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 머리에
다시 백의종군하다 부실기업 정리 대한선주와의 악연 재무부에서 밀려나다 외환은행장 시절 외환은행과 나의 인연 한국 최대의 차입자 되다 5공화국 시절 말 많았던 ADB행 골프, 이렇게 즐기자 마지막 단편 몇 가지 정인용과 나 - 오웅진 나의 아버지 정인용 - 정정하 책 마무리에 |
이필재의 다른 상품
|
5공 경제비사를 다룬『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는 실명제에 관한 1982년의 논의와 결정이 "'금융실명제 = 사회정의' 라는 등식을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다" 고 기록하고 있다. 그 결과 '실명제란 본질적으로 세제의 문제이며, 관행의 정착을 통해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갈등을 무릅쓰고서라도 일격에 밀어붙어야 하는 혁명적 명제처럼 인식되게 되었다' 고 적고 있다.
1982년 실명제 파동 이후 실명제에 대해 누구도 '정말 안 한다' 는 소리를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다시 추진할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내가 알기로는 드물었다. 금융실명제는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대표적인 선거공약이었지만 6공 때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 후 1993년 8월 YS 정부 때 대통령의 긴급 재정경제 명령으로 홍재형 재무장관이 총대를 메고 실명제를 추진했다. 주무 부터는 재무부였지만 YS의 지시를 받은 이경식 부총리가 재무부와 한국개발연구원의 실무팀을 지휘해 작업을 했다. 첫 실명제 파동 이후 11년이 지나 여건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1997년 3월 YS 정부 말기 부총리에 취임한 강경식 씨는 실명제 보완 방침을 밝혔다. 1982년 1차 실명제 추진의 주역이었고 긴급명령에 의한 실명제 실시에 찬성한 그가 취임 일성으로 실명제에 제동을 건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실명제는 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p.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