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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해제 - 웅십력과 『신유식론』 6장. 공능 (하) - 본체와 공용 (하) 7장. 성물 - 만물의 형성 8장. 명심 (상) - 마음을 밝힘 (상) 9장. 명심 (하) - 마음을 밝힘 (하) 웅십력 연표 찾아보기 - 신유식론 (상) 찾아보기 - 신유식론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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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새로운 철학’이라는 의미의 현대신유학은 중국 근대 5·4운동 시기 이후 형성된 신유학 학파를 지칭하고, 전통철학, 특히 유학과 서양 근대 문화를 결합하여 현대에 맞는 동양의 새로운 철학을 성립시키려 했던 사상이다. 서양 제국주의가 동양을 침범해 들어오던 위기의 시대에, 그 서양 세력에 맞설 힘을 동양의 전통철학에서 길어내겠다는 것이 신유식학파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서양 철학 개념이나 논리를 활용하여 세련화시키기는 할지언정, 그 소재는 어디까지나 유학, 불교, 도가 사상이라는 전통철학이 된다. 그러므로 『신유식론』을 읽다보면, 우리는 유식 불교는 물론이거니와 전통철학인 공자·맹자·정자·주자·육상산·왕양명 철학의 창조적 계승이나 변형을 발견하게 되고, 서양 철학인 칸트나 헤겔 철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베르그송 철학처럼 동양 사상과 유사한 철학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철학이 과거 고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나온다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서양 근대철학이 고대 그리스철학에 대한 재해석에서 시작되었던 것은 차치하고라도, 현대 서양철학 역시 서양 근대 고전에 대한 철저한 독해와 재해석에서부터 나왔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지만 동양의 전통철학 또한 의미를 가지려면 현재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전통철학이 그러한 현실적인 힘을 갖기 위해서는 고전에 대한 철저한 독해를 통해 새로운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자세를 다른 말로 ‘비판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현대 철학은 그래서 더 중요해진다. 근현대란 어찌 되었던 현실과의 접점을 싫어도 찾아야 했던 시기이고, 그 과정을 통해 현재에 수많은 참고 문헌들을 제시해주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유식론』의 의미도 이와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웅십력은 현대신유학의 제창자라고 할 만하다. 중국 호북성의 가난한 집안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 친구 한 사람의 문하에서 반 년간 정주학을 공부한 것이 공식적인 학문의 전부였다. 18세 되던 해 동료들과 공모하여 혁명을 도모했고, 무창 개자영에 병사로 들어가 군대에서 운동을 모색하려 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34세인 1918년 혁명에 회의를 느끼고 학문에 뜻을 두어 철학자로 인생의 방향을 수정할 것을 결심하였다. 웅십력은 혁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저렇게 자기 심신상의 공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면 왜 혁명에 참가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여 도덕의식이 그만한 높이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인간을 외적으로 변혁시키고 해방시키자는 혁명에 참가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럴 경우 혁명이 성공한다고 해도 인간의 도덕의식이 고양되지 않는 한 체제가 바뀔 뿐 문제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제도라는 외적인 변혁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간 자신의 변혁, 내면적인 도덕적 고양임을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절감하였던 것이다. 웅십력은 36세인 1920년 양수명의 소개로 구양경무(歐陽竟無)의 남경내학원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남경내학원은 당시 근대불교부흥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유식 불교가 중심인 곳이다. 웅십력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이렇게 불교를 공부하면서부터인데, 웅십력 자신도 자기의 학문 여정에 대해 “평생 양대 불교(중관 불교와 유식 불교) 사이에서 노닐었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이는 근대불교부흥운동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웅십력은 불교부흥운동의 영향하에서 유식 불교로 학문의 여정을 시작하였으나, 결국 유식 불교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식 불교가 본체와 현상을 이분(二分)한다고 보는 입장이 그가 비판하였던 서양 철학과 동일한 주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