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007 달개비꽃
049 화요일의 낙법(落法) 093 평론 | 홍기돈(문학평론가) 105 작가의 말 |
정길연의 다른 상품
|
머그잔과 약봉지를 들고 책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항생제와 진통 소염제를 한 알씩 털어 넣고 물을 한 모금씩 마신다.
이제 의례처럼 식물도감을 펼친다. 부러 찾지 않아도 찾는 페이지가 저절로 찾아진다. 나는 두 손바닥으로 빈 머그잔의 돋을새김을 감싸고서 책갈피 속 압화(押花)를 가만가만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쪽빛 닭의장풀은 아무도 모르게 제 몸의 물기를 말리고 있다. 파란 반달을 얇디얇게 저민 것 같은 파란반달꽃 두 잎이, 아무도 모르게 살빛 투명하게 말라가고 있다. 세상 저 밖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물기가, 아무도 모르게, 투명하게 말라가고 있다. --- 「달개비꽃」 중에서 그는 또, 안다. 저절로 안다. 이제 끝이다.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꿈속의 자신과 꿈 밖의 자신이, 동시에 울고 있다. 그 울음이, 그 눈물이 굳은 몸을 부드럽게 적신다. 익수는 두 손을 모아 가슴으로 가져간다. 평화다. 마침내. --- 「화요일의 낙법」 중에서 |
|
정길연 소설의 주인공들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깊은 병을 앓고 있으며, 경제적 곤란 또한 심각하다. 「화요일의 낙법」에서 “오래도록 수입이 전무한 금치산자” ‘익수’는 제 몸 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말기 신부전 환자로서 누워 지내는 형편이다. 「달개비꽃」의 ‘지요’는 기립성저혈압에 시달리는 한편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갑작스럽게 픽 쓰러져 버리기도 한다.
「화요일의 낙법」, 「달개비꽃」에는 평안과 위안을 제공하는 심리적 지지대로서 가족의 상이 전무하다. 이러한 양상을 낳게 된 원인이라면 우선 젊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꼽게 된다. 「화요일의 낙법」에서 익수 부친은 마흔셋 나이에 죽어 익수로 하여금 ‘운명의 표적물’이 되도록 만들었고, 「달개비꽃」에서 지요 아버지는 마흔하나에 뇌일혈로 쓰러져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
한 문장으로 구성된 「달개비꽃」의 마지막 문단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세상 저 밖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물기가, 아무도 모르게, 투명하게 말라가고 있다.” 지금 여기 펼쳐진 세상 바깥에서, 아무도 모르게 말라가고 있으므로, 미지의 그 물기는 일단 ‘X’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터이나, 물기가 생명력을 상징한다는 사실쯤은 오래된 문학의 전통에 기대어 알아챌 수 있다. 또한 책갈피에서 말라가는 달개비꽃을 매개로 마지막 문단이 가능해졌다는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 달개비꽃은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었던 낯선 남자가 떠나는 지요에게 쥐여주었던 것. 갑을 관계로 촘촘한 이 후기자본주의 세계에서 달개비꽃은 마치 빈틈마냥 놓여 있는 셈이다. 물론 그 빈틈은 새로운 세계를 개시하는 상징으로 남아 있게 되리라. - 홍기돈 (문학평론가)
|