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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
마이크 대시 저 / 정주연 역
지호 200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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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열병의 시작
2. 신의 꽃
3. 화려한 과거
4. 동쪽에서 온 이방인
5. 튤립의 아버지
6. 황금시대
7. 가슴 골짜기의 장식
8. 거울 속의 튤립
9. 저축과 도박의 시대
10. 광란의 두 달
11. 황금 포도 여인숙
12. 고아들에게 찾아온 행운
13. 거대한 폭발
14. 매춘의 여신이 떠난 뒤
15. 튤립 왕의 최후
16. 고향으로 돌아가다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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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역자 : 정주연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산꼭대기의 과학자들』이 있다.
저자 : 마이크 대시
캠브리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런던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탄탄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마치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건처럼 역사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탁월한 저널리스트로 이름이 높다. 영국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가디언」「데이리 메일」「포턴 타임스」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 런던에 살고 있으며 이 책은 그의 세번째 작품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4쪽 | 459g | 148*210*30mm
ISBN13
9788986270648

책 속으로

그래서 3월 중순에서 4월 말까지 한 달 이상 동안 열풍에 휩쓰렸던 모든 사람들, 즉 재배가들과 꽃장수들은 결과를 예상하기만 해야 하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단 몇 주 전만 해도 대단히 비쌌던 튤립들이 연합주 전역에서 꽃을 피워 습한 네덜란드의 봄을 환하게 밝히는 동안 수백 명의 꽃장수들은 자신들이 파산할 것이라는 공포로 점차 여위어갔고, 수백만 길도 규모의 수천 개의 계약들은 처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실제로 열풍에 참가했던 사람들로서는 경제적 재앙에서 살아남는 일이 가장 절실한 관심사이긴 했지만 시장이 무너진 이유도 알고 싶어했다. 물론 자신들이 그 곤경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핶고 모든 희생자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할 변명거리만 찾았다.

많은 사람들은 구근 열풍이 일종의 사기 행위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료 꽃장수나 상단의 경매인에게 기만당했다고 믿었다. 또 다른 한쪽 극단에 있는 좀더 적은 수의 사람들은 튤립 매매 자체가 음모였다고 확신했다. 한 익명의 작가는 시장이 20, 30명의 가장 부유한 재배가들과 업자들의 비밀 결사에 의해 조직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정교하게 가격을 조작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결사가 열풍의 영향 하에 있었던 12개 도시 전체에서 어떻게 동시에 활동할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책임이 다른 곳으로 돌려지기도 했다. 비밀 결사의 존재를 암시했던 그 작가는 파산자, 유태인, 메노파 신도들의 속임수 때문에 튤립 매매에서 최악의 과열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 세 집단은 사회에서 고립된 계층이었기 때문에 속죄양으로 몰기 쉬웠다. 무엇보다도 파산자들은 소득의 한도 내에서 생활하라는 신성한 네덜란드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여 그들의 죄를 추궁당했으며 이에 대해 복수할 기회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연합주의 유태인들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보다는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대중들은 그들이 고리대금업이나 다른 형태의 보당 이득 취득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했으며, 그들은 오랫동안 다른 주민들과 자유롭게 교제하는 것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특히 유태인 남자와 네덜란드 여자의 교제는 심한 비난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이 기독교인 하인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메노파 신도들도 아웃사이더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옷으로 쉽게 구별되는 재침례교의 분파였다. 그들은 전체적으로 검정색 옷을 입었으며 긴 자켓과 허렁한 반바지를 즐겨 착용했다. 메노파 신도들은 유아 침례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무기 소지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평화주의자였다. 이 때문에 연합주의 스페인과 교전할 때 그들의 평판은 더욱 나빠졌다. 이런 비난들 중 제대로 된 조사에 근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튤립 재배가 집단이 일부러 구근 열풍을 조작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전혀 없다.

몇몇 메노파 신도들이 열풍에 직접 관련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 그리고 브라질과 교역을 하였던 자크 클레르크라는 한 상인은 1635년 겨울 이미 구근 하나에 4백 길더나 되는 가격을 받고 튤립을 매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파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튤립 매매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이었고, 구근을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그만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였다. 마찬가지로 실제로 연합주에는 대단히 소수의 유태인들이 있었고, 이 중에서 튤립 매매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은 그 유명한 포르투갈의 재배가인 프란시스토 다 코스타밖에 없었는데 그는 흠잡을 데가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파산자의 경우, 설령 그들 중 일부가 용케도 채권자로부터 약간의 돈을 떼먹었다고 해도 열풍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사람에 대한 당시의 기록은 없다.

아마도 이런 음모론을 믿고 있었던 꽃장수들은 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상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작했다고 의심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가격 조작은 사기 경매라는 오래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이 일은 교활한 상인들에 의해 계획되었는데 이들은 자극을 유발하고 다른 사람이 폭등한 가격에 물건을 사도록 하기 위해서 공범에게 높은 값에 구근을 “파는” 방법을 썼다.

--- pp.228~231

가장 사랑받았던 튤립은 가장 완벽한 꽃잎과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을 보이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황금시대의 네덜란드 재배종들은 정교하고 때로는 선동적인 색깔 때문에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알려져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 1630년대 중반이 되자 13종 이상의 튤립이 생산됐는데 각각 서로 다른 색상 배열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들은 빨강색, 노랑색, 희색을 띤 단색의 다순한 튤립인 코울레렌에서부터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색깔을 띠는 후기 개화종인 마르크베르트리넨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코울레렌은 야생 튤립이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야생 튤립과 가까운 친족 관계의 재배종이었지만 마르크베르트리넨은 꽤 복잡한 변종이었음에 틀립없다. 그것은 대부분 플랑드르와 프랑스에서 재배됐으며 네덜란드 튤립 열풍과 관련된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13종 가운데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로젠, 비올레텐, 비바르덴이었다. 로젠 종은 가장 수가 많았는데 흰색 바탕에 붉은 색이나 분홍색으로 윤색된 것이었다. 17세기 초 30여 년 동안, 거의 4백여 개의 로젠 튤립이 생산되어 이름이 붙여졌다. 70여 개의 비올레텐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하얀색 바탕에 자주색이나 엷은 자색으로 윤색되었으며, 비자르덴은 이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품종으로 단 24개의 변종만이 있으며 노란색 바탕에 붉은 색, 자주색, 갈색으로 윤색되어 있다. 이미 존재하는 색상배열이 뒤바뀐 변종도 있었는데 이들은 원래의 색상 배열에 따라 분류되었다. 예를 들면 라켄 튤립은 넓은 하얀색 테두리가 있는 자주색 꽃인데 비올레텐으로 불류되었고 소량의 두켄 재배종은 노란색 테두리가 있는 빨간색 곷인데 비자르덴으로 분류되었다.

정원사들을 참으로 흥분시켰던 것이 바로 이런 무늬가 만들어내는 대조적인 색상이었으며 튤립 열풍을 이해하려면 17세기에 원예사들이 알고 있었던 다른 꽃들과 튤립이 어떻게 구별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튤립의 색깔은 일반적인 식물의 색깔보다 더 짙고 더 농축된 것이었다. 즉, 단순한 빨간색은 밝은 진분홍이 되었고 흐린 자주색은 매혹적인 명암의 검은색에 가까운 색이 되었다. 또한 다른 잡색 꽃의 경우 꽃잎의 경우 그 색의 경계가 대단히 뚜렷했다.

두드러진 색상의 네덜란드 재배종들은 보통 꽃잎 가운데가 진한 색이 나타나거나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있어서 깃털이나 불꽃처럼 보였다. 이 색깔들이 때때로 줄기에 얼룩덜룩한 점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꽃의 바탕색은 오염되지 않았으며 이것들은 변종에 따라서 항상 흰색이거나(때때로는 푸른빛을 띠기도 한다) 노란색이었다. 그 무늬는 각 꽃마다 너무나 독특해서 서로 아누 비슷한 종의 꽃일지라도 똑같은 것은 없었다.

네덜란드의 튤립 애호가들은 튤립 열풍의 초창기부터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이런 색상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꽃의 등급을 달리 매겼다. 가장 높게 평가받아 “최상”으로 꼽히는 튤립은 전체적으로는 흰색이나 노랑색을 띤 것으로, 꽃잎 중앙이나 가장자리에서 자주, 빨강, 갈색으로 얇은 띠 모양의 불꽃이 나타나는 줄무늬 변종이었다. 전문가들은 밝은 색이나 너무 요란한 것은 “음란”하다고 생각하여 무시했으며 그 가치를 낮게 매겼다.

--- pp.81~83

출판사 리뷰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꽃 이야기
17세기 초반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른 바 "툴립 열풍"0|라고 기록된 이 사건은 일개 꽃이 불러 일으킨 집단적인 광기로, 역사상 최초의 투기 사건이다. 투기의 역사에서 가장 첫 머리를 장식하는 이 사건은 오늘날에도 투기 열풍이 불거나 경기에 버블이 있을 때 교훈처럼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튤립 열풍은 단지 경제사적인 측면에서만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짓말 같은 일0|었다. 한 상인의 옷감 꾸러미에 실려 들어온 꽃의 구근 하나가 얼마 뒤 전 네덜란드를 사로잡고 단숨에 광기 어린 투기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짧은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0|, 귀족0|나 부유한 사람만이 아니라 직조공도, 여관 주인도, 농사꾼도 전 재산을 아직 땅속에 파묻혀 있는 양파같이 생긴 뿌리를 사고파는 데 쏟아부었다. 하긴 한두 달 사이에 열 배, 스무 배로 값이 치솟고, 단 몇 년만 고생하면 평생 호화롭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어떻게 구경만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몇 년 동안 서서히 달궈지던 이 튤립 시장은 거짓말처럼 단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17세기에는 뮤추얼 펀드도 없었고 개인 투자 관리나 세금 도피 수단 같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고 가장 개방적0|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던 사회였다. 또한 사치를 엄금하는 신교 국가였지만 황금시대를 맞아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귀족 못지 않은 지위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튤립에 대한 광적인 투기는 당시 네덜란드의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저자는 치밀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동양의 꽃이 유럽으로 건너와 그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상류 사회를 사로잡고, 부자들의 수집품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투기 대상이 되는, "돈"으로서의 튤립까지 소개하는 이 책은 오늘날의 경제적 상황을 비추어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튤립 열풍은 한때 잠시 있었던 특이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식, 부동산, 기름과 같이 뻔한 것에서부터 희귀하고 이상한 것까지 어느 사회에나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과 남아도는 현금을 투자하려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저자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사태를 수습하는 당시 네덜란드 사회의 모습을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1929년의 대공황처럼 자살하거나 세계 공황이 일어나는 대신 많은 이들이 실의에 빠지긴 했지만 합리적인 대처 방안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기록들을 하나씩 찾아내 어떻게 이 꽃이 네덜란드와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는지, 튤립 거래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붕괴 이후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했는지, 그리고 이 사건이 네덜란드 사회에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를 마치 한 편의 다큐벤터리처럼 보여준다. 거기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정원이나 튤립을 사랑한 술탄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재미를 더한다.
황량한 들판에 핀 작은 꽃
튤립은 전 세계에서 장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심어지고 있는 꽃이다. 대부분 네덜란드의 꽃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중앙 아시아에서 태어난 동양의 꽃이다. 최초의 튤립은 파미르 고원에서 처음 꽃을 피웠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환경이 나쁘다는 톈산 산맥의 구릉과 계곡에서 번성했다. 이 때의 튤립들은 아직 세련된 모습이 아니었다. 화려한 색깔도, 타오르는 듯한 불꽃 모양도, 여유로운 우아함도 가지지 못했지만 황량한 들판에서 피어난 튤립은 이 때에도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 지역의 투르크족 유목민들에게 생명과 다산을 상징하고, 무엇보다 봄의 전령이었던 튤립은 대략 11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투르크인들이 셀주크족을 정복하고 정착하면서부터 지배종 튤립의 기나긴 역사도 시작되었다.

술탄의 정원을 장식하다
14세기 무렵 오스만 투르크인들은 튤립을 불운을 막아주는 신성한 꽃으로 여겼다. 활짝 피면 고개를 숙이는 튤립이 “신 앞에서의 겸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으며 천국이 튤립으로 뒤덮여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장에 나갈 때 갑옷 속에 입는 셔츠에 튤립을 수놓았는데, 속옷에다 그렸던 이유는 이슬람에서는 당시에 생물을 그리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15세기 술탄 메메드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꾼 뒤부터 튤립은 오스만 왕궁의 정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꽃으로 지위를 확고하게 굳혔다. 기이한 것은 술탄의 정원사는 사형 집행인도 겸했는데, 아무튼 이들은 술탄의 엄명으로 톱카피 궁 안에서 가장 은밀한 술탄의 정원에 튤립을 심고 가꾸었다. 오스만 제국은 무려 1,500여 종의 튤립 변종을 만들어냈다.

16세기 말부터 생물을 그리는 것에 대한 금지가 관대해지면서 술탄 쉴레이만의 비단 가운에는 수백 송이의 튤립이 수놓아졌고, 튤립은 오스만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투르크의 전형적인 꽃으로 자리잡았다. 쉴레이만은 그리스의 로도스 섬까지 점령하는 등 많은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당시 곷을 식품이나 약초로만 여기던 유럽인들은 오스만인들이 그저 아름다움 때문에 꽃을 재배한다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튤립은 17세기 중엽이 되자 다시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에서 돈으로
튤립은 16세기 중반에 이미 신성 로마 제국에서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네덜란드에 들어온 것은 그보다 몇 년 뒤였다. 오스만 제국에서 옷감을 수입해 팔던 한 상인의 물품 꾸러미에 섞여 들어온 튤립은 곧 “튤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식물학자 클루시우스에 의해 네덜란드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17세기 초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오랜 전쟁으로 귀족 계급이 거의 전멸하고 대신 헤헌트라고 불리던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집단이 새로운 지배 계급을 형성하였다. 또한 인도와의 무역에서 이익을 얻어 막대한 돈이 흘러들어왔다. 사회는 매우 유동적이었고, 돈은 넘쳐나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사람들은 출생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돈만 벌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튤립은 그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수집품으로 자리잡았다. 이 꽃은 네덜란드의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랐고, 전문가들도 종자나 구근에서 어떤 모양의 튤립이 필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변종을 만들어내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성은 희귀한 튤립에 대한 애호가들의 욕구를 부추겨 희귀할수록 더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튤립 열풍과 결말
튤립의 식물학적 특성과 네덜란드의 사회 경제적 배경이 맞물려 튤립은 점점 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돈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돈이 없는 직조공들은 직조 기계를 팔아 튤립 구근을 샀다. 당시 비교적 저축을 많이 하고 있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예금을 털어 튤립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런 식으로 수요가 증가하자 튤립의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튤립은 공급이 달리게 됐고, 사람들은 선물 거래와 약속 어음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어떤 꽃이 필지 모르는, 땅 속에 묻혀 있는 구근을 가격의 10분의 1만 주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 꽃이 필 때만 가능했던 거래가 사시사철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여러 가지 품목의 주식을 거래하던 증권거래소가 있었고 튤립도 이곳에서 거래되었지만 급다는 주로 여인숙의 밀실에서 거래되었다. “이 거래는 술 취한 머리로 해야 된다. 그리고 배짱이 두둑 할수록 더 유리하다.” 이런 식으로 붐이 조정되고 있는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것이 “돈이 될 것이다”라고 확고한 믿음이었다. 실제로 처음 얼마간은 모두들 돈을 벌었다. 하지만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튤립 시장은 급속도로 과열되기 시작한다. 희귀한 튤립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튤립 거래에 뛰어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한 튤립도 비싼 값에 사들였던 것이다. 알크마르의 “황금 포도” 여인숙 경매에서 절정에 달한 이 튤립 열풍은 1637년 2월 3일, 하를렘에서 정말로 거센 폭풍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지듯이 단 하룻밤 동안에 거래가 멎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전 네덜란드로 이런 현산이 퍼지더니 절정기의 거의 100분의 1로 가력이 대폭락했다.

물건도 보지 않고 계약서 하나에 의존해 튤립을 사고 팔았던 사람들은 연쇄 부도의 위기에 처했고, 대부분의 꽃장수들이 채무 불이행으로 고소당하고 파산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연합주 정부는 튤립 거래와 관련된 모든 고소를 인정하지 않고, 채무의 10퍼센트만 갚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개입을 하지 않았다. 꽃장수들은 이를 토대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그토록 급속하게 튤립 거래를 열풍으로 몰아간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사태는 큰 무리 없이 해결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자살한 사람도 없었고,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사건의 교훈을 깊이 새겼으며 이후 오늘날의 화훼 수출 강국이 되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열풍이라는 바이러스
이와 같은 열풍은 튤립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후 유럽에서는 다알리아와 히아신스에 대해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그리고 1925년 미국 플로리다 주의 토지 투기 열풍 사건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 기록된 것은 1985년 중국 창춘에서 있었던 석산 열풍이다. 튤립처럼 수선화과 식물로, 당시 석산 한 뿌리가 5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튤립 열풍의 절정기의 거래 가격을 무색하게 하는 금액이다. 이 열풍은 1985년 여름에 붕괴되었다. 창춘은 튤립이 처음 번성했던 톈산과 불과 3,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튤립에서 비롯된 열풍 바이러스가 결국 고향 근처로 되돌아간 셈이었다.

저자는 튤립 열풍을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나의 바이러스로, 순전히 인간의 병이라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과 돈에 대한 탐욕이라는 인간의 상보적인 감정을 먹이로 하는 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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