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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역의 개념
제 2장 역의 종류 제 3장 역의 구조 제 4장 『주역』을 통해 본 大人의 세계 제 5장 괘의 배열 순서 제 6장 음양오행설 제 7장 사주학의 응용 제 8장 황제내경과 오운육기 제 9장 京房 이전의 상수역학가 제 10장 경방의 상수역 제 11장 경방의 義理易 이론 제 12장 경방 이후의 상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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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내 최초의 사주학(四柱學) 박사인가?
역(易)은 옛날 인간들에게 처음으로 목축을 가르쳤다는 복희씨(伏羲氏)가 하늘의 형상과 땅의 법도를 관찰하여 8괘(卦)를 만들고 이를 중첩시켜 64괘를 만든 것에서 시작한다. 그 후 역은 신농씨(神農氏)와 황제(黃帝), 요(堯), 순(舜) 시대를 통해 연구가 거듭 되어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64괘에 6개의 효(爻)가 변할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아 384효(爻)를 창안했고, 후천팔괘(後天八卦)를 새로 만들어 역(易)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요즘에 역(易)을 주역(周易)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周) 문왕(文王)의 역(易)을 말하는 것이다. 역(易)은 본래 자연과 인간의 덕을 숭상하고 나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예측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주역에서는 본시 상(象)을 중히 여겨 『계사전(繫辭傳)』에 "역(易)은 상(象)이요 상(象)은 본뜨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위(魏)나라에서 태어난 왕필(王弼)이 의리역(義理易)을 창시하면서 "상(象)이란 의(意)를 묶어두는 수단이니 의(意)를 얻으면 상(象)을 잊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왕필 이후 의리역파(義理易派)는 융성하고 상수역파(象數易派)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 후 주자(朱子)가 나타나 상수역과 의리역을 종합하여 역학의 정도(正道)를 세웠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수역이 자연과학과 더불어 많은 발전을 하고 있으나 일부 의리역을 하는 사람들이 상수역은 신비주의적 경향이 있는 미신이라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리하여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의리역은 튼튼히 뿌리를 내렸지만 점을 쳐서 미래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상수역은 발을 붙일 수도 없었다. 그런 세월이 오래도록 흐른 후에야 윤태현씨가 3만여 명에 대한 사주 자료를 모아 근접률 93%의 데이터를 제시하며 의리역의 벽을 뚫고 처음으로 상수역(사주학)으로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고, 이로써 사주와 점으로 미래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 제도권에서도 비로소 학문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