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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Qu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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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 p.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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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전체를 뒤흔든, 짧고 아름다운 우화 같은 소설!
2001년 프랑스 출판계의 가장 예기치 않은 사건은 미셸 깽의 짧은 소설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처절한 정원』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 책의 저작권은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대만 등지에 팔려나갔다. 또한 이 책은 2001년도 파리 페스티발에서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소설'로 선정되어 미국, 영국, 프랑스 영화제작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판매대리인들은 이 책을 읽은 뒤 매료되어 곧장 이 책을 전국 서점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의 위력은 대단했다. 결국 많은 파리의 서점들은 권장도서로 이 책을 선정하였다. 『처절한 정원』은 재판으로 시작된다. 그것도 보통 재판이 아닌 바로 보르도에서 열리는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다. 나이가 아흔 살에 가까운 모리스 파퐁은 드골 정권 때 파리 경찰국장과 예산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전후 콜라보(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숙청이 있었음에도, 나치 시절 유태인들(어린이들까지도)을 죽음의 열차로 보낸 과거 행적을 50년 동안 숨길 수 있었던 그는 한 역사학자의 끈질긴 추적 끝에 기어이 꼬리가 잡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반인륜적 범죄에 관한 책이 아니라 범죄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에 관한 책이다. 미셸 깽은 이 책을, 베르뎅의 전사였던 그의 할아버지와 교사이며 레지스탕스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헌정하고 있다. 가족사의 한 토막 - 아주 짧은 역사 - 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는 체험과 상상, 자서전과 허구를 자연스럽게 뒤섞어 놓았다. 수정처럼 투명한 그의 문체는 감각적이고 재미있으며 시로 가득 찬 우화 같은 이야기를 솟아나게 하였다. 깽은 기쁨과 진실, 우정을 말하고, 또 이것들을 정직함과 관대함 속에 자리잡게 하는 겸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확신을 가지고…… ■ 처절한 역사와 지워진 진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어떻게 이 짧은 소설이 예기치 않게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제일 먼저 당시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모리스 파퐁의 재판의 영향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1999년 10월 프랑스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모리스 파퐁의 재판으로 떠들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파퐁은 자신이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다는 경력을 내세워 코르시카와 알제리 행정장관(1947-1951년)을 역임했고, 드골 정권하에서는 파리 경찰국장, 지스카르 데스땡 정권 때에는 예산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40년간이나 지하에 묻혀 있던 그의 범죄는 마이클 슬리틴이라는 역사학자에 의해 모두 폭로되고 만다. 마이클 슬리틴은 파퐁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1981년에 한 주간지에 파퐁의 반인륜적 범죄를 낱낱이 증언했다. 모리스 파퐁은 나치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비시 정권하에서 보르도 지역의 치안 부책임자였다. 그는 1942년에서부터 1944년까지 1,590명의 유태인을 체포하여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다. 희생자 유족들의 고발로 모르스 파퐁은 1983년에 정식 기소됐다. 그러나 모리스 파퐁을 법정에 세우기까지는 16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한동안 비시 정권하에 있었던 관리들의 수동적 행위를 단죄할 수 있는가의 논란이 야기됐기 때문이다. 파퐁 자신도 "공복으로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였다. 또한 파퐁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사실 확인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드골 정권 등 전후의 정권에 대한 평가와 역사 해석 문제와 맞물려 여론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1995년 쟈크 시라크 대통령이 취임하여 유태인 강제수용에 대한 프랑스의 국가적 책임을 처음으로 시인한 후에야 비로소 모리스 파퐁에 대한 응징이 본격화되었다. 1997년 보르도 항소법원이 모리스 파퐁을 재판에 회부했고, 6개월 후에 그는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그 결과가 나오기 직전 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결국 스위스의 스티 휴양지 그스타트에서 체포되어 프랑스로 압송되었다. 이렇게 하여 1999년 당시 89세인 모리스 파퐁은 감옥에서 생을 마쳐야 할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 처벌에는 시효가 따로 없고, 예외가 없다는 것이 프랑스와 유럽국가들의 변치 않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제 시대 친일인사들의 반민족적 행위나 위안부 등에 행한 일제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청산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의 말처럼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을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때"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