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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서문 ㅣ 사랑하는 아들 한제와 빌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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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면 나는 애초부터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한 5년 간 도서관의 케케묵은 자료 더미 속에서 지낼 수 있을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모든 시기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묵직한 책을 써낼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출판사는 리듬을 가진 역사책을 내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걷기보다는 뜀박질하는 이야기책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거의 책을 끝내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장은 획 달려가고 어떤 장은 오래 전에 잊혀진 시대의 메마른 사막을 터벅터벅 걷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어떤 부분은 전혀 진보를 이루지 못했고, 다른 부분은 행동과 낭만의 왁자지껄한 소란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지금까지 쓴 원고를 전부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출판사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차선책으로, 나는 원고를 여러 소중한 친구들에게 보내 읽어보게 함으로써 유익한 충고를 듣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나를 낙담시켰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만의 편견과 취미와 기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왜, 어디서, 어떻게 감히 자기들이 좋아하는 나라를, 정치가를, 심지어는 동물을 뺐는지 알고 싶어했다. 어떤 이는 나폴레옹과 칭기즈 칸이 최고의 명예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에게 나폴레옹을 최대한 공정하게 다루려고 노력했음을 설명한 다음, 내 판단으로는 나폴레옹이 조지 워싱턴, 구스타프 바사, 아우구스투스, 함무라비, 링컨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뒤떨어진다고 말해주었다. 이 밖에도 그들이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나는 단 몇 줄로 처리했거나, 혹은 완전히 빼버렸다. 칭기즈 칸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그가 살인자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할 뿐, 그에게 더 많은 명성을 부여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중략) 원칙은 단 하나뿐이다. “해당 국가나 인물은 전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새로운 사상을 창출하거나 독창적인 행동을 하였는가?” 이것은 개인적으로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냉정한, 거의 수학적인 판단의 문제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몽골인보다 더 재미있는 역할을 한 민족은 없으며, 업적이나 지적 진보의 측면에서 볼 때 나머지 인류에게 그만큼 무가치했던 민족도 없었다. 아시리아 사람인 티글라트 필레세르의 인생 역정은 극적인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우리와 관련시켜 볼 때 그의 존재는 별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공화국의 역사가 흥미를 끄는 것은 '데 로이테르'호의 선원들이 템스 강에 낚시하러 갔기 때문이 아니라, 북해의 연안을 따라 늘어선 이 작은 진흙 제방의 나라가 온갖 인기 없는 주제에 관해 온갖 기묘한 사상을 가진 온갖 이상한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피난처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중략)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내가 결코 완벽한 안내자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 책을 거의 다 서가고 있는 마당에 다시 한 번 그 말을 되풀이해야겠다. 나는 다윈과 그 밖에 19세기 개척자들의 발견을 추종하는 고풍스러운 자유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다. 어릴 때 나는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저씨와 함께 보냈다. 아저씨는 16세기의위대한 프랑스 사상가인 몽테뉴의 책을 거의 다 모아두고 계셨다. 또 나는 로테르담에서 태어나고 구다 시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언제나 에라스무스를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알지 못할 이유에서 이 위대한 관용의 화신은 나으 편협한 자아를 사로잡았다. 훗날 나는 아나톨 프랑스를 알게 되었고,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우연히 새켜리가 쓴『헨리 에스먼드』와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영어로 된 그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만일 내가 낙천적인 중서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어릴 때 듣던 찬송가에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그러나 음악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어머니가 바흐의 푸가를 들려주던 어느 날 오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수학적으로 완벽하기 그지없는 프로테스탄트 음악가는 내게 형용할 수 없는 인상을 심어주었으므로, 나는 기도 모임에서 평범한 찬송가를 들을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또 내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아르노 강 골짜기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자랐다면, 나는 다채롭고 밝은 화풍의 그림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런 그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비에 젖은 땅에 햇빛이 잔인할 만큼 드문드문 비쳐 모든 것을 빛과 어둠으로 선명히 가라놓는 나라에서 최초의 미술적 영감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일부러 이런 사실들을 털어놓는 것은 너희들이 이 책을 쓴 사람의 개인적인 선입관을 알고 그 관점을 이해하길 바라서이다. 너희들은 관점과 견해가 다른 많은 책들을 읽고 그 저자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비교하기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더욱 공정한 너희들 자신의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 pp.142~148 (인류이야기 3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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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반 룬인가?
최근 우리 독서시장에 반 룬 열풍이 불고 있다. 2001년 벽두에『반룬의 예술사 이야기』(전3권, 들녘)가 나오더니 2001년 말에는『온가족이 함께 읽는 구약성서 이야기, 신약성서 이야기』(2권, 생각의 나무)가 나와 인문학적 책읽기를 즐기는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왜 지금 반 룬인가? 이는 지금의 우리 독서풍토와 궤를 같이 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독자들은 대중적인 교양물을 목말라했다. 아니 그전부터 그런 책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판계에서 딱딱하고 어려운 인문학이거나 아예 대중오락물을 주종으로 하면서 독자의 요구를 외면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몇몇 출판사와 저자의 노력으로 인문학 책들도 조금씩 쉽고 재미있게 쓰여지기 시작했다. 헨드릭 빌렘 반 룬은 그 원조 격이었던 것이다. 반 룬은 스스로 그의 역사탐구 목표를 '역사의 대중화 및 인간화'에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80여 년 전에 출간된 그의 책들이 다시 우리 독자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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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소년과 일반인에게 인류의 역사를 소상하게 가르쳐준다. 인류의 역사는 동양의 독자나 서양의 독자 모두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데 매우 유익하다. 자신의 뿌리를추적해보는 것이며 문명사적으로 왜 지금 우리(인간)가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반 룬은 본문에서 직접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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