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Sung Huun Jo
조성훈의 다른 상품
|
“이 시대의 마지막 이론적/심미적 마르크스주의자, 프레드릭 제임슨.
우리는 왜 그를 주목해야 하는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오늘날 영어권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문화비평가일 것이다. 건축이나 과학소설, 후기 아도르노(Adorno)의 난해한 사유에서부터 제3세계 증언소설(testimonio novel)에 이르기까지 그가 분석하는 영역은 실로 놀랍다. 그가 낯설어하는 문화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화대상 간의 전통적인 구분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몇 안 되는 사상가 중 하나이다. 그는 고급 모더니즘과 같은 복잡미묘한 작품뿐만 아니라,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사이버펑크의 난해함에도 기꺼이 관심을 쏟는다. 그는 매체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텍스트의 분석은 어떤 빌딩의 사회적 묘사가 되기도 하고, 주류 영화 비평이 아방가르드 비디오의 감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시에 그의 글이 특히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길고도 복잡한 문장들 속에서 하위 종속절이 얽혀져 만들어내는 이론적 리듬은 초심자에게는 거의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수준에 이르면 이러한 어려움은 반드시 부딪쳐야만 한다―제임슨의 이 같은 스타일은 단일하면서도 다양한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또한 거기에는 난해함과 어색함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매력이 있다. 그러나 제임슨의 작업은 또 다른 점에서 어려움을 던져준다. 그는 두 명의 대 스승인 사르트르(Sartre)와 아도르노처럼 체계적인 사상가이다. 말하자면 가장 지엽적이고도 특수한 분석조차도 전반적인 이론적 틀 내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특정 분석은 변증법적 방식이긴 하지만 상당히 세련되고도 정교한 문화 사회 이론과 항상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의 밑바탕에는 여러 가설들과 참고문헌이 있다―모든 텍스트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제임슨을 읽는다는 것은 한 편의 특정 텍스트를 읽는 것이기보다는 작품 전체를 읽는 것이다. 체계적인 사유가 가지는 하나의 특징은, 처음에는 매우 더디게 시작되지만―기본적인 대전제가 작동하듯이―일단 이 대전제가 정교해지고 나면, 그 관점에 의해 점점 더 많은 내용들이 조명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제임슨 자신의 저서들과 경력 역시 이러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즉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관류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이론을 아주 힘겹게 이해하고 나서, 80년대에 들어 요란한 문화 분석으로 자리를 옮겨,『정치적 무의식』(코넬대학 출판사, 1981)을 출발로 하여 그 책의 여파로 온갖 종류의 미디어를 건드리며 작업을 해온 것이다. 영화에 대한 그 자신의 집요한 관심은 1970년대에 『자도즈』(『점프컷』3호 1974년 9, 10월)와 『뜨거운 오후』(『스크린 교육』30호, 1979년 봄)에 관한 논문에서 드러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영화이론에 개입한 것은 1990년 5월에 영국 영화 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에서의 강연(이 책의 기초를 다진 강연)과 같은 해에 출간한『가시계의 서명』(루트릿지, 1990년)과 더불어 시작된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제임슨의 사유에서 몇 가지 중요한 가정들에 대해 낯설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와 이론적 가정이 서로 피드백 되는 방식을 충분히 해설하는 것은 다른 책을 통해 해야겠지만, 여기서 간단히 제임슨의 작업에서 결정적인 용어 세 가지를 열거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 무의식,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인식적 매핑(cognitive mapping)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