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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는 팩션『왕의 밀실』속의 역사 코드]
경희궁의 광해군 밀실 미스터리 경덕궁(지금의 경희궁) 공사에 관련된 기록인 <궁궐지>를 살펴보면 1617년 말에 경덕궁의 공사 완성도는 짧게는 수개월, 길어야 일 년 정도의 공정만 남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공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연기되어 일 년이면 완성될 궁이 4년이 지난 1620년에 완공되었고 그동안 나무 자재가 몇 천 그루씩이 더 필요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적으로 궁궐의 건축 순서는 사대문을 짓고 종묘를 지으며, 다음으로 창고 같은 건물을 짓는다. 그 다음이 중요 전각 순서대로 짓는 것인데 당시의 건축 진행 상태는 <조야첨제(朝野僉載)>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간추리고 있는 바에 의하면 숭정전이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바로 숭정전 공역에서 자재가 더 필요했고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왜 시간이 지연되었고 자재를 추가로 필요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서궐(경덕궁)의 깊숙한 곳에 따로 은 수백 궤짝을 마련해 쌓아두었다’는 기록에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록을 들여다보면 광해군은 신하들이나 나인들도 알지 못하는 서궐의 깊숙한 곳에 숨어 지냈다는 기록이 두서없이 나타났다가 허균의 죽음 이후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광해군 당시 청 밀사가 조선에서 실종된 사실” 청의 실록인 <대청역조실록>에는 조선으로 떠난 두 명의 사신이 있다는 기록만 있고 되돌아왔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으로 떠난 사신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그리고 사신이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는 청의 실록에 반해 조선의 실록에는 왜 그들의 자취가 없는 것일까. 여기에서 청이 보낸 밀사가 죽는 장면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청의 밀사가 죽으면 해를 입는 쪽은 누구이고, 이득을 얻는 쪽은 누구였을까. 해를 입는 쪽은 당연히 조선의 왕인 광해군이고, 득을 보는 쪽은 광해군과 노선을 달리하는 적 당파 혹은 광해군 정권에 밀려난 무리들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광해군의 업적을 이야기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전쟁을 막아냈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임란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무엇보다도 전쟁을 막아내는 것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광해군에게 청의 밀사는 큰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청의 밀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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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미스터리를 파헤친 역사 스릴러
조선사 미스터리 ‘광해군 궁궐 밀실’의 반역 살인사건과 좌참찬 허균의, 목숨을 건 수사 탐행 4일간의 비록(秘錄)! “신하들이나 나인들도 알지 못하는 서궐(경희궁)의 깊숙한 밀실에 의지할 수밖에…….” (『조선왕조실록』 광해131권 광해10년 7월 26일) 궁궐(경희궁)에 은밀하게 제작된 왕의 밀실! ‘광해군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한 황토방’에 불과하다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일제하에 모든 궁궐이 동물원, 학교, 총독의 사저, 미술관 등으로 전락하면서 왕의 밀실도 메워져 지금은 그 위치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팩션(『왕의 밀실』)의 특수 장치로 재발견된 왕의 밀실은 조선의 존폐가 걸린 충격적인 소재로 일신한다. 임진왜란이 막 끝난 당시는 안으로는 지배 세력(양반)의 협잡이 판을 치고, 밖으로는 명을 집어삼키기 일보직전인 후금(청)의 압박이 코밑까지 들이닥쳤다(6년 뒤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 팩션은 당대 안팎의 정국을 가장 정확하게 통찰한 허균의 눈을 통해 임란 이후 호란이 예고된 조정의 분열, 음모가 난무한 참담한 정치 상황과 명?청 교체기의 국제정세를 세 건의 살인사건을 통해 무섭고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빈약한 외교력, 소모적인 정치 갈등, 국제 정세의 무지 등 고스란히 현재와도 겹쳐지는 놀라운 효과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떠올려질 정도다. “조선의 역적 허균, 사후 390년 만에 복권되다” 실리외교를 추진하는 광해군과 그의 정책을 추동하는 허균. 광해군에게 허균은 집권 양반 세력이 일신의 안위만 걱정해 국가의 위기에 무관심했던 조정에서 유일한 우군으로 그려진다. 그동안 허균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은 <홍길동전>의 저자, 기생 매창과의 관계, 허난설헌의 동생 등 비역사적인 사실에 국한되어 왔다. 그래서 누구나 허균을 알고 있지만,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지 못한 유일한 신하이며, 공초와 자백, 결안도 없이 처형된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재신(宰臣: 종2품 이상의 대신)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인조반정 이후 숙종대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복권되었지만, 오직 그만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끝나도록 역적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이 팩션은 390년이 지난 지금 소설의 양식을 통해 그가 살았던 비극적인 시대를 혐오에 가까운 시선으로 더듬어 그를 오롯이 복권시키고, 삶 전체를 옹호하고 있다. “왕과 서인, 대북파의 소리 없는 전쟁” 청(후금)이 명과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조선의 처리로 고심할 즈음, 광해군은 은밀한 경로를 통해 누르하치의 밀사를 초청한다. 명나라는 이미 조선에 대규모 군대를 요청한 상태. 명과 거리를 유지하고 청을 안심시키려는 광해군 실리외교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청 밀사가 살해되면서 광해군은 진퇴양난의 늪에 빠진다. 명의 파병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서인, 광해군을 세웠지만 종래에는 등을 돌린 대북의 이이첨, 명나라의 계속되는 압박에 유일한 구명줄은 바로 허균이었다! 청 밀사의 살해사건, 정2품 환관의 살해사건, 반인촌 백정의 살해사건, 경덕궁 창건의 총책임자인 성지대사의 자살. 맥락 없어 보이는 세 건의 살인사건과 자살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한 허균의 탐행이 바빠진다. 이 모든 사건의 음모가 광해군의 시해를 노리고 있다는 단서를 확보하고, 이야기는 광해군 시해의 역모를 막기 위한 쪽으로 급진전된다. 왕의 밀실! 누가 먼저 광해군의 밀실을 찾아내느냐에 왕의 운명이, 조선의 명운이 달렸다. 마침내 밀실의 사투에서 왕을 구해내지만, 이 모든 것이 또 하나의 계획이라는 반전이 얽혀든다. 밀실에 가득한 은괴의 정체! 역모의 배후를 일거에 소탕하려는 또 다른 덫! 허균은 자신조차 이 모든 밀실 계획의 준비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