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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연암 박지원 소설선 호질 양반전
호질, 양반전 외 11편 PDF
북앤북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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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프롤로그·4
머리글·8

마장전(馬?傳) / 17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 31
민옹전(閔翁傳) /43
광문자전(廣文者傳) /61
양반전(兩班傳) / 77
김신선전(金神仙傳) / 89
우상전(虞裳傳) / 101
허생전(許生傳) / 125
호질(虎叱) / 157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 181
호곡장론(好哭場論) / 193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 201

연보·210

저자 소개 2

朴趾源, 호 : 연암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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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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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PDF(DRM) | 3.2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23쪽 ?
ISBN13
9791124724040

출판사 리뷰

변혁의 소용돌이 속, 양반의 허울을 벗긴 연암 박지원의 통쾌한 풍자

낡은 관념과 허례허식을 벗어던지고 실질을 추구한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을 꿰뚫은 혁신가이자 천재 문장가였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매몰된 당대 지배층을 향해 그는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이 학문의 목적이자 국가의 사명이라 일갈했다. 그는 농업 혁신과 상공업 진흥을 위해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북학(北學)’을 주장했다. 『과농소초』를 통해 자연과학적 안목을 입증했으며 한전론(토지 소유 상한제)을 제시해 빈부 격차 해소를 도모했다. 나아가 서얼 차별 철폐와 노비제 혁파를 주장하며 평등 사회를 지향했던 선각자였다. 특히 그의 진가는 위선적인 양반 사회를 고발한 문학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정형화된 기존 문체를 타파한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 속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은 날카로운 풍자와 자유분방한 필치로 지배층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통렬히 꼬집었다. 조선의 엄숙주의를 깨부순 파격의 선구자 연암 박지원. 그는 언제나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고 가장 낮은 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진짜’를 갈구했던 그의 치열한 혁신은 모든 혁신이 ‘진짜’를 향한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한 통찰과 깊은 울림을 전한다.

박지원의 4대 핵심 사상

이용후생의 실용주의:물자를 풍부하게 하고(이용) 삶을 넉넉하게 만든(후생) 뒤에야 도덕을 논할 수 있다는 실용적 가치관을 정립했다.
청나라 선진 문물 수용:청을 오랑캐라 배척하던 시대에 수레와 선박의 활용법, 상공업 기술을 배워 낙후된 물류와 유통망을 혁신하자고 주장했다.

토지 제도 개혁(한전론):토지 소유 상한제를 도입하여 대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빈부 격차를 줄여 농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구제하고자 했다.

신분 질서 비판과 평등 지향:양반의 위선과 허례허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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