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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색의 역사
성모 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
미셸 파스투로 저 / 고봉만, 김연실 공역
한길아트 2002.05.31.
원제
Bleu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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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역자 : 고봉만
성균관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에서 「혁명과 반혁명-바르베 도르빌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프랑스와 유럽: 유럽통합의 선택에 관한 역사적 접근」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한『프랑스 혁명』『역사를 위한 변명』이 있다. 현재 성균관대 등에서 프랑스 역사와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저자 : 미셸 파스투로 Michel Pastoureau
파리 고문서학교와 파리 박물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파리 국립도서관 메달진열실 학예관을 지냈으며, 1983년부터 파리 고등연구실천학교(E.P.H.E.)에서 서양상징사를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 문장학(紋章學)협회 부회장이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학교(E.H.E.S.S.) 객원교수이다. 중세 문장학의 대가인 그는, 현재 과일과 동물의 역사, 이미지의 역사, 특히 색의 역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저서로는 『문장학 개론』『줄무늬 옷의 역사』『악마의 천』『염색업자 집의 예수』『성서와 성인』『사과의 상징적 역사』『돼지 역사와 상징체계 그리고 돼지 요리』등이 있다.
역자 : 김연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에지트(ESIT, 파리고등통번역학교)를 졸업하고 번역학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 관련 통역과 라틴어·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84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8360460

책 속으로

파란색이 사회 · 예술 · 종교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어왔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태고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인류가 유목생활을 하면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집단사회를 이루고 또 최초의 동굴벽화를 그렸던 전기 구석기시대까지도 올라갈 필요가 없다. 이 벽화들에는 아직까지 파란색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 에는 빨간색, 검은색, 갈색, 그리고 여러 색조의 황토색이 발견되지만 파란색과 초록색은 찾아볼 수 없고 흰색은 간간이 나타나는 정도다.

그로부터 몇천 년 후 최초의 염색기술이 생겨나기 시작한 신석기 때까지도 거의 마찬가지 였다. 정착생활을 하게 된 인간은 파란 색 염색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적색과 황색 염료를 사용했다. 파란색은 지구가 생기면서부터 자연에 널리 퍼져 있는 색이었음에도, 인류는 이 색을 아주 어렵게 그리고 뒤늦게야 재현하고 생산하고 다룰 수 있었다.

모든 인간활동에서 파란색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색이었다는 점과 고대의 여러 언어에서 이 색을 명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흔적들은, 19세기의 여러 학자들로하여금 과연 고대인들이 파란색을 인식하기는 했는지 또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 같은 식으로 파란색을 인식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파란색의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나 신석기부터 중세기 중반까지 수천 년 동안 유럽사회에서 파란색의 역할이 사회적, 상징적으로 미약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pp.19~20

이제 블루(blue, 청색)라는 단어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이며 안정을 가져다주고 꿈꾸게 하는 말이 되었다. 또한 이 단어는 물건을 팔리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이 색깔과 별 상관이 없는 (혹은 전혀 상관이 없는)상품, 회사, 장소나 예술 작품들에도 '블루'라는 제목을 붙인다. 이 단어의 울림은 부드럽고 기분 좋으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의미상으로도 이 단어는 하늘, 바다, 휴식, 사랑, 여행, 바캉스, 무한함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다른 여러 나라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bleu', 'blue', 'blu', 'blau'등은 언제나 색, 추억, 욕망, 꿈 등을 연상시키며 안도하게 하고 시적 감흥을 준다. 이 단어들은 책의 제목으로도 많이 쓰인다. 블루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어떤 색의 어휘도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을 책에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블루를 선호하는 취향은 이 색이 특별한 충동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상징적으로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파랑이 다른색, 특히 빨강, 초록, 흰색, 검정보다 상징성이 '덜 강한'색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을 입증해주는 것은 여론조사에서 가장 덜 인용되고 가장 덜 미움을 받는 색이 파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pp.237~238

서기 1000년 이후, 더 나아가 12세기부터 청색은 서양사회에서 고대 로마시대나중세 초기 때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이름없는 색이 더 이상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짦은 기간 사이에 청색은 유행하는 색, 귀족적인 색으로 돌변했으며, 또 일부 작가들은 색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파란색의 지위는 바뀌어 그 경제적 가치도 엄청나게 상승했는데, 청색 유행은 특히 의복에서 두드러졌으며 예술 창조활동에서도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중략.....

성모 마리아의 의상 색은 이렇게 갑작스럽고도 막강한 청색의 지위상승의 양상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성모마리아의 의상이 사실 처음부터 청색으로만 표현된 것은 아니었다. 서양화에서 성모 마리아가 무엇보다도 청색 의상과 관련되고 이것이 성모 마리아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가 된 것은 12세기에 와서 이다. 청색은 성모 마리아의 겉옷이나 혹은 드레스에 나타나고 좀더 드문 경우로는 의상 전체에 나타난다. 그 이전에는 단지 어두운 색이기만 하면 검은색, 회색, 갈색, 보라색, 청색 또는 진한 녹색 등 어떤 색깔이든 성모 마리아의 의상 색으로 가능했다. 비탄의 색, 애도의 색이면 되었던 것인데,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초기 기독교 미술에도 이미 존재했고(로마제국 당시에 친척이나 친구의 장례식 때 검은 옷이나 짙은 색의 옷을 입곤 했는데, 남자들은 주로 검은색 토가를, 여자들은 검은색 망토를 입었다), 카롤링거 왕조나 오토 왕조시대 예술에서도 계속 나타난다. 그런데 12세기 전반에 오면 이러한 상복 색상들 대신 청색이 단독으로 성모 마리아가 입는 상복의 색깔이 된다. 게다가 청색은 전보다 더 밝아졌으므로 보기에도 더 아름다웠다. 수세기 전부터 칙칙하고 어둡기만 했던 청색이 이제 더 선명하고 환해진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나 채색삽화의 대가들은 성모 마리아 의상에 나타난 이 새로운 청색과, 대성당 건축을 주도한 고위성직자들이 신학자들로부터 받아들인 빛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조화시키려 애썻다.

pp.65~67

계몽주의시대와 낭만주의 초기의 문학은 이러한 청색 톤의 새로운 유행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중 가장 훌륭한 예는 1774년 라이프치히에서 발행된 서한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괴테가 묘사하고 있는 유명한 베르테르의 파란색과 노란색 복장이다.

내가 샬로테와 처음으로 춤을 추었을 때 입었던 간소한 청색 연미복을 버리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너무 낡았더군요. 그래서 그 날 내가 입어던 그대로의 조끼와 노란색 짧은 바지와 함께 전에 입었던 것과 똑같은(청색) 연미복을 한벌 만들게 했습니다.

이 소설의 대대적은 성공과 이에 따라 생겨난 '베르테르 붐'은 전 유럽에 베르테르식 청색 의상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1780년대까지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져 절망에 허덕이는 주인공 베르테르를 흉내내어 청색 연미복인 예복을 노란색 조끼 혹은 짧은 바지와 맞춰 입었다. 또 매듭과 분홍색 리본들로 장식된 흰색과 파란색의 샤로테식 드레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서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사회와 문학간에 존재해온 교류관계의 훌륭한 예를 찾을 수 있다. 물론 1770년 전후로 독일에서 청색이 유행하고 있었으므로 괴테는 자신의 주인공에게 청색 옷을 입힌 것 뿐이었다. 그러나 괴테의 소설 자체가 이러한 유행을 부채질하여 전 유럽에 퍼뜨렸고 나중에는 의상 분야뿐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분야까지 확산시킨 면도 없지 않았다. 이로서 상상적인 것과 문학은 전적으로 사회 현실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pp.182~183

13세기를 좀더 살펴보면, 꼭두서니를 취급하는 상인들과 대청 상인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튀링겐에서는 꼭두서니 취급 상인들이 새로운 청색 바람을 저지하기 위하여 스테인드글라스 직공들에게 교회 유리창에 악마를 그릴 때는 청색으로 표현하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독일 전체와 슬라브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꼭두서니 거래의 최고 중심지였던 마크데부르크에서는 새롭게 상승세를 타던 청색의 유행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과 고통의 장소인 지옥을 청색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헛되이 대청이 승리를 거두게 된다. 다시말해, 13세기 중반부터 서양세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천이나 의상에서 청색이 유행을 타면서 붉은색의 인기가 떨어졌으므로 꼭두서니를 취급하는 상인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유행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었던 붉은색 염료로는 견직물과 고급나사에 사용되던 염료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상에 쓰였던 이 화려한 붉은색도 중세 이후에는 더이상 청색의 경쟁대상이 되지 못했다.

청색이 유행하는 바람에 이 색깔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염색업자들이 성공을 거두게 되었는데, 이들은 그때까지 막강한 위치에 있던 붉은색 염색업자들을 제치고 염색 분야에서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도시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면, 플랑드르, 아르투아, 랑그도크, 카탈루냐, 토스카나, 등에서는 일찍 변화를 겪었고, 베네치아, 제노바, 아비뇽, 뉘른베르크, 파리 등지에서는 늦은 편이었다.

pp.86~88

출판사 리뷰

색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역사!
색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역사!
색이란 것은 결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색은 다른 색과 조화 또는 대립관계를 이룰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파란색의 역사는 그 자체가 곧 색의 역사이며, 색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역사이다. 사실 중세에 가장 중요했던 색의 역할은 기존의 질서와 미풍양속을 따르는 선량한 시민들과 그것을 위협하는 아웃사이더들(의사·사형집행인·매춘부처럼 추잡하거나 이상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술주정뱅이·위증한 자·거짓맹세한 자·도둑질한 자·신을 모독한 자 등)을 구분하고, 사회 계층 및 계급을 차별하여 표시하는 것이었다.

중세 초기 무렵 지배적이던 빨강-하양-검정의 3색 체계가 당시의 동화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동화가 그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들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볼 때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흔히 '빨간 모자'로 알고 있는 이야기는 다름아닌 빨간 모자가 달린 망토를 입은 작은 소녀가 하얀색 치즈를 검은색 옷을 입은 할머니(또는 늑대)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며, '백설공주' 이야기는 검정색 옷을 입은 마녀가 (독이 든) 빨간색 사과를 가져와 눈처럼 흰 피부를 가진 소녀에게 먹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성과 소멸에 관하여』에서부터 청바지 제조회사인 리바이스 사의 사료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방대한 자료들을 참조하고 있는(참고문헌 참조) 이 책은, 색을 표현하는 어휘들의 어원을 비롯하여 대청, 인디고 그리고 꼭두서니 같은 염료, 색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관행이나 법규들(사치단속법이나 복식규정 등), 염료 및 염색업 관련 경제관계들을 함께 다룬다. 색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 염색과 천과 의상분야뿐만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패널화, 세밀화, 고대 유물,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도판들은 이 책의 자료적 가치를 드높여준다.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중세학자 미셸 파스투로는 색의 역사 외에 문장학, 과일과 동물의 역사, 이미지의 역사, 상징의 역사 등과 관련하여 많은 저서를 썼으며, 『블루, 색의 역사』는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파스투로의 저작이다.

파랑, 그 반전의 역사
로마인들에게 파란색은 미개인들의 색이었다. 파란색 눈을 가진 로마인은 추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여자는 정숙하지 못했으며, 남자는 여자 같은 나약한 인상에 교양이 없거나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카이사르는 켈트족들이 전쟁에서 적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몸에 청색을 칠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파란색을 새롭게 탄생시킨 것은 무엇보다도 성모 마리아였다. 중세 성화에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는 주로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되었다. 청색은 이러한 비탄과 애도를 상징하는 색 가운데 하나였으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파란색의 인기를 동반했다. 먼저 왕들이 청색 옷을 입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왕자와 제후들이, 나중에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그것을 모방했다. 중세의 기사도 문학은 색을 사용한 암시체계를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적(赤)기사는 흔히 악의로 가득 찬 기사 혹은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로, 흑(黑)기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주인공으로, 청색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청기사는 용감하고 충성스럽고 성실한 인물로 나타난다.

이후 파란색의 인기는 꾸준히 상승하여, 색에 따라 엄격하게 세분화되어 있던 당시 염색업계에서 막강한 위치에 있던 붉은색 염색업자들을 제치고 청색 염색업자들이 선두에 서게 된다. "새로운 사회질서에는 그에 맞는 새로운 색의 질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술되는 염색작업에 관한 내용, 염색업자와 모피 제조업자·무두질 피혁업자·방직공 등과 같은 관련 직업들의 관계와 직업윤리, 그리고 붉은색 염색을 주로 하는 도시와 청색 염색을 주로 하는 도시들간의 경쟁 등은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접하는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성상파괴논쟁을 계기로 생겨난 색에 대한 논쟁은 색의 역사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9세기 초 토리노의 주교였던 클로드나 12세기의 성 베르나르는, 색은 물질일 뿐이므로 천하고 헛되며 멸시당해 마땅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가톨릭 전례에서 색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중세 신학에서 빛은 감각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시적이면서도 비물질적인 것이고, 색을 빛으로 본다면 색 역시 신성을 성질을 띠는 것이었다. 따라서 색(빛)을 확산시키는 것은 신을 위해 어둠을 몰아내는 것과 같았다.

색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논쟁은 회화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루벤스나 티치아노는 색만이 살을 가진 인간에게 생명력을 줄 수 있다고 보았던 반면, 렘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적인 분위기 속에서 색 사용에 엄격했다. 종교개혁은 가히 색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기의 대량생산품, 예를 들어 가전제품, 만년필, 타자기, 자동차 등의 색은 거의 검정, 회색, 흰색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의 바탕에 내재되어 있는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가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본다. 실제로 청교도주의자 헨리 포드는 대중들의 요구와 다른 자동차들과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동차에 검은색 외의 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여기는 청바지야말로 청교도적인 산물인데, 형태의 단순함과 절제된 색상, 그리고 복장의 획일화 등 신교도들의 경향에 딱 들어맞는 옷이라는 것이다.

이후 파란색은 괴테(괴테 자신이 『색채론』을 쓸 정도로 색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의 베르테르가 살로테를 처음 만날 때와 권총자살을 할 때 입었던 연미복의 색으로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색이 되었고,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는 혁명의 색, 그리고 오늘날에는 유엔의 색(유엔기는 하늘색을 바탕으로 두 올리브 가지 사이에 지구가 그려져 있다)으로서 중립과 합의와 자유의 색으로 그 의미가 풍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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