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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초공사와 배수로 공사
#2 골조공사 #3 상량식 #4 이삿날 옮긴이의 글 ― 비틀고 찌르는 블랙유머의 대가 호타카이넨 |
Kari Hotakai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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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안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교외에 자신만의 집을 갖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았다. 그런 사람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신문을 뒤적거리고 일요일마다 한숨을 내쉬며 집을 보러 다닌다.
하지만 맙소사, 그런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나는 그것이 내 소망이 아니라 헬레나의 소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친구들의 집, 정원과 테라스의 모양새에 대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하던 헬레나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헬레나는 교외의 집들이 얼마나 근사한지 자세히 묘사하고 지하실의 다양한 활용 방법과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줄줄이 꼽았으며 단독주택 단지에 열광했다. 사실 내게는 그런 말에 귀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집안일에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고서 그저 건성으로 맞장구치며 대충 웅얼거렸을 뿐이다. --- p.20 나는 이 나라의 가정전선에서 여성해방을 위해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운 사람들 중 하나였노라고, 아주 침착하고 분명하게 단언할 수 있다. 가정전선의 남자는 집안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아내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헬레나와의 결혼생활 동안 나는 우리 아버지가 못 다하신 일을 완수했다.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집 안을 청소했으며 그녀가 자신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우리를 수호했다. 헬레나의 직장에서의 문제, 헬레나의 감정적 동요, 그리고 더욱 다양한 애정표현에 대한 그녀의 요구를 몇 시간씩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녀를 부엌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을 수행했으며, 그녀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동분서주했다.(중략) 헬레나가 출장으로 집을 비우거나 만성적인 편두통에 시달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는 이틀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했으며 가족을 위해 장을 보았다. 게다가 조금도 분통을 터뜨린 적 없이 이 모든 일을 했다고 가족치료사의 냉정한 눈길 앞에서 맹세한다. --- p.22 그들이 내 투쟁을 이해하길 기대할 수는 없다. 나 또한 이해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 1세대 참전용사들은 우리의 세상살이가 어린애 장난처럼 쉬운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들은 갈가리 찢어진 마음을 안고 전선에서 돌아왔으며, 전쟁 후에 태어난 세대가 ‘문제’라는 말을 진지하게 입에 올리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집 안이 따뜻하고 누구나 무료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동네마다 있고 포병이 코앞에 진을 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죽는소리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 p.30 주택대부금 최종 완납일, 2029년 7월 14일. 그러려면 다달이 7900마르카씩 대부금을 갚아나가야 한다. 물론 집에 들어가는 수리비는 별로다. 시간 외 초과근무 수당까지 모두 합하고 세금을 공제하면 내 한 달 수입은 9800마르카 정도. 대부금을 빼면 한 달 생활비로 대략 1000마르카가 남는 셈이다. 그러면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약 33마르카……. 완두콩수프 통조림, 귀리죽,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의 간 그라탱. 새 옷은 말할 것도 없고 모자도 절대로 사지 않는다. 모자가 아무리 낡아도,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고 ‘남핀란드 국민은행’이라는 글귀가 씌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에 기름을 재운 싸구려 참치. 슈퍼마켓에서 산 묵은 빵. 우유를 타지 않은 블랙커피, 그것도 하루에 한 번만. 겨울에 조깅할 때는 방한 운동화 대신 두툼한 안창을 신발에 깔고, 머리는 그냥 물로만 감든지 아니면 수영자 사우나의 샴푸를 작은 병에 따라 온다. 시니의 옷은 모조리 벼룩시장에서 구입하고, 외국산 조미료와 양고기 구이도 깡그리 포기한다. 담배는 직장동료들이 탈린에서 가져온 종이에 직접 말아 피우고 휴대폰과 로큰롤 음반도 단념한다. 중고 음반도 절대로 구입하지 않는다. 주택대부금을 완전히 상환하고 나면, 나는 일흔네 살로 지금의 우리 아버지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9년 7월 14일이여, 아듀. 나는 집을 구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 p.34 제일 괴로운 일은 에로틱 마사지였다. 평범한 상체 마사지를 양 볼기와 그 사이로까지 연장하는 것에 영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여자들이 흥분하기 시작하면 나는 겉으로는 완전히 마사지에 열중한 척하면서 머릿속으로 장차 시니의 방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생각했다. 뭐니뭐니해도 가슴 마사지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번번이 헬레나의 가슴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의 가슴은 대부분은 내게 있어 역겨운 살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슈퍼마켓 카운터 여점원만은 헬레나처럼 둥글고 탄탄한 유방을 가지고 있었다. 여점원의 젖꼭지가 단단해졌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나는 갑자기 눈앞이 핑 돈다고 둘러대고는 마사지를 중단했다. 카운터 여점원은 이미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마사지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는 젖꼭지를 내 입 안에 밀어 넣으려고 했다. 나는 여점원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멀리 밀쳐냈다. --- p.43 이제 핀란드에서 집을 사고 대부금을 상환하는 것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가 되었다. 집값이 요동치고 거액의 돈이 오가고 이자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더니 급기야는 전국 각지에서, 무엇보다 헬싱키에서 독특한 부족을 양성해냈다. 그 부족은 은행 앞에 서서 제발 내 집을 갖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만트라를 읊었다. 그 부족이 10년 동안 지불한 이자만으로도 시골에 근사한 단독주택 한 채를 거뜬히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 p.48 세월에 씻긴 잔디밭이 내 머리처럼 듬성듬성하다. 나는 산사나무 울타리 사이로 한 손을 밀어 넣어 잔디밭을 어루만지면서, 미련한 인디언 같은 생각을 한다. 여기는 너희들의 땅이 아니야. 이곳은 원래 논밭이고, 도시계획에 의해 메워진 해저이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늪지이자 모래라고. 그 뿌리가 이곳에서 중국까지 뻗어 있어. 나는 길게 드러눕는다. 하늘이 푸르다. 내 눈처럼 푸르고 도 푸르다. 내가 날고기라면, 요리 준비는 모두 끝났다. --- p.291 창문 밖으로 길이 훤히 내다보였다. 이제 여기에 앉아서,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리라. 여기에 앉아서, 내 학업을 끝마칠 결심을 하리라. 여기에서 나이를 먹어가고, 이 의자에서 바닥으로 쓰러지리라. 나는 수첩을 꺼내 수선이 필요한 곳들을 모두 기록했다. 많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대대적인 수리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집 구조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며, 벽을 옮기거나 바닥을 뜯어내지도 않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이미 충분히 집 구조가 변경되고 벽이 옮겨지고 바닥이 뜯겨 나갔다. --- p.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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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의 나라에서 온 초특급 블랙유머 작가
카리 호타카이넨의 집착과 상실에 대한 송곳 같은 통찰 ▶ 뼈아픈 위트와 신랄한 독설의 휴머니스트 카리 호타카이넨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카리 호타카이넨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가장 독창적인 현대작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총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시인으로서 먼저 활동을 시작한 그의 원래 직업은 지방 방송국 리포터. 그러다 헬싱키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장편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출간하는 소설마다 평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 호타카이넨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문단에 알려진 것은 독특한 소설 세 권―《버스터 키튼의 삶과 업적Buster Keaton: el?m? ja teot》(1991), 자본주의의 지옥 같은 종말을 다룬 《브롱크스Bronks》(1993), 사회개혁의 참사 속에 공상과학과 동화를 결합한 《죄악의 무더기Syntis?kki》(1995)를 연달아 내놓으면서부터다. 특히 《브롱크스》는 핀란디아 문학상 수상작으로 카리 호타카이넨의 작가적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고전주의자Klassikko》(1997)는 그의 초기작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 작가와 이름이 같은 카리 호타카이넨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고백문학을 풍자한 이 소설은 거장 아키 카우리스메키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2001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아이작의 성당Iisakin kirkko》(2004)과 섹스와 포르노 그리고 사랑의 불분명한 경계를 그린 《경솔한 사람들Huolimattomat》(2006), 단편집 《핀니츠Finnhits》(2007)도 많은 비평가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카리 호타카이넨은 섬세한 아이러니를 빌어 주변부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며, 희극과 비극을 날줄과 씨줄 삼아 이야기를 직조해나간다. 격언의 성격을 띠는 카리 호타카이넨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지적이며, 때로 유창한 언변으로 인물과 상황을 능란하게 요리해낸다. 작가는 특히 평범한 주인공이 희극적 상황에 휩쓸려 비극적 결말에 이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슴이 뜨끔할 정도의 신랄한 풍자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소통의 부재 속에 침몰하는 개인을 해부하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여전히 꿈꾸는 것이다. 핀란드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안나 홀스텐(Anna Hollsten)은 호타카이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호타카이넨은 초현실주의자,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불린다. 또한 그는 패러디와 아이러니, 희극을 무기로 최전방에서 앞장서서 싸우는 사회비평가다. 호타카이넨의 언어는 산문의 경우에도 시적이다. 그의 짧고 간결한 비판과 소박해 보이는 언어표현은 잠언적인 성격을 보인다. 호타카이넨은 언어를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 진부한 언어표현을 비틀고 뒤집어서 동시대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 21세기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핀란디아 문학상?북유럽 문학상 수상작 2002년, 한 소설이 핀란드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불쑥 등장한다. 그동안 수많은 시와 소설을 왕성하게 발표해온 한 중견 작가의 신작 장편이었다. 신랄한 사회비판 의식과 초현실적인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유명한 작가인 만큼 그의 소설이 대중의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가 된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였다. 놀라운 이변은 계속됐다. 그 소설 ― 바로 《그 남자는 불행하다(원제:Juoksuhaudantie(참호로)》가 핀란드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평단의 격찬도 쏟아졌다. 카리 호타카이넨은 이 소설로 핀란드 최고의 문학상인 ‘핀란디아 문학상’을 두 번째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을 뿐 아니라(호타카이넨은 1993년에도 같은 상을 받았다) 해마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우수한 작가들에게 수여되는 ‘북유럽 문학상’까지 받으며 명실상부 핀란드를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올라섰다. 평단과 언론에서는 《그 남자는 불행하다》의 인기를 문학적인 현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세상의 관념을 뒤흔든 비범한 사건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간되었으며 핀란드에서만 1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우리나라는 네덜란드에 이어 열네 번째로 이 작품을 번역?출간하는 나라다. ▶ 그 남자는 평범하다 ― 전형적 시대, 전형적 인물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침공을 받아 길고 절망적인 전쟁을 치러냈다. 전멸을 거듭하다 결국 참패한 핀란드는 상당한 영토를 빼앗기는 한편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떠안게 되었다. 핀란드 정부는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된 난민들과 전쟁터에서 돌아온 참전용사들에게 무상으로 주택 부지를 제공하고 주택 융자금을 지원해주었다. 그리하여 황량한 벌판에 똑같이 생긴 작은 집들이 무수하게 세워졌고, 그렇게 지어진 집을 일컬어 ‘참전용사 주택’이라 부르게 되었다. 주인공 마티가 갈망하는 집은 바로 이 극히 기본적인 건축도안에 따라 지어진 ‘참전용사 주택’이다. 한 가족이 지내기에 적당한 넓이, 적절한 개수의 방, 검소한 사우나와 작은 정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꼭 필요한 것만 갖추어져 있는 집다운 집. 소설에서 이 ‘참전용사 주택’은 무차별 개발에 혈안이 된 부동산 시장이나 각종 성적 유혹, 혹은 현대 자본주의의 과시 성향과 관련된 모든 개념들과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 있다. 마티가 지은 지 50년이나 된 낡은 참전용사 주택을 일찌감치 ‘내 집 후보’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참전용사 주택이 전형적인 시대와 전형적인 집을 대표한다면 마티는 그 자신이 평범한 중년 남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이름인 마티 비르타넨(Matti Virtanen)이 핀란드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라는 것만 보아도 인물이 지닌 대표성을 알 수 있다. ▶ 그 남자는 쓸쓸하다 ― 희극적 시대의 비극적 군상들 마티가 참전용사 주택이야말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꼭 어울리는 집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또 있다. 마티는 스스로를 가정전선과 여성해방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운 참전용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웠던 군인들을 1세대 참전용사로 칭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참전용사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티와 그의 전우들은 ‘발언권을 잃어버린 음지의 세대’나 다름없다. 사회의 어느 누구도 여성해방을 위해 몸 바친 남자들에게 어떤 사의도 표하지 않으며, 아내조차도 좀 더 남자답게 굴 수 없느냐고 잔소리하기 바쁠 뿐이다. 십대 시절에는 자유주의와 로큰롤에 열광하고, 청년 시절에는 여성해방을 위해 온몸을 던졌으며, 결혼 후에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뼈가 부서져라 노력했는데……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이도, 어디 털어놓을 데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다는 사실에, 마티는 씁쓸한 패배감과 함께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전국적인 국토재건 운동에서도, 갑자기 밀려온 성 해방의 구호 속에서도, 돌연 유행하는 애국주의의 광풍을 맞으면서도, 언제나 그 주변부에 머무르는 아웃사이더였던 마티. 그는 사회의 격랑을 두루 체험하였으나 시대의 틈바구니에 충혈된 눈으로 끼어 있는, 전형적인 이방인이자 전형적인 시대의 희생양, 자유인을 꿈꾸었으나 광인이 되고 만 남자다. ▶ 그 남자는 욕망한다 ― 집착에 대한 소고 마티의 ‘내 집 마련’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온갖 눈물겨운 노력을 다하는 한편 그는 단독주택에서 ‘뻔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탐욕스럽고 폐쇄적이며 정원의 잔디와 저녁의 바비큐에 집착하는 종족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또 헬싱키 내에 있는 집이라면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을 보고, 주택과 관련된 사람들(단독주택 주인, 부동산중개인, 단독주택을 찬미하기 바쁜 심리학자)의 뒤를 캐고 협박하며 괴롭힌다. 마티의 본래 목적은 행복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점차 ‘내 집 마련’은 하나의 강박관념, 하나의 절대 명제, 일종의 신이 내린 숙제가 되어 마티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목을 조르게 된 것이다. 핀란드에서 집을 사고 대부금을 상환하는 것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가 되었다. (중략) 급기야는 전국 각지에서, 무엇보다 헬싱키에서 독특한 부족을 양성해냈다. 그 부족은 은행 앞에 서서 제발 내 집을 갖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만트라를 읊었다. - 본문 48쪽 온 가족이 함께 기거할 방 하나를 구하지 못해 아버지는 고시원에, 어머니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자녀들은 친척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무수한 경우를 생각할 때, 마티의 절실함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과도한 집착으로 서서히 광기에 휩싸여가는 마티의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무언가에 집착하는 인물이 마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남자는 불행하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다. 마티의 윗층에 사는 부부는 건강에 집착한다. 그들은 흡연자들을 쓰레기만도 못하게 취급하며 모든 담배 연기에 증오심을 불태운다. 건넛마을인 단독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안전에 집착한다. 낯선 이의 침입을 경계하며 누가 자신들의 단란한 생활에 흠집이라도 내지 않을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집단 노이로제에 걸린다. 부동산중개인은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집착하는 일중독자이다. 하지만 그도 때로는, 진짜 자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살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닐까 하는 불안에 떤다. 마티의 아내 헬레나는 자신의 불행에 집착하는 여자다. 부정적인 생각만 곱씹고 곱씹으며 거기에 더욱 깊숙이 빠지는 유형이다. 그러면서 왜 행복은 늘 남의 것이기만 한지 괴로워한다. 마티는 자신을 전형적인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어떤 전형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은 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와 닮았고, 우스꽝스러우며, 불쌍하다. 호타카이넨은 이들을 통해 핵심을 찌르는 논평과 풍자가 절제된 코미디를 자유자재로 선보인다. 그의 풍자는 지극히 남성적이지만, 여성과 가정이라는 개념을 소중하게 여기며 우리가 상실한 모든 것의 무게 중심지로 이들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도 특색이다. ▶ 그 남자는 불행하다 ― 결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 본래 마티는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철학에 따라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개발과 발전,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의 생활과 영혼을 점차 균열시켰고, 결국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발맞추기 위해 욕망을 품은 마티는 그 갈망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와 현실과 부딪쳤을 때 마티가 가장 먼저 깨달은 사실은 이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이 세상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결국 깨우치게 되는 뼈아픈 진실이 아닐까. 40해 가까이 의지해왔던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가운데, 이제 마티가 단단하게 붙잡을 수 있는 실체는 아내와 딸뿐이고,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의 그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은 한 채의 자그마한 집뿐이다. 마티와 그 주변 사람들의 불행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라도 결코 천국이 될 수는 없음을, 그 안의 개개인 모두가 나름의 결핍을 안고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 어느 누구도 상실을 피할 수 없으며 집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뼈아픈 위트와 함께 배우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