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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주희는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고 나서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가 결혼 전에 사귀던 어떤 여자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를 낙태시킨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주희는 아버지를 살인자라고 여기며 경멸하고 증오한다. 더구나 엄마까지도 그녀가 초등학교 때 병으로 죽자 아버지 때문이라고 여기며 주희의 증오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확신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대학교 때 아버지가 죽고 나서도, 29살의 나이가 되어서도 그 증오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주희의 앞에 쓰러진 옆집 아이 솔이를 집에 데리고 오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버지의 일기장의 읽고 나서 주희에겐 이상한 힘이 생겨버렸다. 다른 이의 뱃속에 태아가 들어있는지를 저절로 알게 된 것이다. 주희는 솔이가 쓰러진 순간에 솔이가 임신했음을 알고 집에 데려와 간호해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얘기를 하나씩 하기로 하고, 주희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솔이에게 보여준다. 일기장을 읽고 솔이도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비밀을 얘기한다. 솔이는 그림같이 이쁜 집에 살고 있지만, 16살 소녀의 행복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부잣집에 입양되었지만, 이기적인 양부모에게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그에 대한 반항으로 일부러 임신을 했다. 차라리 부모에게 버림받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방법이지만, 임신을 하고나서야 솔이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나게 잘못된 일을 저질렀는지 후회한다. 그래도 뱃속의 아이를 결코 죽일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아이를 낳아 자신이 기를 수 있기만을 소망한다. 대학에서 금속 공예를 전공하고, 악세사리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주희는 어느 날 갑자기 골호(뼈항아리)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퍼즐조각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골호를 만들면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불확실한 기대 때문이다. 골호에 대한 얘기를 해준 사람은 주희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한 남자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찾아온 그를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사랑하며 그와 함께 산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남자와 섹스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주희지만, 그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에게서 아버지의 따뜻함을 남편의 든든함을, 연인의 사랑을, 친구의 우정을 모두 느끼며 주희는 행복해한다. 그는 주희에게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은 너의 의지가 아니니 이제 그만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그의 말이지만, 이미 확신처럼 되어버린 그 증오심을 주희는 결코 버릴 마음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처럼 느껴지지 않던 그와의 사랑도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떠남으로 끝나게 된다. 처음 그녀에게 왔던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그녀의 곁을 떠났지만, 그도 그녀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알고, 그가 이별선물로 준 강아지 챠코를 받으며 서로를 영원히 기억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솔이가 갑자기 짐을 들고 주희의 집으로 찾아온다. 집에 임신한 사실을 들켜서 한번 소동이 벌어지고, 솔이의 양부모가 주희에게 솔이를 맡겨버린 것이다. 학교에는 병을 핑계로 휴학를 시키고 주위사람들에게도 같은 핑계를 대고 솔이를 주희에 집에 숨겨두고 매일같이 빨리 병원에 가서 낙태할 것을 재촉한다. 솔이를 아이를 낳겠다며 양부모와 대립하지만, 결코 현실이 자기 생각대로 되어주지 않을 것을 알고 불안해한다. 주희는 그런 솔이가 안쓰러워 위로해주고, 솔이를 아예 자기가 데려올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솔이의 양엄마는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 솔이를 입양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친자식이라고 알려놓고 이제 와서 양딸이 임신했다고 파양할 경우 자기 부부에게 미칠 사회적 비난을 잘 알기에 솔이를 평생 동안 정신병원에 넣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솔이를 주희에게 줄 수도 없고, 솔이의 임신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주희도 솔이가 아이를 낳을 경우 어떠한 불행이 닥칠지를 잘 알기 때문에 솔이에게 낙태를 권유해보지만, 솔이는 절대로 낙태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희가 만드는 골호를 솔이도 만들게 된다. 마음으로는 절대로 아이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벽을 잘 알기에 만일의 경우에 일어날 최악의 선택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비를 하기 위해 솔이는 아기를 위한 보석함 같은 골호를 만든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솔이와 주희는 집안에서 이상한 냉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실은 주희는 어려서부터 늘 느끼던 거였다. 그리고 일기장을 읽고 나서 주기적으로 꾸는 악몽. 언제나 무릎까지 오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주희를 찾아와 흐느끼며 아이를 달라고 절규하는 악몽을 꾸었다. 그때마다 뭐라고 여자에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주희의 목소리는 남의 것처럼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눈동자. 주희는 그것이 아버지가 죽인 아이의 눈이라고 생각하며 늘 불안해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자기처럼 그 눈동자를 의식하며 살았음을 깨닫고, 그 눈동자와 꿈속의 여인에게 벗어날 길을 찾아본다. 그런데 절친한 대학 친구인 민진과의 만남에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민진이 보여준 사진들에 주희의 옆에 나타난 어떤 남자의 형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주희는 경악한다. 그 그림자 같은 남자의 형체는 주희와 같이 성장한 것처럼 점점 커지고 뚜렷해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자신이 갖고 있는 사진에서도 남자의 형체를 확인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희에게 솔이는 더 엄청난 말을 한다. 얼마 전에 이 남자를 현실에서 직접 만났다는 것이다.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만나고 대화까지 나누었다는 솔이의 말을 듣고 주희는 아버지가 죽인 아기가 보이지 않는 눈동자에서 사진 속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현실에서까지 존재한다는 주희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주희의 친할머니의 집으로 찾아간다. 아버지가 죽은 후 일부러 한번도 만나지 못한 주희를 보고 할머니는 반가움과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따뜻한 아침밥상을 지어온다. 주희는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여주며 찾아온 용건을 얘기하고, 꿈속의 여자가 바로 아버지의 애인일 것이라며 그 여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처음엔 숨기려고 했지만, 정말 주희에게 위험한 일이 닥칠 수도 있다는 판단하고 오래전에 아버지가 맡긴 편지를 주희에게 보내준다. 그건 아버지가 죽은 아기에게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읽자마자 주희는 자신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심한 구토를 느낀다. 그리고 토악질에 괴로워하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그를 증오했던 마음들이 스르르 눈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희는 할머니가 가르쳐준 선주의 주소를 들고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탄다. 그런데 기차간에서 사랑하던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움과 반가움으로 행복해하는 주희에게 그는 이제 아버지를 용서해주자는 말을 한다. 주희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데, 그만 꿈에서 깨고 만다. 그런데 가방 속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이 없어진 것을 알고, 그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안동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내려간 것이지만, 주희는 안개 낀 아침에 사과밭에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일기장에 나온 것처럼 찌그러진 귀를 가진 소년을 따라 문어처럼 생긴 집에서 주희는 꿈속의 여인 선주를 만난다. 꿈속에서처럼 선주는 울부짖지도 않으며 주희는 따스하게 안아준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 주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솔이와 약속한 대로 솔이와 자신의 골호를 완성하고 병원으로 가서 낙태수술을 받는다. 비록 불행한 선택이지만, 결코 그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평생 동안 잊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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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과 엿보기 그리고 신비로움의 미묘한 삼각관계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과거에 저지른 실수, 또는 실패는 그 여자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낙인과도 같다.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남자에겐 관대하고 치명적이지 않는 일들이 여자에겐 인생 전체를 뒤흔들 핵폭탄과 같은 위력을 과시하며 늘 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그 여자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보려고도 하지 않고, 별 관심이 없다. 사회가 그 여자를 평가하는 잣대는 오직 과거에 그 여자가 저지른 잘못과 경력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의 과거 경력 중에 가장 치명적인 흠으로 여기는 것은 아마도 여자의 순결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 여자가 끔찍한 강간으로 인해 처녀성을 상실했건, 사랑하는 사람과 정당한 사랑의 행위를 나누었건, 진짜로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건, 그녀들에게 내리는 판결은 오직 결혼 전에 처녀가 아니라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여자의 처녀성을 가지고 운운하는 사람들을 매우 보수적이고 고루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도, 막상 내 아내와 내 며느리에 대해선 절대 용납을 못하는 것이 불행한 현실이다. 혼전에 어떠한 이유에서든 처녀성을 상실한 여자의 잘못인가, 아니면 여자의 처녀성으로 여자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잘못인가는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건전한 사회인이라면 답은 저절로 나올 것이다. 간혹 그래도 순결을 여자의 최대의 미덕이라고 외치는 사람에겐 그럼 당신은 보사부가 인정하는 총각이냐고 묻고 싶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여자의 순결에 대한 논란은 아니다. 한발 나가서 사랑과 성과 임신과 낙태에 대한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다. 임신을 하려면 당연히 섹스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혼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이 죄악시 여겨지지 않는 시대에서 임신 가능성은 섹스의 숫자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 주희는 아버지가 과거에 애인인 선주에게 낙태를 시킨 일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살인자라고 여기며 경멸하고 증오한다. 이기심만으로 자기 아이를 낙태시킨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16살짜리 소녀 솔이의 임신에 대해선 낙태를 권유한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면서 주희는 당황해한다. 왜 아버지에겐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이 솔이에겐 왜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낙태의 책임이 정말 여자에게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사랑하는 연인이 섹스를 나누다 임신이 되었다. 그럴 경우에 태아의 생명이 보장받고, 여자의 경력에 치명적 상처를 입히지 않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지금 현실에서는…. 남자가 애인의 임신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결혼을 추진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남자가 임신을 부담스러워한다면, 그래서 여자에게 은근슬쩍 낙태를 권유한다면 여자는 참으로 황당하고 슬플 수밖에 없다. 그럼 이 여자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남자의 뜻에 따라 낙태를 하던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아이를 낳는 것이다. 소설에서 아버지의 애인 선주는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낙태를 하고 만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한 생명을 죽여 버린 공범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만약 선주가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아이를 낳았을 경우 이 여자에게 어떠한 일이 닥칠 것인가. 다행히 여자에게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비록 미혼모라는 사회적 질시와 냉담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적 능력이 별로 없는 여자가 주변의 엄청난 손가락질과 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그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편모가정에 대한 복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 미혼모를 위한 복지는 전무하다. 복지는 고사하고 아이의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혼자서라도 아이를 키우려는 그녀의 착한 의지마저도 비난받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불행한 길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의지이므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전적으로 비난도 그녀의 몫이라고 성토한다. 과연 맞는 것일까? 이 남녀의 엇갈린 선택에서 남자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혼자서 멋대로 아이를 낳은 여자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사람들은 낙태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린다. 임신의 책임은 둘 다에게 있지만, 낙태의 책임만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돌린다. 남자가 뭐라고 하던 여자가 낳고 싶으면 낳고, 낙태하고 싶으면 낙태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 여자의 선택이 온전히 존중받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혼전에 섹스를 경험한 원죄만 주시하며 그 여자의 문란함을 성토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그녀의 의지를 인정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적어도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보려는 그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소금을 뿌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나라에서 복지제도 차원의 실질적 도움은 못 주더라도 경제적으로 차별은 받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전제도 갖춰있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 아이를 낳은 여자만 비난하는 것은 약자에게 문제를 돌려버리는 비겁한 짓이다. 그래서 주희는 솔이에게 낙태를 권유한다. 미성년자인 솔이가 아이를 낳을 경우 어떠한 일이 솔이에게 닥칠지 잘 알기 때문에 솔이에게 최선의 선택이 낙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입양아인 솔이도 아이를 낳고 싶지만, 자신이 책임도 못 지면서 아이를 낳을 경우 자신과 똑같은 불행을 안겨주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을 흘리며 병원으로 찾아간다. 극적인 요소를 위해 솔이를 미성년자로 만들었지만, 솔이가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시 자칫 미성년자들의 문란한 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성년자들이 어린나이에 무책임한 성행위를 즐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사회와 교육과 가정이 미성년자들의 이런 일탈에 대해 교육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현실에서 이미 일어난 결과물에 대해서까지 원죄만을 적용시키지는 말자는 것이다. 잘못에 대해선 이와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질타와 반성은 필요하지만, 임신한 여자의 의지와 태어난 아이의 장래까지 그 원죄의 범죄로 묶어 끊임없이 비난하고 경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비난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