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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벽장 아홉 번째 날 대림절 공포 귀 열여섯 번째 날 아침 열여섯 번째 날 저녁 스물한 번째 날 서른 번째 날 반란 특별한 날 마흔다섯 번째 날 예순 번째 날 주와 달들 기다림 I 빵과 물 기다림 II 여동생 노엘, 노엘 일곱 번째 달 할머니 삶도 죽음도 아닌 방문 열린 벽장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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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아무것도 없는 벽장 속에 혼자다. 단지 피처럼 붉은 공포뿐. 마치 세상의 끝 같은, 소리와 빛과 엄마의 입맞춤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공포뿐. 어둠 속에서 외로움에 떨며, 곰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장은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벽장문이 반쯤 열렸다. 빛이 동굴의 어둠을 삼키는, 아주 짧은 행복의 시간. 엄마의 손과 곰돌이와 벽장 속의 장이 함께하는 무대의 한 장면 같은.
엄마. 아이는 엄마를 향해 미소 짓는다. 손만 내미는 엄마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소를. 그리고 애정 없는, 무심하고 소홀하기 짝 없는 한 손이 아이에게 뭔가 먹을 것을 내민다. "엄마아아!" 안간힘을 쓰면서, 주먹으로 발로 온몸으로 장은 닫힌 벽장문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다 아이는 문에 돋은 나무 가시들에 생채기가 나고, 삐죽 튀어나온 못들에 여린 살을 찢긴다. 공포가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아이와 공포 둘뿐이다. 아파트엔 장과 공포 외에는 아무도 없다. 더 이상, 아이는 끝이 오리라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이 캄캄한 벽장 속에서 아이는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내장이라곤 하나도 없는 어느 배 속의 태아처럼. "아니야, 엄마! 아니야!" 아이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아이가 아니었다. 어떤 반란이, 아이로부터 나온 반란이 소리 지르고, 울부짖게 한 것뿐이다. 엄마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네 벽장'이라고 한다. 마치 '네 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더 이상 암흑의 공포가 아닌, 도저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그러나 그 어떤 유령보다 끔찍한 모습을 한 낯선 공포. 어른들의 세계에나 있을 법한 관념적인 공포. 그것은 바로 엄마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미쳐버릴 것만 같은 공포다. 아이는 더 이상 생각이 없다. 있다면 단지 육체, 끔찍한 슬픔에 휘둘려 미칠 것같이 흥분한 육체뿐이다. 아이는 너무나 미약하지만 온 힘을 다해 벽장문을 두드린다. 손톱이 부서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피가 흘러내릴 때까지.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내보내달라고. 제발 이 감옥에서 꺼내달라고. 아이는 자신을 현혹하고 눈멀게 하는 그 빛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다. 주변도, 자기 자신조차도, 온통 캄캄한 암흑 속에 잠기도록. 아이는 다시 벽장 모양의 배 속 태아로 돌아간다. 다시 태어날지 알 수 없는 태아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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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5살 난 남자 아이다. 아빠가 "여행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자, 엄마는 새 아빠를 맞아들인다. 새 아빠는 다른 남자의 자식인 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미워하고 학대한다. 그러다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장을 벽장 속에 가두어버린다. 엄마가 빵과 물을 벽장 속에 넣어준다. 대소변도 벽장 속에서 해결하게 한다. 울거나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끔찍한 공포와 외로움 속에서도 장은 언젠간 나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 있다. 이따금 새 아빠가 벽장문 열쇠를 잊어버리고 안 가져가면, 엄마가 문을 열어주거나 씻겨준다. 엄마는 장이 가엾지만, 새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떠날까봐 두려워 장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복 여동생이 태어난 뒤, 상황은 극으로 치닫는다. 언젠가는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품었던 온갖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나아가 더 이상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더 없이 참담하고 공포스런 현실이 아이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렇게 세상에서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되어버린 아이는, 생각도 감정도 희망도 힘도 잃어버린 채, 서서히 죽음의 나락으로 내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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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게 살아내는 영원과도 같은 절망의 시간들
『벽장 속의 아이』는 절망과 고통으로 점철된 이 모든 상황을 천진난만한 5살짜리 아이 장의 시선으로,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래서 피해자인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심정으로 이 비극적인 사건을 이해하고 느기고 증언하게 만든다.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심리극을 보듯이 아동 학대의 피해자인 아이의 내면을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해나간다.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대변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친밀하고 무조건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가족, 그것도 부모로부터 가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폭압적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가 겪어야만 하는 정신적 외상의 과정이 얼마나 무력하고 처절한지를, 독자들은 아이의 독백처럼 흘러가는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새삼 환기하게 된다. 이야기는 두 가지 축으로 얽혀서 흘러간다.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장을 둘러싼 일상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일상 속에서 변해가는 장의 내면 심리다. 엄마와 새 아빠는 장을 벽장 속에 가두고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무심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점점 더 가혹해지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처음에는 새 남편의 강권에 못 이겨 아이를 가둔 것에 마음 아파하던 엄마마저 날이 갈수록 아이를 벽장 속으로 밀어 넣고 잊어버리려 한다. 가끔씩 새 남편 몰래 씻겨주고 옷을 갈아입혀주던 일도, 배설물로 넘쳐나는 벽장 속의 요강을 치워주는 일도 잊어가고, 새 아이를 가진 뒤로는 심지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벽장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모든 과정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마치 익숙해져가는 생활의 습관처럼. 그리고 이런 일상의 이면에서 아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나름으로 받아들이며 생각하고 느낀다. 감히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절망과 공포, 헛된 희망과 행복 사이를 오가며. 학대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는 벽장 속에 갇혀,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고만 생각한다. 그리고 벽장 속이 캄캄해서 무섭다고만 느낀다. 아이는 서서히 꿈을 꾸기 시작한다. 이 벽장은 엄마의 배 속이라고. 엄마가 자신을 품고 있었던 그 배 속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 배에서 나왔던 것처럼 이 벽장에서 나가게 될 것이라고. 그 꿈은 벽장 밖에서 들려오는 엄마와 새 아빠의 대화와 웃음소리, 놀러 온 친구의 목소리, 할머니가 건 전화벨 소리, 새로 태어난 여동생이 내는 소리 등에 따라 희망에서 공포로, 두려움으로, 위축으로, 우울로, 분노로, 행복으로, 다시 희망으로, 그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리며 바뀌어간다. 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배(희망과 행복의 공간)'와 '벽장(절망과 고통의 공간)'의 넘나듦 속에서 아이는 어른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온갖 감정적 상처와 신체적 학대를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겪으며 스러져가는 목숨을 연명한다. 이 소설은, 우리 스스로 5살 난 어린 주인공이 되게 하고, 그 아이의 몸과 마음으로 이 끔찍한 상황을 추체험하게 만든다. 그 고통스런 절망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게 만든다. 그리하여 크나큰 충격을 던지며 우리의 가슴을 일깨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지 절대 잊지 말도록.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한 가정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벽장 속에 갇혀버린 아이. 그리고 마치 벽장 속에 넣어둔 쓰지 않는 물건처럼 함부로 다뤄지고 결국에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아이. 그러나 일상이 되어버린 학대 속에서도,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갓 난 여동생을 보고 싶어하고, 용서받고 벽장 밖으로 나갈 날만을 하염없이 소망하는 아이의 맑고 순수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이 책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아동 학대를 태연하게 일상화한 부모의 모습을 비판하면서, 거기에 되비치는 우리 사회의 이면들을 보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학대당하고 있는 모든 아이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볼 것을. "여기엔 단 한 가지 목적밖엔 없다. 이 사회에 소리치기 위해 우리의 잠든 가슴을 깨우는 것,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