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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개의 계집
2. 진혼 - 살아남은 자들의 시작 3. 그가 돌아오다 4. 내가 원하는 것 5. 틈입 6. 그 하루, 아주 멀고 긴 여행 7. 늪으로 가는 길 8. 늪 속의 늪 9. 나는 누구인가 10. 그에게, 들어가다 11. 첫마음의 복원 12. 십일월의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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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생각을 끝말잇기처럼 이어가고 있는 자신이 당혹스럽다. 알고 있다. 때로 나는 상상이 지나치다. 상상으로 현실을 대리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안다. 무희의 비난이 옳았는지 모른다. 오직 머리만 뜨거운 존재, 머리로만 뜨거워지는 존재……라던. 실은 넌 냉혈이야……라던. 그녀는 나를 바로 보았다.
너의 가장 큰 문제는, 시뮬레이션과 실전을 혼동한다는 것. 시뮬레이션으로 실전의 희로애락을 설파하려구 든다는 것, 그것이야.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녀는 가차 없이 나의 모순을 지적하곤 했다. 우정의 의무이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루 하는 사랑은 계산이야. 사랑은 가슴과 가슴 아래를 오르내리는 거야. 뜨거운 불꽃을 가슴에서 가슴 아래루 실어나르는 거야. ---p.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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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무희』 정길연 작품세계의 변화를 예감하게 하는 소설
『그 여자, 무희』는 정길연이 앞으로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어갈 것임을 예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데뷔작 『가족수첩』 이후 정길연은 가족이라는 최소 집단의 해체와 불균형을 통해 나와 타자와의 관계, 혹은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얼음처럼 차갑게, 혹은 건조할 정도로 객관화시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그 여자, 무희』는 우선 작가의 시선이 객관적인 사건에서 내면의 무의식으로 향하고 있다. 깨어서 낱낱이 분석하여 살을 발라내고 뼈만 남기는 객관적 사실의 문을 통해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실을 통해 내면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 등 그의 장점인 객관적 묘사가 돋보이는 가운데에서도 그 지향이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언가 내 의식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욕망 그것의 발현형식으로의 사랑, 그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얼핏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안개라는 매개물 자체가 암시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는 심층에는 켜켜이 안개가 끼어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무희와의 관계에 관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에 관한 이진의 내면 풍경들을 작가는 안개가 살짝 걷힐 때마다 하나의 얼핏 스쳐보는 스냅사진처럼 점묘를 하듯이 그려내고 있다. 그 점점이 이어져 완성되는 하나의 그림은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 혹은 감춰진 욕망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무의식 속의 욕망이 의식의 표면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얼음처럼 냉정한 문장으로 현실 상황에 따른 인간 심리를 재현하며 독자의 감정을 사로잡는 작가로 알려진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다소 의아해 보일 정도로 꿈과 환상(소설에서는 죽은 무희, 아버지 들의 비현실적인 등장)들을 통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환상, 혹은 상상들은 우리의 의식 밑에 숨어 있는 내밀한 심리의 저변을 드러내는 데 유효하게 쓰이고 있다. 정길연은 작가의 말에서 '이제 나는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스스로 예감하고 있다. 작가는 서른의 나이의 주인공(서른이라는 나이는 미혹과 불혹의 애매한 경계) 이진을 통해 열정적인 삶도, 안정적 삶도 아닌 오직 그 경계선상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있다. 마치 작가 자신이 기존의 작품과 앞으로 열어갈 새로운 작품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