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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유럽 학자의 고구려 연구
모리스 꾸랑,에두아르 샤반느
서길수
여유당 2007.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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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사 : 꾸랑, 샤반느의 고구려 연구와 100년만의 재탄생 - 박성봉(경북대)
추천사 : En Guise d'introduction - 삐에르 깡봉(프랑스 기메박물관)
Summary 1 영어 European Scholars' Research on Koguryo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Summary 2 중국어 韓末歐洲學界對廣開土太王碑的調査和硏究
책머리에
감사드리는 글

첫째 마당 모리스 꾸랑의 광개토태왕비 연구(1898)
Ⅰ. 모리스 꾸랑과 광개토태왕비의 만남
1. 모리스 꾸랑의 생애와 저술
2. 19세기 말 광개토태왕비의 발견과 모리스 꾸랑
Ⅱ. 비문에 관한 고찰(1) - 고구려 건국에서 광개토태왕까지
1. 고구려 건국과 부여
2. 유류(儒留)와 대주류(大朱留)에서 광개토태왕까지
3. ‘17세손(孫)’에 관한 논의
4. 광개토태왕의 정복기사 연구
Ⅲ. 비문에 관한 고찰(3) - 모리스 꾸랑의 광개토태왕비 해석과 역사 인식
1. 고구려는 언제부터 문자를 썼는가?
2. 광개토태왕비의 생김새와 문장
3. 모리스 꾸랑의 광개토태왕비 석문에 대한 분석과 평가
4. 모리스 꾸랑의 한국 고대 역사지도에 대한 분석
5. 중국과 일본의 학문적 자세에 대한 꾸랑의 시각
Ⅳ. 모리스 꾸랑의 광개토태왕비 연구에 대한 평가

둘째 마당 에두아르 샤반느의 고구려 국내성 유적 탐사(1907)
Ⅰ. 에두라르 샤반느와 고구려의 만남
1. 샤반느의 보고서 「한국의 고대 왕국 고구려의 유적」
2. 에두아르 샤반느의 생애와 저술
3. 에두아르 샤반느의 국내성 방문의 일정
Ⅱ. 에두아르 샤반느의 고구려 탐사(1) - 광개토태왕비와 탁본
1. 광개토태왕비의 생김새와 석재
2. 광개토태왕비에 대한 조사 테이터
3. 에두아르 샤반느가 구입한 탁본과 사진
4. 통구는 고구려 첫 수도 홀본이다
Ⅲ. 에두아르 샤반느의 고구려 탐사(2)
머리 잘린 피라미드(pyramide tronqu?e), 장군무덤(將軍墳)
1. 장군무덤의 바깥모습 조사
2. 맨 꼭대기에 건축물이 있었다.
3. 널방은 제사터였다.
4. 심각한 보존문제에 대한 경고
5. 딸린무덤(陪塚) - 장군무덤 동북쪽에 있는 일부 무너진 무덤
Ⅳ. 에두아르 샤반느의 고구려 탐사(3)
고구려왕국 제2의 무덤떼, 태왕릉과 벽화무덤
1. 태왕릉172
2. 돌무지무덤과 흙무지무덤176
3. 벽화무덤 182
Ⅴ. 샤반느의 고구려 탐사(4) - 통구성과 산성자산성
1. 집안현 소재지 통구(通溝)189
2.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과 산성하무덤떼
Ⅵ. 에두아르 샤반느가 기증한 기메박물관의 고구려 유물
1. 글자가 새겨진 태왕릉 벽돌
2. 수막새(瓦當)
3. 평기와 조각
4. 기타
Ⅶ. 맺는 말
에두아르 샤반느의 고구려 국내성 답사 보고서에 대한 평가215

셋째 마당 관련 자료집
Ⅰ. <부론> 러시아 학자 짜를가시노바의 광개토태왕비 연구(1979)
Ⅱ. 관련 자료집(1) <번역과 원문>「고구려왕국의 한문(漢文) 비석」
Ⅲ. 관련 자료집(2) <번역과 원문> 「한국의 고대 왕국 고구려의 유적에 관한 보고서」
Ⅳ. 관련 자료집(3) <원문> 「한국의 고대 왕국 고구려의 유적」
Ⅴ. 관련 자료집(4) <번역과 원문> 회여록(會餘錄)
Ⅵ. 관련 자료집(5) 최초의 고구려 유적 사진

저자 소개 1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국제대학교,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 국제대학교(서경대학교) 교수 역임 (현) 고구리 _ 고리연구소 이사장 (현) 고구리발해학회 고문 (현) 세계에스페란토협회 명예회원 지은 책과 연구 논문 ① 고구리 역사 및 동북공정 관련 저서 25권 ② 학술탐사 및 여행서 9권 ③ 에스페란토 관련 저서 13권 ④ 불교 관련 저서 17권 ⑤ 개인사 및 가족 문집 24권 ⑥ 학술 논문 1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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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길수
1944년 전남 화순 출생. 단국대 대학원에서 한국경제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임원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경제사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6년에 중국을 처음 다녀오면서 고구려에 대한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열두 차례의 답사를 통해 자료가 빈약한 고구려사를 재정비하는 데 남다른 역할을 해왔다. 현재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사계절, 1998), 『대륙에 남은 고구려』(고구려연구회, 2003)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송화강 유역의 고구려 산성 연구」(1999), 「고구려 축성법 연구(1∼5)」(1999∼2005),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에 관한 사례 분석」(2005)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38쪽 | 928g | 규격외
ISBN13
9788992351089

출판사 리뷰

Ⅰ. 1989년 프랑스 학자 모리스 꾸랑의 고구려 광개토태왕비 연구
한말 청·일·러시아의 군대들이 들어와 세력을 다투고, 안으로는 동학혁명이 일어나 개항의 몸부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1898년, 프랑스 학자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1865~1935)이「고구려왕국의 한문(漢文) 비석」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당시 침략을 목적으로 연구한 일본 어용학자를 빼놓고는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아직 본격적인 연구를 할 여력이 없을 때였다.

▶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 모리스 꾸랑의 연구
·1898년 당시 일본의 어용학자들을 제외하고 고구려를 처음 연구한 학자.
·광개토태왕비를 한문 이외의 언어로 처음 완전히 번역하여 세계에 소개.
·처음 근대적인 지도로 만든 한국 고대 역사지도.

이처럼 모리스 꾸랑은 유럽에서 광개토태왕비뿐 아니라 고구려 역사를 연구한 최초의 학자였다. 그는 일본의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였지만 "일본 학자들이 제시한 설명이나 해석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그의 논문에는 일본의 연구를 넘어서 독창적인 자기 주장이 뜻밖에 많다.
1) 북부여는 ‘고구려의 북쪽에 위치한 부여’를 말하는 것이다.
2) 엄리대수는 송화강이다.
3) 비류수는 압록강이다.
4) 홀본과 졸본은 같은 것이고 흘승골은 바로 이웃에 있었다.

그 밖에도 1)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이유, 2) 남평양은 한성이고, 한성이 백제의 수도였다는 것, 3) ‘17세손’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이 3형제가 이어서 왕이 되었다는 사실 들을 주장하였다. 한편 50자에 가까운 글자를 완전히 독자적으로 석문한 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상당히 획기적인 연구 성과였다.

▶ 고구려는 한국사이다
모리스 꾸랑은 전통적인 중국 중심사상과 일본의 편향적 사료 인용에 대해 불신과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고, 고구려는 한국사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1) 광개토태왕비를 프랑스 어로 옮기면서 "한국의 지명과 인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한국 발음을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중국어에 능통했지만 모든 고유명사를 ‘夫餘=부여', ‘永樂=영락', ‘廣開土境平安=광개토경평안'처럼 한국어로 옮겼다.
2) 고대 역사지도에서도 부여(현재 길림성), 두막루(현재 흑룡강 북쪽), 읍루(현재 러시아 연해주)라고 한국어를 불어로 표시하였다.

Ⅱ. 1907년 프랑스 학자 에두아르 샤반느의 고구려 국내성 답사 보고서
꾸랑의 광개토태왕비 연구가 나온 지 9년 만인 1907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에두아르 샤반느(긠ouard Chavannes, 1865~1918)가 유럽 학자로는 처음으로 고구려의 국내성 옛터인 중국 길림성 집안을 방문하였다. 그는 여행 중 자신이 속한 아카데미에 고구려 유적에 대한 보고서를 보냈는데, 이것이 유럽에 보고된 고구려 유적에 대한 최초의 탐사기다.

▶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 샤반느의 연구
·유럽 학자로는 처음 고구려 유적을 답사 조사했다.
·고구려 유적을 사진으로 처음 기록하였다.- 일본 학자보다 2년 앞섰다.
·고구려 벽화를 처음으로 발견하여 기록한 학자이다.
·고구려 광개토태왕비 탁본(파리국립도서관 소장)과 유물(기메박물관 소장)을 프랑스로 가져가 처음 유럽에 소개하였다.
·처음으로 광개토태왕비와 장군무덤을 정확히 재서 수치로 제시하였다.

한편 현재도 논의되고 있는 여러 가지 고고학적 논의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1) 장군무덤 위에 건축물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향당(享堂)이었느냐? 아니면 단순한 보호용 지붕이었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는 문제이다. 이런 논의 발단이 샤반느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샤반느는 건물은 있었지만 제사를 위한 건물(享堂)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2) 샤반느는 장군무덤의 심각한 보존 상태에 대해 “방치해 두면 50년 뒤에는 단 하나밖에 없는 고구려 대 고분도 다른 많은 고분과 마찬가지로 부서진 조각더미로 바뀌어버릴 것이다.”라는 경고하였다.
3) 태왕릉은 광개토태왕릉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 고구려는 한국사이다.
샤반느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보고서 제목『한국의 고대 왕국 고구려 유적에 관한 보고서(Rapport sur les Monuments de L'ancien Royaume Coreen de Kao-Keou-Li)』 하나에서만 보더라도 이미 고구려 역사가 고구려사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하였다.

Ⅲ. 『한말 유럽 학자의 고구려 연구』가 갖는 연구사적 의미
1) 모리스 꾸랑의 『고구려 왕국의 한문 비석』을 최초로 한국어로 옮기고 연구하여 고구려 연구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그의 연구가 단순한 번역 수준이 아니고 자신의 주장 적극적으로 제시한 성과를 밝혀냈다.
2) 에두아르 샤반느의 『한국의 고대 왕국 고구려 유적에 관한 보고서(Rapport sur les Monuments de L'ancien Royaume Coreen de Kao-Keou-Li)』를 완역하여 분석하였다. 이 보고서는 일찍이 한국어 번역이 있었으나 초벌 번역 수준이었고, 일본어 번역은 이역이 심해 원뜻을 많이 확연하게 알 수 없었다.
3) “저자 서 교수는 활기찬 정열로 생생하고 세밀하고 지적인 복원 작업을 한걸음 한걸음씩 해낸 것입니다. 원전에 대한 비판, 자료에 대한 비교 검토, 아주 보잘 것 없는 자료 하나하나까지도 분석해 놓았고, 거기에 그 지역과 유적지를 직접 답사해서 얻은 지식과 여행의 흥취까지도 곁들였습니다.”(파리 기메박물관 한국실 큐레이터 삐에르 깡봉 씨의 추천사 중에서).
4) 현재 국내 도서관에서 얻기 힘든 원본 자료와 성실한 번역문을 부록으로 실어 앞으로 이 방면을 연구하려는 후학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5) 고구려 유적에 대한 최초의 유리원판 사진들을 구입하여 높은 해상도로 참고자료에 실어 유적에 대한 시계열 분석이 가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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