데, 학자들은 내 나이를 약 8천 년 정도로 보고 있답니다. 8천 년 전에 나같이 멋진 귀걸이를 만들었다니, 옛날 사람들도 대단하지요. 더구나 나를 만든 옥은 흥륭와촌에서 동쪽으로 450km나 떨어져 있는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수암에서 나왔다니, 그때 이미 요서 지역과 요동 지역이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한반도에서도 나와 비슷한 옥귀걸이가 나온다는 겁니다. 책의 117쪽을 보시면, 과연 비슷한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용이올시다. 용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잘 보시면 돌로 쌓았지만 나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돌로 용의 형상을 쌓았다 하여 사해문화의 석소룡石塑龍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학자들은 내 나이를 7600살 정도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지금껏 스스로를 용의 후예라 한다 하니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셈이지요. 어디 중국뿐입니까? 조선 시대 왕이 입는 곤룡포에도 제 모습이 들어가 있는 것은 잘 아시죠. 일본 천왕도 즉위식 때 내 모습이 들어간 옷을 입었다니, 동북아의 공통 패션이라고 할까요. 참 그러고 보니 서양에도 용이 있네요. 참 신기하죠. 아마 그래서 학자들은 요하 일대가 용문화의 기원지라며 흥분하는가 봅니다." "저는 도기에 새겨진 글자라 하여 도부문자陶符文字라고 부릅니다. 어떤 학자들은 제가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의 어머니라고 하며, 해독을 하기도 합니다. 책의 153쪽을 보시면 나를 해독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맞느냐 틀리냐는 독자 여러분의 몫이겠지요. 어떻든 점을 치던 복골이 요하 일대에서 처음 발견되고, 저 또한 이 근방에서 나오자 한자의 기원을 찾는 학자들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사실 중국 문화가 5천 년을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한자 아니겠어요?" "저는 이미 표지에서 보셨죠. 우하량 동산취 유적지에서 발굴된 여신이랍니다. 어떻게 여신인지 아냐고요? 제가 발견된 곳에서 제사를 지내던 신전터와 제단이 같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학자들이 저를 여신이라고 알아본 것이지요. 그런데 복원된 제 모습을 보시면 하늘나라의 여신이라기보다는 어디서 많이 만난 듯한 얼굴과 몸맵시가 아니던가요? 저의 얼굴과 체형을 보고 요하문명을 일군 종족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학자들이 많답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좀 더 기다려야 되겠지요. 어떤 학자들은 대형 제단과 여신묘와 적석총이 발굴되는 것을 보고, 이미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구비한 사회였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그때가 언제냐구요? 지금부터 5500년 전쯤이랍니다." 두 번째 이슈, 요하문명론과 황하문명론 그리고 동북공정 요하 유역에서 출토된 유물 몇 가지를 소개했다. 유물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해석은 아직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고고학적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역사 해석은 중국 문명을 황하를 중심으로 한족漢族이 주인공이 되어 건설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하문명론을 뒤집는 유물들이 요하 유역에서 계속 출토되고 있다. 첫째, 요하 유역의 유물들이 시기적으로 앞선다. 기존의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나 장강 하류의 하모도 문화보다 무려 2000년 이상 앞선다. 흥륭와문화에서 발견된 옥귀걸이를 예로 들어보자. 거의 똑같은 모양의 옥귀걸이가 장강 하류에서도 발견된다. 그 연대는 흥륭와문화보다 1~2천년 뒤이다. 주강 유역에서는 3천 5백 년 뒤에, 월남에서는 4천년 뒤에 발견된다. 요하문명이 여타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가능한 대목이다. 둘째, 중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용의 후예'라 하며, 그 태초의 원형을 찾아 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했다. 삼성타라촌의 옥저룡이나 하남성 복양시의 용형상물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가장 이른 시기의 용 형상물이 요하 유역에서 발굴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초의 봉황, 최초의 각종 옥기들(옥저룡, 옥웅룡)도 요하에서 나온다. 또 한자의 기원일지도 모르는 도부문자도 나온다. 갑골문과 바로 연결되는 복골도 나온다. 셋째, 황하문명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빛깔의 유물도 나온다. 우선 여신상이 그것이다. 기존의 중국 문명론은 철저히 가부장적이다. 여신상의 존재를 기존의 황하문명론은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단군신화가 설명하기 훨씬 자연스럽다. 빗살무늬토기도 나온다. 적석총도 나온다. 이것들은 만리장성 이남으로는 전해지지 않은 다른 문화다. 넷째, 전통적으로 동이와 북적의 땅이 아니던가? 요하 일대는 기존의 관념으로는 오랑캐의 땅이었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지만, 전통적으로 야만인이 거주하는 미개인의 땅이라고 얼마나 많은 중국의 전적들이 기록하고 있는가? 이런 땅에서 황하문명을 능가하는 유물들이 나온다면, 대중화주의로 무장된 현재의 중국 지도부와 지식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식은땀이 나는 일이리라.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요하문명론'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저자 우실하의 판단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에는 이런 역사관련 공정의 결과들이 쌓이면서 '요하문명론'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요하문명론은, (1) 요하 일대를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잡고, (2) 이 지역은 신화와 전설의 시대부터 황제黃帝의 영역이었으며, (3) 요서 지역 신석기문화의 '꽃'인 홍산문화 주도 세력들은 이 황제의 후예들이고, (4) 이런 까닭에 요하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과 역사는 중화민족의 일부이고 중국사라는 논리를 토대로, (5) 요하 일대의 '홍산문화만기(기원전 3500~기원전 3000년)'부터는 이미 '초기 국가단계'에 진입한 거대한 '요하문명'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주요 논지들입니다. 요하 일대의 '요하문명'에서 기존의 '황하문명'보다 빠르고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만든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발견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요하문명론이 정리되면, (1) 이 지역에서 발원한 예·맥족 등이 모두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의 일부가 되고, (2) 이 지역에서 기원한 예·맥족은 물론 단군, 주몽 등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은 황제의 후손이 되며, (3) 한국의 역사·문화 전체가 중국의 방계 역사·문화로 전락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에 집착하는 사이에 중국은 더 큰 바둑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슈, 문명전쟁으로 갈 것인가, 문명공동체로 갈 것인가? 상고사가 상고사로 머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중국, 일본은 언제까지 역사 전쟁을 벌이면서 살아야 하는가? 최근 고대사와 현실 정치를 연관시키는 뇌관을 당긴 것은 중국이다. 동북공정이 그것이고, 요하문명론이 되면 그 극치에 달한다. 그러면 중국이 고대의 역사와 현실의 국제정치를 분간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 때문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약소민족의 자유와 자치를 약속한 중국 공산당의 강령은 한순간에 폐기되었다. 티베트, 몽골, 신장위구르, 동북 3성 등 소수민족이 다수를 점하는 변강 지역에서 어떠한 분리주의도 허용치 않겠다는 것이 지도부의 강철 같은 의지다. 그래서 나온 것이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이다. 지금 현재 중국 영토 위에 있는 모든 민족과 역사는 통일적 다민족인 중화민족의 소유라는 주장이다.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이론이다. 고구려는 고구려인의 역사였고, 발해 역시 발해인의 역사일 뿐이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이론은 궤변일 뿐이다. 그러면 우리의 입장은 어떠해야 할까? 요하문명은 우리 민족의 것이라고 역으로 주장해야 할까?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동북아시아 고대사는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이동하는 '흐름과 교류의 역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대사나 상고사를 현재의 국경을 기준으로 기술하는 것은 우리가 피해야 할 '닫힌 민족주의'의 전형입니다. 끊임없는 흐름과 교류 그리고 이동을 전제로 한 '흐름과 교류의 역사관'을 통해서 볼 때 동북아 고대사와 상고사는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최근 유럽은 인종, 종교, 문화가 서로 다르고 수천 년 동안 전쟁을 겪은 27개국을 하나로 묶는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북미, 남미, 동남아 등 세계 곳곳이 나름대로 21세기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과 비극적인 근대사의 경험을 통해서 서로 반목의 골이 깊은 한·중·일 삼국 사이에는, 과연 21세기를 향한 상생의 정치, 경제, 문화 공동체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저는 요하문명 혹은 동북아문명을 동북아 공동의 시원 문명으로 가꾸어 갈 때 21세기를 향한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초석을 놓을 수 있으며, 이런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바탕으로 '동북아 정치·경제 공동체'도 실현 가능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한 발 다가 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