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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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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판이란 곳이, 사전 지식이 없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추상화와 똑같은 곳이야. 수사 경험이 많다 해도 큰 도움이 안 될걸. 이 바닥의 생리를 먼저 이해해야 일을 처리할 수 있어. 미술판은 비밀이 많은 곳이야. 그런데 그 비밀에도 ‘공공연한 비밀’과 ‘진짜 비밀’이 있지. 그걸 잘 구분하는 게 포인트야 --- p.55
“내가 알고 있던 예술은 거기에서 끝났다고요. 졸업 후 대학원에 다니면서 뉴욕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서 잠시 일하게 됐는데, 그 무렵 지금 누리 씨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뉴욕이 어떤 곳이에요? 현대미술의 메카잖아요. 날고뛴다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다 모여 있고, 세계적인 큐레이터, 딜러, 옥션 회사가 거기에 다 있잖아요. 처음에는 완전히 난장판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겉으로는 예술 한답시고 온갖 고상 다 떨지만 그 속에서는 정말 어느 분야 못지않게 너저분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어요. 그리고 그 중심에 돈이 있었고요.” “일하시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셨나요?” “생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차츰 인정하게 됐죠.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블랙홀과 같아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지요. 예술이 예외라면 그게 이상한 거죠. --- pp.123~124 작품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어요? 작품은 누가 정말 진짜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누가 그린 어떤 작품이다.’라는 믿음을 갖는 순간 진짜가 되는 겁니다. 예술가가 어떤 사물을 보고 ‘저것이 예술이다.’라고 하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처럼 감상자도 그렇게 믿으면 예술이 되는 겁니다.” “당신, 날 또 바보로 만들려고 하는데, 내가 아무리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궤변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이번에 문제가 된 임영숙의 그림을 생각해보세요.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 가짜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있을 겁니다. 그 그림이 진짜여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라는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소장자가 그렇게 믿으면 그것은 진짜인 겁니다. --- pp.259~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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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관심과 이슈로 떠오른 ‘미술’을 소설로 읽는 재미
‘미술관의 꽃’ 큐레이터와 화가의 숨겨진 비밀, 그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검은 음모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파헤치는 지적 게임이 시작된다. 한국 미술계를 둘러싼 온갖 비리들을 모아놓은 듯한 이른바 ‘신정아 사건’은 인간의 위선과 욕망, 지배계층의 추한 행태와 권력을 향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등, 인간의 위선과 그릇된 욕망을 줄줄이 보여준 씁쓸한 사건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씁쓸한 뉴스의 중심에서 집중 조명을 받은 미술계와 큐레이터 등 미술과 연관된 일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다양하게 증폭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MBC 드라마 <옥션하우스>가 새롭고도 참신한 소재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미술을 얘기할 때 교양이나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먼 나라 얘기’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술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보다 구체적인 관심, 즉 큐레이터, 아트딜러, 미술품 경매, 그림 유통, 아트펀드, 위작 등 그 범위가 다양하고도 넓어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미술과의 거리감이 예전보다 많이 좁혀졌다고나 할까. 이러한 때에 ‘미술 추리소설’을 표방한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 출간되어 미술 동네에 대한 일반인들의 높아진 관심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템페스타의 용과 누드화의 점에 숨겨진 알레고리를 찾아라! 미술관을 둘러싼 의문의 살인, 실종 사건. 그 안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의 실체. 진실은 과연 어디에 숨어 있는가? 그림의 비밀은 바로 그림 속에 있다! 국내 최대의 갤러리인 정로미술관 관장 박길용은 세계적 거장인 임영숙 회고전이 열리던 날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자살하기 전 박관장은 신인 화가 김준기에게 ?미술관의 쥐? 원고와 임영숙 화집, 그리고 ‘베네치아 파 회화전’ 세미나 티켓을 건네며 조르조네의 그림 <템페스타>에 대해 알 수 없는 말을 남긴다. 중진 화가인 지만규의 교통사고, 임영숙의 남편 윤휴의 실종, 그리고 박관장의 잇따른 자살……. 자살한 박관장을 최초로 발견한 큐레이터 양누리는 자살 이면에 무엇인가 있음을 확신한다. 양누리는 동기인 김준기와 함께 박관장 자살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첫 번째 단서는 임영숙 화집에 실린 누드화의 엉덩이 부분에 찍힌 점. 김준기는 <템페스타>에 그려진 용과 누드화에 찍힌 점 사이에 놀라운 알레고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는데……. 독특한 소재, 놀라운 반전, 찡한 울림까지 ‘그림 추리’를 활용한 미술 전문가의 신감각 추리소설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과 위작(僞作) 이야기를 다룬 이 책 『미술관의 쥐』는 이전 작품과는 달리 추리문학의 전형적인 틀을 정직하게 지키면서, 어떤 추리소설 작가도 쉽게 다루지 못한 ‘그림 추리’를 활용하여 독자들을 지적이고 감각적인 게임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만, 작가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이 시대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이 되어버린 그림 유통의 현실을 비판하고,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탐색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우리나라의 소설 소재는 빈곤한 편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국문학을 전공한 탓에, 그리고 주변의 문제에 천착하는 탓에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소설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에 방영된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의 인기에서 볼 수 있듯 대중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열망한다. 현재 일본소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독특한 소재’를 발굴하는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소설 시장에는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소설이 그리 많지 않다. 1996년 고고미술학 박사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써낸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이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연금술과 르네상스 미술을 결합한 지적 스릴러로 커다란 성과를 거둔 이후 한국 문단에는 이렇다 할 추리소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책의 뒤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미술관의 쥐』는 소재가 빈곤한 국내 소설 시장에서 미술학 박사이자 아트딜러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전공인 미술을 추리에 접목한 책으로, 기존 추리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가 최대 장점이다. 이 책은 ‘책 속의 책’처럼 소설 속에 또 하나의 미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재미까지 안겨준다. 소설의 내용과 관련된 미술 이야기를 에필로그에 ‘소설 속 미술 이야기’라는 별도의 읽을거리로 삽입하여 확장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르네상스 미술, 천재 예술가, 예술 후원자인 패트런, 화상과 마피아, 그림 위조범 이야기 등 미술에 얽힌 다양한 읽을거리가 컬러 그림과 함께 실려 있어 그림을 보며 글을 읽는 특별한 재미까지 더해준다.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듯한 이러한 색다른 시도 또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을 통해 한국 추리소설의 르네상스를 꿈꾼다 8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한국 추리소설은 9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쇠락기를 맞는다. 그 사이에 외국 추리소설은 명품 추리로서 자리를 잡은 데 반해 한국 추리소설은 그 명맥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틀에 박힌 공식에 뻔한 결말, 앞선 과학기술을 인지하지 못해 논리의 허점과 비약을 드러내는 비전문성 등이 추리소설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번역 추리소설이 부흥의 조짐을 보이며 부흥기를 맞고 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영향 덕분인지 최근에는 우리나라 작가의 추리소설 출간도 서서히 날개를 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최근 들어 추리소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독특한 소재에 있다. 또한 최근의 이사카 코타로의 『중력 삐에로』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등 추리를 기반으로 하되 사회의 부패를 꼬집는 작가들이 성공하고 있다. 또한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같이 전문가가 쓴 추리소설이 성공하고 있는 예에서도 보여지듯이, 독자들은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반전과 트릭만을 구사하는 기존의 정통 추리소설에서 벗어나 이제는 전문적이거나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 추리소설이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정통 추리소설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을 시도하고 실험적 사건 전개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나온 『미술관의 쥐』는 사회적 내용과 메시지를 담은 추리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추리에 접목하여 독자들의 요구와 취향에 맞게 출간되었다. 따라서 이 책의 출간이 우리 추리소설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