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
심양의 이모저모 _ 성경잡지盛京雜識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 _ 관내정사關內程史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_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태학관에 머물며 _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_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朴趾源, 호 : 연암
박지원의 다른 상품
|
이용이 있은 연후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연후에야 정덕正德이 될 것이다. 대체 이용이 되지 않고서는 후생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니, 생활이 이미 제각기 넉넉하지 못하다면 어찌 그 마음을 바로 지닐 수 있으리오.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중에서 이따금 꼬리와 털을 모조리 뽑고 양쪽 겨드랑 밑의 털까지도 뜯어내어 고깃덩어리만 남아 있는 닭이 절름거리며 다닌다. 이것은 빨리 키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요, 또한 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여름에는 닭에 검은 이가 생겨 꼬리와 날개에 붙게 되면 반드시 콧병이 생기고, 주둥이로는 누런 물을 토해 내고 목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이런 증상을 계역鷄疫이라고 하는데 꼬리와 털을 미리 뽑아서 시원한 기운을 통해 준다고 한다. 꼴이 하도 흉해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중에서 내 오늘에야 처음으로 인생이란 원래 아무것도 의탁할 것이 없이 다만 머리에는 하늘을 이고 발로는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인 줄 깨달았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다 얹고 말했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정말 한 번 울 만하도다.”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중에서 비록 추녀가 몇 자가 넘는 화려한 고대광실에 석 자를 괸 큰 상을 받고 예쁜 계집 수백 명이 모시고 있는 즐거움이나,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아니한 구들목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베개를 베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불을 덮고, 깊지도 얕지도 않은 술잔을 받으면서, 장주도 호접도 아닌 꿈나라로 노니는 그 재미와는 결코 바꾸지 않으리라.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_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중에서 “소경을 볼 수 있는 자는 눈 있는 사람이라 소경을 보고 스스로 그 마음에 위태로이 여기는 것이지, 결코 소경이 위태로운 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소경의 눈에는 어떠한 위태로움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이 위태롭단 말이오.”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_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중에서 오미자 두어 알은 사실 한 개의 지푸라기와 같은 물건이지만 저 불경스런 중이 내게 버릇없는 소행을 보인 것은 실로 횡역橫逆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 하겠다. 그것 때문에 싸움이 시작되었고 주먹다짐이 벌어졌을 뿐더러, 그들이 싸우는 동안은 분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저희들의 생사조차 생각하지 않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러한 경우를 보면 한낱 오미자 한두 알에 불과한 것이 커다란 재화를 초래했던 만큼, 아무리 작고 가벼운 물건이라 해도 결코 아무렇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_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중에서 아아, 슬픈 일이로다. 세상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구나. 그리고 천세가 당당한 곳에 사람들은 흥미를 보이지만 세상은 잠깐 사이에 변해 버리고 마니 어디에다 호소를 하겠는가. 이는 마치 진흙에 빠진 소가 바다로 떠내려가듯이, 또는 큰 빙산이 햇볕을 만나 녹아내리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이와 다름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_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중에서 |
|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중국 기행문집!
우리나라 기행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열하일기》는 1780년 박지원이 청나라 고종인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으로 가는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하여 중국 연경을 거쳐 청나라 황제의 피서지인 열하까지 여행한 기록을 담았는데, 중국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중국의 문물제도를 목격하고 견문한 내용을 날짜에 따라 기록한 연행일기燕行日記이다. 조선 사절단은 1780년 음력 5월 말 한양을 출발해서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넌 뒤 요동, 성경, 산해관을 거쳐 8월 초 드디어 연경(북경)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건륭제의 특명이 내려 만리장성 너머 열하까지 갔다가, 8월 20일 다시 연경에 돌아와 약 한 달 동안 머문 뒤 그해 10월 말에 귀국했다. 조선의 사신 일행이 열하까지 가게 된 이유는 연경에 도착해 보니 청나라 황제는 더위를 피해 그의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에 가고 없었기 때문이다. 《열하일기》는 그 해 6월 24일부터 8월 20일까지의 기록으로, 처음부터 명확한 정본正本이나 판본版本도 없었고, 여러 전사본轉寫本이 유행되어 이본異本에 따라 그 편제가 일정치 않다. 여기에서는 이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다 싣지 못하고 압록강을 건너서 열하까지 갔다가 다시 연경으로 되돌아오는 부분만을 골라 실었다. 각 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 압록강을 건너서 요양에 이르기까지 15일 동안의 기록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 역할을 하는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의 국경 도시인 요양에 이르는 동안 연암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는 책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의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성곽·건물·경목耕牧·도야陶冶 등의 이용후생적利用厚生的인 것들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심양의 이모저모 _ 성경잡지盛京雜識] 십리하에서 소흑산에 이르기까지 5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속재필담粟齋筆譚], [상루필담商樓筆譚], [고동록古董錄] 등이 가장 재미있는 대목이다.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 _ 관내정사關內程史] 산해관에서 연경에 이르기까지 11일 동안의 기록이다. 그중 백이·숙제에 얽힌 이야기를 비롯하여 우암의 영정에 절하던 이야기가 흥미롭다. 특히 연암의 대표적인 소설 [호질虎叱]이 수록되어 있다.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_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기까지 5일 동안의 기록이다. 열하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모두 당시 열하의 정세를 잘 관찰한 논평이었으며, 특히 열하로 떠날 때의 이별의 한을 서술하였다. [태학관에 머물며 _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열하의 태학에서 머무른 6일 동안의 기록이다. 중국의 명망 있는 학자인 윤가전, 기풍액, 왕민호, 학성 등과 더불어 조선과 중국 두 나라의 문물제도에 관하여 논평을 교환하였으며 달나라, 지동설 등에 대해 토론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때 그는 지구 자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_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열하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는 도중 6일 동안에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글이다. 주로 교량, 도로, 방호防湖, 방하防河, 탁타(낙타), 선제船制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연암이 남긴 《열하일기》는 당시 보수파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중국의 역사, 지리, 풍속, 토목, 건축, 선박, 의학, 인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문학, 예술, 골동품, 지리, 천문, 병사 등을 망라하여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서술하였고, 경치나 풍물 등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용후생적인 면을 강조하여 수많은 《연행록燕行錄》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