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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면은 '변호사 실종 미스터리'라는 톱기사 아래에 '로펌 정보 누출 가능성'이라는 박스 기사가 실렸다. 민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전기가 토해낸 신문 더미를 싣고 배달 트럭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쿠테타가 일어나 수도권 일대의 차량 통행을 차단하지 않는 한 이젠 누구도 신문이 독자들에게 배달되는 걸 막지 못할 것이다.
--- p.61 아주 한참만에 박형철이 무거운 목소리로 훈계하듯 말했다. "인간적인 고민과 번뇌를 소시민이니, 반동이니 하면서 딱지를 붙이며 사는 것보다는 소시민으로 사는 게 더 나은지도 모르죠." --- p.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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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소설을 본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이게 누구에 대한 얘기야?"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제 답한다. 나는 개인이 됐든 집단과 조직이 됐든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거나 혹은 폄하하기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다. 좌파냐 우파냐 하는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그저 우리 모두의 인간성 속에 숨어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나온 모든 인물과 상황은 그저 소설적 장치다. 신문사에 입사해 받은 첫 교육은 ‘무미건조한 사실(fact)만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라’는 것이었다. 그 원칙에 충실하려 애썼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근육만을 간직한 마라토너처럼 가장 간결한 문장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고백컨데, 뒷 문장이 앞 문장을 밀어 붙이며 언어의 잔치를 벌이는 소설가적 재능이 내겐 없다. 그저 내가 보고 경험한 치열한 현실과 바싹 마른 기사체의 문장, 그리고 내가 가진 한줌의 문학적 상상력만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을 뿐이다. 기자가 된 이후 권력 중독자가 돼버린 수많은 황태인을 만났다. 결국은 제 몸을 태우고 마는 불나방처럼, 권력에 다가가지 못해 발버둥치던 여러 명의 변태룡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정치인들의 헛된 욕망을 정당화해 주는 '이데올로그'로 변한 박형철을 만난 거였다. 그의 젊은 시절 꿈은 어디로 갔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낙관적이다. 이 세상에는 이주명 차장, 김민기 기자, 김광섭 반장처럼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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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 최초로 현직 기자가 쓴 정치 추리소설이다.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던 기자들이 거대한 정치적 음모의 실체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것이다.
대한민국 최대 로펌인 베스트서비스의 젊은 변호사 한 명이 의문의 피살을 당한다. 사건을 맡은 서울경찰청 강력계의 베테랑 김광섭 반장에게는 비밀리에 사건을 마무리하라는 상부의 압력이 계속된다. 해동일보 김민기 기자의 폭로로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만 단서를 쥔 대학생마저 필리핀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의문은 증폭된다. 기자들의 목숨을 건 추적 끝에 서서히 밝혀지는 정계 사조직의 실체. 영구 집권을 위해 모인 이들의 가공할 정체가 드러나면서 살인 사건은 국가 전체를 흔드는 정치 스캔들로 비화한다. “이 책의 강점은 리얼리티다” /한겨레 신문 박찬수 정치부문 편집장 사건의 전개와 함께 등장하는 경찰과 국정원 직원, 기자들의 행태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마치 그들과 현장에 함께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소설가들은 어떻게 진짜처럼 보일지 고민한다지만, 나는 내 얘기가 어떻게 하면 소설처럼 보일지를 고민했다”고 밝히고 있을 정도다. 살인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어떻게 행동 하는지, 기자들은 술집에서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를 하는지, 국정원 직원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대통령 비서실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에 대한 묘사는 전율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게다가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인 ‘21세기 위원회’와 장기 집권을 향한 그들의 음모가 밝혀지고 난 다음에는 이게 과연 단순한 창작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위원회가 존재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 책에선 누구도 쉽게 따라붙지 못할 속도감이 느껴진다. 장면과 장면이 워낙 긴박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일단 책을 손에 잡으면 내려놓을 수가 없다. 어떤 대목에서든 지루하다거나, 혹은 군더더기가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는 이 소설의 지은이가 전업 소설가가 아닌 현직 기자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에 매주 수요일마다 고정칼럼 「시시각각」을 연재하고 있는 저자는 간결하고 쉬우며, 단도직입적인 문체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에도 이 같은 저자의 문체적 개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스물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각 장마다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경주차를 보고 있는 듯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달려가듯 한 장, 한 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결말에 도달하게 되고, 갑자기 큰 그림의 실체가 불쑥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일체의 수식을 생략한, 기자 특유의 정확하고 깔끔한 문체야말로 절실한 현실을 전달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이 책에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실려 있다. 주인공인 김민기 기자는 운동권 선배였던 박형철 교수를 만났을 때 ‘박 선배는 자기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후배들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속으로 절규한다. 이 대목은 학생 운동 경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우며 달라진 세상에서 또다시 승승장구 하는 일부 정치인과 지식인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은 결코 그들을 원망하는 것 같지도 않다. 따지고보면 모두가 한 시대의 희생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담담히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에서는 시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저자 역시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징집을 당했고 녹화사업을 받은 운동권 출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