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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중국과의 조공외교 관계 2. 공녀요구의 목적 3. 공녀의 헌납 상황 1) 고려시대 원에 대한 공녀 2) 조선전기 명에 대한 공녀 3) 조선후기 청에 대한 공녀 4. 공녀의 선발과정 5. 공녀의 폐단 및 기피실태 6. 공녀 출발시의 참상 7. 공녀들이 끌려간 길 8. 공녀 중지 운동 9. 공녀의 운명 10. 기황후의 등장과 그 일족의 득세 1) 기황후의 등장 2) 기씨일족의 득세 3) 기씨일족의 횡포 4) 기씨일족의 몰락 11. 공녀로 혜택을 본 친족 12. 고자의 헌납 1) 고자의 헌납 상황 (1) 고려시대 (2) 조선시대 2) 고려·조선 출신 중국 환관의 활동 (1) 고려 출신의 원나라 환관 ① 기황후를 도운 환관 ② 고려에 폐해를 끼친 환관 (2) 금의환향한 조선 출신의 명나라 환관 13. 공녀의 영향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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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도 공녀로 뽑히지 않으려는 백성들의 몸부림은 계속되었다. 효종 원년(1650) 9월의 경우를 보면, 서울에서는 포도청으로 하여금 여염집의 나이 어린 미모의 처녀를 찾게 하였는데, 뽑힌 처녀 가운데는 스스로 삭발하는 자도 있었고, 그 부모와 형제들은 도로에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러한 형편이었으므로 공녀로 뽑히지 않기 위하여 7, 8세 되는 아이는 거의 모두 혼인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효종 원년 10월에 부제학 민응형이 임금에게 아륀 바에 의하면 "딸을 둔 집에서는 마치 병화를 피하듯이 달아나 숨고, 심지어 머리를 자르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자까지 있어 원망과 탄식이 길에 가득합니다. 여기에다가 세금이 고르지 못하고 기근과 흉년까지 겹쳐 백성들이 편안히 살지 못하므로 근심스런 탄식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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