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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걸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
민병숙
마고북스 200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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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_ 불량한 여전사들

내가 널 갖는 거야? 네가 날 갖는 거야?

그 여자는 이미 너무 타락해서 강간당했다고 말할 수 없다

적과의 동침

포르노의 마술

킹콩걸

여성이여, 안녕!

저자 소개 1

EBS 영어 다큐멘터리와 수십 편의 만화 영화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이다. 이화여대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였으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는 『베이비토크』와 『킹콩걸』, 『선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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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비르지니 데팡트(Virginie Despentes)
1969년 프랑스 낭시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둔 후 파출부, 음반가게 판매원 등을 거쳐 마사지 살롱, 스트립 쇼 클럽 등에서도 일했다. 또 록그룹을 만들어 음반을 내고 록 음악 전문잡지와 포르노 잡지에 글을 썼다.
작가로 데뷔한 것은 1993년 『베즈 무아』(Baise-moi)를 출판하면서. 프랑스 문단에 돌풍을 일으킨 이 책은 2000년 그녀가 직접 각색, 연출하여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하면서 다시 한 번 눈길을 모았다. 개봉 당시 과도한 선정성과 폭력성을 이유로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에 의해 배급이 중단되었다가 영화인들의 검열반대 운동에 힘입어 일 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영화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포르노그래피와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영화 표현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에는 『예쁜 것들』(Les jollies choses)로 플로르 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가로질러 물어뜯기』(Mondre au travers)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8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89쪽 | 268g | 148*210*20mm
ISBN13
9788990496355

책 속으로

우리가 성의 해방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지는 않는다 해도 적어도 어떤 점이 유감스러운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젖먹이 수준으로 떨어뜨리려는 전능한 정부가 더 잘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구실 아래 우리의 모든 결정에 사사건건 개입해서 우리를 유치함, 무지, 처벌과 추방에 대한 두려움 속에 가둬두려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들을 고립과 수동성과 보수적 태도에 묶어두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이 다른 모든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떻게 여성을 그렇게도 소심한 존재로 만들 수 있었는지 여성에 대한 과소평가의 역학관계를 이해한다면 전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터득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경우 그런 것처럼, 전체는 순종하며 따르고 있는데 개개인은 함정에 빠졌다고 느낀다는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평등의 종교다.

--- p.34~35

“너에게 일어난 일이 알려지길 정말 원하는 거야?”, “매춘부로 나설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거지?”
그렇다. 품위를 갖춘 여자라면 죽는 편이 더 나은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것 그 자체가 내게 불리한 증거였다. 더러운 녀석들의 난폭한 허리놀림으로 상처를 입는 것보다 살해당할 것을 더 두려워했다는 사실이 괴물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다행히 나는 골수 펑크족이기 때문에 여자의 순결 같은 문제는 초월할 수 있었다.

--- p.47~48

진짜 인생을 멀리 둔 채 방 안에 갇혀 지내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에선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나는 낯선 도시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역이 문을 닫을 때까지 혼자 앉아 있거나 다음날 탈 기차를 기다리면서 골목길 한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마치 여자가 아닌 듯 행동했다. 더 이상 강간당한 적이 없긴 했지만 밖에서 그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는 백 번도 넘게 그럴 위험에 처했다. 그 시절, 그 나이에 내가 경험한 것은 순종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나를 가두거나 집구석에서 잡지나 뒤적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밀도 있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격정적인,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함께 동반되었던 온갖 더럽고 추잡한 일들에 대해서도 그것들을 살아낼 힘을 나는 찾을 수 있었다.

--- p.55

강간은 정치적인 프로그램이다. 자본주의의 뼈대이기도 한 그것은 권력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이다. 어떤 지배자를 지명해서 그가 아무런 제약 없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강간을 하든, 강탈을 하든,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하든, 그는 자신의 의도를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실현시킬 수 있고, 잔인함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 상대는 어떤 저항도 표출할 수 없다. 타인을, 그의 말과 의지와 모든 것을 무시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강간은 그래서, 시민전쟁이다. 그리고 한쪽 성이 다른 쪽 성에게 ‘내가 너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어. 네가 스스로를 열등하고 타락했다고 느끼도록 만들겠어’라고 선언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제도다.

--- p.63~64

미디어를 통해 작가로서의 나를 홍보하다 보면 언제나 그것이 매춘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 ‘나는 창녀예요’라고 말하면 모두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내가 텔레비전에 나왔어요’라고 하면 질투심을 갖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느낌, 내밀한 것을 판다는 느낌, 그리고 사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는 점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같다.
나는 사실 매춘과 합법적인 봉급을 받는 직업, 매춘과 여성의 매력, 대가를 받는 섹스와 이해관계에 의한 섹스 그리고 그 시기에 내가 경험한 것과 그 이후에 내가 보아왔던 것 사이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여자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내게는 결국 다 비슷해 보였다. 잡지 속에서 팔리는 여성성과 매춘의 여성성 사이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또 분명하게 가격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창녀인 여자들도 꽤 많이 본 것 같다.
--- p.55~56

여성들이 자신이 클리토리스를 가지고 무얼 하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위에 대한 (여성들의) 이런 무관심은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든다. 혼자 있을 때 자신을 어루만져주지 않는다면 여성들이 언제 환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까? 자신을 흥분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성이 상대에 의해 조작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한다면 자기 자신과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우리는 대개 행실 바른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 만일 환상의 세계가 수치스럽다거나 경멸당할 골칫거리를 만든다면 그것을 억누르려 할 것이다. 하지만 모범적인 딸, 가정에 충실한 좋은 엄마, 이런 이미지들은 타인의 안락함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우리의 내면을 탐색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 p.134~135

여성의 욕망은 50년대까지만 해도 공개적으로 거론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여성들이 집단을 이뤄 ‘우리도 육체적 욕망을 느끼며 격렬하고 설명하기 힘든 충동을 경험한다. 우리의 클리토리스도 남성의 성기와 같아서 위로받길 원한다’라고 선언한 것은 초기 록 콘서트를 통해서였다. 비틀즈는 무대 위에서만 공연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들이 하나의 음을 연주할 때마다 공연장 안의 여성들이 소리를 질러대서 음악은 그녀들의 목소리로 뒤덮여버렸다. 곧바로 집단히스테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녀들도 충분히 열정적이며 욕망을 느낀다는 외침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런 매우 중요한 현상이 은폐되었던 것이다. 욕망은 남성들만이 독점해야 하는 배타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p.135~136

수년간 성실하고 진지한 탐구를 한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즉, 여성성이란 ‘창녀 되기’이고 노예근성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유혹이라 부를 수도 있고, 그것이 글래머 제조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또 집단적으로는 열등하게 처신하는 습관을 갖게 한다. 어느 곳이든 남자들이 있나 살피고 그들 마음에 들기를 원할 것. 너무 크게 말하지 말 것.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말 것. 편안하게 다리를 벌리지 말 것. 독선적인 표현을 삼갈 것. 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 권력을 탐하지 말 것. 요직에 앉으려 하지 말 것.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을 것. 너무 크게 웃지 말 것. 너무 익살맞게 굴지 말 것. 남성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기술이다. 권력의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 p.164~165

출판사 리뷰

케이트 모스보다는 킹콩 쪽에 가까운 여자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주류에서 소외된 참하지 못한 여자들’에 대해 말하려 한다고 운을 뗀 후 스스로를 “킹콩 쪽에 가까운”, “여성성에 있어 영원한 프롤레타리아”라고 규정한다.
또 “하나같이 남자를 사랑하고 쉽게 사랑에 빠지며 두 챕터만 넘어가면 잠자리를 같이 하고 네 줄 정도로 섹스를 즐기고 항상 만족해하는” 소설 속 여주인공들 같은 여성스러움을 갖추지 못한, 현실 속에서 패자인 그런 인물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데, 그것은 그런 인물이 더 본질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자신이 그에 속해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고 단숨에 말해버린다. 즉, 데팡트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언제나 외면당하는 다수의 ‘못난 여자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주류 사회가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는 현실을 파고드는 동시에, 세상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모순투성이이며 조작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까발리고자 한다.

데팡트에 따르면 “여자들을 발정 난 암캐 아니면 동정심 많은 연인으로 취급하는” 데 머무르는 성의 혁명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그런 현실에서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들이 획득한 권력을 감추며, 자신의 역할을 과거의 그것으로 복귀시켜 스스로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라는 신분에 놓는다. 즉, 지적, 육체적 활동이 활발한 젊은 세대조차 성형 등을 통한 여성성의 과잉표출에 매달리는 것은 남성들을 안심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여성들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굴러가지만 남성이라고 해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것이 손쉬운 일은 아니다. “여성들의 몸은, 남성들의 몸이 평화기에는 생산에, 전쟁 시에는 국가에 예속되는 조건하에서만 그들에게 예속되었다. 여성들의 몸을 빼앗는 것은 남성들 스스로의 몸을 빼앗김과 동시에 가능해진다. 이 경우 승자는 극소수의 지배자들뿐”이기 때문이다.

강간은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규정하는 키워드
한편 ‘강간’은 데팡트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주제다. 저자 자신이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강간이 일부의 문제가 아닌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규정하는 구조의 첫머리에 놓이게 되는 이유를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침범당할 수 있는 여성성”에서 찾는 저자는, 그러므로 강간을 여성 자체를 구성하는 행위로 인식한다. 특히 강간 피해자들에게 사회가 가하는 이중 삼중의 폭력을 두고 볼 때 강간은 “한쪽 성이 다른 쪽 성에게 ‘내가 너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어. 네가 스스로를 열등하고 타락했다고 느끼도록 만들겠어’라고 선언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제도”이기도 하다.

강간의 후유증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로 한때 매춘의 세계에 뛰어든 데팡트는 그 시절의 경험을 통해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매춘보다 더 예속적인 결혼제도 속의 남녀관계의 위선을 폭로하고, 사회 전체는 성적인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는데 매춘은 수치와 어둠 속에 가둬둠으로써 고전적 가족 단위를 보호하고자 하는 기성체제의 전략을 고발한다. 그러므로 데팡트에게는 ‘매춘이 곧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통제 즉, 여성을 대신해서 무엇이 합당하고 무엇이 합당하지 않은지를 결정하려는 태도가 곧 폭력’으로 규정된다.

포르노에 대한 사회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대해서도 데팡트는 냉소한다. 포르노그래피에 대해서 ‘NO’라고 말할 권리를 가지는 계층은 일부 특권층이고(“SM은 소수 엘리트만의 스포츠여야 한다. 대중은 그 난해함을 파악할 수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해가 될 것이다”), 남성을 유혹한다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이행한 포르노 배우들이 끊임없이 비난받는 것은 ‘욕망의 대상’이어야 할 그들이 영화 속에서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상대가 누구든 관계없이 섹스를 원하고, 모든 구멍을 다 사용하기를 바라며, 아무 때고 즐긴다. 남성이 여성의 몸을 가질 때 그런 것처럼”)이라는 것이다.

작은 이익을 내던지고 여성에게 작별을 고하라
이제, 영화 <킹콩>에서의 미녀처럼 근원적인 힘을 잃고 ‘여성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그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부드럽고 섹시하고 침묵을 지키는” 착한 희생자로서 더 많은 권력을 쥔 남성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격이 낮은 의무”라고 데팡트는 말한다. 그러면 남자가 되고 싶으냐고? “천만에. 나는 페니스나 수염, 테스토스테론 같은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공격성이나 용기처럼 내게 필요한 것은 모두 다 가지고 있다. 물론 나는 남성들처럼 남성들의 세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원한다. 나는 규율에 도전하기를 원한다. 정면으로, 완곡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 또 스스로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자유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이기도 한 데팡트는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또 다른 부류에게도 집단적 모험이고 세계의 비전이며 하나의 선택이라고 선언한 다음 이렇게 제안한다. “남성들이 가진 사소한 기득권들에 여성들의 작은 이익을 대립시키지 말자. 차라리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자. 그러니 여성들이여, 여성에게 작별을 고하라. 그리고 더 나은 길을 향해 떠나라.”

추천평

“남자 100명과 섹스를 하고 상점 알바부터 마사지 살롱 접대, 영화 제작과 책 쓰기까지 작가는 치열한 삶의 여정을 통해서 조작된 현실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여자에게 금지된 것은 당국이나 사회의 허가사항이 아님을. (…) 말뿐인 교재와 이론서보다 용기백배 리얼체험 ‘킹콩이론’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 이유명호,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저자

과격한 페미니스트들, 위선적인 네오페미니스트들, 보부아르의 사상을 지속시키는 데 연연하는 본질주의자들, 할머니의 할머니들만큼이나 보수적으로 변해버린 차별주의자들, 이들이 서로 갑론을박하고 있는 권태의 바다에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며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는 한 여자가 있다.
1969년생인 이 여성은 1993년에 『베즈 무아』라는 제목의 소설로 프랑스 문단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다. 그 이후부터 매우 독특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내며 작가로서의 약력을 쌓아오다 『킹콩걸』이라는 짧은 텍스트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발행자는 에세이로 소개했지만 이 작품은 에세이의 경계를 단번에 뛰어넘는다.
이 책은 이론적이고 여성주의적이고 역사적인 연구들(작업)을 토대로 한 선언서다. 그러나 또한 자전적 이야기에 근거해서 분노와 진실에 대한 욕망, 때로는 연민을 가지고 누구든 관계없이 가차 없이 비판한다.
『킹콩걸』에는 고통과 상처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자유에 대한 열렬한 옹호이며 ‘여성들과 남성들 그리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또 다른 성에 대한’ 한 여성의 외침이기도 하다. 그녀는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깊이 생각해볼 만한 논제들을 제공한다.
비르지니 데팡트에게 있어서 성의 ‘전쟁’은 은유가 아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일체의 수식 없이, 그 시작에, 기저에,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관계의 구조 안에 “강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강간을 몇몇 매우 질 나쁜 남자들이 저지르는 못된 행위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부 남성들이 희생제물에게 모두의 이름으로 행하는, 여성 자체를 구성하는 행위다.
- 르 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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