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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설악 무산 스님
머리말 강설을 시작하며|믿음으로 이르는 극락세계 경전 번역의 공덕|성자 구마라집 삼장 『아미타경』 강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기쁨에 찬 제자들 사대보살과 천인 극락세계를 말씀하시다 서쪽으로 십만억 불국토를 지나다 아미타 부처님과 법장 비구 오직 즐거움뿐인 극락세계 보배연못과 팔공덕수 극락세계의 하루일과 진리를 지저귀는 새들 삼악도가 없는 극락세계 바람의 연주 무량광 부처님 무량수 부처님 왜 아미타 부처님을 찾아야 하나 구름처럼 모여든 성문들 헤아릴 수 없는 극락의 보살 아비발치보살과 일생보처 극락왕생을 발원하자 극락왕생을 주저하지 말라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인연 염불행자는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 환희로운 임종 빼어난 염불 공덕 염라왕도 숭배한 영명 연수 선사 살아서도 좋은 염불 거듭 왕생을 권하시다 찬탄하시는 동방의 부처님들 찬탄하시는 남방의 부처님들 찬탄하시는 서방의 부처님들 찬탄하시는 북방의 부처님들 찬탄하시는 하방의 부처님들 찬탄하시는 상방의 부처님들 부처님들이 보호하시다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두 손을 뚫은 욱면 낭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공덕 믿기 어려운 법을 설하다 기쁜 마음으로 회향하다 염불의 3자량, 믿음, 발원, 수행 강설을 마치며|회향하며 드리는 말씀 부록 『불설아미타경』 원문(한문, 우리말) 정토예경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 나무아미타불 예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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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극락세계가 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극락세계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은 『아미타경』 법문의 핵심이면서 불교의 정수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먼 거리지만 여하튼 서쪽으로 한량없는 국토를 지나면 분명히 극락세계가 있다고 하셨다. 이 부처님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불교 의 정체성과 직결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가르침은 곧 부처님 그 당체이므로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말씀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은 부처님을 의심함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 p.34~35 천상은 즐거움이 있기는 하지만 업에 끌려가기 때문에 천상에 나는 복이 다하면 다시 악도로 떨어져 윤회하게 된다. 그러나 극락정토는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를 모두 벗어났으며 윤회의 사슬에서도 벗어난 세계이다. 또 그곳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차원도 다르다. 천상의 즐거움은 인연에 따르는 유한한 즐거움이지만 극락의 즐거움은 진리의 법열에서 느끼는 영원한 즐거움이다. 그러니 천상에 나면 좋겠다는 환상은 버리고 극락에 왕생하려는 원을 세워야 한다. 극락에 가기만 하면 신통력을 얻어 자유자재하며 부처가 될 일만 남았다. --- p.44~45 우리가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으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하는데 그 참뜻은 ‘영원한 생명에 귀의합니다.’이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호력, 가피력의 원천이다. 우리가 고통에 절망하고, 액난을 만나 두렵고, 지치고 오갈 데 없을 때 부처님을 찾으면 부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자비 광명을 나투는데 그 무량한 광명의 원천이 바로 영원한 생명임을 알아야 한다. --- p.66~67 과연 이 사바세계에 “나는 진실로 착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죄송하지만 오탁악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삼독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착한 업을 지어도 진실로 착하다 할 수는 없다. 온갖 선행을 베풀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할지라도 착하게 보일 뿐이지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선업 을 닦았다 하더라도 진실로 착하다 할 수 없다. 깨쳤다는 사람은 어떤가? 삼독심에서 정말 자유로운가?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순간 그 누구도 삼독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숨 들이키고 내쉬는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억만의 중생을 살생하며 살지 않는가. 한 걸음 내디딜 때도 수억의 중생을 짓밟지 않는가. 법신으로 비추시는 부처님 외에 누가 삼독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러니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야 한다. 부처님을 부르는 염불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의 참회이기 때문이다. --- p.92~93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염불하다 보면 내가 만나는 사람 모두 아미타 부처님이요, 관세음보살님이요, 대세지보살님으로 나타나 나를 찬탄할 것이다. 이것이 염불의 불가사의한 가피이다. 염불은 단순한 미신도, 맹목적인 신앙도 아니다. 모든 수행을 포섭하고, 무수한 과거 겁의 악업을 소멸하며 우주의 주인인 나를 적극적으로 발현한다. 염불은 나를 아미타 부처님과 일치시키는 신나는 수행이다. 부디 염불을 즐기시길 바란다. --- p.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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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 큰스님의 강설로 읽는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모든 것
이 책의 강설자인 혜총 스님은 자운 율사를 40여 년간 시봉하며 자운 율사가 매일 아미타불 종자 진언을 1만 독하고, 스스로를 상참괴승(常慙愧僧)이라 칭하시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또한 스님 본인도 『아미타경』 독송과 광명 진언, 아미타불 종자 진언, 정토 다라니를 놓지 않고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믿음, 신심이야말로 모든 수행의 근본임을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믿음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 혜총 스님이 지난 1년 여 간 ≪불교신문≫에 연재한 「아미타경 강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혜총 스님은 『불설아미타경』을 33개로 나누어서 그 구절에 담긴 내용을 풀었다. 그리고 도서 말미에는 한문 『불설아미타경』과 우리말 『불설아미타경』, ‘정토예경’,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을 비롯하여, 염불의 공덕과 인연 이야기를 담은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아미타경』뿐만 아니라 아미타 부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혜총 스님은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왜 아미타 부처님을 만나기를 서원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서방정토에 가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한다. 그러면서 강설 중간 중간에 『삼국유사』나 『왕생록』과 같은 고서에 전하는 왕생담, 그리고 설화를 소개하며 아미타 부처님의 공덕과 염불 수행의 수승함을 밝힌다. 이와는 별개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강설의 저본으로 우리말 『아미타경』을 사용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강설서는 한문 경전을 저본으로 삼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말로 옮긴 『아미타경』을 바탕으로 각 구절에 담겨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었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말 경전을 바탕으로 한 것은 경전 내용이 어렵지 않은 데다, 한 글자 한 글자의 세세한 뜻보다 경전이 담고 있는 내용을 음미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불하고자 하는 중생을 위한 지름길, 염불과 발원 염불은 간단하기 때문에 대중적이며, 그래서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고 전해 내려온 수행 방법이다. 그러나 참선이나 화두 참구와 같은 수행만을 수승하다고 생각하는 요즘, 염불 수행은 근기가 낮은 사람이나 하는 열등한 방편인 것처럼 여겨진다. 염불 수행이 정말 잘못된 것이고 열등한 것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불보살, 수많은 고승이 염불하기를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혜총 스님이 특히 강조하는 것 역시 ‘발원’과 ‘염불’이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서방정토로 왕생할 수 있는 방법이며, 개개인의 근기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염불은 단순한 미신도, 맹목적인 신앙도 아니다. 모든 수행을 포섭하고, 무수한 과거 겁의 악업을 소멸하며 우주의 주인인 나를 적극적으로 발현한다. 염불은 나를 아미타 부처님과 일치시키는 신나는 수행이다.”(본문 108쪽) “나의 의지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분명하게 극락세계로 정한 연후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잘 알아서 인연을 닦는 것이 옳다. 목적지가 불분명하면 어디로 갈지 황망하고, 가는 데 시행착오도 많아서 수고로울 수밖에 없다. (…) 원하지도 않고 가고자 공덕을 닦지도 않는 무수한 중생을 모두 데려갈 수는 없는 법 아닌가.”(본문 137쪽)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일심으로 발원하고 염불하여 아미타 부처님의 땅 서방정토로 들려는 것인가. 『불설아미타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그 땅의 모든 존재는 성불을 위해 준비되어 있고, 또 그곳에 태어난 사람들은 성불이 예약된 존재들이다. 그래서 정토왕생이란 성불을 위한 지름길에 들어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신다. 우리가 발원하고 아미타 부처님을 염불하는 것은 일신상의 평안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서방정토에 나고 싶은 원, 다시 말해 성불하고자 하는 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혜총 스님은 이 책에서 “자신의 업이 너무나 무겁다거나 근기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는 어떻게 해야 성불할 수 있는 것인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 등 성불을 원하는 이라면 간절한 마음으로 아미타 부처님을 불러 보라.”고 권한다. 혜총 스님이 안내하는 『불설아미타경』의 길을 따라 일념으로 서원하고 염한다면 우리 앞에 아미타 부처님이 나타나 서방정토로 인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