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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진실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
마티 200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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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나쁜 의학 vs. 더 나은 의학

제1부 히포크라테스 전통
1 의학이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되었는가
2 고대의 해부학
3 의학 정전
4 감각
결론거짓 진보

제2부 지연된 혁명
5 베살리우스와 해부
6 하비와 생체 실험
7 보이지 않는 세계
결론 의사를 믿지 마라

제3부 근대 의학
8 수량화
9 임상의학의 탄생
10 실험실
11 존 스노와 콜레라
12 산욕열
13 조지프 리스터와 방부 외과수술
14 알렉산더 플레밍과 페니실린
결론 지연된 진보

제4부 전염 이후
15 돌과 브래드포드 힐 그리고 폐암
16 죽음을 늦추기
결론 무엇보다, 해를 입히지 마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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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데이비드 우튼
영국 요크 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치사상사의 권위자로 근대 초기의 지성사에 관한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런던 리뷰 북스』와 『타임스 문예 부록』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역자 : 윤미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혁명을 팝니다』, 『자클린느 뒤 프레, 예술보다 긴 삶』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16g | 153*224*30mm
ISBN13
9788992053105

출판사 리뷰

*피를 뽑아라! - 2500년간 이어져온 고대 의학의 흔적
얼마 전 피를 뽑아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심천사혈’의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됐다. 이따금 보도되곤 하는 무면허 의료(의료 행위라고 부를 수 있다면)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의학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무척 흥미로운 사건이다. 현대 의학에 대한 대체의학임을 내세우는 심천사혈요법의 핵심은 현대의학이 발전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된 의술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500년경부터 19세기 말까지 서양의 의사들이 자신들이 의사임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자,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가 바로 사혈이었던 것이다. 근대 의학은 사혈요법의 무용성, 아니 해악을 인정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보할 수 있었다.

이런 과거지사가 계몽이 극에 달해 냉소가 미덕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병을 앓는 환자의 절박한 심정과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의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리고 이에 기대어 지탱되어온 의사들의 권위가 가장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혹시 이런 사건들이 생소하고 낯선 것이 아니라 히포크라테스이래로 지배적인 모습이었다면, 의사들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거의 기여한 것이 없다면, 의학사는 어떻게 씌어져야 할까?

*새로운 시각의 의학사
『의학의 진실』은 위 물음에 대한 답이다. 저자는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이론이 정립된 1865년 전까지 의학은 없었다고 단적으로 말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의학으로 정의한다면 말이다. 이 책은 히포크라테스의 숭고한 선서에서 시작한 의술이 질병 정복과 인간 생명 연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지금까지 쉼 없이 걸어온 눈부신 진보의 역사라는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나아가 19세기 말까지 의사들은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 다행인 존재였다는 도발적인 주장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저자가 의학의 발전과 진보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보의 역사 이면에 감추어진, 해악을 끼친 의학의 역사를 함께 파악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공평하고 온당한 처사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의학을 학문으로서 비판적으로 성찰할 때에만 진정한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학문의 진보처럼 말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의 아버지인가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에서부터,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이븐 시나 등으로 이어지는 의학 명인 열전(93쪽 그림 참조)을 거부하는 이 책은 히포크라테스의 신화를 깨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병의 원인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안에 있으며, 병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히포크라테스는 의사들의 기본적인 태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학의 시조로 숭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피를 뽑고 토하고 설사를 하게 하는 방법을 거의 모든 질병 치료법으로 자리 잡게 했으며, 네 가지 체액들의 균형으로 건강을 설명하는 체액설을 확립함으로써 의학이 해악을 끼치는 데 아버지다운 절대적인 권위를 발휘했다. 적이 2300년 동안!

히포크라테스 전통의 의사들은 질병을 치료하지 않았다. 그들의 견해에서는 질병 그 자체가 체액의 근본적인 불균형을 나타내는 징후였기 때문에 치료해야 할 대상은 ‘질병’이 아니라 ‘환자’였다(64쪽 참조). 그들은 병의 원인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은 뒤 피를 뽑는 데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치료의 효과는 오직 의사와 환자들의 믿음에 기인한 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였을 뿐이다(90쪽 참조).

*치질은 권장 사항
히포크라테스 의학과 갈레노스 의학은 로마와 아랍 세계를 경유해 중세 내내 그리고 과학 혁명 이후에도 지배적인 의학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사실을 생각지 못했으며, 아니 세균이란 존재 자체를 몰랐으며,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의 의학적 적용인 4체액설이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패러다임이었던 중세의 의사들을 비난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거의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던 시절은 그리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사혈이 치료가 아닌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확신한 이들은 무지몽매한 고대인이 아니라 19세기의 의사들이었다.

이들은 과도한 체액을 자연적으로 방출하지 못할 경우 정기적으로 피를 뽑으라고 권유했다. 여성의 생리는 피를 자연스레 방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생리를 하지 않는 남성들에겐 코피나 치핵 등이 환영받았다. 그들은 항문에서 나는 피를 건강의 징표로 여기고 반겼다(53쪽 참조). 뿐만 아니라 전염이 되어서가 아니라 언젠가 전염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꺼이 편도선을 도려내는 편도적출 수술은 20세기 중반까지 전 유럽에 유행처럼 번져갔다. 이런 예들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이 독자를 당혹케 한다(13, 14쪽 참조).

저자는 반문한다. 과학, 생물학, 천문학 등등 도대체 그 어떤 과학 이론이 2300년 전의 방법론을 고수하며 실효성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인단 말인가.

*망원경과 현미경
서구인들에게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폭발적으로 넓혀준 과학혁명 이후의 의학의 역사 역시 눈부신 성취의 연대기라기보다는 지연과 망각의 역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예를 저자는 치밀한 문헌적 자료를 통해 꼼꼼하고 철저하게 밝혀낸다. 망원경과 현미경은 비슷한 시기인 17세기 중반에 나란히 발명되었다. 망원경은 천체 관측에 곧바로 사용되어 엄청난 발견들을 낳았지만, 현미경은 이내 망각의 늪에 빠졌다. 현미경의 성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전통의학에 충실한 의사들이 현미경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 배경에는 레벤후크가 정통 의과대 출신도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지식인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큰 몫을 차지한다. 레벤후크는 돈이 되지 못하는 현미경을 아이들 장난감용으로 무려 500개나 만들었고 그나마 고급스럽게 보이기 위해 은도금을 하는 데 몰두했다. 의학계에서 현미경을 도외시하자 아무도 현미경 개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로써 질병의 원인 ‘세균’이 사람들의 인식에 포착되기까지는 150년을 기다려야만 했다(7장 참조). 방부 외과수술법, 심지어 의학의 개가로 손꼽히는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마저도 무관심과 외면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이때에도 진보를 가로막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의사들이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던 역사
주류 의학사에서 근대 의학의 혁명적인 진보는 자연발생설이 허구라는 것을 밝힌 파스퇴르에서 시작된다. 파스퇴르의 1881년 탄저병 백신 발명과 1885년 광견병 백신을 발명(파스퇴르연구소 설립) 등은 질병 정복의 표상으로 손꼽혀왔다. 하지만 탄저병은 인간의 질병이 아니라 소와 양의 질병이었고 광견병은 지극히 드문 질병일 뿐이었다. 오히려 의학의 진정한 혁신은 1865년 글래스고의 외과 교수였던 서른일곱의 조지프 리스터가 스스로 ‘부패의 세균설’이라고 부른 원칙을 적용해 다리의 복합골절을 치료하려 한 순간 시작되었다(300쪽 참조).

리스터의 혁신적인 방법은 믿기 어려울 만큼 간단했고 자신이 발견한 것에 붙인 설명 대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새로운 의료 관행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의 독창성을 축소시켜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류 의학사에서 리스터는 세균설 이전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파스퇴르의 영국 사도 역할에 그치고 만다. 저자는 의학의 진보를 가져온 이에게 쏟아지는 검증되지 않은 찬사를 거두어 잊혀진 인물을 재조명한다.

*‘점진적인 진보’의 역사 vs. ‘지연된 진보’의 역사
저자가 『의학의 진실』에서 되풀이해서 언급하는 점이자 이 책의 서술을 관통하고 있는 입장은 전통적인 의학에 새로운 발견들이 더해져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 사이의 연속성을 설정할 수 없으며, 의학의 역사는 수많은 단절과 지연으로 형성되어왔다는 것이다. 질병을 묘사하는 많은 단어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매양 같을지 모르지만 근대 의학이 고대 의학에서 발전한 형태가 아닌 것은 현대의 천문학이 중세 점성술에서 발전한 형태가 아닌 것과 같다(91쪽 참조).

이 대목에서 저자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기대고 있다. 의학의 역사야말로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으로만 설명 가능하고 온전하게 기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미경이 생리학에 이용되기까지 150년이나 걸린 점, 괴혈병의 원인에 관한 통계조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실, 폭발적인 의학 발전을 기대할 수 있었던 세균 감염설에 대한 거부반응 등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는 도무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의사들의 보수적인 집단 자의식, 전통과 권위에 대한 한없는 맹신을 빼놓고는 의학사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주장했듯 실용적이거나(레벤후크의 현미경은 제대로 작동되었다) 혹은 이론적인(부패의 세균설을 체계화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측면이 아니라 심리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이었다. …의학은 제도와 사회적 관행에 깊숙이 침투했고 심리적인 많은 것을 기댄 활동이다. …내가 이해하는 한 의학의 역사는 ‘포스트쿤주의’여야 한다.” (378-79쪽)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과학의 점진적인 발전을 믿어온 이에게 충격과 분노를 가져다주었다면 『의학의 진실』은 의학의 전통과 가치를 믿어온 이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가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보수적인(지난 의약분업 사태에서 보듯) 이익단체임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은 놀라기보다는 저자의 논지에 쉽게 동의해줄지도 모른다. 의학의 진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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