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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부고란에 실린 장례식마다 찾아다니며 마치 공연을 보듯 장례식을 관람하고 품평하는 취미를 남몰래 즐기던 주인공은 어느 날부턴가 자신이 참석하는 장례식마다 마주치는 한 남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가 다가와 비밀스럽게 건넨 한 마디로부터 주인공의 일상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신도 피귀렉인가?”
돈을 받고 사람들의 삶에 배우를 파견하는 비밀회사 피귀렉의 실체를 알게 된 주인공의 현실은 별안간 깊이를 파악할 수 없는 의혹으로 물들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피귀렉의 비밀 원칙에 따라 주인공 역시 배우를 고용하는 피귀렉의 소비자가 될 것을 강요받기에 이른다. 1막 1장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는 희곡을 부여잡고 있던 고등룸펜에게 인정받는 극작가의 이미지를 덧입혀 줄 연극 연출가, 그리고 평생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부모와 형제 앞에 당당히 소개할 완벽한 애인이라는 옵션을 선택한 주인공. 피귀렉은 그가 주문한 그대로, 삶의 어느 한 장면을 완벽하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탈바꿈시켜 준다. 그러나 주인공의 현실은 점점 피귀렉에 잠식당해 가고, 반짝반짝 빛났던 한 순간의 만족스러운 이미지 뒤에 웅크린 그의 맨얼굴은 고독과 불안으로 창백해져만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