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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大綱二五段(元祿七年九月③) (25-00) 1694년 9월, 사자카와치 마스에몬 (25-01) 사자의 화관 도착 (25-02) 도주의 사고를 전하는 각서 (25-03) 1. 봉한 반한, 임시회담과 국법, 주진의 요구, 접위관의 귀경과 출연석, 항의를 위한 두류, 조선의 비례, 난출의 만류, 연락의 강조, 이테이안의 참여, 도주의 사고 (25-04) 10월 1일부의 서장, 임시 귀국한 아비루, 귀국을 만류하는 본국, 무사 카외치 (25-05) 남구만의 근황, 무위의 일본, 전쟁을 피하려는 조선, 남구만의 정책 주, 도서, 각서, 남정승, 사자의 재파견 大綱二六段(元祿七年十月①) (26-00) 1694년 10월 3일, 출연석, 반한의 요구 (26-01) 9월 28일, 주진의 요구, 29일 출연석의 합의 (26-02) 9월 29일, 귀국을 만류하는 비선, 동래에 방치하는 반한, 귀국과 귀경 예정 (26-03) 10월 1일, 두류의 결심, 출연석의 의미 (26-04) 10월 2일, 출연석 합의 (26-05) 10월 3일의 출연석, 반한의 요구, 임시회담의 문제, 2통에 대한 1통, 반한 내용의 요구, 교섭파탄의 책임, 귀경하는 접위관과 남는 판사, 귀경하여 할 일, 동래부사의 역할 주, 쓰시마의 대안, 귀국하는 사자, 귀국의 연기, 접위관의 귀경, 출연석, 타다와 유집일, 원활한 교섭, 계속되는 교섭, 동래부사 大綱二七段(元祿七年十月②) (27-00) 1694년 10월, 사자카와치의 귀국 (27-01) 10월 7일의 일부의 서장, 귀경하는 접위관, 동래에 두는 반한, 조선령 울릉도, 성신의 교류와 장군, 결렬을 피하는 노력, 쓰시마 무사 카와치, 철수하는 접위관과 잔류하는 정관, 귀국하는 타카세 (27-02) 재판의 보고, 울릉도에 파견된 안동지, 쓰시마의 비리, 쓰시마 이외의 창구, 호우키국주, 도주의 질문, 조선의 의도 파악, 조선의 풍문, 정관에 대한 불신 주, 서한의 수취, 전란의 위기, 형식과 전통, 교섭의 결렬, 외교능력, 울릉도 파견, 쓰시마의 위기 참고사항: 쓰시마, 소우 요시자네, 쿠라마이 치교우, 오오우라 곤타유 大綱二八段(元祿七年十月③) (28-00) 1694년 10월 6일, 접위관의 귀경 (28-01) 10월 5일, 접위관의 귀경인사, 귀경한 후의 주진 약속, 상경하는 박첨지, 잔류하는 박동지 (28-02) 밀양의 박동지, 도성의 비각 (28-03) 10월 17일, 도성의 부정, 함답, 동래부사의 인품, 비언의 서부, 남구만에 대한 원망, 주진과 처벌 (28-04) 11월 15일, 귀경한 접위관 (28-05) 12월 16일, 남정승 교대에 대한 기대 (28-06) 감찰사의 순견과 주진, 추고, 자연스러운 주진 大綱二九段(元祿七年十月④) (29-00) 1694년 10월, 장한상의 울릉도를 검분 (29-01) 10월 14일, 강원도 순찰사의 비각, 9월 16일의 소선, 김병사의 파견, 조선통신사, 안동지의 동행 주, 장한상과 김병사, 안신휘와 안동지 참고사항: 장한상 大綱三祿段(元祿七年十一月) (30-00) 1694년 11월 16일, 본국의 사자 (30-01) 도주의 병사 (30-02) 11월 20일, 조문과 정사, 조선의 비례 【大綱三一段(元祿八年一月①)】 (31-00) 1695년 정월 9일, 소우요시자네의 중임 【大綱三二段(元祿八年一月②)】 (32-00) 1695년 정월, 박동지의 귀경 명령 (32-01) 1월 7일, 박동지의 귀경 명령 (32-02) 1월 8일, 밀양의 박동지, 남구만의 소환령, 순찰사의 주진, 남구만과 윤지완의 사직, 안용복을 신뢰하는 남구만, 쓰시마 인식, 귀국의 조건 (32-03) 1월 9일, 귀경하는 판사에 대한 왜관의 감정, 동무사자에 대한 경시, 조선의 비례 (32-04) 1월 10일, 동래부사의 사자 인식, 접위관을 대신하는 부사, 순찰사의 주진, 정관의 희망 (32-05) 3월 28일, 도성의 반답, 주진한 부사의 처벌, 반발하는 왜관 주, 박세채, 윤지완, 안용복의 에도행 【大綱三三段(元祿八年五月①)】 (33-00) 1695년 5월, 도주의 반한 분석 (33-01) 울릉도 사정, 죽도사태, 80년의 범월, 반한 속의 무례, 재판의 도해 (33-02) 타카세가 지참한 서부 귀국 명을 받은 정관, 반한 내용에 대한 질문, 귀국에 임한 역할, 의문 3개소, 동래에 맡겨두는 반한, 치주의 반환, 조문 절차, 조선외교, 반한과 치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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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 스야마 쇼우에몬(陶山庄右衛門)은 “죽도의 위치는 일본땅에서 떨어지길 164리의 먼 곳인 것에 비해 한편 조선땅에서는 수목이나 물가까지도 보일 정도로 가깝습니다. 그야말로 조선에 속하는 것이지요. 지도나 서적에 기록된 논고는 말로 변론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조선령으로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중략) 트집을 잡아 그 섬을 영구히 일본의 속도로서 결정지어 버리려고 하는 것은, 설령 그 일이 성사되었다고 해도 그 같은 주장과 행동은 타국의 섬을 억지로 빼앗아서 일본의 장군에게 바친 것이 되어 불의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칭송할만한 충공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조선에서는 선조 이래 은우를 입어 쓰시마라는 나라는 유지되어 왔습니다. 억지로 그 섬을 탈취하여 일본의 부속으로 해 버리는 것 등은 정말로 불인 불의라는 것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 카시마 효스케(賀島兵助)도 “울릉도는 조선의 속도입니다. 그리고 80년 전부터 일본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표류민을 송환시켰을 때 조선이 보낸 서간문을 지금 여기서 끄집어내어 어떻게 해서든 이유를 만들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트집처럼 들립니다. 만약 이 쟁론에서 이겨 문제의 섬이 일본에 속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그것은 세 번 표류 한 일본인을 송환하며 보낸 서간에 오류가 있었던 것을 트집 잡아 말로서 이긴 것입니다. 즉 트집을 잡아 탈취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며 조선의 영토를 침탈하려는 쓰시마 번을 비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