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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과 싸우는 한 소녀가
천국의 색연필로 쓰고 그린 희망의 노래 12색 열두 가지 색깔이 있어요 눈에 띄지 않는 색도 있지만, 모두 노력하고 있어요 하나, 하나 카스미는 마비된 오른손을 대신하여 왼손으로 정성껏 줄을 긋고 시를 썼다. 처음 연필 잡는 법을 배우는 아이처럼 줄은 삐뚤빼뚤하고 글씨체는 엉망이지만, 각각의 색깔들로 자신과 함께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글짓기 반 열한 명의 친구들을 표현한 것이다. 카스미는 그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밝은 노랑을 자신의 색으로 택했다. 이 시는 짧고 단순하지만, 카스미의 심성을 응축해서 잘 보여준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한 아이의, 친구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르지 않은 열두 개의 세로선에서는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짙게 배어 나온다. 카스미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그 일이, 카스미처럼 아픈 아이들에겐 안간힘을 써야 하는 일이라는 것과, 이 세상엔 어느 하나 하찮은 일이 없다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이처럼 카스미의 시와 그림은 일체의 거추장스런 미사여구 없이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언어로써 순수하고 강한 생명력을 내뿜는다. ‘아기가 자라요’라는 시에서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이라는, 제법 어른스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편, ‘마음’이라는 시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예감하는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이가 자라요 갓난아기한테서 우유 냄새가 나요 한 살이 되면 따뜻한 햇빛 냄새가 나겠지요 아기는 아빠 엄마 온 식구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마음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게 있어 누군가에게 다 말해 버리면 좋겠지만 쉽게 말할 수 없어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질 거야 시를 쓰면서 살고자 하는 의지를 필사적으로 보여준 카스미는 안타깝게도 일 년여의 투병 끝에 2003년 9월, 열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 일본 열도를 감동시킨 그림책 하지만 카스미가 남긴 여러 편의 시는 이제 한 권의 그림책으로 꾸며져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카스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오사나이 미와코 선생님은 쿠시로에서 열린 ‘글짓기 교육 연구회’에 카스미의 시와 그림을 소개했다. 이때 강사로 참석한 어린이문학가 코야마 미네코는 카스미의 글에서 “가족의 따뜻함과 카스미의 고운 심성”을 느꼈다. 코야마 미네코는 카스미의 시?그림과 삶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어야겠다는 생각 끝에,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 그림책 작가 마이클 그레니엣과 손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코야마 미네코는 카스미의 삶 속에, 시에서 느꼈던 따뜻함과 생명력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마이클 그레니엣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 투박하고 거칠지만,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면서 이야기의 명암을 잘 표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