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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도 선(禪)을 말하다
시간의 비밀을 여행하는 독일 최고 문학으로 만나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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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말하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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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제1장 세상(世上)
제2장 삼매(三昧)
제3장 무심(無心)
제4장 무집착(無執着)
제5장 유희(遊戱)
제6장 자안(慈眼)
제7장 애어(愛語)
제8장 이심전심(以心傳心)
제9장 시간(時間)
제10장 꿈

맺음말


저자 소개

저자 : 시게마츠 소이쿠
1943년 일본 시즈오카현(?岡?) 출생. 도쿄외국어대학(東京外國語大?) 영어과 졸업. 교토대학 대학원(京都大?大?院) 졸업. 시즈오카대학(靜岡大?) 교수. 간사이의과대학(關西醫科大?) 교수.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학 및 캘리포니아대학 초빙교수 역임.
2006년 퇴직 후 현재 시즈오카시에 있는 임제종 죠겐지(承元寺) 주지스님으로 있으며, 영미문학 연구자이자 번역가로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어린 왕자 선을 말하다(星の王子さま ?を語る)』 『앨리스 선을 말하다(アリス ?を語る)』 『모모도 선을 말하다 (モモも?を語る)』 『선의 선물 (?の贈りもの)』 등이 있다.
역자 : 유진우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한국외국어대학교 및 중앙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동남보건대학교 관광일어과 교수로 재직. 대표 저서 및 역서로 『하이점프 일본어』 『일문법 강의』 『일본어 문형』 『일본 현대소설 선독』 『가족이 있는 풍경』 『지의 논리』 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5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64g | 143*205*20mm
ISBN13
9791157951871

책 속으로

이 ‘원증회고’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나 새에게도 호불호가 있으니까 사람에게 궁합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집니다. 아니, 이런 현상은 동물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릇 자석처럼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과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는 것은 대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들은 궁합이 나쁜 상대에게는 아무래도 주는 것 없이 밉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애를 받습니다. (…) 또 그런 상대방이 한 욕이나 험담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어 자기 귀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말이 귀에 달라붙어서 분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러쿵저러쿵하고 끙끙대며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부러 다른 사람 말에 구애받는 것은 결국 자기에게 자신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사실 애증의 감정에 휘둘린다는 뜻입니다.
---「제4장 무집착(無執着) 」중에서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1점을 다투어서 경쟁자를 떨어뜨리는 ‘입시지옥’입니다. 또 집 밖을 한 발자국만 나서도 언제 목숨을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한 ‘교통지옥’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지옥’에 사는 주인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눈앞에 있는 반으로 나뉘는 아이스케이크도 조금이라도 큰 쪽을 가지려고 눈을 크게 부릅뜨고 지켜볼 때는 이미 ‘아귀’의 마음이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기근으로 굶주려 고생할 때에는 그것이야말로 ‘아귀’의 상태가 됩니다. 술에 취해서 전신주에 소변을 보면 ‘축생’ 그 자체입니다. 자기의 발에 걸려서 ‘치쿠쇼(畜生: 이런 젠장!)’ 하고 내뱉으면 개보다도 못한 ‘축생(畜生)’의 상태입니다. 세계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 반대를 호소하며 행진 중에 있는 사람도 뒤에서 밀거나, 남의 발에 밟히는 순간에 ‘수라(아수라)’가 되어서 눈을 치켜뜹니다. 그리고 기분이 차분해지면 또 ‘인간’의 얼굴로 되돌아와서 ‘천상’계의 천인(天人)과 같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이러한 과정이 ‘육도윤회’를 반복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제6장 자안(慈眼) 」중에서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서로 원해서 부모 자식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비로운’ 인연에 의해서 부모 자식 관계가 성립된 것입니다. 시간, 공간, 전 우주의 무한한 톱니바퀴가 모두 부모이고 자식인 것처럼 회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자식은 문자 그대로 ‘일기일회(一期一會)’의 관계입니다. 모친과 부친이라고 하는 양친이 있어야 자녀가 태어납니다. 이 생물학적 사실은 절대 유일의 엄연한 사실입니다. 서로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귀중한 관계이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꽤 어려운 관계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피는 더럽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그 어떠한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부모 자식 관계를, 현실적으로는 귀찮은 짐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 이른다는 것은 부모 자식에게 아마에(甘え; 어리광)라는 인간관계의 업(業)이 작동하고 있어서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는 소중한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제8장 이심전심(以心傳心) 」중에서

다음은 『성경』의 ‘코헬렛’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모든 것에 시기가 있으며 천하만사에 때가 있다. 태어날 때, 죽을 때 ……………… 사랑할 때, 미워할 때, 싸워야 할 때, 화해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것에 신이 정한 ‘때’가 있습니다. 선어로 표현한다면 ‘시절인연’이라는 말에 해당합니다. 즉, ‘시절’이 찾아오고 ‘인연’이 화합할 때입니다. 혹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줄탁동시(?啄同時)’는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줄(?)’은 병아리가 부화하려고 할 때 밖으로 나오려고 달걀 안쪽에서 껍질을 쿡쿡 쪼는 것을 의미합니다. ‘탁(啄)’은 어미 닭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계란 바깥쪽에서 쪼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란의 안팎에서 동시에 동일한 곳을 쪼는 이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미 닭과 알에서 나오려는 병아리가 서로 호흡이 맞으면 단단한 껍질도 간단하게 깨집니다. 그런데 호흡이 맞지 않으면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제9장 시간(時間) 」중에서

출판사 리뷰

‘망상’을 상대하지 않고 ‘주인공’에게 집중하면 삶이 풍요로워다

확실하게 자아를 버리고 주인공(무아)을 바라보고 살지 않는 한, 삶을 풍요롭게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세상이 헛된 것은 인간 사회가 ‘자아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성을 지니고 있어 제멋대로 행동하려 든다. 자기 형편에 좋을 대로 자기를 내세워서 자기 마음대로 색깔을 덧칠한 색안경으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은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는 무심코 자아의 사념(邪念)을 작동해 버려 주위 환경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곧바로 ‘주인공’을 잃고 자아의식이 작동하기 때문에, 열심히 무언가를 해서 어디에서든 주인이 되는 일은 확실히 어렵다. 우리들은 모두 자아에 집착하며 또 이 ‘아집’으로부터 절대 도망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진실하지 못한 인생으로 끝내 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러한 자아망상을 억제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진짜를 깨치지 못하게 하는 아집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가야만 한다. 망상이 서서히 솟구쳐 올라와도 그저 모르는 척 상대하지 말고 ‘주인공’ 쪽으로 마음을 집중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망상을 망각해 버려야 한다. 쓰고 있는 자아의 색안경을 벗겨 내는 것이 아니라. 안경알을 무색투명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무아’로부터 솟아 나오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러면 모모처럼 우주의 소리를 듣는 일이 무엇인지, 사랑의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깨닫고 거짓의 인간 사회에 휘둘리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 말에 구애받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에게 자신이 없다는 증거이다.

마음은 무한대라 ‘이별’이 없다. 마음은 이별이 없는 세계이다

나의 ‘마음’이 원점이고, 이 원점은 ‘지금’ ‘이곳’이다. ‘마음’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고 공간의 확대를 느끼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나의 마음이 약동할 때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 『모모』에도 나오듯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있으며,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시간을 감지하기 위한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 ‘하지만’ 슬프게도 심장은 확실하게 살아서 고동을 치고 있는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인간이 있다.”
시계는 시간을 균등하게 쪼개고, 육신을 가진 인간은 이 객관적인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은 마음 작용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 객관적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삶을 즐길 수도 있다. ‘시간의 인과율에 몸을 맡기면서도 그 인과율에 속박당하지 않는’ 삶이 곧 선(禪)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여 “진정으로 이 세상에 살아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 선(禪)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엔데는 이를 ‘즐거워하는 것, 몰두하는 것, 꿈꾸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모도 선(禪)을 말하다』는 이러한 삶을 단지 머릿속으로만 그리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을 떠나서는 선도 인생도 없기 때문이다. 실천은 사람을 성장하게 해 주는 것으로, 인간적 성장이란 자신감과 용기의 증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렇듯 ‘지금’이라는 한정된 시간에서 성장하며 살다 ‘무한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는 에고이즘의 눈으로 바라보면 서글픈 일이지만, 무아의 눈으로 바라보면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은 그저 인간이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시점을 바꾸면 ‘무심’도 ‘무집착’도 결국은 ‘유희’의 ‘삼매’이고, 인생은 놀이 그 자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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