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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 Kad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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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낯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눈부신 연대의식이 생성되고 있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모두에게 똑같이 엄숙하고 기쁜 국경일, 똑같은 (국가의) 집게손가락으로 간택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아니면 은근하게라도 서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싶은 황금빛 동맹 관계를 그 모든 사람들 사이에 맺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 일반인들,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당신이 왜 초대받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당신이 말이야’ 하는 어리둥절하거나 의심에 가득 찬 집요한 시선으로 더이상 우리를 짜증나게 만들지 못하도록 안전선 바깥쪽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 p.34
불현듯, 나는 수수께끼의 의미를 파악한 것 같았다. …… 야코프, 그의 영혼에 평화가 깃들기를. 그는 독재자가 주장했듯이 다른 평범한 러시아 병사와 똑같은 운명을 겪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에게나 죽음을 요구할 권리를 독재자에게 부여해주기 위해서 희생된 것이었다. 이피게네이아가 아가멤논에게 학살의 포문을 열 권리를 부여해준 것과 같이…… 희생자는 함대의 출항을 가로막는 강풍이 가라앉으리라는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며, 모든 러시아 젊은이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도덕적 원칙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렇다, 그건 단순히 독재자들의 파렴치한 계략일 뿐이었다. --- pp.143~144 수많은 사람이 숨죽이며 보낸 밤들이 산더미 같은 시체보다 덜 중요할까? 아니면 숨막히는 늦가을, 무색무취의 가스에 질식된 저녁 시간의 담소, 더러워지고 시큼한 냄새 풍기는 눈과 겨울 향기는 또 어떤가? 쓸모없는 장식품이 되어버린 수영장 주변의 벤치들, 김빠진 맥주처럼 활기 없는 학생 파티, 강렬한 리듬 없는 탱고, 텅 빈 복도를 울리는 한밤의 청동 시계, 그리고 다 해지고 낡은 거울 앞의 헤어브러시와 보석과 모피 코트…… 그렇다, 수잔나가 내게 고해온 것은 삶의 영원한 메마름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선인장처럼 고통스럽게 최후의 생명수 몇 방울을 몸속에 응축시키고 있는 삶. --- p.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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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인 수잔나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작별을 고해온다. 그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지도자 동지’의 후계자로 지명된 고위간부라는 것. 아버지의 원만한 승진을 위해 딸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 한다. 실연의 고통을 겪는 와중에 ‘나’는 뜻밖에 5월 1일 노동절 기념대회 초대장을 받는다. 노동절 기념식장은 아무나 초대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초대받았다는 것을 의아해하는 듯한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를 느끼며 ‘나’는 기념식장으로 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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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생은 꼭 필요한 거야……”,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소설은 5월 1일 노동절 기념 대회 날 몇 시간 동안의 일을 그리고 있다. 대회 날 아침, ‘나’는 국가의 선택을 받은 인민만이 입장할 수 있는 대회장 초대권을 가지고 아파트에서 연인 수잔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수잔나의 아버지는 지도자 동지의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고위 간부로, 딸에게 옷차림부터 만나는 사람까지 모두 다 바꿀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딸은 아버지의 승진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나’에게 이별을 통고한 것이다. “이 희생은 꼭 필요한 거야……” 수잔나의 이 말을 화두로, ‘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을 떠올리며 이피게네이아의 희생과 수잔나의 희생의 유사점을 찾는 데 골몰한다. 이피게네이아는 무엇을 위해 희생되었던가? 아가멤논은 왜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켰는가? 마침내 ‘나’는 오지 않는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대회장에 늦지 않기 위해 집을 나선다. 대회장 가는 길,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몰락해가는 인간 군상 소설은 대회장 가는 길에서 ‘나’가 만나는 사람들, ‘나’가 회상하는 사건을 통해 혹독한 전제정권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그리고 권력의 공포 앞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변질되고 몰락해가는지를 소름끼치도록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알바니아의 호자 공산독재 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권력이 창출되고 유지되는 생리와, 권력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비틀어진 모습을 고발함으로써 전(全)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권력의 공포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물이 그저 낮은 곳으로 흐를 뿐이듯,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 우왕좌왕하며 몰려갈 뿐인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이보다 더 비극적으로 처절하게 그린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나’는 국경일 축제 분위기에 들떠 거리를 꽉 메운 인파를 헤치고 대회장을 향해 간다. 대회장 가는 길, 그것은 국가의 ‘간택’을 받은 자의 우월감, 자랑스러움과 ‘간택’받지 못한 자의 시기심, 부러움, 의심의 눈초리(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을까? 누구를 팔아먹은 거지?)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길이다. 국가의 간택을 받을 만한 영웅이 아니었던 ‘나’ 역시 대회장 가는 길 내내 죄의식과 피해의식에 빠져, 비난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군중에 맞서 공격적이 되어간다. 대회장 가는 길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은 국가의 억압을 겪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목숨을 이어가는 존재들이다. 전도유망한 과학자였으나 스탈린 추도집회 때 웃음을 터뜨렸다는 이유로 당의 가혹한 처벌을 받은 이웃집 남자는 평생 애원하는 구슬픈 표정으로 폐인이 되어 살아간다. ‘나’의 친구 레카 B.는 연극 연출자였으나 “서른두 가지나 되는 이념상의 오류가 들어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린 죄로 좌천되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 그늘도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남의 이야기하듯 신바람이 나서 말하며, ‘나’가 초대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시기심이나 조롱의 흔적 없이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이것 역시 억압 하에서 변질된 모습의 하나임을 작가는 행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옛 동화 ‘대머리의 추락’ 이야기와 비유를 이루며 전개되는 ‘나’의 동료 G.Z.의 이야기는, 숭고함을 자아내는 비극적 동화와 추한 현실의 비극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읽는이의 감정을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현실 고발도 이렇게 해서 훌륭한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희생과 권력의 이중주 대회장 안으로 들어가서 국가와 혁명의 승리를 외치는 전투적인 퍼레이드를 보며, ‘나’는 이러한 전체주의 국가에서 수잔나의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은 사유에 잠긴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앞두고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킨 것은 그저 배의 출항을 가로막는 강풍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스탈린이 아들 야코프를 희생시킨 것은 그가 내세운 명분대로 자기 아들이 모든 러시아 병사들과 같은 운명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가멤논과 스탈린이 이 막대한 피의 대가로 원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목숨을 요구할 권리였다. 그럼 수잔나는 왜 희생되어야 하는가? 간부의 자녀라면 일반 인민의 현실과는 괴리되어 승용차도 굴리고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나다니며 해변의 개인 별장에서 난잡한 섹스파티를 벌이는 등 온갖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시 알바니아의 현실이었음에도, 왜 유독 수잔나의 아버지만은 딸에게 옷차림새부터 친구들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드는 것일까? 당장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고위 간부의 딸 신상에 일어난 자그마한 변화에서 ‘나’는 아가멤논이나 스탈린이 행했던 유혈참극보다 더 무서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전율한다. 그것은 새로운 공포정치, 작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일상의 기쁨이 거세된 메마른 삶의 전주곡이었던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