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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사상과 관념, 의식 세계를 총체적으로 집약한 고전 중의 고전, 단테의 『신곡』이 대구가톨릭대학교 이탈리아어과 김운찬 교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신곡』은 꼭 읽어야 할 동서양 고전을 꼽을 때면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를 비롯해 해마다 각 대학의 권장도서 목록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만, 그럼에도 실제로는 읽기가 쉽지 않기로도 유명하고, 또 잘 번역된 판본을 찾기가 힘들기로도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운찬 교수는 15년 넘는 세월 동안 『신곡』 원전을 반복해 읽고 관련 서적을 탐구하면서 꼼꼼히 해설을 달아 가며 번역에 매달렸다. 이탈리어어와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실수나 오류 없이 현대 우리말 표현에 맞는 『신곡』의 번역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노력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한 김운찬 교수의 15년 노력의 결실 김운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단테는 개화기에 이미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하였으나 『신곡』의 완전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50년대 후반이다. 그나마 이탈리아어 원본이 아니라 스페인어 번역본에서 중역하였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이도 정확하지 않다. 그 후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여러 가지 번역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세계문학 전집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번역의 저본을 밝히지 않고 있어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단테의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긴 것은 두 권뿐이라고 꼽는다. 그리고 한 출판사에서 다른 출판사로 옮겨 간 듯이, 일부 번역본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때로는 완전히 똑같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번역자가 다른데도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은 경우도 있다. 그 외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해 축약해 번역한 책들도 많다. 제목도 <소설 신곡>이라고 붙이거나, 기본 골격만 유지한 채 원본을 임의로 줄이거나 덧붙임으로써 변형시킨 것들이다. 중역판과 개역판의 실수와 오류를 바로잡아 현대 한글로 다시 태어난 『신곡』 단테는 유난히 3이라는 숫자를 사랑하였는데, 『새로운 삶』에서 고백하는 바에 의하면 이는 3이 가톨릭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의 신비와 관련된 숫자 때문이라고 한다. 『신곡』에서도 3의 유희가 펼쳐진다. 『신곡』은 세 개의 <노래 편cantica>, 말하자면 「지옥」, 「연옥」, 「천국」으로 구분된다. 또한 각 노래 편은 모두 33편의 <노래canto>(편의상 <곡(曲)>으로 번역하였다)로 되어 있는데, 맨 앞에다 서곡(「지옥」의 1곡)을 덧붙여 전체 100곡이 된다. 100이라는 숫자는 3의 33배수가 되는 99에다 1을 덧붙여 이루어지는 숫자로 일종의 완성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각 노래는 115행에서 160행 사이로 그 길이가 일정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신곡』은 총 1만 4223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국내 번역본 가운데 원본의 시행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의 숫자를 아예 표시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몇 가지 실수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지옥」 제21곡 100~101행에 보면, 악마 가운데 하나가 두려움에 떠는 단테를 가리키며 자기 동료에게 「Vuo’ che ’l tocchi in sul groppone(내가 저 녀석의 어깻죽지를 건드려 볼까)?」 하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에서 groppone는 <어깨>를 가리키는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하나같이 <궁둥이>나 <엉덩이>로 옮기고 있고, <어깨>로 번역한 판본은 하나도 없다. 악마들의 천박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그런 저속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분명히 원본에서 멀리 벗어난다. 이것도 분명히 영어 번역본들의 영향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이 이를 <엉덩이>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롱펠로, 세이어즈, 맨덜봄, 코터의 번역본도 하나같이 rump 또는 bottom으로 옮기고 있다.(김운찬, 「고전번역 비평-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57) 단테의 『신곡』」, 『교수신문』, 2006년 12월 26일자) 1만 4,223행에 2,871개의 주석이 달린 이탈리아어 완역판 『신곡』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저승 여행 이야기이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단테가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 동안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신곡』을 읽기는 쉽지 않다. 너무 많은 것들을 언급하는 데다가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가 한꺼번에 어우러져 있고, 함축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인용되는 등장인물들만 해도 수백 명이 넘는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나 괴물들을 비롯하여 역사상 실존했거나 전설적인 인물들이 각자 고유한 삶의 사연들과 함께 그 장엄한 서사시의 모자이크 조각들을 형성한다. 게다가 중세 유럽과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복잡한 정치 싸움과 대립들, 교황과 황제 사이의 갈등, 스콜라 철학과 신학의 논쟁들, 그리고 단테 자신과 관련된 사건들이 씨실과 날실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그 모든 것에 대한 사사로운 정보들, 시대적 상황과 배경, 그 당시 사용되던 언어의 의미와 관례들, 등장인물들의 사상이나 믿음, 중세의 지리와 천문학의 체계, 일반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전설 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갖추어야 단테의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다. 더구나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곡』 판본에는 수많은 해설과 설명들이 붙어 있다. 때로는 단테의 원문보다 해설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도 한다. 『신곡』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용 백과사전이 필요할 정도이다(실제로 그런 사전들도 나와 있다). 물론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읽기는 어렵다. 현학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에나 필요한 자료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테의 생애를 비롯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미리 알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신곡』은 작가 단테의 개인적이고 자서전적인 이야기이므로, 단테의 삶과 사상 세계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를 둘러싼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작품의 형식과 구조, 구성 방식 등 예술적 특성들과 함께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단테가 묘사하는 저승 세계의 방대하고 치밀한 구조를 머릿속에 상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고전 작품들이 그렇듯 『신곡』도 관련 정보와 자료들을 많이 알수록 고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