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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파시즘 그리고 하느님
샨티 200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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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1부 하느님
1 종교의 기초
2 꼭두각시 하느님
3 현실에 기초한 구원

2부 파시즘
4 근본주의의 의제
5 자본주의의 어두운 신
6 기업이 당신의 영혼을 잡아먹을 것이다
7 석유, 오만 그리고 전쟁
8 파시즘 아래의 삶

3부 아메리카
9 9·11 폭력에 대한 응답
10 9·11 그 후
11 전쟁이라는 핑계 아래

4부 정직한 종교
12 하느님의 정당한 상속자
13 최고의 이상들을 종교로부터 구하기

맺음말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데이비슨 뢰어 (Davidson Loehr)
음악가, 베트남 전쟁 종군 사진작가, 그리고 목수였으며, 1979년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여 문학 석사를, 그리고 철학과 종교학 박사 학위를 땄다. 지금은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교인 640명의 제일 유니테어리언 보편구제설 교회the First Unitarian Universalist Church의 담임 목사이다.
역자 : 정연복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읽는 성서》 《함께하는 예배》 《오늘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신 예수》 등의 저서를 비롯하여, 《트로츠키》 《신비주의 신학》 《냉전과 대학》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 등의 번역서가 있으며, 《한국의 기독교 명시》 《세계의 기독교 명시》 등을 엮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39쪽 | 352g | 153*224*20mm
ISBN13
9788991075405

책 속으로

“사람들은 이단heresy을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선택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 어에서 유래한다. 선택한다는 것이 왜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가? 일부 오만한 작은 집단들이 선택은 끝났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요, 그들 자신만이 이 모든 ‘하느님의 일’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그들의 선택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이단자로 정의된다.…… 나는 그야말로 철저한 이단자다.”

---머리글 중에서

출판사 리뷰

다른 믿음과 생각을 부정하는 종교와 정치는 얼마나 위험한가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이단자라고 선포하면서 시작된다. ‘예수의 종교’는 좋아하지만 ‘예수에 관한 종교’는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저자는, 근본주의 기독교가 판을 치는 미국에서 ‘종교적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목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2001년의 9.11 사태를 전후해 5년 사이(2000년 9월 10일~2005년 1월 2일)에 행한 설교들을 모은 것으로,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치 행위가 어떻게 파시즘이라는 공통의 분모 위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환기시키고, 그것들이 어떻게 인간으로 하여금 정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지 또 인간으로서의 이상과 품위와 능력까지 강탈해 가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최고의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옹호하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세 가지 강력한 힘, 즉 돈과 권력과 종교의 왜곡된 조작들로 인해 끝장이 났다. 미국은 일부 지극히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금전적인 또 제국주의적인 허기를 채워주고자 교묘하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살인과 전쟁을 저질러왔고, 우리에게 권한을 주기보다는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사람들 간의 결탁으로 돈과 마음과 영혼을 수탈하고 있다. 즉 “정치 제도와 종교를 우리 중 가장 못된 자들에게 강탈당한 채로, 부자들의 곡조를 연주하는 파시스트 드럼 연주자들 뒤로 한 나라가 졸졸 좇아가고, 그러는 사이에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그들의 명령과 통제의 제국은 우리의 희망, 우리의 안전감,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 대부분을 파괴하고 있다.”(p.229)

소란을 피우는 것은 신이 아니라 우리이다
오늘날 미국인 대부분이 성경을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따라서 상징과 은유, 그리고 시적 이미지와 이야기로 삶을 묘사한 신화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거나 “테러리스트를 추적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사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팻 로버트슨이나 제리 폴웰 같은 근본주의 목사들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존재하면서 인간사에 개입하여 상과 벌을 내리는 지극히 인격적인 하느님이다. 심지어는 인간간의 증오와 학살까지도 명령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이 같은 문자적인 의미의 하느님을 ‘꼭두각시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무게를 갖거나 공간을 차지하는 구체적인 존재라고 믿어지는 모든 신은 사람 손에 부림을 당하는 꼭두각시를 닮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이 선한지 악한지, 섬길 만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말이다. 한 예로 그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을 재인용하여, 으스스한 소리를 내는 종교 의식용 악기를 가지고 사회 질서를 유지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부족 이야기를 든다. 그들 부족의 성인 남자들은 부족의 행위를 통제하기 위해 신들이 부족에게 화가 나면 밤에 숲 속에서 이 악기로 소리를 낸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악기로 소란을 피운 것은 신이 아니라 부족의 어른 남자들이었다.
“어떤 자가 남의 아내와 한자리에 들었다가 붙잡혔을 경우에는 같이 자던 그 남자와 여자를 함께 죽여야 한다”(〈신명기〉 22: 22)와 같이 끔찍스러운 성경의 구절도 이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그 당시 그곳에서 그런 말들을 만들어낸 사람은, 그가 누구였든지, 권위 혹은 사회 통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믿는 신의 입에 저 피비린내 나는 말들을 담으면서까지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p.57)
그러나 문자적 수준의 하느님 개념을 버리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맞붙어 씨름한 야곱처럼) 절름발이가 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도전이다. 소란을 피우는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종교에 대한 그동안의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것과 하느님이라는 개념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마치 불교에서 이야기하듯, 손가락을 버리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던 달을 마침내 바라보게 되는 일과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누가 소란을 피웠는지 이해하고, 우리의 진리와 신들 대부분이 정치인, 목사, 그리고 교회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라는 것을 이해하여 어린아이의 에덴동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한 거짓 신들의 정체를 폭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에는 경이와 기적, 신비, 그리고 변형의 마법이 존재한다. 우리는 행동하지 않아도 좋다는,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는 핑계나 변명거리를 잃는다. 에덴의 동쪽에서 온전함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의 소명이다.”(p.61)

‘정통’은 어떻게 신성을 모독하는가
자신들이 만든 신의 이름으로 소란을 피우는 인간들의 종교가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규율과 통제를 통해 권위와 힘을 배타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규율을 일컬어 ‘정통 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떤 집단이 정통 신앙을 확립한 후의 선택을 가리키는 신학 용어는 ‘이단’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정통 신앙이야말로 인간은 물론 모든 신을 자기 집단의 크기에 맞게 싹둑 잘라내는 일종의 집단 사고와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쇠 침대에 맞게 손님의 발을 늘이거나 잘라버리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나, 모든 사람에게 집단의 영혼을 심어주고 개인적인 차이를 말살하는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트렉〉의 보그와 같다는 것이다.
‘정통’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는 “진심에서 우러난 믿음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건 똑같이 순수한 것으로 환영받는 분위기”, 곧 “당신이 2등 시민이라거나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요받는 일 없이, 자신의 신학적?사회적?도덕적 혹은 정치적 신념을 말로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p.68)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없이는 어떤 공동체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당파성을 조장하고 서열을 매기고 지배-복종의 관계를 제도화하고 도전과 반발을 폭력으로 억압하려는 모든 시도는 세상을 우리 믿음의 형상대로 만들려는, 곧 신과 제도를 우리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로 바꾸려는 이러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올바른 입장은 오로지 하나뿐이며 바로 자신들이 그런 올바른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다. 종교에서의 정통 신앙과 숭배자 집단, 또 반대자를 체포할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 체제라든지, 보그처럼 활동하는 여타의 사회적,신학적,문화적 이데올로기 속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p.76) 그리고 제국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미국의 경제와 정치 체제가 바로 이 종교적 근본주의를 그대로 빼닮아 있다.

근본주의는 종교적 파시즘이고, 파시즘은 정치적 근본주의다
이 같은 근본주의자들의 신들은 미국의 정치와 경제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민주주의와 부유한 소수의 사익을 추구하는 금권 정치, “이 두 개의 강력한, 그러나 정반대되는 생각의 뿌리는 모두 미국이라는 국가 수립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두 가지 사고의 중심은 각자……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신들 또는 우상들이 되기 위해 지금도 전투를 벌이고 있다. 국민이 국가를 통치할 것인가, 아니면 대기업이 국가와 국민을 통치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저울의 눈금이 자본주의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민주주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p.101) 그리고 이 자본주의의 신은, 모든 신들이 그렇듯이, “질투하는 신이며, 따라서 아무런 국가적 경계도 없다. 결국 대부분의 신들, 우상들은 온 세상을 통치하고 싶어한다.”(p.104) 그러한 기업과 자본의 열망이 만들어낸 것들이 바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것들이다. 이 자본주의의 신들에게는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을 위해 최대한 많은 돈을 버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요 선이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전 세계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군사적 차원에서도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상,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한 군사 계획의 골자에는 과거 일본의 진주만 폭격 같은 뭔가 대이변의 촉매 작용을 할 사건이 없는 한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는 슬픈 곡조가 흐르고 있다.(p.134) 그리고 마침내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건물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는 사건이 터졌고, 이는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세계의 시장과 자유를 군사적으로 공격해 접수하도록 밀어붙일 구실거리를 제공하는 이른바 ‘대이변의 촉매 작용을 하는 사건’이 되었다.”(p.136) 부시 미 대통령은 맨 먼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령을 반포해 명령과 통제의 제국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 데 이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테러범을 추적해 죽이거나 그들을 보호하는 나라를 유엔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인 결정에 기초해 공격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리를 주장하고는 이듬해 봄 이라크를 공격하였다. 이는 과거 히틀러의 파시즘 정부가 4천 명의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하면서 시민의 자유를 정지시킨 데 이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일련의 과정과 유사하다.(p.137 이하)
이처럼 소수의 부자들이 권력을 독점 행사하는 금권 정치,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제국주의적 꿈, 그리고 이를 종교적?도덕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삼위일체되어 미국을 파시즘의 물결 속으로 휘몰고 있다고 저자는 고발한다.(그 구체적인 징후들에 대해서는 8장 〈파시즘 아래의 삶〉을 참조)

최고의 이상들을 어떻게 종교로부터 구할 것인가
9.11 사태가 일어나고 닷새 후 저자는 그 공격이 자유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파괴적이고 탐욕스러운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에 대한 도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폭력과 응징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미국의 시민들이 분노와 복수의 감정을 거둬들이고 “이제 폭력은 충분해”라고 외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9장〈9.11 폭력에 대한 응답〉) 그리고 9.11 사태 후 열이틀 만에 한 설교(10장〈9.11 그 후〉)에서는, 공동의 적에 대한 증오와 전쟁을 통해 공동체를 재결속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구체적인 음모들과 함께 그 아래 깔려 있는 ‘전쟁의 신학’을 폭로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의 신학은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뿐 아니라 탈레반의 이슬람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근본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놀랍도록 강하고 깊은 유사성이 있다. 둘 모두 거의 동일한 의제들을 갖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 근본주의자들이 ‘그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똑같은 증오의 목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세계의 모든 근본주의 운동의 의제는 종교나 문화와 상관없이 거의 동일하다.”(그 구체적인 예들에 대해서는 이 책 p.83~88 참조) 그곳이 어디든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하느님, 그리고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의 국민만이 존재하는 곳에, 인종,국가,종교,성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일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평화의 신학’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가 종교적 파시즘과 정치적 근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강을 건넌 후 뗏목을 버리듯, ‘죽은 신’ 혹은 ‘꼭두각시 신’을 앞세워 자기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소란을 피우는 못된 목사들의 종교, 그리고 이에 기대어 엄청난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죄 없는 이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승인하는 파시스트들의 종교를 버리고, 우리의 희망, 꿈, 열망, 그리고 부드러운 자비심에 어울리는 더 큰 탈것으로 갈아타고서 손가락이 가리키던 근원의 것, 바로 우리의 최고 이상(이 책에서는 이를 ‘하느님의 정당한 상속자’라고 표현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 p.212 이하 참조)을 향해 성큼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이 믿어오던 것들을 보통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한때 하느님이라 불렸던 것의 정당한 상속자를 발견하려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이러한 일은 기성의 종교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기성의 종교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과거 예수가 성전에서 그랬듯, 기존의 교회의 권위를 뒤엎는 혁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종교가 사제들은 선포하고 신자들은 순종하는 일이라는 생각 너머로까지 우리가 자라기를 나는 바란다. 만약 진리, 정의 그리고 연민의 화신, 곧 하느님의 화신이 존재한다면, 그 화신은 오랫동안 죽은 상태에 있던 신들, 예언자들, 그리고 구세주들의 모습이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을 취해야 한다는 깨달음에까지 우리가 자라기를 나는 바란다.…… 정직한 종교의 영혼은 자신의 가장 훌륭한 모습을 추구하는 인간의 영혼이다. 모든 정당한 종교의 영혼은 인간의 정신이다.”(p.225)

추천평

약 4천 명의 사람을 죽인 2001년 뉴욕의 ‘9?11 사태’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잊지 말 것은, 저자 말대로 그 “살인적인 광신자들은 살인자도 광신자도 아닌, 미국의 경제적 행위와 정책이 탐욕스럽고 파괴적이라고 여기는 다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미국의 종교적 근본주의와 제국주의, 금권 정치가 어떻게 얽히고설켜 ‘파시즘’ 체제와 전쟁을 촉진하는지 잘 보여준다. 또 이 책은 사랑과 정의가 흐르는 세상을 재창조하기 위해 좌절과 냉소를 넘어 정직과 용기, 희망과 비전이 절박함을 역설한다. 미국의 역사와 본질을 이렇게 쉽고도 재밌게 정리한 책은 요즘 찾기 힘들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이윤의 확대가 자유의 확대라고 믿는 미국식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탈레반의 근본주의 못지않게 독선과 폭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며 인간의 품위를 짓밟고 있다. 미국의 주류 기독교와 합세하여 기세를 떨치고 있는 미국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저자는 자유로운 종교인의 영혼으로 고발한다. 예수가 당시 지배 구조를 움직이는 이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고함치듯이.
양명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기독교윤리학)
미국에서 가장 생각이 깊은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쓴 이 비범한 책은 미국 역사 속에서 종교의 특별한 사명을 살피면서, 종교가 미국의 정치에서 높은 도덕적으로 토대로 역할해 온 본연의 자리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
로버트 케네디 (Robert F. Kennedy 2세)
소란과 비탄에 잠긴 이 시대, 그의 명료한 목소리에서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이 책은 그가 공격하는 소심한 자유주의적 교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며, 특히 종교의 이름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하는 거짓 예언자들을 화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진실하다. 그는 우리에게 도덕적인 삶을 살라고 말한다. 그는 불관용과 불의에 대해 정의와 관용으로 맞서라고 말한다. 모험이 없이는 어떤 도덕적 자세도 취할 수 없다는 것, 신앙인들의 힘겹고 쓰라린 수고 없이는 어떤 희망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크리스 헤지스 Chris Hedges (퓰리처상 수상 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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