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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은 없다
마거릿 대처의 생애와 정치 양장
박지향
기파랑 20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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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top100 1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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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0.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

제1부
1. 최초의 여성 총리
2. 최초를 위한 준비
3. 최초를 향한 비상

제2부
4. 외부의 적, 내부의 적
5. 이 길밖에 없다
6. 정신 상태를 바꿔라

제3부
7. 여성성의 정치
8. 추락
9. 고독한 리더

대처의 유산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朴枝香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스토니브룩 소재)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프랫대학교와 인하대학교를 거쳐 1992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도쿄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2011~2015), 한국영국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대통령 소속 인문정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영국사와 서양근현대사 전공으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집중 연구했으며 지난 10여 년간 영국, 아일랜드, 일본, 한국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스토니브룩 소재)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프랫대학교와 인하대학교를 거쳐 1992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도쿄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2011~2015), 한국영국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대통령 소속 인문정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영국사와 서양근현대사 전공으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집중 연구했으며 지난 10여 년간 영국, 아일랜드, 일본, 한국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노력을 진행해왔다. 저서로 Profit-Sharing and Industrial Co-partnership in British Industry 1880-1920: Class Conflict or Class Collaboration?(London & New York),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제국의 품격』,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클래식 영국사』, 『대처 스타일』, 『슬픈 아일랜드』,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제국주의: 신화와 현실』 등의 저서가 있고, Past and Present, Journal of Social History,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서양사론》, 《역사학보》 등 국내외 저널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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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9월 1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58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1965522

출판사 리뷰

1. 2007년 한국, 왜 대처인가?
한나라 경선이 끝나고, 대선을 겨냥한 범여권 대권주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제 70여 일 후에는 나라의 운명을 걸머질 지도자가 선출될 것이다. 국민은 어떤 지도자를 택할 것인가?
거리를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였던 2002년 대선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고, 취임 두 달 뒤에 75%를 기록했던 대통령 지지도는 2006년에 7%까지 하락했다. 지지도가 지도자의 정치적 역량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철학과 이념적, 정책적 결정이 국민 삶의 행불행을 좌우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새로운 선택 앞에 놓인 우리가 명석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들뜨기보다는, 냉철하게 과거의 경험을 되짚어 보는 일일 것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유사한 상황에서 우리와 비슷한 역경을 헤쳐나간 다른 나라 다른 지도자의 경우를 살펴보는 일은 후회할 선택을 피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처에 주목한다. 한때, 세계 최강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대영제국이 2차 대전 후 영국 사회에 만연하던 의존주의, 집산주의에 좌초하여 소위 ‘영국병’에 걸린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을 때, 대처는 국민에게 그 옛날 ‘위대한 영국’의 영광을 돌려준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대처가 보여준 정치적 리더십은 오늘날 우리 사회처럼 진정한 리더십이 절실한 곳에서 더 큰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돌아가고 싶으면 당신들이나 돌아가시오. 나는 돌아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라는 확신에 찬 대처의 강인한 리더십은 수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지만, 바로 대처주의 혁명을 추진한 동력이었다. 2007년 한국은 어떤가. 국가 정체성의 왜곡, 극단을 치닫는 계급 계층 간 갈등, 정치권력화한 강성노조, 경쟁력을 상실한 공교육, 비대한 정부의 부패한 관료주의, 사회의 도덕 불감증···. 1970년대 영국병과 비슷한 ‘한국병’에 고통받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마거릿 대처의 삶과 도전은 새로운 미래의 선택을 위한 귀중한 모범이 될 것이다.

2. 대처는 누구인가?
‘칼리굴라의 눈과 메릴린 먼로의 입술’을 가졌다는 마거릿 대처. 그녀는 엘리자베스 1세와 더불어 영국 역사상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을 휘두른 여성이다. 여왕 엘리자베스는 왕실에서 태어났지만, 대처는 소도시 잡화점 주인집 딸에 불과했다. 그렇게 보면, 마거릿 대처는 자수성가한 영국 여성 가운데 가장 강력한 권력을 쟁취한 사람이다.

사실, 마거릿 대처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은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한편에는 그녀를 마치 여왕처럼 흠모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전염병처럼 혐오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도 그녀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녀가 천명했듯, ‘중간은 없다’라는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총리로서 대처의 업적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놀라웠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그녀는 총선에서 연속적으로 세 차례 승리하면서 11년 반 동안 다우닝 가 10번지를 지켰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적으로 세 가지 맥락에서 명백한 아웃사이더였다. 여성이라는 사실, 보잘것없는 배경, 그리고 급진적인 정치적 사고가 그것이다. 그렇기에 대처가 일으킨 파문과 영향력이 더욱 중요하다. 1980년대를 살았던 영국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처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 대처의 유산
영국병의 치유
1970년대 영국은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바닥을 맴도는 경제성장률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번지는 ‘파업 열병’이었다. 대처는 영국병의 원인을 게으르고 방만한 경영을 하면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정부에 의존하는 사용자와, 반(反)기업적이고 호전적인 행태로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는 노동조합에서 찾았다. 그녀의 처방은 사용자를 치열한 경쟁에 노출시키는 한편, 분파적 이익만을 챙기며 파업을 일삼는 노조의 구태를 혁파하는 것이었다. 대처는 이 과정에서 1945년 이후 영국 사회를 지배해온 “케인스 식 사회·민주적 합의의 정치”를 무너뜨렸고, 합의를 ‘협잡’으로, 그것을 믿는 보수당 지도자들을 ‘반역자’라고까지 부르면서 격렬히 비난했다.

당시 노조의 횡포는 영국 국민이 더 이상 하나의 국민이 아니라 갈기갈기 찢긴 분파적 이익집단일 뿐이라는 사실, 영국 사회에는 이제 법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영국의 발밑에는 끝없는 나락만 있을 뿐이라는 총체적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처는 영국의 쇠퇴를 막고, 영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사명을 자신에게 부여했고, 그것을 현실로 이루어 냈다.

대처주의 혁명
대처는 자기 이름에 “주의(ism)”를 붙인 이념, 즉 “대처주의”를 남긴 최초의 영국 정치인이다. 대처는 국민 삶의 방식과 사회구조, 사회관계,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사고에 실로 혁명적인 대변혁을 가져왔다. 그것을 혁명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에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을 실천케 했기’ 때문이다.

대처주의란 한마디로,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도덕적 보수주의가 결합한 것이다. 즉, 경제적으로는 통화안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고,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자유시장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며, 개인과 기업의 진취적 기상과 정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대처는 시장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정부는 언제라도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는데 이 점에서 대처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대처주의의 또 다른 면인 사회적 보수주의는 엄격한 규율과 도덕률을 되살리고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소위 빅토리아시대의 가치관을 되살리는 것과,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치국책을 포함했다. 특히 대처가 강조한 도덕적 보수주의는 1945년 이후 영국 사회에 퍼진 해이, 무책임, 방종을 몰아내고,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책임감 있고, 인내하고, 자력으로 성취하는 개인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의무감은 사라지고 끊임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경향을 종식하려면, 규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처는 그것이야말로 영국의 쇠퇴를 막고 옛날의 영광을 되살리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라고 확신했다. 대처는 자신부터 솔선수범하여 도덕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고, 심지어 총리 봉급의 일부를 매달 정부에 반납하는 청결한 도덕성을 보였다.

그리고 대처는 국민에게 해악을 끼친 사회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표출했다. 1945년 이후 영국 사회를 장악해온 ‘케인스 식 사회민주주의’의 물질적 실패는 명백했다. 공공부문은 사기업이 창출하는 이윤에 기생해서 간신히 연명할 수 있었고, 집산주의는 전후 사회 재건의 기제로 필요했지만,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체제의 가장 큰 단점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사회와 국가에 기대는 ‘의존 문화’를 부추긴 것이었다. 그녀가 영국의 경제적 회생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런 의존 문화를 없애 ‘영국인들의 정신 상태를 바꾸는 일’이었다. 대처는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이 쇠퇴하게 된 것은 국민의 책임의식이 약해지고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 사회의 탓, 국가의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결책은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바꾸는 것인데,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다. 즉,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여 또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송두리째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그처럼, 대처는 영국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즉, 영국의 전통은 개인의 역할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강한 국가의 이상을 제시하면서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1977년, 대처는 노동당이 의례를 행할 때 “적기가(The Red Flag)”를 부르는 것을 비난하면서 보수당이 휘날리는 깃발은 “유니언 잭”이라고 천명했다. 이처럼 대처주의를 구성한 또 하나의 축은 애국주의였다. 그것은 포클랜드 전쟁과 같은, 어찌 보면 불필요한 전쟁을 치르게 했지만 자신감을 잃고 극도의 무기력증을 앓던 당시의 영국인들에게는 필요한 처방이기도 했다.

대처의 대발견
대처가 세 번 연속 총선에서 승리하고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비판자들은 국민이 그녀가 주창한 대의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대처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고 자택 소유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소비부문에서 번영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1년 반이라는 장기 집권은 그런 식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대처가 정치적으로 성공한 근본 이유는 그녀가 이제껏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영국 사회의 계층 구조를 분석하고 그것에 맞게 국민을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관건은 ‘중산층의 발견’에 있었다. 모든 정당이 대중을 노동계급과 동일시하고 그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정권을 잡으려 한 데 반해, 대처는 사회적 다수를 노동대중이 아니라 ‘중산층, 혹은 중산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과감하게 그들에게 접근하는 정책을 폈다. 다시 말해서 반대파를 적으로 간주하는 구태 정치가들과는 달리, 반대 세력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전환하는 놀라운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것은 영국 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고, 대처 이전에는 아무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대처는 부의 창출을 미덕으로 격상시키고, 돈 버는 일이 ‘어쩐지 옳지 못하고 천박하다’는, 지식인들이 대중에 심어준 위선을 몰아내려 했다. 대처는 20세기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자본주의라는 ‘더러운’ 단어를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외친 거의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그녀가 주장한 ‘대중 민주주의’는 일부 갑부들만을 위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영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본가가 되는 경제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대처주의 혁명의 유산이 가진 파괴력은 역설적으로 노동당의 변신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역사적 아이러니는 대처가 적수인 노동당을 근본적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노동당은 집권을 위해서 상당히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것은 대처에게서 입은 충격 때문이었다. 노동당은 소위 ‘미치광이 좌파’들을 떨쳐버리고 중도좌파 정당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과거 노동조합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전통을 과감히 쳐부수었다.

오늘날, 영국병에서 완전히 치유된 영국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2.8%의 지속적 경제성장, 1%대의 인플레이션, 4%대의 실업률을 기록했으며, 크게 향상된 노동시장의 유연성, 250만 개의 일자리 창출 등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이룩하여, 국내총생산 규모에서도 세계 4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처는 좌절에 빠진 국민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모든 것을 국가와 사회의 탓으로 돌리던 의존적인 국민을 자기 운명의 주체자로 만들었으며, 편향된 이념에 갇혀 있던 일부 국민에게 자유롭고 긍정적인 새로운 정체를 부여했다.

4. 최고를 위한 선택
“나는 영국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쇠퇴가 불가피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회복하고 이 세상으로부터 다시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1976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대처가 한 말이다. 쇠퇴하는 나라의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대처의 업적, 그것은 불후의 기념비로 남아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2006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기업 활동 순위에서 총 175개국 가운데 영국은 6위, 한국은 23위였다. 우리에게도 대처 여사처럼, 규제만을 일삼는 국가를 통제하고 개인의 노력과 창발성을 부추겨줄 지도자, 이익집단들의 분파적 이기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지도자,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짓밟는 하향평준화를 멈추고 근면과 노력과 수월성이 인정받는 사회를 확립하는 데 앞장설 지도자가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이 시점에서, 국민에게 다시 한 번 자신감과 목표 의식을 회복시키고 대한민국을 ‘최고의 나라’로 만들어 갈 지도자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과연 언제쯤 우리의 대처는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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