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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삼나무 앞에 서다
석기문화를 즐기다 야생 사슴과 함께 사는 길 바다가 차려 주는 풍요로운 밥상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아웃도어 라이프 서부 숲길 땔감 구하기가 주는 즐거움 토란 우수 숲은 바다의 연인 지구 크기로 생각한다 천사백만 년이라는 시간 내 별 내 나무 내 바위 햇살이 아프다 물의 길 아난다처럼 울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 집 짓기의 즐거움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 끝없는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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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땔감을 때면 자연스레 불길도 좋다. 또한 이상하게도 좋은 기분으로 불을 때면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좋은 불길이 생긴다. 그날은 삼나무이기는 해도 손수 골라 온 좋은 땔감으로, 그리고 좋은 기분으로 불을 지폈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없는 불길이 조용히 타올랐다. 겨우 목욕물을 데우는 일뿐이기는 하지만 그런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생은 완벽한 것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는 듯이 느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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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깊어 가며 꽃 수가 점점 늘어났다. 100개에 가까워지자 그것에만 열중하여 어떤 날에는 아직 날이 다 새지도 않은 시각부터 눈이 떠지는 일조차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끝내 100개를 넘어 107개를 기록했을 때의 그 숫자는 그로부터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커다란 기쁨의 숫자로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나팔꽃은 그만큼 소년인 나를 감동시키며 분발시켰던 것이다. 내가 피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나는 마치 내가 피어나는 것처럼 분발했다.
한 식물의 이름을 고대 로마와 현대의 영어권에서 욥의 눈물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염주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 속에는 인류에 공통되는 기도의 마음이 들어 있는 듯하여 대단히 흥미롭다. 들에 있는 무수한 식물 또한 그 하나하나가 이 염주처럼 특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고, 그것만 조사하고자 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속에는 우리들의 일생은 물론 또 한 생을 바쳐도 다 찾을 수 없는 보물(가미,혹은 의미)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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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5,6킬로 이상 떨어진 산속에 넓은잎나무를 심는 게 어째서 바다의 연인을 만드는 일이냐는 의문을 가질 사람도 적지 않을지 모른다. 전문가가 아닌 나는 정확한 답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넓은잎나무의 숲에서는 그 숲 특유의 부엽균이 생기며, 그 부엽균이 조금씩 강으로 흘러 들어 바다로 옮겨짐에 따라 바닷물 속에 플랑크톤의 양이 늘어나며 어패류를 증식시킨다는 것이 그 간단한 이론이다.
옛날부터 ‘어부의 숲’이라는 말이 있어 해안 지대의 수목은 어패류를 위해 결코 베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것은 인류가 수만 년 혹은 수십 만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로 그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플랑크톤의 증식을 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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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숲에서 살자면 자연스레 자기가 사는 장소 정도는 어떻게든 스스로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 보고 싶은 기분이 일어난다. 일종의 집 짓기 본능 같은 것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그 방면에는 재주가 없어 초·중학교 때의 공작 시간은 그저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섬에 살게 된 뒤에는 어느새 서투른 대로 내 거처 정도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습성이 몸에 배게 되었다.
집 본체와는 별도로 이제까지 앞뜰에 아이들을 위한 작지만 독립된 방을 하나 세웠고, 세 평 정도의 부엌을 집 동남쪽으로 늘려 지었고, 그리고 서쪽에는 침실용 방을 하나 내어 붙였다. 목수들이 보면 어이가 없어 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해 가며 손수 내 둥지를 짓는 일은 그 어떤 일과도 바꾸기 어려운 기쁨과 즐거움을 내게 줬다. 집이란 물론 훌륭해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비바람을 막고, 더위와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는 미학과 철학이 내게는 있다. 서투른 자가 생각해 낸 얼치기 미학이자 철학이지만 그것 역시 속일 수 없는 내 인생의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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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장마가 지고 있었고, 나는 우산을 쓰고 쏟아지는 빗속에 오래도록 서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들어 보니 흰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섬배롱나무가 비를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이 내게 보여준 것은, 비를 맞으며 흠뻑 젖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꽃피어 있는 시기라는, 지극히 단순한 위로였다. 5분 정도 나는 깊은 위로를 받으며 그 나무에 홀려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그 나무는 몇만 그루가 있는지 몇십만 그루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야쿠 섬의 수많은 나무 속에서 조몬 삼나무에 이어 두 번째 내 나무가 되었고, 가미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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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월간 “아웃도어”지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이 책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살며시 가져다 주는 수필이자 사상서이다. 우리의 외로운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위기에 처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애니미즘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이 책은 신애니미즘, 석기시대 충동, 생명지역주의라는 저자가 일생을 걸고 꿈꾸고 바래왔던 세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호화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좋다. 그것이 지구 위의 어느 장소이든, 사람이 한 장소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거기서 나고 죽을 각오를 하면 그 장소에서 끝없는 여행이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삼라만상 속에서 삼라만상의 지원을 받아 가며 거기에 융화돼서 사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사는 게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 야마오 산세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